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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를 만드는 사람들 ⑥

乘風破浪! 아이디어로 바람타고 R&D로 파도 헤친다

오토바이 헬멧 세계 1위 홍진크라운 홍완기 회장

  • 글: 장인석 CEO전문 리포터 jis1029@hanmail.net

乘風破浪! 아이디어로 바람타고 R&D로 파도 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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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진연구소에서 본격적으로 연구·개발하고 있는 조립식 고가도로는 1997년 제네바 국제발명대회에서 금상을 받은 작품이다. 이미 미국 등 10여개국에서 특허를 얻은 아이디어로 건교부에서 정책자금을 받아 세종대 교수들과 공동 연구를 해왔다.

“교통체증을 해소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2층 도로를 세우는 것인데, 지금의 공법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고 경비도 많이 소요됩니다. 그래서 공장에서 미리 만든 조립형 도로를 현장에서 짜맞추는 공법을 생각해낸거죠. 이렇게 하면 경비나 공기(工期)가 40%쯤 단축됩니다.”

홍회장은 조립식 고가도로가 엄청난 외화를 벌어들일 수 있다고 전망한다. 가령 미국 캘리포니아 주정부는 1100억달러를 들여 로스앤젤레스에 2층 도로를 건설하겠다고 발표했는데, 홍진이 기술력을 인정받으면 이런 대형 공사를 수주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충격 흡수 가드레일도 그의 아이디어. 철판이나 시멘트로 만든 가드레일에 차가 부딪치면 운전자는 큰 충격을 받는다. 홍회장은 차와 가드레일 모두 파손되지 않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 스티로폼을 덧대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가드레일 샘플을 만들었다. 그의 아이디어 샘이 무궁무진함을 입증한다.

군 부대의 요청으로 그가 개발한 조립식 욕조 30개는 현재 소말리아에서 사용되고 있다. 차에 싣고 다니며 설치할 수 있는 간이 욕조로 원래는 유엔에 납품할 계획으로 개발했는데, 군 당국의 담당자와 지휘관이 바뀌면서 그 프로젝트가 유야무야됐다고 아쉬워한다.



충남 논산 광석면의 가난한 농가에서 7형제 중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어렵사리 강경상고를 졸업했다. 그렇지만 농사꾼이나 은행원이 될 생각은 없었다고 한다.

“어릴 적부터 뭘 만드는 걸 좋아했고, 어떤 기계든지 뜯어보고 그 원리를 깨치는게 즐거웠어요. 제 목표는 가난에서 벗어나는 것이었는데, 그러자면 히트 상품을 만드는 사업가가 돼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건 특별한 기술이나 자본이 없어도 기발한 아이디어만 있으면 가능하거든요. 농사는 아무리 열심히 지어도 1년에 1회전밖에 못하는데 그걸로 어떻게 큰돈을 벌겠나 싶었지요. 월급쟁이도 마찬가지고.”

하지만 대학에 진학하기엔 가정형편이 너무 어려웠다. 상고 졸업 후 서울로 올라온 그는 2년간 우유 배달과 막노동 을 하며 대학 등록금을 마련했다.

그가 택한 곳은 한양대 공업경영학과(현재는 산업공학과로 이름이 바뀜) 이과와 문과의 중간 위치에서 제품 개발과 기업 경영을 함께 배울 수 있다는 점에 끌렸다.

군 복무 시절 그는 자신의 아이디어를 상업화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을 얻었다. 공군 PX에 근무하던 그는 라면이 잘 팔리는 데 착안, 끓이면 떡국이 되는 인스턴트 떡국을 라면 대체용으로 개발해 재미를 봤다. 제대한 후에는 일명 ‘도레미컵’이라 불리는 일회용 컵 사업을 시작했다. 누르면 한 개가 되지만 펴면 서너 개가 되는 다목적 컵이었다.

