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1월호

감독들은 왜 목이 잘리는가

  • 글: 김화성 mars@donga.com

    입력2003-01-02 10:3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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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독들은 왜 목이 잘리는가
    밤새 당신의 목은 안녕하신가. 조심하라. 당신 목 위엔 언제나 시퍼런 칼날이 걸려 있다. 그것은 언제든 미군 장갑차처럼 소리없이 다가와 당신의 목을 ‘뎅강’ 내려칠 것이다. 프로 스포츠 감독들에게 하는 말이다.

    세상엔 확실한 진리가 두 가지 있다. 하나는 ‘인간은 반드시 죽는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프로 스포츠 감독은 반드시 목이 잘린다’는 것이다. 이것은 한국이나 미국이나 그 어느 곳에서건 마찬가지. 그만큼 프로 스포츠 감독은 파리 목숨이다.

    한국에서 축구 감독은 ‘기술자’로 취급된다. 현역 시절 공 잘 찬 사람이 감독도 잘한다는 논리다. 그러나 축구선진국에서 축구 감독은 ‘최고경영자(CEO)’다. 당연히 기술 능력보다는 사람관리 능력이 뛰어나야 된다. 굳이 비율로 따진다면 기술 20%에 사람관리 80% 정도라고나 할까. 히딩크 감독이 현역시절엔 그다지 뛰어난 선수가 아니었지만 명감독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런 ‘사람관리’를 하는 능력이 뛰어났기 때문이다.

    트루시에 전 일본 축구 대표팀 감독 어시스턴트 겸 통역이었던 프랑스인 디바디는 “트루시에에게 있어 현대 축구의 90%는 매니지먼트(팀관리, 심리학)다. 훈련은 10%에 불과하다. 그는 선수들에게 ‘당신들은 인간이며 성인이다. 위대한 선수가 되려면 좋은 인간이 돼야 한다’고 가르친다. 휴머니즘과 교육은 모든 것의 열쇠다”라고 말한다.

    매니저와 헤드코치의 차이



    감독들은 왜 목이 잘리는가

    히딩크 감독.

    미국에선 유일하게 야구 감독만을 ‘매니저(Manager)’라고 부른다. 야구를 제외한 다른 스포츠 감독은 모두 ‘헤드코치(Head Coach)’다. 야구 감독이 ‘매니저(경영자)’로 불리는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일단 업무량이 엄청나다. 또한 단순히 야구만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경영자의 입장에서 총괄해야 한다. 미식축구, 미국 프로농구 등도 있지만 미국 프로야구같이 1년에 100경기를 넘게 소화하는 감독은 없다. 1년 내내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3시간이 넘는 경기 동안 아웃카운트 하나마다 끊임없이 작전을 지시해야 하고 50명이 넘는 선수들의 심리상태를 파악하고 항상 세심하게 돌봐야 한다.

    그뿐인가. 수많은 취재진을 상대해야 한다. 선수단 지휘권에 틈만 나면 간섭하고 싶어하는 구단 관계자도 견제해야 한다. 한국에선 감독을 부하직원 쯤으로 아는 구단 고위층과 원활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중요한 업무 중의 하나다.

    유럽 축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특히 레알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AC밀란 등 세계적인 명문팀 감독일수록 더욱 그렇다. 아무리 명감독이라 할지라도 한 팀에서 잘했다고 다른 팀에서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다. 그래서 그 쟁쟁한 감독들이 명문 클럽팀에 갔다가 얼마 견디지 못하고 목이 잘리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이것은 그들의 축구 실력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그 팀의 경영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유럽은 나라마다, 팀마다 축구 스타일이나 분위기가 뚜렷하게 다르다. 따라서 경영 스타일도 그 팀에 맞게 달라져야 한다. 잉글랜드나 독일 팀에서 감독의 권위는 거의 절대적이지만 네덜란드나 이탈리아 스페인 등에서는 꼭 그렇지도 않다.

