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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숨은 인권 운동가 ⑧

“사형제를 ‘사형’시키는 게 복음정신”

천주교 서울대교구 교정사목위원장 이영우 신부

  • 글: 정호재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demian@donga.com

“사형제를 ‘사형’시키는 게 복음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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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신부는 “사형수들을 바라보는 많은 이의 시선이 싸늘하기만 한 것은 그들이 범죄를 저지른 순간의 이미지만 남아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일반인들은 사형수들의 변화된 모습을 접할 기회가 거의 없습니다. 그러니 그들의 범죄 사실이 밝혀졌을 때 격분한 나머지 ‘그런 놈은 죽어야 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나서 시간이 흐르면 어쩌다 생각이 나도 ‘이미 죽었겠지’ 하고 지나칩니다. 사건 이후 그들이 어떤 과정을 겪으며 변화하는지를 지켜볼 수 있다면 누구라도 사형폐지에 동의할 겁니다.”

사형폐지운동을 벌이는 과정에 누구보다 부담스럽고 그래서 세심하게 접근해야 하는 이들은 바로 피해자 가족이다.

“사실 가장 어려운 부분입니다. 계속 기도하지만, 그분들의 아픔은 좀체 가라앉지 않습니다. 어떤 분은 ‘내 가족을 죽인 사람이 내 옆에 살아 있다는 게 견딜 수 없다’고도 합니다. 당연한 얘기죠. 하지만 살인자를 죽인다고 분노가 풀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차라리 용서하면 홀가분해지지 않을까요? 비록 내 가족을 죽인 원수지만, 그를 가족으로 삼고 용서해주면 안 될까요?”

용서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런 경우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1991년 여의도 차량질주사건 때 손자를 잃은 할머니는 사형선고를 받은 범인 김씨를 양아들로 삼고 매일 면회 왔다. 할머니는 “한(恨)을 품고 살아봐야 누구에게도 득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미국에는 솔라스(Solas)라는 범죄피해자모임이 있다. 그들도 사형폐지운동을 벌이고 있다. 슬픔과 미움은 대물림한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이다. 자신들이 그런 감정에 빠져 있으면 자녀들도 어두운 분위기에서 자라 한과 증오를 물려받게 된다는 것. 솔라스 회원들은 범죄자를 용서해주는 것이 가장 커다란 사랑의 실천이고, 스스로도 고통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길이라고 믿는다.

이신부가 1997년 11월 교정사목 발령을 받은 지 한 달 후에 사형수 23명에게 형이 집행됐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신부는 집행장에 가지 못하고, 대신 선임 신부가 그들이 가는 광경을 지켜봤다.

“사형 집행 장면을 직접 보진 못했지만, 그 광경을 목도한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그렇게 끔찍한 일이 없다고 하더군요. 몇 년 동안 함께 웃고 울며 지낸 사람들의 생명을 끊는 장면을 지켜본다는 건 사람이 할 짓이 아니에요. 사형을 집행하는 교도관 역시 몇 십년이 지나도 죽은 사형수의 이름과 수번을 기억할 만큼 충격이 크다고 합니다. 법무부장관이야 집무실에 앉아서 집행서류에 서명하면 그만이겠지만, 만약 장관이 직접 사형수들의 변한 모습이나 집행 광경을 보면 절대 집행 지시를 내릴 수 없을 거예요.

어쨌든 그후로는 사형 집행이 없었으니 저는 아직까지는 운이 좋은 사람입니다. 제가 돌봐야 할 사형수들이 지금도 저와 함께하고 있으니까요. 그들이 내 눈 앞에서 죽어가는 것을 보지 않기 위해서라도 더욱 열심히 사형폐지운동에 매달릴 생각입니다.”

‘재고정리’ 집행 막아야

사형제도에 대해 차기 대선 주자들은 어떤 견해를 갖고 있을까. 민주당 노무현 후보는 이미 공개적으로 사형제도 폐지를 주장했고, 정몽준 후보는 지난해 사형폐지 특별법을 처음 발의할 때부터 서명에 동참했다.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는 명확하게 소신을 밝히지 않았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특별법 서명에 상대적으로 덜 참여했지만, 이회창 후보가 천주교 신자라는 점에서 종교계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

이신부는 늘 교도소를 드나들며 재소자와 출소자를 대상으로 사목활동을 벌이기 때문에 구금시설 사정에 누구보다 훤하다. 그는 “요즘은 교도소도 많이 좋아졌다”고 한다. 감옥이 결코 편한 공간은 못되고 의료지원도 부족하지만, 교도소측이 수감자들을 인격적으로 대우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것. 교도관들은 재소자에게 높임말을 쓰며, 최근에는 TV와 선풍기도 들여놨다고 한다.

“그렇지만 교도소는 재소자를 수동적인 인간으로 만듭니다. 문도 다른 사람이 열어주고 밥도 다른 사람이 퍼줍니다. 적극적으로 뭔가를 할 수 있도록 권하지 않아요.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없고, 하지 말라는 것은 너무도 많죠. 이 때문에 오직 지시만 따르는 수동적인 태도가 몸에 배야 하는데, 여기에 적응하면 교도소 안에서는 잘 지내겠지만 바깥에 나가면 정상적인 삶을 살아가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후원금을 모아 출소자를 위한 평화의 집과 나눔의 집을 만들었다. 기숙사식 쉼터로 꾸며 남·여 젊은이들과 무의탁 어르신들을 받아들여 재교육도 하면서 공동체 생활을 꾸려간다. 이신부도 평화의 집에 살면서 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

이신부는 벨기에와 이탈리아를 방문하기 위해 10월7일 한국을 떠났다. 민영교도소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민영교도소 설립에는 50억원 이상이 소요돼 지금으로선 불가능해 보이지만, 국가를 대신해 작고 이상적인 교도소를 만들어 운영해보겠다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민영교도소가 미래의 목표라면 당장 올해의 목표는 정권교체기의 사형 집행을 막는 것이다.

“사형수가 늘어나면서 법무부가 적잖이 부담스러워 하는 눈치입니다. 김영삼 정부 마지막 해에도 차기 정부를 고려해 23명을 사형시킨 것 아닙니까. 일종의 ‘재고정리’죠. 우리가 가만히 있으면 언제 집행할지 모릅니다. 그러니 대통령 후보들에게 공개질의를 하고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면서 집행을 막아야지요. 종교의 바탕은 생명입니다. 하느님은 그 누구도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생명이 생명같이 살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신동아 2002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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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정호재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demi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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