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1월호

그 도시의 그 영화, 영혼을 두드리네

영혼으로 만나는 세상

  • 글: 박 안 서울넷페스티벌 집행위원장 program@senef.net

    입력2003-01-22 16: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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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제는 필름페스티벌(Film Festival)로 어워드(Award)로 표시되는 영화상과는 다른 면이 많다. 미국의 아카데미상이나 프랑스의 세자르상, 국내의 대종상 등은 영화상 시상식이지 영화제는 아니다. 영화상은 보통 자국 영화를 대상으로 일년을 기준으로 부문별 최고를 선정해 시상하는 일종의 ‘세리머니’인 셈이다.

    이에 비해 영화제는 일정한 기간에 특정한 범주의 영화를 모아 집중적으로 상영하는 축제를 일컫는다. 물론 경쟁 영화제의 경우 시상식이 뒤따르지만 여기에는 반드시 본선 진출작을 전체 상영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렇게 볼 때 영화제라는 말을 사용하는 곳은 많지만 엄격한 의미에서 본다면 모두 영화제라 할 수는 없다. 예를 들어 시네마테크(필름 라이브러리)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유명 감독의 회고전이나 국가별 또는 테마별 상영전의 경우, 거기 붙어있는 영화제라는 말은 그저 관용적 수식어일 뿐이다.

    영화제의 뿌리는 순수한 열정과 끈기

    영화제를 구성하는 첫째 요소는 프로그래밍이다. 프로그래밍은 작품을 선정하는 행위다. 그리고 그 일을 수행하는 사람을 프로그래머라 한다. 작품 선정기준은 영화제의 색깔을 만들어주고 존재 의의를 규정한다. 그래서 흔히 프로그래밍 또는 프로그래머를 ‘영화제의 꽃’이라 한다.

    영화제에는 또 연속성 혹은 주기성이 있어야 한다. 주로 일년마다 열리지만 격년제로 열리는 경우도 있다. 또한 최신 작품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 월드프리미어(공식적으로 세계 최초로 상영되는 것)는 아니더라도 영화제가 열리는 지역에서는 처음으로 상영하는 작품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지난 영화만으로 구성된 프로그래밍이라는 것은 일종의 회고전, 기획전에 지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조직이다. 주기적으로 영화제를 개최해나가는 명실상부한 주체로서의 조직이 필요하다. 개인이나 사기업(私企業)이 하는 영화제도 없진 않지만 대부분 비영리 사단법인이 운영을 맡는다. 영화제 자체는 영리사업이 아니기 때문에 순수한 열정과 끈기로 영화제를 만들어나가는 개인 또는 조직이야말로 영화제의 진정한 뿌리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영화제는 왜 하는 것일까. 무엇보다 중요한 건 보고 싶은 영화에 대한 갈망이다. 극장에서 개봉하는 영화만으로도 영화에 대한 다양한 욕구를 채울 수 있다면 영화제라는 행사는 따로 필요없을 것이다. 극장이라는 배급 시스템은 철저하게 시장논리로 움직인다. 흥행에서 불리한 영화는 수입할 확률이 적다. 다시 말해 우리가 접하는 영화는 이미 시장논리에 의해 걸러진 것들이기 때문에 매우 한정적이고 편협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으로 인해 영화제라는 숨구멍이 필요한 것이다. 극장에서 볼 수 없는 작품성이 뛰어난 영화를 세상에 드러나게 하는 것이 영화제인 셈이다. 그리고 일단 영화제에서 화제가 된 작품은 극장에서도 관객몰이에 성공할 가능성이 커진다. ‘지옥의 묵시록’ 같은 영화가 대표적이다.

    1000개의 도시, 1000개의 축제

    영화제의 산업적 순기능 또한 적지 않다. 영화제를 통해 분류되고 평가받은 영화들은 널리 알려지고 나아가 판권 판매에도 유리해진다. 감독과 배우에게도 세계 무대에서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필름마켓이나 프로젝트마켓을 가지고 있는 영화제의 경우, 구체적인 산업적 영향력을 이미 널리 공인받았다고 할 수 있다. 결국 영화제는 다양한 영화를 보고자 하는 관객의 욕구를 충족시키고 전세계에 영화를 알림으로써 판권과 흥행수익을 높이는 산업적 기능을 수행한다.

