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1월호

“부시, 전제조건 없이 평양 껴안아라”

한반도 전문가 케네스 퀴노네스 박사의 북핵 위기 해법

  • 글: 케네스 퀴노네스 번역 : 이흥환

    입력2002-12-31 14: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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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시, 전제조건 없이  평양 껴안아라”

    2000년 2월 인공위성에 잡힌 북한 영변지역 핵 시설

    최근 한 북한 관리를 만나 점심을 먹으면서 미국과 북한이 1993∼1994년 첫 핵 위기를 맞았을 때를 회상한 적이 있다. 그 북한 관리는 핵 위기를 진정시켰던 북-미간 기본합의안(제네바 협약) 협상 때 함께 일한 적이 있으며, 이후 1997년까지의 합의안 이행기에도 협조하면서 일을 진행시킨 인연이 있었다. 당시 나는 미 국무부의 북한 담당관이었고, 그는 뉴욕에 있는 UN 주재 북한대표부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합의안이 체결되고 8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다시 만나 정답게 인사를 나누고 악수를 했다. 재회의 기쁨을 나누는 우리 두 사람의 얼굴에는 웃음이 번졌지만 속으로는 여전히 불편한 관계에 있는 북-미 두 나라와 한반도에 몰아닥친 제2의 핵 위기를 걱정했다. 그의 눈에는 몇 달 안에 이루어질 양국 정부의 불확실한 선택에 대한 깊은 우려가 배어 있었고, 그 점에서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조용히 말을 꺼냈다.

    “1993년을 다시 보는 것 같군요. 또 시작이네요.”

    나도 그의 말에 동의했다. “불행하게도 핵문제 때문에 두 나라가 대결과 불신의 관계로 되돌아가는 것 같습니다.”

    대북 정책 둘러싼 3개의 목소리



    우리는 첫 번째 핵 위기 때 전쟁을 방지하고 외교적 해결책을 모색하려 애쓰던 1993년과 1994년의 기억을 되살렸다. 북-미간 첫 공식 합의인 1994년의 제네바 기본합의안을 만드는 데 우리의 협조는 큰 도움이 되었다.

    우리 두 사람 중 누구도 그 합의안이 파기되거나 무효화되었다고는 보지 않았다. 그는 북한 정부 역시 그 합의안이 ‘파기’된 것으로 보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했다. 왜 이렇게까지 나쁜 상황으로 악화되었는지를 두고 그와 논쟁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었다. 이런 위기에는 상대방에게 항의하며 견해차를 넓히기보다는 적일지라도 공통의 기반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 외교관 생활에서 내가 얻은 교훈이다.

    두 번째 핵 위기를 맞은 이때 양국 정부는 모든 외교채널을 동원해 공동 작업을 함으로써 평화적이고 항구적인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 역시 동의했다. 몇 개월 안에 제2의 한국전이 일어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기 때문이다.

    워싱턴에는 대북 정책에 대해 의견이 다른 세 개의 그룹이 있었다. 평양과 대화(dialogue) 및 협상(negotiation)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그룹과 대화는 하되 협상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그룹, 그리고 어떠한 대화나 협상도 하지 말고 봉쇄정책으로 회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그룹이 그것이다.

    국무부의 동아태국은 협상을 주장했으나 국제안보담당 차관 존 볼턴은 협상을 강력하게 반대했다. 국방부도 국무부와 마찬가지로 의견이 갈려 있었으며, 합참의 장성들은 대화와 협상 모두를 반대했다. 이들은 봉쇄로 회귀할 것을 주장했다. 이렇게 의견이 분열되어 있었지만 왜 이런 내부 분열이 일어났는지에 대해서는 겉으로 전혀 드러나지 않았다.

    ‘중대한 위반’

    2002년 8월 부시 대통령은 워싱턴의 무더운 날씨와 습도를 피해 텍사스 농장에 가 있었다. 대통령은 다가오는 중간 선거와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문제에 매달려 있었고, 대통령의 북한 정책 자문들은 북한 문제를 놓고 계속 토론을 벌였다.

    한편 서울과 도쿄에 대한 평양의 제의, 특히 김정일-고이즈미의 평양 정상회담은 부시로 하여금 행동을 하도록 만들었다.