    영국의 보비 롭슨 감독(69)의 예를 보자. 롭슨은 현재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 뉴캐슬 감독. 2002년 11월22일 버킹엄궁에서 찰스 왕세자로부터 기사 작위를 받았을 정도로 영국 축구에 크게 공헌했다. 더구나 1982년부터 1990년까지 잉글랜드 대표팀을 맡아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잉글랜드를 4위에 올려놓은 명장이다.

    하지만 1996~97 시즌 요한 크루이프가 떠난 스페인 바르셀로나를 지휘하던 그는 한 시즌 만에 바르셀로나를 떠나야 했다. 당시 바르셀로나엔 호나우두가 맹활약하고 있었지만 그다지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다.

    롭슨은 이미 이탈리아 월드컵이 끝난 뒤 1990년부터 1992년까지 2년 동안 네덜란드 아인트호벤 감독으로 있으면서 쓰라린 경험을 한 적이 있다. 롭슨이 있는 동안 아인트호벤은 리그 선수권을 두 차례 차지했다. 그러나 정작 팬들이 기대했던 각종 유럽대회에서는 부진을 면치 못했다. 결국 그는 아인트호벤을 떠나야 했다.

    네덜란드 선수들은 전술과 베스트 11 선발 등에 대해서 감독에게 거침없이 자기 의견을 말한다. 감독이 그들을 설득하지 못하면 그들은 감독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롭슨은 명령과 복종의 수직관계가 분명한 영국 축구에서 커온 사람이다. 그는 선수들이 감독의 지시에 이러쿵저러쿵 의견을 다는 것에 대해 이해할 수가 없었다. 선수들은 롭슨의 훈련 방법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불평했다. 아인트호벤 수비수 베리 판 아를러는 후에 “롭슨은 괜찮은 사람이긴 하지만 지난 2년 동안 그가 내게 가르쳐준 것은 영어밖에 없었다”고 회고했다.

    감독들은 왜 목이 잘리는가

    보비 롭슨 감독.

    하기야 영국 축구에서 만약 선수가 감독과 언쟁을 벌인다면 그는 그날로 보따리 쌀 각오를 해야 한다. 영국에서 선수는 감독이 지시하는대로 하는 장기판의 말과 같다. 그래서 선수들은 감독을 보스(Boss)라고 부른다. 행여 형편없는 경기라도 하는 날이면 감독은 그날 경기가 끝난 후 선수들을 집합시켜 한바탕 욕설을 퍼붓는다. 그래도 선수들은 군말없이 이를 받아들인다. 영국 선수들은 상급자에게 절대 복종한다. 그들은 군인과 다름없다. 경기중 머리가 깨져도 붕대로 싸맨 뒤 계속해 공을 찬다. 이런 근성도 대표 선발 때 중요한 한 요소로 삼는다.

    그러나 네덜란드에서는 다르다. 네덜란드 선수들은 토론을 즐긴다. 사소한 부상을 입어도 더 이상 못 뛰겠다고 벤치에 사인을 보낸다. 겨우 스무 살이 된 선수도 자신이 감독만큼 축구를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전술을 놓고 감독과 다투는 선수는 네덜란드 선수들밖에 없다. 감독은 작전을 세운 뒤 우선 선수들부터 설득해야 한다. 그들이 모두 고개를 끄덕인 뒤 그들 스스로 생각하면서 공을 차게 하면 그들은 환상적인 축구를 한다. 그러나 그렇지 못할 땐 엉망이 된다.

    현재 아인트호벤 감독인 히딩크는 축구 경영자로서 사람 다루는 데 귀신이다. 선수뿐만 아니라 기자도 능수능란하게 다룬다. 그는 선수를 한 인간으로서 존중한다. 후보나 주전이나 똑같다. 결코 그 누구도 편애하지 않는다. 그래서 선수들은 그에게 감동을 하고 그가 하는 말이라면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는다. 히딩크 리더십의 핵심은 바로 이 ‘인간존중’과 ‘신뢰’에 있다.