    현재 전세계적으로 영화제가 몇 개 존재하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각 나라별· 테마별·장르별로 다양한 영화제가 존재하며 이러한 행사가 모두 국제영화제의 등급을 매기는 단체인 국제영화제작자협회연맹(International Federation of Film Producers’ Associations, 영어 약자 IFFPA, 불어 약자 FIAPF)에 등록되어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대략 세계적으로 1000개 이상의 영화제가 있는 것으로 추정되며, 영화제가 가장 많이 열리는 프랑스에 약 150개, 한국에는 24개가 있다(영화진흥위원회 웹사이트 기준).

    국제영화제 중 가장 오래된 것은 1932년에 시작한 이탈리아의 베니스영화제다. 엑첼시오르 호텔 테라스에서 출범해 2003년인 올해, 햇수로 71년, 횟수로 60회를 맞는다. ‘세계 최고의 영화제’로 인정받는 프랑스 칸영화제는 1946년에 시작해 올해 56회를 맞으며, 세계 3대 영화제의 마지막 주자인 베를린영화제는 1951년 창설돼 53회가 된다. 그 외 스위스의 로카르노영화제(56회), 스코틀랜드의 에든버러영화제(57회), 스페인의 산베스챤영화제(50회), 미국의 뉴욕영화제(40회)와 샌프란시스코영화제(46회), 영국의 런던영화제(46회), 독일의 오버하우젠 단편영화제(49회) 등이 나이 지긋한 대표적인 영화제들이다.

    그에 비하면 최근 들어 중요한 영화제로 자리매김한 네덜란드의 로테르담영화제(32회)와 캐나다의 토론토영화제(28회)·몬트리올영화제(27회)·벤쿠버영화제(21회), 미국의 선댄스영화제(18회), 프랑스의 클레르몽페랑 단편영화제(25회) 등은 비교적 젊다 하겠다.

    서유럽과 북미지역을 중심으로 국제영화제가 자리를 잡아가면서 다른 나라에서도 다양한 영화제들이 잇달아 생겨났다. 1974년 체코의 카를로비바리영화제(29회)와 러시아의 모스크바영화제(29회), 1976년 이집트의 카이로영화제(27회)와 싱가포르영화제(27회), 1977년 홍콩영화제(26회), 1988년 도쿄영화제(15회) 등. 이렇게 생겨난 동유럽·아시아·아프리카 등의 후발 영화제는 자국 영화의 국제적 위상이 올라감에 따라 권위 있는 국제영화제로 성장했다. 특히 1995년 출범한 한국의 부산국제영화제는 짧은 기간에도 불구하고 아시아를 대표하는 세계적 영화제로 부상하는 괄목할만한 성장세를 보여주고 있다.

    알고 보면 더 재미있는 국제 영화제

    영화제의 종류는 크게 경쟁영화제와 비경쟁영화제, 국제영화제와 국내영화제로 나눌 수 있다. 여기서 다시 픽션·다큐멘터리·애니메이션·단편영화 등 장르와 길이에 따라 세분한다. 청소년영화제·여성영화제·독립영화제·퀴어영화제·인권영화제·디지털비디오영화제 등 차별화한 테마와 관심사에 따라 그 종류는 끊임없이 늘고 있다.

    이들을 편의상 국제영화제작자연합연맹(FIAPF)의 분류기준을 참고해 나눠보자.

    [장편 극영화 경쟁부문 영화제] 경쟁부문을 가진 영화제로 공식 경쟁부문에 출품된 작품 가운데 그랑프리(대상)를 수여할 수 있다. 경쟁부문과 더불어 비경쟁 초청 상영부문이 또 한 축을 이루며, 회고전·기획전 등의 하위 행사는 물론 공식적 필름 거래까지 아우르는 종합영화제다. 영화산업의 메커니즘과 맞물려 절충주의와 권위주의의 폐해를 지적받고 있기도 하다. 베니스·베를린·칸·로카르노·도쿄·카이로 영화제 등이 이에 속한다.