    10월 초, 국무부의 켈리 차관보가 평양에 파견됐다. 합참의 던 중장, KEDO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 미 대표인 잭 프리처드 대사, 국무부 한국과장인 데이빗 스트라웁, 국가안보회의 마이클 그린과 통역관이 켈리와 동행했다. 켈리 방북의 가장 큰 목적은 북한이 두 번째로 시도한 비밀 핵무기 프로그램에 대한 증거를 들이대고 북한의 반응을 알아보는 것이었다. 북한 외무성의 강석주 제1부상은 미리 준비한 성명서를 읽는 중에 북한이 사실은 핵무기 물질을 생산하려는 목적으로 고농축 우라늄 프로그램을 시작했음을 확인해 주었다. 이 말에 놀란 켈리 일행은 서둘러 평양을 떠났다.

    켈리는 서울과 도쿄에 들렀으나 공식적으로 방북 결과에 대해 입을 다물었다. 북한 외무성은 켈리가 “오만불손하게 행동했다”는 성명을 내놓았다.

    10월16일 마침내 워싱턴에서 켈리의 방북에 대한 이야기가 언론을 통해 나왔다. 평양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가장 먼저 접한 사람은 ‘USA투데이’의 바버라 슬래빈 기자였다. 부시 행정부의 한 관리가 비보도를 전제로 북한이 기본합의안에 대한 ‘중대한 위반(material breach)’을 했다는 것을 확인해 주었다고 주장한 것이다. 한편 부시 행정부는 서울과 도쿄와도 이 문제를 상의했으며, 서울과 도쿄는 워싱턴이 공식 성명을 내는 것에 동의했다.

    그날 밤 백악관은 언론보도를 확인해주었고, 국가안보회의 역시 기자들에게 켈리의 방북 결과를 브리핑해 주었다. 이와 동시에 국무부 대변인은 켈리의 방북 때 북한 관리들이 “핵무기 제조를 위한 고농축 우라늄(HEU) 생산용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했고, “핵 기본합의는 파기된 것으로 간주했다”고 말했다.

    강석주가 켈리에게 정확하게 어떤 말을 했는지가 불투명했던 탓에 북-미 양측의 혼돈과 불신이 한데 얽혀버렸다. 불행하게도 켈리 일행은 평양회담 때 강석주가 읽은 성명서 사본을 얻지 못했다. 기록을 보여줄 수 있느냐는 한 일본인 기자의 요구에 켈리는 서류를 얻지는 못했으나 서로 주고받은 말을 정확하게 기록한 것은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켈리는 그 기록을 공개할 의향은 없다고 말했다.

    북한은 현재 강석주가 읽은 성명서를 공개하기를 거부하고 있다. 켈리 일행이 강석주의 언급을 오해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그 문장의 일부만 계속 반복하고 있다.

    “부시, 전제조건 없이  평양 껴안아라”

    ‘농축 우라늄’ 발언 파문의 주인공 강석주 북 외무성 제1부상(왼쪽에서 두번째)이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강석주가 켈리에게 확인해 주었다는 것이 무엇인가도 명확하지 않다. 미 정부는 북한이 현재 핵무기 제조용 고농축 우라늄을 생산하려는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평양은 그런 프로그램을 구축하기 위한 장비 획득을 확인해 주고 있다. 지금까지도 미 정부는 정부가 주장하는 대로 평양이 그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거나 고농축 우라늄을 생산하기 위한 시설건설과 관련, 그 어떤 정보 서류도 공개하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고농축 우라늄은 손쉽게 빨리 생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고농축 우라늄을 제조하는 데 필요한 2200개의 기계 장치를 전환하는 데는 대략 3500~7000개의 고강도 알루미늄 튜브가 필요하다. 이 2200개의 기계장치가 단 하루도 쉬지 않고 가동된다고 해도 2개의 소형 핵무기를 제조하기에 충분한 고농축 우라늄을 얻으려면 대략 3년6개월이 걸린다.