    히딩크가 한국 팀에 가르친 축구 기술은 새로운 게 아니다. 유럽의 일류 감독이라면 누구나 다 그렇게 했을 것이다. 그의 황소 같은 뚝심과 소신도 그만 가지고 있는 게 아니다. 이웃 일본 팀을 맡았던 트루시에 감독도 소신이라면 히딩크 못지않다. ‘생각하는 축구’라든지 ‘체력과 스피드를 중시하는 축구’ ‘스위퍼를 없앤 4-4-2 포메이션’ 등은 국내 지도자들도 이미 알고 있던 것들이다. 다만 아무도 실행에 옮기지 않았을 뿐이다.

    이런 면에서 히딩크에게는 ‘외국인’이라는 점이 유리하게 작용했다. 스웨덴 출신 스벤 고란 에릭손 감독이 잉글랜드 사령탑을 맡아 ‘잉글랜드 축구’를 확 바꾼 것과 비슷하다. 그는 잉글랜드의 촌스런 ‘킥 앤드 러시’의 축구를 세련된 ‘현대축구’로 바꿔버렸다. 에릭손은 잉글랜드의 ‘악습’과 ‘관행’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다. 잉글랜드인들이라고 그걸 몰랐겠는가. 잘 알면서도 축구 종가라는 ‘체면’과 ‘관행’ 때문에 고치지 못했던 것이다.

    에릭손은 냉정하다. 골이 들어가도 점잖게 박수를 치는 정도다.

    달빛이 너무 밝으면…

    프로 감독의 성적 부진은 곧바로 ‘잘린다’는 것을 뜻한다. 올 미국 프로야구에선 30개 구단 가운데 10개팀이 감독을 바꾸었다. 한국에서도 8개 구단 중 4개팀 감독이 유니폼을 벗었다. 대부분 성적 부진이 주된 이유다. 하지만 김성근 전 LG감독처럼 좋은 성적을 내고 해임된 사례도 있다. 이래서 감독 중엔 승리 지상주의자가 많다. 관중들이 재미없게 경기한다고 눈총을 줘도 그것은 그 다음 일이다. 삼성 김응룡 감독과 현대 김재박 감독은 “감독의 지상과제는 승리다. 이기지 못하는 감독은 존재가치가 없다”며 화끈한 야구 대신 ‘재미없는 야구’를 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한다.

    축구는 11명이 한다. 야구는 9명, 그리고 농구는 5명이 한다. 한마디로 축구든 야구든 농구든 한두 명의 잘하는 선수 가지고 하는 게 아니다. 그래서 이 세상의 모든 감독들은 한두 명의 스타보다는 팀워크를 중시한다. 스타가 많은 팀은 그 스타가 부진할 때 대책이 없다. 2002 한일 월드컵에서 보았던 프랑스와 포르투갈이 좋은 예다.

    1998년 월드컵에서 우승한 프랑스팀은 글자 그대로 ‘다인종 연합의 무지개팀’이었다. 그러나 4년 후에는 ‘지단의 팀’으로 변했다. 신흥 축구강국으로 떠오른 포르투갈도 어느새 ‘피구의 팀’이 됐다. 그리고 결국 그들은 2002한·일 월드컵에서 팀워크의 팀들에게 뼈아픈 수모를 당하며 쓸쓸히 보따리를 싸야 했다.

    현대 프로 스포츠는 시스템과 팀워크다. 한 스타의 능력에 전적으로 의존하지 않는다. 덴마크나 미국, 한국 축구팀엔 이렇다할 스타가 없다. 특히 2002월드컵에 나온 덴마크는 수비-공격 역할 분담이 철저한 ‘끈끈한 축구’의 전형이다. 한국은 전원 공격 전원 수비의 ‘수평조직 축구’다. 조직에서 스타란 너무 커지면 ‘계륵’과 같다. 팀워크가 사라진다. 달빛이 너무 밝으면 주변의 별들은 빛을 잃는다.