    [장편 극영화 비경쟁부문 영화제] 경쟁부문을 개설하지 않은 영화제로 상업적 성격에서 비교적 자유롭다. 작품의 질을 통해 영화제의 권위가 형성되며, 비경쟁이기 때문에 축제의 성격이 더 강화되는 측면이 있다. 런던·뮌헨·시드니·뉴욕 영화제 등이 있다.

    [장편 극영화 특별장르 영화제] 특정 장르의 장편 극영화를 상영하는 영화제.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청소년영화), 서울여성영화제(여성영화), 믹스브라질(성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영화), 브뤼셀 판타스틱영화제(호러·스릴러·판타지영화), 부천 판타스틱영화제, 유바리 국제판타스틱영화제 등이 있다.

    [다큐멘터리영화제] 암스테르담 국제다큐멘터리 영화제(네덜란드), 야마가카 국제다큐멘터리 영화제(일본) 등이 유명하다.

    [단편영화제] 오버하우젠 국제단편영화제(독일), 클레르몽페랑 국제단편영화제(프랑스), 브레스트 단편영화제(프랑스) 등이 중심이다.

    [새로운 형태의 영화제]

    인터넷영화제 : 프랑스 국제인터넷영화제(FIFI), 서울넷페스티벌(한국) 아니마문디웹(브라질)

    디지털영화제 : 레스페스트(미국), 세네프영화제(한국), 디필름 페스티벌(미국)

    뉴미디어페스티벌 : 유럽 미디어아트 페스티벌(EMAF·독일), VIPER(스위스)

    전통적인 형식의 영화제 이외에 뉴미디어의 도래와 맥을 같이하는 작품에 대해 열려 있는, 실험적이고 개방적인 영화제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비교적 젊은 느낌을 주는 로테르담·선댄스·로카르노 영화제마저도 따라잡지 못하는 실험적 영화들을 지지하고 수용하는 영화제는 그냥 영화제라 부르기보다는 뉴미디어페스티벌이라고 하는 게 맞다. 영화와 예술, 기술과 미학의 경계를 넘어서 영화를 포함한 다양한 뉴미디어 영상물을 함께 즐길 수 있다. 이에 대한 좀더 자세한 정보는 www.filmfestivals.com에서 찾을 수 있다.

    그 도시의 그 영화, 영혼을 두드리네

    칸 해변에는 영화제 손님들을 위한 고급 레스토랑이 즐비하다

    ●www.festival-cannes.fr ●2003.5.14∼25 ●프랑스 남부 휴양도시 칸

    매년 5월 칸은 한바탕 열병에 시달린다. 지중해를 끼고 우뚝 서있는 팔레데페스티벌에서 벌어지는 세계최고의 영화축제가 그 이유다. 영화사를 수놓은 수많은 감독들이 다녀갔고, 지금도 그해의 가장 기대되는 작품들을 만날 수 있는 곳. 1946년에 처음 개최한 이래, 재정 부족과 68학생혁명 등의 영향으로 몇 번 중단되기도 하면서 올해로 56회를 맞이한다.

    매일 저녁 프리미어에 참석하기 위해 정장을 입고 빨간 주단을 밟고 올라가는 영화감독과 스타들, 호텔과 거리뿐 아니라 바다와 하늘까지 점령한 마케팅의 향연, 취재 경쟁으로 뜨거운 기자회견과 포토 콜, 밤마다 벌어지는 파티 등 칸은 영화와 관련한 많은 꿈과 환상을 준비해놓고 손님들을 기다린다.

    1960년부터 시작한 필름마켓은 현재 영화제에서 매우 큰 영역을 차지하고 있다. 공식 경쟁부문 외에 공식 비경쟁부문 ‘주목할만한 시선’, 별도의 조직으로 운영되는 ‘15인의 감독’ ‘비평가주간’ 등이 있다. 각 부문에서 선정된 신인감독의 작품은 ‘황금카메라상’ 후보가 된다. 그 중 ‘15인의 감독’은 68학생혁명의 영향으로 고다르·트뤼포·샤브롤 등이 영화제 단상을 점거하면서 그 보수성을 격렬하게 비판한 사태 이후 신설된 섹션이다. 공식부문에서 놓친 많은 신인감독들을 발굴해내고 있다. 칸영화제는 영화를 산업적으로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작가 영화를 지지하는 등 절묘한 절충주의를 유지해나가고 있다.