    북한은 아직 이런 기계 장치를 제조하지는 못했으며, 단지 이 기계를 만드는 데 필요한 물질을 획득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핵무기용 고농축 우라늄을 생산하기 위해 그런 장비를 획득했다는 것만으로도 평양은 핵무기 프로그램을 중단하겠다는 약속을 위반한 것이기는 하다.

    이런 사태전개는 10년 전 상황을 연상케 한다. 1992년 가을, 서울-도쿄-워싱턴은 대북 화해에 대한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해 9월 남북한 총리가 평양에서 회동했고, 미 국무부는 당시 국무부의 북한 담당관이었던 나를 뉴욕에 보내 북한의 김용남 외상과 만나게 했다.

    당시 도쿄에서는 북-일 관계 정상화를 위한 또 하나의 수교회담이 준비중이었다. 그러나 북한은 국제원자력기구(IAEA)와의 협력을 끝내 거부했다. 북한은 소량의 플루토늄을 생산했다고 공개적으로 시인했으나, IAEA는 그보다 많은 양의 플루토늄을 생산했다는 증거를 가지고 있었다. 첫 번째 한반도 핵 위기는 한국 대통령선거 전야인 그해 가을에 아주 조용히 시작되었다.

    1994년 5월, 제2의 한국전이 현실화할 가능성이 짙어졌다. 1994년 10월21일 다행스럽게도 북-미간 기본 합의는 그 위기의 불씨를 껐고 북한의 핵 프로그램을 동결시켰다.

    北, ‘생존’이 첫 번째 목표

    2002년 가을, 한반도는 10년 전과 마찬가지로 한국의 대통령선거 직전에 제2의 핵 위기를 향해 치달았다. 기본합의안이 없다면 북한은 IAEA의 사찰을 받아들일 의무가 없다. 1993년 평양은 IAEA에서 빠져나오면서 NPT(핵확산금지조약) 탈퇴라는 초강수로 국제사회를 위협했다. 북한은 지금 NPT에 남아 있고 IAEA에 협조하고 있다. 이는 오로지 기본합의안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 상황은 어떤가. 평양과 워싱턴은 10년 전 고생 끝에 얻은 합의안의 ‘무효화’를 고려하고 있다. 북한은 언제든 IAEA 사찰팀에게 북한을 떠나라고 말할 수 있다. NPT 탈퇴를 선언할 수도 있다. 실제로 북한은 12월12일 핵 동결 해제를 발표했고, IAEA 모하메드 엘바라데이 사무총장 앞으로 “감시카메라 및 봉인 해체를 요구한다”는 서한을 보냈다. 이로 인해 북-미간 불화와 동북아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이 막다른 상황이 협상을 통해 외교적으로 풀리지 않는 한 동북아에서의 전쟁 가능성은 또다시 높아질 수밖에 없다.

    1994년의 기본합의안은 결국 북한의 핵 야망을 중단시키는 데는 실패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합의안 자체는 실패작이 아니다. 합의안을 효과적으로 이행하지 못한 것이 문제이며 이는 양국 정부에 책임이 있다.

    처음부터 워싱턴과 평양은 아주 다른 이유로 합의안에 서명했다. 전 부시 행정부를 비롯해 클린턴 행정부와 현 부시 행정부에 이르기까지 워싱턴이 고려하는 최우선 순위는 대량살상무기를 가진 북한을 무장 해제시키는 것이다. 워싱턴이 기본합의안에 서명한 주된 이유는 다음 세 가지였다.

    △NPT 조약이 깨지지 않도록 보존한다.

    △동북아에서의 핵무기 확산을 방지한다.

    △북한의 핵 탄두탄 개발을 방지한다.

    이 전략은 평양이 대량살상무기를 포기하는 대신 경제적 이득을 얻으면서 국제사회와 외교 및 통상 관계를 정상화하도록 설득하는 것에 역점을 두고 있다.

    이에 비해 북한의 우선 순위는 사뭇 달랐다. 북한의 첫 번째 목표는 ‘생존’이었다. 평양 지도부는 미국으로부터 영토를 지키기 위해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하거나 아니면 워싱턴과 평화를 유지하면서 외교 경제 관계를 정상화시키는 것이 곧 그들의 운명에 직결되어 있다고 보았다. 북-미 관계 정상화가 북한의 경제를 되살리고 군사력을 유지할 수 있게 만든다고 믿었다. 달리 표현한다면 평양은 무장을 해제할 의도가 없었던 셈이다.

