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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눈으로 세상을 달린다

시각장애 마라토너 이용술씨의 도전 인생

  • 글: 정 영 시인·자유기고가 jeffbeck0@hanmail.net

마음의 눈으로 세상을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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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눈으로 세상을 달린다

마라톤 출발 전 결의를 다지는 이씨(가운데)와 도우미 친구들

스물한 살, 앳된 청년이었다. 대학에 과 수석으로 들어갔다. 군에 가려고 휴학계를 내놓고 친구들과 술을 한잔 마신 저녁이었다. 한강 둔치에 갔다가 몰매를 맞고 있는 사람을 봤다. 보고만 있을 수 없어 참견했다가 각목에 머리를 맞고 시신경을 다쳤다. 그 이후로 세상을 볼 수 없었다.

더 이상의 삶이 눈앞에서 사라졌다. 이름난 병원을 찾아다녀도 가능성은 보이지 않았다. 죽으려고 약도 먹고 목을 매달기도 했다. 그러나 죽음도 그리 쉽지 않았다. 한겨울에도 홧김인지 몸에서 열이 치솟았다. 냉방에서 옷을 홀랑 벗고 밤새 뒹굴었다. 그래도 몸의 열은 식지 않았다. 장애를 인정하는 건 쉽지 않았다. 눈물로도 울음으로도, 대성통곡을 해도 바뀌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시각장애인이 되기 위해 노력했어요. 정상인이 아니라고 되뇌었어요.”

맹아학교를 다녔다. 그렇게 맹인이 많은 줄 모르고 살았다. 그런데도 자신이 맹인이라는 걸 인정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안 보이는 이들과 섞여 산다는 것도 인정하지 못했다. 아니 인정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규칙이 엄한 학교에 조금씩 적응해야 했다. 손끝에서 점자가 안 느껴져서 자면서도 이불 속에서 점자를 더듬었다. 살려면 노력해야 했다. 시각장애인이 되기 위해 노력한 끝에 3년을 다 채우고 졸업하면서 안마자격증을 받았다. 그렇게 해서 그는 지금 일산에서 안마시술소를 경영한다. (등록된 시각장애 안마사만도 10만명인데 그중 겨우 몇만명 정도만 안마사를 하고 있다. 취업까지는 보장되지 않는 교육제도 탓이다. 그래서 그는 안마사들이 한의원이나 정형외과 물리치료실에 흡수되면 좋겠다는 꿈을 갖고 있다.)

그는 왜 마라톤을 하게 되었을까. 달리는 데는 관심이 없었던 그다. 원래 복싱과 격투기를 즐겼으나 그 운동들은 상대의 눈을 읽어야 한다. 미련 없이 포기했다. 시력을 잃고 좋아하던 운동을 그만두자 가슴은 더 격해졌다. 때려부순 텔레비전이 한두 대가 아니었다. 그러자 동생이 헬스클럽에 데리고 갔다. 헬스클럽에서 7년간 운동하며 몸을 만들었다. 그렇게 러닝머신 위에서 뛰노라니 갑자기 밖에서 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네에 있는 학교 운동장에서 동생을 앞에 세우고 뛰기 시작했다. 서너 달을 그렇게 뛰었다. 한강 둔치에 나가 자전거 도로를 달렸다. 그러던 1993년 어느 날, 동생이 권유한 마라톤 대회가 그의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



“난 능력도 재능도 없어요. 노력할 뿐이에요.”

그는 어둠이 들어찬 빈 몸뚱이 하나로 한 트랙 한 트랙을 달렸고 그렇게 용기를 얻어 일과 사랑과 우정을 일구어냈다. 그렇게 그는 또 하나의 삶을 환하게 만들어 낸 것이다.

“그때 죽지 않아서 다행이에요. 지금 내 삶에는 또 다른 재미가 있거든요.”

검고도 붉은 사랑

그의 아내 역시 시각장애인이다. 두 사람이 같은 장애를 가졌다니 걱정이 앞선다. 그런데 그것도 잠시.

“난 정말 행복해요. 아내가 너무 좋아요. 물론 고맙기도 하고…”

맹아학교에서 가톨릭학생회 회장을 하고 있을 때 만난 사람. 두 사람은 스물 여섯에 결혼했다. 그러나 당시 그들 사이에 사랑은 없었다. 그가 사랑하는 여자는 따로 있었기 때문이다. 장애가 오기 전에 알던 여자. 그래서인지 같은 처지의 여자를 만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부모님은 줄곧 그가 맘에 두는 여자와의 결혼을 반대했다. 살다가 분명 도망갈 거라는 걱정이었다.

지금의 아내와 결혼날짜를 잡은 아버지의 권유를 그는 말없이 따랐다. 그렇게 시작한 결혼이지만 지금은 아내를 만난 것에 너무도 감사한다. 두 사람의 사랑으로 서로의 장애를 감싸 안아줄 수 있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는 것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가슴을 따뜻하게 한다.

1996년에 이씨는 사기를 당한 적이 있다. 돈을 잃었다는 것보다 가족과 주변 사람들이 자신을 눈먼 바보로 여기는 것만 같아 괴로웠다. 스스로도 그런 자신을 인정하기 싫었다. 절망감에 휩싸였다. 높은 곳에 올라가면 바로 뛰어내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때 아내가 다가와 감싸 안아 주었다. 그런 아내와 서로를 믿고 살아가는 삶이 행복하다.

곁에서 술잔을 기울이던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이용술씨 부인이 정말 미인이라고 말하자, 그가 수줍게 웃는다. 결혼 13년 차에 아직도 아내를 떠올리며 수줍게 웃는 남편, 그는 진정 사랑을 아는가 보다.

“앞이 안 보이는데 음식 만드는 게 얼마나 어렵겠어요. 그래서 난 내 아내가 해주는 음식이 가장 맛있어요.”

아이는 없다. 부모가 시각장애인이라는 멍에를 아이에게 씌우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살면서 갈등이 없었던 건 아니다. 입양을 하려고 했는데, 장애인에게는 입양을 해줄 수 없다고 했다. ‘마음의 장애를 가진 사람들도 아이를 키우는 세상인데…’라는 생각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가 뛰는 마라톤 대회에 아내는 단 한번 찾아왔다. 부모님 역시 한번. 어머니는 그가 뛰는 모습만 봐도 우신다. 아직도 아들의 장애를 완전히 인정하지 못하는 듯하다고 그는 말끝을 흐린다.

뛰다가 넘어져서 얼굴이 피범벅인 채로 뛴 적도 많다. 그런 상태로 2등으로 들어오기도 했다. 철길에 엄지발가락이 끼어서 인대가 완전히 뭉개진 발로 완주를 해내기도 했다. 사람들은 놀랐지만 그는 끝까지 자신을 이겨내고 싶었다. 좌절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죽기보다 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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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정 영 시인·자유기고가 jeffbeck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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