    베니스국제영화제

    그 도시의 그 영화, 영혼을 두드리네

    200년 베니스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배우 문소리

    ●www.labiennale.org ●2003. 8월 마지막주 ●이탈리아 베니스

    1932년 처음 개최한 이래 올해 60회 환갑을 맞는 가장 오래된 영화제. ‘주름살 제거수술이 필요한 늙은 숙녀’라는 비유가 말하듯, 이탈리아의 정치·경제 사정과 맞물려 무언가 허우적거리고 있는 느낌이다. 경쟁과 비경쟁을 오가다가 1981년부터 경쟁영화제로 정착했다. 칸영화제가 작가주의와 상업주의 사이에서 줄타기를 시도하고 있다면, 베니스영화제는 영화미학과 언어에 더 엄격한 예술 지향적 작품을 지지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1937년에 만들어진 메인 행사장 ‘팔라조 델 치네마’에는 1350석의 살라 그란데 극장과 1951년 증축된 살라 볼피 극장이 있다. 이 행사장이 생기기 전에는 시상식과 같은 행사는 호텔 엑셀시오르의 야외 테라스에서 열렸다.

    현재 집행위원장은 모리츠 데 하델른. 현재 로카르노영화제 집행위원장으로 있는 이레네 비냐르디와의 교체설이 파다하다. 이렇게 베니스영화제가 계속 불안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베를루스코니 정권의 전횡 앞에서 영화제 자체의 순수성과 차별성을 지켜내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대상 수상작에는 황금사자상이 수여된다.

    그 도시의 그 영화, 영혼을 두드리네

    한 독일 방송사 간부가 2002년 베를린영화제의 공식 로고를 선보이고 있다

    ●www.berlinale.de ●2002.2.6∼16 ●독일 베를린

    1951년, 전후 독일 재건의 부담감 속에서 정치·사회적 목적으로 시작된 영화제다. 예술 지향적인 나머지 두 영화제에 비해 이념적·정치적·사회적인 주제를 다룬 영화들을 소개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특히 동구권 영화 소개에 힘을 기울이는 등 분단국가에서 열리는 이점을 적절히 활용, 동서 영화 교류와 소통의 장 역할을 수행해왔다. 독일이 통일되고 동구권 블록이 와해된 이후에는 동서독 화합이라는 역할을 다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영화제를 주관하는 기구는 ‘베를린 축제 유한회사’다. 총예산 중 50%는 연방정부가 지원하고 나머지는 주정부의 보조금과 기타수입으로 채워진다. 요즘은 1년 예산이 40억원을 상회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비와 눈이 자주 오는 2월에 개최됨으로써 베를린의 잿빛 도시 분위기와 어울려 칸영화제의 화사함과는 전혀 다른 정취를 느낄 수 있다.

    베를린영화제는 공식 경쟁부문, 파노라마, 영 포럼, 회고전, 아동영화제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에 그때마다 적절한 프로그램들이 첨가된다. 영 포럼은 칸영화제의 ‘15인의 감독’ 주간처럼 별도 조직으로 운영되며, 선정기준도 진취적이고 실험적이어서 전세계 유명 영화감독 가운데 초기시절 이 ‘영 포럼’에 작품이 소개되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로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베를린영화제의 메인 극장은 동시통역 시설까지 완비된 조 팔라스트다. 바로 이 극장에서 경쟁부문 작품을 선보인다. 같은 건물에 있는 아틀리에 암 조 극장은 주로 ‘파노라마’ 부문 영화 상영장소로 이용된다. 대상 수상작은 황금곰상을 받는다.