    평양은 기본합의안을 교환의 하나로 보았다. 미국과 평화적인 관계를 맺고 국제 시장에 진입하는 대가로 핵 야망을 포기하겠다는 것이었다(기본합의안의 이행에 대한 평가는 ‘협상을 넘어서-기본합의안의 이행’이라는 제목으로 도쿄의 ‘중앙공론신사’에서 곧 발행될 예정임).

    “부시, 전제조건 없이  평양 껴안아라”

    비무장 지대 내의 북한 선전탑.

    양측 모두 합의서에 서명했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약속을 지키지는 않았다. 부시 행정부도 북한이 IAEA에 협조하는 시점과 관련된 기본합의안의 내용을 무시했다. 부시 행정부는 지난 18개월 동안 북한이 과거에 얼마나 많은 양의 플루토늄을 생산했는지 IAEA에 지금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북한은 이에 대해 부시 행정부의 요구가 합의안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을 계속 지적했다. 이 점에서는 북한의 말이 맞다. 합의안의 비밀 부속 조항 6항을 들여다보면 확연해진다.

    ‘합의안에 기술되어 있듯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경수로 프로젝트의 핵심 부분이 완공되었을 때, IAEA의 추가 현장 접근 허용 및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내 모든 핵 물질에 대한 최초보고(1992년)의 완벽성 및 정확성을 IAEA가 검증하는 데 필요하다고 간주하는 모든 정보를 포함한 안전기준 합의(INFIRC/403)를 충실히 따를 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몇 가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특히 우라늄 농축 시설 획득은 합의안 2항에 언급된 약속 사항을 깨뜨린 것이다. 2항은 다음과 같다.

    ‘양측은 미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간의 1994년 8월12일 합의 성명에 나와 있는 목적 달성의 중요성을 재확인하며,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평화 및 안보성취를 위한 미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1993년 6월11일 공동 성명의 원칙을 지지한다.’

    평양과 워싱턴 모두 전쟁이 아닌 평화를 원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양측 모두 협상보다는 강압적인 수단을 강조하는, 이미 한번 실패했던 전략에 집착하고 있다.

    평양은 핵무기 프로그램을 재개하겠다고 위협하면서 미국이 먼저 협상에 나서도록 몰아붙이고 있고, 워싱턴 역시 북한이 핵무기 프로그램을 포기하지 않는 한 경제나 외교면에서 고립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평양을 옥죄고 있다. 양쪽 모두 상대방이 먼저 궁지에 몰린 외교를 풀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양쪽의 강압적인 전략은 여태까지 한반도에 전쟁 위험성만 고조시켰을 뿐이다.

    북한에게 농축 우라늄 프로그램을 폐기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외교 정책도 아니고 전략도 아니다. 이러한 요구는 부시 행정부 내 일단의 그룹이 선호하는 방법일 뿐이다. 지금도 부시 행정부 내에는 북한을 어떻게 대할 것이냐 하는 문제를 놓고 승강이가 한창이다.

    부시 대통령은 그가 선호하는 일방적인 군사 행동에서 다자간 외교로 선회하는 것처럼 보인다. 외교라 해도 확고한 군사 행동의 가능성을 배제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다음의 네 가지 요소에서 부시 대통령의 심중을 읽을 수 있다.

    첫째, 부시 대통령은 상·하 양원의 광범위한 지지를 받고 있다. 그는 현재 공화당 내 보수파 의원들의 반대를 누그러뜨리면서 평양에 대해 다소 온건하고 참을성 있는 접근을 하고 있다. 최소한 초기 단계에서 보여준 대로라면 그렇다.

    둘째, 부시 대통령이 지금 꼽고 있는 최우선 순위는 이라크이지 평양이 아니다. 동북아와 중동 지역에서 2개의 전쟁을 동시에 치름으로써 미국의 군사력이 분산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이라크와 정면 대결을 함으로써, 또는 필요시 이라크의 무릎을 꿇림으로써 북한이 뒤로 물러서기를 바라고 있을지도 모른다.

