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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 일곱 번의 칼질… 그러나 死者는 말이 없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부검팀과의 4박5일

  • 글: 황일도 shamora@donga.com

스물 일곱 번의 칼질… 그러나 死者는 말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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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 일곱 번의 칼질… 그러나 死者는 말이 없었다

해부대 위에 놓인 부검 도구들. 가려진 죽음의 진실을 찾는 ‘탐사 장비’인 셈이다.

‘CSI 과학수사대’나 ‘X 파일’ 같은 외화에서는 흔히 사체의 온도나 경직상태(屍剛)로 사망 시간을 추정한다. 사람이 죽어 아래쪽으로 피가 몰릴 때 생기는 멍자국 비슷한 형태의 시반(屍班)이 수사 단서로 쓰이는 장면도 등장하곤 한다. 그러나 이는 국과수 부검실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일과는 거리가 멀다.

대한민국에서는 사람이 죽은 후 부검실에 올 때까지 보통 이틀이 걸린다. 법의관(ME : Medical Examiner)이 현장을 조사하고 부검 여부를 판단하는 미국과는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이 사건을 보고하면 담당검사가 부검 필요성 여부를 결정한다. 검사가 판사로부터 사체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을 발부받아야 비로소 사체는 국과수로 올 수 있다. 그 사이 냉장 시설에 보관된 사체의 온도나 시강을 따지는 일은 의미 없는 작업이다. 부검의는 현장에 나간 경찰이나 감식반이 기본 정보를 제대로 확인해 주었기를 바랄 뿐이다.

기본 정보란 발견 당시 사체의 상황이나 현장의 정황을 말한다. 발견 당시 사체의 자세와 상태, 혈흔의 모양 등을 정확히 알수록 죽음을 해석하는 일도 더 정확해진다. 사체와 함께 감식반이 작성한 감식 보고서가 부검의에게 전달되기도 하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이한영 과장의 설명이다.

“단순히 이 사람이 왜 죽었나, 질식사인지 약물중독인지 그 사인(cause of death)을 확인하는 것이 부검의 임무라면 기본 정보가 부실해도 크게 문제될 게 없습니다. 그렇지만 자살인지 타살인지, 병사인지 의료사고인지 죽음의 종류(manner of death)를 알아내려면 기본 정보가 필수적이죠. 법의학은 단순히 사체만 들여다보는 학문이 아닙니다. 우리가 상처 숫자 세려고 부검하는 게 아니니까요.

부검의가 스무 가지 단서를 말할 수 있는 사건도 기본 정보가 부족하면 다섯 개 정도밖에 해석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죽었는지 알 수 없다’는 ‘무소견 부검(negative autopsy)’으로 결론 날 확률이 커지고, 잡을 수 있는 범인도 놓치게 되는 겁니다.”



“부검의도 현장에 가야 한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불청객인 기자의 궁금증을 풀어주기위해 이상용 법의관이 열변을 토했다. 사건의 절반밖에 볼 수 없는 ‘앉은뱅이 부검’ 시스템을 고쳐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부검의가 직접 현장에 나가서 상황을 살펴야 합니다. 경찰조서 등 간접 정보에 의존하다 보면 그들의 선입견에 영향을 받기 쉬우니까요. 또 법의학자의 눈으로 보면 감식반이 그냥 넘길 수 있는 단서들을 잡아낼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현재의 인력으로는 불가능합니다. 현장 감식과 부검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려면 최소한 현재 인원의 두 배는 있어야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발생하는 ‘변사사건’은 한해 대략 6만 건 내외.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변사자의 30~50%에 대해 부검이 이뤄지지만, 우리나라의 경우는 10%를 간신히 넘어섰다. 그나마 법의관에 의해 부검이 이뤄지는 경우는 운이 좋은 편이다. 국과수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지역의 경우 경찰에서 일반 외과의사를 ‘공의’로 위촉해 메스를 맡긴다. 전문지식이 부족하다 보니 부검의 질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문제는 법의관이 되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다는 것. 5급 의무사무관 신분인 국과수 법의관의 임금은 대학병원에 근무하는 비슷한 연차의 의사에 비해 절반 수준이다. 때문에 법의관은 이직률이 높다. 더욱 심각한 것은 해부병리학을 전공한 의사 수 자체가 줄고 있다는 것. 성형외과나 피부과 같은 ‘돈 되는’ 과목에는 지원자가 넘쳐나지만 해부병리학과는 정원의 20%를 밑도는 수준이다. 이상용 법의관이 국과수의 앞날을 우려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제가 처음 국과수에 온 1997년 무렵에는 상황이 정말 심각했습니다. 서울본소에 법의관이 네 명뿐이었으니까요. 각 경찰서에 공문을 보내 ‘단순 변사는 의뢰를 자제해 달라’고 사정했죠. 그후 힘겹게 사람을 끌어모아 이 정도 인력이라도 확보했습니다.

의대생들의 요즘 추세로 보면 부검의 구하기가 점점 더 하늘의 별따기일 것 같습니다. 이러다가는 1960~70년대처럼 일반 의사가 부검을 맡아야 할 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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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황일도 shamo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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