    감독들은 왜 목이 잘리는가

    에릭손 감독.

    한국 프로야구 LG구단은 얼마 전 한국시리즈까지 올라가 삼성과 팽팽한 접전을 벌인 끝에 준우승을 차지한 김성근 감독을 잘랐다. 왜 LG는 기대 이상의 성적을 낸 김감독을 잘랐을까.

    김성근 감독은 스스로 말한 것처럼 “야구밖에 모르는” 사람이다. 그는 24시간 내내 야구만 생각한다. 어쩌다 집에 들어가도 가족은 뒷전이고 오직 야구 데이터나 야구 비디오를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본다. 그래서 그의 야구는 ‘통계 야구’이고 ‘관리 야구’다. 아무리 잘하는 선수도 아니다 싶을 땐 가차없이 빼버린다. 반면에 아무리 이름 없는 선수라도 열심히 하는 선수는 눈도 깜짝 않고 출장시킨다. 그래서 김성근 감독 밑에선 무명 출신의 스타들이 많이 나온다.

    그러나 일부에선 감독이 사사건건 간섭하는 게 많아 선수들이 자율성을 발휘하기 어렵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또 내성적이고 외곬으로 자기만 옳다고 생각해 구단 운영에 있어서 전혀 타협할 줄 모른다는 지적도 있다. 그래서 태평양 이후부터만 쳐도 4번이나 중도 해임됐다는 것.

    하지만 세계의 유명한 축구·야구감독 치고 고집쟁이 아닌 감독은 하나도 없다. 이번 한·일월드컵에서 우승한 브라질의 스콜라리 감독도 브라질 대통령까지 나서서 호마리우를 대표팀에 넣으라고 했지만 들은 척도 않았다. 히딩크도 마찬가지다.

    하위팀을 상위팀으로 끌어올리는 데는 김성근 감독이 최고이지만 그의 지도방식은 팀을 우승으로 만드는 데는 문제가 있다는 말도 들린다. 그러나 이것도 김성근 감독에겐 억울한 말이다. 그는 늘 전력이 약한 팀을 맡았기 때문이다. 김성근 감독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김성근 감독은 “프로에 온 선수들은 누구나 뭔가 하나씩은 다 가지고 있다. 그 잠재력을 이끌어내는 게 바로 감독이다”라고 말한다. 당연한 이야기다. 그런데 LG 어윤태 사장은 김감독을 해임하면서 “김성근 야구엔 LG의 미래가 없다”고 말했다. 물론 경영자로서 회사의 미래와 맞지 않는 감독과는 일을 같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계약을 할 때는 ‘김감독의 야구에 LG의 미래가 보여서’ 했단 말인가.

    감독마다 팀 경영 스타일이 다르다. 그 어느 감독도 완벽한 사람은 없다. 김성근 감독이 하나에서 열까지 챙기는 스타일이라면 후임으로 임명된 이광환 감독은 웬만한 것은 다 선수에게 맡기는 스타일이다. 이감독은 “야구는 감독이 아니라 선수들이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감독은 선수들이 잘하도록 이끌어주고 도와주면 된다는 것이다. 또한 “구단과 감독의 관계는 마차의 수레바퀴와 같다”며 구단과의 불협화음 소지를 없애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소위 자율야구다.

    국내 프로축구 최고령 감독으로서 정규 리그 2연패를 이룩한 성남일화의 차경복 감독(65)도 비슷하다. 차감독은 훈련 계획이나 기술을 가르치는 것 등은 코치진에게 다 맡겨버린다. 자신은 전체적인 팀 운영이나 큰 줄거리에만 신경을 쓴다. 이른바 ‘인덕(仁德)의 축구’다.

    그러나 감독의 팀 경영 스타일에 정답은 따로 없다. 그 어느 방식이든 구성원들로 하여금 그들이 가지고 있는 능력의 마지막 한방울까지 쏟게 하는 게 중요하다. 이것이 바로 리더십이다.