“그것말고도 이것저것 시도했지만 돈벌이가 안됐어요. 그러다 깨달았지요. 새로운 아이디어로 제품을 만들어내려면 공장도 지어야 하고 시장 개척이며 관리도 다 새로 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시간과 경비가 많이 들죠. 그래서 한 가지 분야를 깊이 파고들어 그 제품을 개선하고 혁신하는 아이디어를 내는 게 훨씬 사업성이 높겠다고.”

‘우리 힘으로 세계 제일’

그런 판단에서 시작한 사업이 오토바이 운전자용 가죽점퍼와 바지 생산이었다. 당시만 해도 오토바이는 사치품이었다. 그래서 겨울에 오토바이를 탈 때 입는 가죽점퍼와 바지도 고가품이라 이윤이 꽤 많았다. 직접 오토바이를 타기도 했던 홍회장은 이때도 몇 가지 아이디어 상품을 내놓아 짭짤한 수입을 올렸다.

날씨가 추울 땐 얼굴이 시려 오토바이를 타기 힘들다. 그래서 안에는 거즈를 붙이고 바깥에는 공기가 통할 수 있도록 구멍을 뚫은 마스크를 만들어 팔았다. 이게 잘 팔려 유사 제품이 쏟아져 나오자 그는 이 마스크에 턱받이를 댄 신제품을 출시, 한발 앞서가는 감각을 선보였다.

봉제공장을 운영하던 그는 헬멧을 생산하는 ‘크라운’이란 회사에 헬멧 내피를 납품하게 됐다. 그 회사가 만든 헬멧을 지방으로 판매하는 일까지 맡으면서 헬멧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러던 중 크라운사가 재정난에 빠지자 이 회사를 인수하기로 결심했다.

“무엇보다 오토바이 헬멧이 사람의 생명을 보호하는 물건이라 이걸 만들면 보람도 클 것이라 여겼고, 금속과 봉제의 결합, 인체공학적인 설계와 디자인이 필요한 일이라 도전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봤습니다.”

헬멧 회사를 인수한 후로도 그의 아이디어는 끊임없이 샘솟았다. 소리가 잘 들리라고 여닫이 귀마개를 단 헬멧에서부터 여닫는 고글, 쓰기 쉽게 하려고 머리 뒤쪽에 끈을 붙인 헬멧 등이 소비자들로부터 크게 인기를 끌었다.

그는 헬멧사업을 시작한 지 6년 만에 국내시장에서 1위에 올랐다. 공장에서 직원들과 함께 밤을 새우고 부인이 날라준 아침밥을 먹으며 연구에 매달린 결과였다. 그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았다. 그가 헬멧 회사를 인수할 때 품은 꿈을 기어코 실현하리라 다짐했다. 세계적인 제품, 우리도 한번 전세계에서 1위를 하는 제품을 만들어보자는 욕심이었다.

“저는 외국에 나갔을 때 한국 사람 만나는 건 하나도 반갑지 않아요. 대신 한국 제품을 만나면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어요. 특히 그 물건이 진열대 중앙, 눈에 제일 잘 띄는 곳에 있으면 저녁을 굶어도 웃으면서 잠이 듭니다.”

문제는 직원들의 의욕을 돋우는 일이었다. 사장 혼자 아무리 세계 1등을 부르짖어도 직원들이 따라주지 않으면 소용없는 일. 그는 틈날 때마다 직원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우리 선수가 일본 선수와 권투나 축구할 때 꼭 이기라고 응원하지 않느냐, 그런데 왜 운동만 일본에 이겨야 하느냐, 우리도 품질에서 일본을 눌러보자, 일본을 이기면 세계 1위다…. 제가 얼마나 1등 제품을 부르짖었는지 직원들이 거의 최면상태가 됐나 봐요. 1982년 지금의 용인공장으로 이전했을 때 표어를 공모했는데 ‘내손으로 세계 제일’ ‘피땀 흘려 세계 제일’ 등 70% 이상에 ‘세계 제일’이란 말이 들어갔어요. 그래서 그때부터 지금까지 우리 회사의 캐치프레이즈는 ‘우리 힘으로 세계 제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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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장인석 CEO전문 리포터 jis102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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