    로테르담영화제

    ●www.filmfestivalrotterdam.com ●2003.1.22∼2.2 ●네덜란드 로테르담

    베를린의 아성을 위협하며 겨울 유럽권 최대의 영화행사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영화제. 부산국제영화제 PPP의 모델이 된 시네마트와 더불어, 각국의 역량 있는 신인감독 지원을 위해 ‘타이거 어워즈’ 경쟁부문을 운영하고 있다. 독립영화, 젊은 영화, 대안영화, 실험영화, 새로운 영화, 다양한 영화, 비서구권 영화 등 한마디로 창조적인 영화를 로테르담은 지지하고 소개한다.

    이렇듯 실험적이고 과격한 프로그램에도 불구하고 진지하기로 소문난 관객들이 몰려들어 게스트 5000명, 관객 34만5000명 수준의 흥행성공을 거두고 있다. 30여 년 동안 꿋꿋하게 자신의 이상과 역할을 배반하지 않고 지켜온 로테르담영화제는 홍상수 감독의 작품을 비롯, 한국영화를 세계에 알리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선댄스영화제(18회)

    그 도시의 그 영화, 영혼을 두드리네

    ‘트래픽’으로 2001년 아카데미 감독상을 수상한 스티븐 소더버그는 대표적인 선댄스 키드다

    ●www.sundance.org ●2003.1.16∼26 ●미국 유타주 파크시티

    미국 배우 로버트 레드포드가 영화 ‘내일을 향해 쏴라’에서 자신이 맡았던 배역의 이름을 따 1985년 창설한 영화제. 날로 호응을 얻어 이제는 케이블 TV에 선댄스 전문채널을 개설(1996)할 정도가 됐다.

    영화제 장소는 스키 리조트가 딸린 조그마한 마을 파크시티. 해마다 1월이면 스키보다 영화를 즐기려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독립영화가 처음 주목받고 시장성을 획득하는 중요한 전초기지 역할을 하고 있지만, 요즘에는 그 영향력 확대와 함께 초기 정신을 상실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기도 하다. 선댄스 인스티튜트에서 주최하며 최근에는 온라인필름페스티벌이 본 행사에 앞서 시작된다.

    선댄스영화제는 그동안 스티븐 소더버그의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 테이프’, 쿠엔틴 타란티노의 ‘저수지의 개들’, 커비 딕과 에미미 코프만의 ‘데리다’ 등 수많은 독립영화와 신인감독을 발굴했다. 이들 모두 중요한 감독으로 성장했으며, 수상작들 또한 상업적 배급망을 타 흥행에 성공하는 등 스타 영화제로 인기를 누리고 있다.

    ●www.clermont-filmfest.com ●2003.1.31∼2.8 ●프랑스 클레르몽페랑

    독일의 오버하우젠 단편영화제와 함께 세계 단편영화계의 두 축을 이룬다. ‘팡세’로 유명한 파스칼의 고향인 화산도시 클레르몽페랑에서 열린다. 에릭 로메르의 초기 영화 ‘모드집에서의 하룻밤’을 보면 눈발이 휘날리는 클레르몽페랑의 분위기가 잘 묘사되어 있다.

    1979년 클레르몽페랑 문과대학 시네클럽 회원들에 의해 조촐하게 시작돼 문화성의 지원으로 점점 커진 클레르몽페랑영화제는 현재 15만명을 웃도는 관객 동원력을 자랑한다. 특별히 디렉터 없이 14명의 임원으로 구성된 위원회가 영화제를 이끌어가는 독특한 형태를 띠고 있다. 매스컴 및 영화산업 전반에 걸쳐 단편영화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진 것은 바로 이 영화제의 핵심적 팀워크가 이뤄낸 노력의 결실이기도 하다.

    오픈영화제, 디지털영화제

    56회라는 전통을 자랑하는 스위스의 로카르노영화제(www.pardo.ch, 2003.8.6∼16)도 빼놓을 수 없다. 젊은 감독의 초기작을 집중적으로 소개하며 야외상영으로도 유명하다.

    유럽미디어아트 페스티벌(www.emaf.de 2003.4.23∼27)은 영화뿐 아니라 비디오 작품, 웹 작품, 실험영화, 미디어 아트, 퍼포먼스 등 다양한 영상작품을 선보이는 행사로 독일의 아름다운 소도시 오스나브뤼크에서 매년 4월에 개최된다. 개·폐막식 등 엄격한 의전행사를 생략하는 대신, 주상영관에 마련된 카페에서 작가와 직접 만나 대화를 나누는 등 특별한 시간을 마련하고 있다.