    명감독의 조건

    뛰어난 리더십을 가진 리더, 즉 명감독이란 어떠한 사람인가. 그것은 바로 이기고 있는 팀을 지지 않게 만드는 사람이다. 아무리 싸움에 능한 자라도 모든 싸움에 다 이길 수는 없다. 그러나 명감독은 이기고 있는 팀을 지지 않게 할 수는 있다. 다음은 경영학 서적 ‘최강의 손자’에 나오는 일본 프로야구 명감독 모리 마사아키의 예다.

    모리 감독은 현역 시절 요미우리 자이언츠 포수로서 아홉 번이나 우승했고 세이부 라이온스 감독일 때는 일본시리즈에서 여섯 번이나 우승한 명감독이다. 그는 말한다. ”7회에 우리가 만루 홈런을 쳐서 앞서가는 상황이라도 확실한 다음 수를 생각하지 않으면 남은 이닝에서 역전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그러다 역전될 경우 안타를 두들겨 맞은 투수를 감독이 질책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역전을 당한 것은 확실한 다음 수를 생각하지 못한 감독에게 있다. 축제라면 몰라도 싸움을 하고 있을 때는 마지막 승리를 거둘 수 있는 계책을 강구하는 것이 리더의 가장 중요한 책임이다”

    그렇다. 그래서 손자도 “지지 않는 것은 스스로 통제할 수 있지만 이기는 것은 적에 따라 그 결과가 바뀐다”고 했다. 다시 말해 승리란 적이 만들어준다는 것이다. 철저히 준비하고 지키고 있으면 언젠간 적이 빈틈을 보이고, 바로 그때 전력을 다해 공격하면 비로소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역사상 ‘지지 않는 리더십’의 전형은 바로 삼국지에 나오는 제갈공명이다. 제갈공명이 이끄는 촉나라 국력은 잘해봐야 조조가 이끄는 위나라의 6분의 1에 지나지 않는다. 인재도 위나라에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촉은 항상 손권의 오나라와 연합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두 나라를 합해도 국력은 위나라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더구나 오나라는 언제 등을 돌릴지 모른다. 촉의 최선은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다.

    감독들은 왜 목이 잘리는가

    김응룡 감독.

    그러나 그건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으면 위나라나 오나라와의 싸움에서 언젠간 지게 돼 있다. 싸우지 않고 싶지만 싸우지 않을 수 없는 상황. 제갈공명은 어떻게 했는가. 그는 당연히 ‘불패(不敗)’를 지향했다.

    촉과 같은 작은 나라는 한번 싸우다가 지기라도 하는 날이면 그대로 나라가 망한다. 제갈공명은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또 두들겨본 뒤에야 작전을 세웠다. 완벽한 전략만 세웠다. 절대 무리한 전략은 세우지 않았다. 그래서 제갈공명의 전쟁은 시원하거나 화끈한 경우가 별로 없다. 몇 번 위나라를 공략하러 나갔다가 닭싸움 하듯 서너 번 전투를 벌인 뒤 갑자기 철수하는 식이다. 제갈공명의 한계를 잘 알고 있는 위나라의 사마중달이 촉의 군대가 아무리 조롱하고 싸움을 걸어도 절대로 성 밖으로 나오지 않고 지키기만 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물론 제갈공명은 생전에 전쟁에서 이기지는 못했다. 그러나 지지도 않았다.

    ‘미친 선수’ 있어야 감독이 산다

    전쟁은 결국 속임수에 지나지 않는다(손자). 모든 스포츠 경기에 있어 작전도 그렇다. 그것은 누가 하는가. 전쟁은 병사가 하고 스포츠에선 선수가 한다. 그렇다면 작전은 누가 짜는가. 전쟁에선 한니발이나 나폴레옹 같은 장군들이 짜고 프로축구나 프로야구에선 히딩크나 김응룡 같은 감독들이 세운다. 누가 얼마나 적을 잘 속이느냐에 따라 승패가 결정된다.