    셋째, 부시 대통령은 중국이나 러시아가 떨어져나가는 것을 원치 않는다. 북한에 대한 그의 입장이 국제적인 동맹의 확고한 지지를 받고 있다는 확신이 들기 전까지는 중국이나 러시아를 붙잡아두려 할 것이다.

    넷째, 부시 대통령은 동맹인 서울과 도쿄도 붙잡아두고 싶어한다. 멕시코 APEC과 11월 도쿄에서 열린 대북정책조정감독그룹(TCOG) 회의를 통해 부시는 한-미-일 3국이 내놓은 대북 경제 제재 가능성을 강한 어조로 언급하지 않는 대신, 2002년 12월부터 시작되는 KEDO의 대북 중유공급 중단에 대한 지지 입장이라는, 다소 누그러진 자세를 보였다.

    한국과 일본은 북한 문제와 관련해 발빠른 움직임을 보여주려 하지 않는다. 서울은 12월의 대통령선거에 몰두하고 있다. 차기 대통령은 북한 문제를 다루기에 앞서 새정부를 구성할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일본 역시 납북 일본인 문제에 정신이 팔려 있다. 서울이나 도쿄는 평양에 대한 외교 압력을 행사할 충분한 시간을 벌고 싶어한다. 이라크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워싱턴의 입장과 일치한다.

    그러나 내년 2월이면 사정이 달라진다. 공화당이 장악한 미 의회는 백악관에 북한 문제에 대한 압력을 가하기 시작할 것이다. 그때쯤이면 서울도 대북 문제에 준비가 되어 있을 것이고, 외교채널도 평양으로 하여금 농축 우라늄 프로그램을 폐기하도록 압력을 행사하는 데 충분한 시간일 것이다. 그때까지도 이런 일들이 효과를 거두지 못할 때에는 부시 행정부도 군사 행동을 포함한 모든 조건을 재검토할 것이 분명하다.

    지금은 머리를 식히고 조용한 외교에 전념할 때다. 모든 관련 당사자들은 북한 포용책을 견지해야 한다.

    평양은 IAEA의 사찰팀이 새로운 우라늄 농축시설을 볼 수 있도록 허용하고 그 시설을 IAEA가 봉인해 궁극적으로는 해체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어느 한 나라도 먼저 공격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베이징, 모스크바, 도쿄와 함께 팀을 만들어 선언해야 하며, 그 다음에 워싱턴은 부시 행정부가 공언해 왔듯이 아무런 전제조건 없이 협상으로 평양을 포용해야 할 것이다.

    “부시, 전제조건 없이  평양 껴안아라”

    2002년 10월19일 북한 방문을 마치고 내한한 제임스 켈리 미 국무부 동아태담당 차관보(왼쪽)가 최성홍 외교부 장관과 만나 악수하고 있다.

    그러나 오만과 상호 불신이야말로 협상 재개의 걸림돌이다. 평양의 기본합의안 위반은 합의안 서명 이후 평양과 워싱턴 사이에 가까스로 구축된 상호 신뢰를 깨버렸다. 평양이 지난 2년 사이 비밀리에 획득한 우라늄 농축 장비는 대북 협상 재개를 반대하는 워싱턴 강경파들의 입지를 강화시켰다. 평양의 지도부는 핵무기를 만들고 협상을 강요하는 전략이 위험한 자살 행위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평양은 또한 주권을 존중받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IAEA와의 전면적 협조를 포함한 국제적인 행동 기준에 따르는 것이라는 점도 깨달아야 한다. 불행하게도 지금까지 나온 북한의 공식 논평은 이런 사실들을 무시하고 있다. 핵무기 보유가 주권이라는 점만 강조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 언급이야말로 협상의 길을 가로막는 장애물이다.

    북한 군부는 자신들의 선전이 옳다고 믿는 것 같다. 북한은 20세기의 양대 슈퍼파워인 일본과 미국을 무찌른 무적의 전통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이다. 한-미-일 3국의 군사력은 북한의 군사력을 순식간에 압도할 수 있다.

