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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규의 색깔있는 문화이야기 ⑩

셰익스피어는 제국주의 산물인가

  • 글: 박홍규 영남대 교수·법학 hkpark@ynucc.yu.ac.kr

셰익스피어는 제국주의 산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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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우’는 셰익스피어 극이 대부분 그렇듯이 이탈리아의 도시국가, 곧 밀라노와 나폴리를 배경으로 하며 등장 인물도 모두 그곳 사람이다. 그리고 섬은 나폴리와 튀니지를 연결하는 선상에 있는 절해의 무인도다. 그러나 셰익스피어의 머리 속에 있던 이미지는 분명 아메리카 대륙이었다. 그곳을 표현하는 고유명사·박물지·인용·상황·인물관계 중 20여 군데가 아메리카와 연관되어 있다.

이러한 사실은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초엽에 걸쳐 분명하게 밝혀졌다. 그중 특히 중요한 부분은 식민자인 프로스페로의 생김새와 ‘캘리반’이라는 이름, 그리고 몽테뉴 ‘수상록’ 제1권 31장 ‘식인종에 관하여’의 긴 인용이다.

프로스페로는 이탈리아 귀족으로 나오나 원주민 캘리반에게 생활 수단 전부를 의존한다. 또한 그에게 유럽어를 가르치고 원주민 신을 압도하는 기술로 원주민을 지배하는 등 아메리카 식민 지배자와 흡사하게 그려져 있다.

‘캘리반(Caliban)’이라는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으나, 식인종을 뜻하는 ‘캐니벌(cannibal)’의 철자를 바꾼 것이라는 견해가 18세기 후반이래 통설이 되었다. 1888년에 간행된 ‘옥스퍼드 영어사전’에도 그렇게 설명되어 있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신세계 원주민이 식인종이라는 견해는 ‘폭풍우’가 상연된 1611년부터 이미 널리 퍼져 있었음이다. ‘폭풍우’에서 캘리반을 식인종으로 묘사하고 있진 않으나, 이 견해는 지금껏 나온 여러 학설 중 가장 유력한 것이다. 제2막 제2장에서 캘리반은 인디언 또는 야만인으로 불린다. 그는 인디언 특유의 고기잡이법 등을 보여주기도 한다.

몽테뉴 인용은 ‘폭풍우’ 제2막 제1장에 나오는 곤잘로의 식민정책에 관한 대사다. 몽테뉴가 이 구절을 쓴 것은, 브라질 원주민에 대한 성찰을 통해 유토피아의 모습을 기록하기 위함이었으나, 셰익스피어는 이를 앞으로 건설할 유토피아의 청사진으로 묘사하고 있다. 여기서 셰익스피어의 그것을 살펴보자.



“그 국가에서 저는 만사를 보통과는 정반대로 처리하겠습니다. 즉 어떠한 상거래도 인정하지 않고, 관공리는 없을 것이며, 학문도 금지하고, 빈부도 없을 것이며, 고용도 전혀 없을 것입니다. 계약, 상속, 경계, 소유지, 경작지, 포도원 같은 것도 전혀 없을 것입니다. 금속·곡물·주류·유류 등의 사용도 없을 것이며, 직업도 없고, 남자는 무위 도식할 것이며, 여자 또한 천진난만할 것이며, 군주권도 없고. (중략) 만인이 필요한 물건들은 죄다 땀도 노력도 없이 자연이 생산해 줄 것이며, 칼·창·단도·총, 또는 이밖의 전쟁 무기 같은 것도 필요 없을 것이며, 자연은 풍요한 오곡을 생산하여 순박한 백성들을 양육해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유토피아의 꿈은 악역들에 의해 곧 야유당하고 우스개로 평가절하된다. 악역들이 “무위도식자뿐이니 결혼도 없이 갈보와 악당뿐이겠다”고 하자 곤잘로는 금세, 웃음거리를 제공한 것에 불과하다며 꽁지를 내린다. 이는 셰익스피어가 몽테뉴를 인용해 오히려 그를 비웃고자 한 것이 아니었나 하는 의심을 불러 일으킨다.

‘폭풍우’ 제4막 제1장에서 유토피아는 시이리즈의 다음과 같은 노래를 통해 재현된다.

대지의 생산은 풍부하고,광과 곳간은 가득 차고,포도는 주렁주렁,과목의 가지는 늘어지고,봄철은 늦어도추수여 어서 오라!부족이나 결핍은 오지 말고시이리즈의 축복 받으라.

이 유토피아 또한 곤잘로의 그것처럼 아메리카 초기 식민자들이 보고한 내용과 동일하다. 그러나 노동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앞의 것과 확연히 구분된다. 이는 ‘폭풍우’ 집필을 전후한 시기에 특히 강조된 노동 가치론과 일치한다. 그러나 여기서 묘사된 유토피아도 극중에선 곧 소멸하고 만다. 캘리반의 쿠데타 때문이다. 이를 통해 셰익스피어는, 원주민을 완전히 정복하지 않고는 유토피아 건설이 불가능하다는 말을 하고 있는 듯하다.

이런 관점에서 ‘폭풍우’에 나타나는 식민지화 구조를 살펴보면, 콜럼버스의 그것과 같이, 첫째 초기 우호관계(캘리반은 프로스페로에게 섬의 풍부한 자원을 알려준다), 둘째 제국 측의 문명화 노력과 실패(캘리반에게 언어를 가르치나 이는 나쁜 짓에 악용된다), 셋째 적대관계와 토지수탈 및 원주민의 노예화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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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박홍규 영남대 교수·법학 hkpark@ynucc.y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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