    전술에 ‘배수진’이라는 게 있다. 손자가 한 말인데, 부하들을 죽을 곳으로 몰아넣은 뒤 죽기 살기로 싸우게 하는 수법이다. 그러나 이것은 단기전에서 쓰는 수법이다. 한국시리즈 7차전에서 한번쯤 써보거나 아니면 1승 3패로 몰린 팀이 5차전에서나 한번 써볼 만한 것이다. 김응룡 감독이 단기전에 유독 강한 이유는 부하들로 하여금 죽기 살기로 싸우게 만드는 동기부여에 능하기 때문이다. 만약 정규 리그 같은 중장기전에서 이러한 배수진을 매번 쓴다면 선수들은 머지않아 지쳐 쓰러질 것이다.

    훌륭한 리더는 이러한 상황을 잘 활용한다. 중장기전에서 필요한 것은 철저하게 훈련된 참모들과 부하들이다. 그러나 단기전에선 반드시 한두 명의 ‘미친 선수’가 필요하다. 이번 한국시리즈에서 LG의 최동수, 김재현이 그렇고 우승한 삼성의 이승엽, 마해영이 그렇다.

    그러한 미친 선수는 누가 만드는가. 그것은 리더가 만든다. 맛있는 미끼를 주면 그 어떤 물고기도 몰려온다. 푸짐한 상을 내리면 그 어떤 사람도 용감해진다. 그렇다고 당근과 채찍만으로 인간을 100% 움직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베스트 멤버와 감독의 고민

    부지런한 개미들의 조직사회에서도 정작 열심히 일하는 개미는 15%밖에 안 된다. 나머지 75%는 빈둥빈둥거리거나 어영부영 놀기만 한다. 그렇다고 열심히 일 잘하는 개미 15%를 한데 모아 놓는다 해서 모든 개미가 다 죽어라 열심히 일을 하는 것도 아니다. 이 중에서도 15%만 열심히 일할 뿐이다.

    인간 조직도 마찬가지다. 인간 조직에서 진짜 열심히 일하는 사람은 10%도 안 된다는 게 경영학자들의 분석이다. 사원의 10% 정도가 열심히 일하는 회사라면 그 회사는 세계적인 회사의 범주에 들어간다.

    프로축구 울산 현대의 김정남 감독은 말한다. “축구에서 베스트 11에 드는 선수들은 자연히 감독을 따르게 돼 있다. 문제는 그 뒤에 있는 선수들이다. 그들은 감독에게 노골적인 불만을 터뜨리거나 심지어 팀이 곤경에 빠지는 것을 바라기까지 한다. 그래야 자신이 출장할 수 있으니까….”

    그래서 히딩크는 말한다. “나에게 베스트 11은 없다. 난 월드컵을 베스트 23으로 준비한다.”

    왜 감독들은 목이 잘리는가. 그것은 간단하다. 베스트 멤버 위주로 팀을 이끌면 반드시 팀이 분란에 빠져 그 감독은 목이 잘린다.

    그렇다면 팀 전원을 대상으로 팀을 이끌면 목이 잘리지 않을까? 그래도 그는 목이 잘린다. 왜? 그 감독은 성적이 좋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이 세상에 가장 분명한 진실이 두 가지 있다. 그 하나는 ‘인간은 반드시 죽는다’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스포츠 감독은 이래저래 결국 목이 잘리게 돼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진실은 꼭 그것만이 아니다. 산악인 박영석은 말한다. “산에서 어떤 리더를 만나느냐 하는 것은 곧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다.”

    그렇다. 이것은 세상의 모든 월급쟁이에게도 해당되는 말이다. 모든 국가의 국민들에게도 적용되는 말이다. 우리가 새로 뽑은 대한민국 대통령, 우리를 어디로 끌고 갈 것인가.

    학교 갈 땐 미군 장갑차를 조심하라.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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