    물론 사태 진전에 따라서는 북한의 백만 대군과 장거리 포 및 탄도 미사일은 서울과 일본의 주요 도시를 파괴할 수도 있다. 평양은 이런 점이 워싱턴을 협상의 장으로 나오게 만들 수 있다는 기대를 하고 있는 것 같다.

    반면 부시 행정부는 두 개의 다른 목적을 추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부시 행정부는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해제가 우선 순위라고 주장하는 한편, 부시 대통령은 김정일체제의 전복을 보고 싶다는 ‘개인적’ 선호를 거듭 밝히고 있다.

    지난 11월 말까지만 해도 미 국방부의 한 고위 관리는 일본인 기자와 비보도를 전제로 한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나는 우리가 (북한에) 무언가를 준다는 생각을 그만두어야 한다고 본다. 그보다는 이 체제(김정일체제)를 어떻게 바꿀 것인지를 생각할 필요가 있다. 어떻게 이 정부(북한)를 무너뜨릴 것이냐? 그게 대통령(부시)이 생각하는 것이다. 외교관들은 이런 걸 불편해할 것이다. 그러나 그게 바로 우리 대통령이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말들은 현 위기를 협상을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한다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부시 행정부 내의 가장 영향력 있는 일부 관리들은 협상이나 보상 없이도 북한으로 하여금 대량살상무기를 포기하게 만들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역사상 어느 나라도 스스로 무장을 해제한 나라는 없다.

    워싱턴에는 또 김정일이 워싱턴의 요구에 양보할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 김정일의 최우선 목표가 체제 생존이기 때문이다. 부시 행정부의 일부 핵심 관리들은 김정일이 전쟁과 굴복, 또는 핵무기 프로그램 포기라는 선택 가운데 체제를 보존할 수 있는 항목을 택하리라고 믿고 있다.

    그러나 그건 희망사항일 뿐이다. 워싱턴에 복종하는 것은 김정일체제를 존속시키기보다는 종식시키는 것이다. 김정일의 권력은 아버지 김일성에 대한 인민의 끊임없는 신뢰와 최대 지지자인 군 장성들의 충성심에 바탕을 두고 있다. 아무런 보상도 없이 핵무기 개발 프로그램과 탄도탄을 포기한다는 것은 인민과 군이 보는 앞에서 김정일을 깎아 내리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럴 경우 군장성들은 그를 더 이상 ‘위대한 지도자’로 떠받들지 않을 것이다.

    핵무장 해제인가, 김정일체제 전복인가

    바로 이 점이 아주 민감한 문제를 건드리게 된다. 북한 문제를 다루는 부시 행정부의 목표가 과연 무엇이냐는 것이다.

    부시 대통령의 최대 관심사는 북한의 핵무장을 해제시키는 것인가 아니면 김정일체제마저 전복시키겠다는 것인가. 부시 행정부가 내놓은 공식 입장은 북한 대량살상무기의 평화적 제거다. 그러나 최근 발간된 ‘전시 대통령 부시(Bush at War)’는 부시 대통령이 개인적으로는 김정일정권의 종식이라는 두 번째 목표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실감나게 보여준다.

    부시 대통령의 모호한 목표는 북-미 대화 재개를 지연시킬 뿐이다. 부시 대통령의 공식 정책과 개인적 선호에서 보이는 어중간함은 결국 한반도 핵 위기를 협상으로 해결하는 데 도움을 주지 못할 것이다.

    기본합의안은 실패하지 않았다. 대신 생명력이 없는 서류가 되고 말았다. 합의안 이행의 책임이 있는 양쪽 정부가 성실하게 그리고 효과적으로 이를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합의안의 목표는 분명했다. 양쪽 모두 핵 없는 한반도의 지속적인 평화를 원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목표는 훨씬 두리뭉실해졌고, 양립하기 어려워졌다.

    평화적 해결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10년 전과 마찬가지로 협상에 실패하면 제2의 한국전이 발발할 수도 있다. 전쟁은, 외교와 협상을 통해 현 난국을 풀어나가는 데 필요한 그 어떤 양보보다도 훨씬 비싼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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