    그 외에 디지털영화제와 온라인영화제를 병행하는 서울넷페스티벌(세네프·www.senef.net)은 동일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가장 앞서가는 첨단성과 도전성으로 주목받고 있으며, 미국에서 시작한 투어형 디지털영화제 레스페스트(www.resfest.co.kr)도 영화·음악·디자인이 혼성된 하이브리드 축제를 표방하며 앞서가고 있다.

    이제 영화제는 한국에서도 ‘되는 장사’다. 규모 면에서 보면 각각 1995년, 1997년, 2000년에 출범한 부산국제영화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전주국제영화제가 한국을 대표하는 3대 국제영화제라 할 수 있다. 그 외에도 서울여성영화제·서울넷페스티벌(세네프)·서울국제독립영화제·부산아시아단편영화제·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 등 20여 개의 영화제가 고유 컨셉트와 이미지를 가지고 풍성한 화젯거리와 독특한 문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영화제 만들기와 즐기기

    물론 국내에 영화제가 너무 많으며, 재정을 조달하는 데 지나치게 정부에 의존한다는 비판도 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으로 존속하는 영화제, 그것도 예산 규모가 큰 영화제가 늘어나는 것에 대한 우려라 본다. 오히려 영상문화의 발전을 위해 작고 개성 있는 영화제들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생각이다.

    정부예산과 지자체의 지원을 받아서 치러지는 영화제의 경우에도 무조건 규모가 커야 한다는 발상에서 탈피해 적정 규모의 예산을 산출해내고 지방의 특색과 잘 어울리는 컨셉트를 도출해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내용과 형식의 일치야말로 영화제의 생명력을 지키는 필수 전략이다.

    사실 영화제에서 예산확보는 가장 중요한 문제다. 많은 영화제들이 그 문제로 고생하고 있다. 한 해외 영화제 디렉터의 말대로 “예산확보는 매년 반복되는 전쟁”인 것이다. 영화제 자체의 자생적 발전전략도 중요하지만 정부에서도 작은 영화제에 더 많은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영화제를 찾는 관객 또한 부산영화제나 부천영화제처럼 덩치 큰 영화제 외에 상대적으로 작고 개성 있는 영화제를 찾아 즐기는 새로운 기쁨을 발견하길 바란다. 사실 필자에게 가장 인상적인 영화제는 칸이나 베를린이 아니라 프랑스 남부의 한 시골 뤼사스를 배경으로 한 작은 영화제다. 기차와 버스를 타고 가서도 한참 걸어 들어가야 하는 목적지, 크리스 마르케의 회고전을 컨테이너에 마련된 시사실에서 감상하고, 초롱초롱한 별빛이 쏟아지는 밤길을 걸어 숙소로 걸어오던 길….

    칸·오버하우젠·로카르노·클레르몽페랑 등 영화제로 연상되는 도시를 방문해 보고 싶은 영화를 맘껏 보며 낯선 도시와 풍경 속에서 잊지 못할 감동의 순간을 만나는 것, 그것이야말로 영화제라는 축제의 진정한 매력이다. 지구상에서 열리는 수많은 영화제를 가방 하나 메고 돌아다녔던 프랑스의 영화평론가 세르쥐 다네의 평론집 ‘영화일기’(1986)의 서문에는 질 들뢰즈의 다음과 같은 글이 나온다.



    “여행의 목적, 그건 확인이다. 영혼의 깊은 곳에서 떠오르는 의문들, 꿈 또는 악몽같이 말로 옮기기 힘든 어떤 것들을 확인하러 우리는 떠난다. 이른바 ‘녹색광선(에릭 로메르가 만든 영화의 제목)’이라는 것, 푸르스름하고 자줏빛이 도는 그런 시간 또는 빛은 과연 존재하는가. 일본에 가면, 구로자와 아키라가 보여준 ‘란(亂)’에서 군기(軍旗)들을 그렇게 펄럭이게 했던 바람을 실제로 볼 수 있을까. 이런 의문 때문에 우리는 여행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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