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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중음악 스타 열전

“‘아침이슬’은 김민기나 내게 애증의 대상”

30년 한결같은 포크계의 ‘상록수’

  • 글: 임진모 대중음악평론가 www.izm.co.kr

“‘아침이슬’은 김민기나 내게 애증의 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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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이슬’은 김민기나 내게 애증의 대상”

양희은이 발표한 앨범들. (왼쪽부터 1971, 1974, 1996년)

-지금까지 낸 앨범은 모두 몇 장인가요? 그 중 어떤 곡들이 맘에 드는지 말씀해주십시오.

“앨범으로는 스물한 장이고 찬송가를 포함하면 스물여덟 장일 겁니다. 곡으로는 400여 곡 될 거구요. 좋아하는 곡은 아무래도 김민기씨 작품인 ‘백구’ ‘금관의 예수’ ‘늙은 군인의 노래’고요, 후반기 곡으로는 김의철의 곡인 ‘나 떠난 후에라도’가 맘에 듭니다. 아까도 말했지만 ‘아침이슬’은 거기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양희은씨는 노래도 노래지만 작곡자 선택에 대단한 안목을 갖고 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김민기부터 이주원 하덕규 이병우 그리고 최근의 김의철씨까지 같이 작업한 사람들은 양희은의 음악에 품격과 새로움을 불어넣었습니다. 작곡자를 고른 기준은 무엇이었습니까?

“골랐다기보다는 모두 새 앨범제작을 앞두고 주변에서 소개받는 방식이었습니다. 이주원씨는 서로 속속들이 알면서 동고동락하던 사이였고, 하덕규는 조동진 선배의 소개로 만났습니다. ‘어떤 날’이란 듀엣으로 활동한 이병우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눈여겨봤던 후배였어요. 그리고 6년에 걸쳐 저의 발성을 개발하는 데 힘써준 기타 연주자 김의철씨는 이제 저의 음악스승이지요. 살면서 만난 음악선생 가운데 으뜸은 김의철씨가 아닌가 합니다.”

30년에 걸친 긴 음악 여정에서 양희은이 가장 흡족해하는 것은 귀국 이후 공연으로 새로운 위상을 개척해냈다는 사실이다. 같은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이 기성세대가 됐어도 꾸준히 공연장을 찾아와준다는 것은 가수에겐 견줄 수 없는 기쁨이다.



게다가 그는 대형무대나 고액의 출연료를 받는 이벤트 행사장에 서는 다른 고참 가수들과는 달리 대학로의 소규모 라이브 무대를 고집한다. 1994년 대학로에 ‘라이브 극장’이 생겼을 때, 그는 생애 최초로 자신의 이름을 단 콘서트를 열면서 가요사에 드문 ‘노장 콘서트가수’로 부활했다. “1990년대 들어 물결을 이룬 라이브 문화의 실질적 기폭제는 양희은”이라고 말하는 가요 관계자들이 많은 것은 그 때문이다. 그의 이름이 추억으로 퇴화하지 않고 여전히 무게를 갖는 것 또한 콘서트문화의 개척자라는 이미지 때문일 것이다.

-요즘 젊은 가수들은 과거에 비해 수명이 짧습니다. 신세대 가수 중에서 양희은씨처럼 30년을 견딜 사람은 없다고 단언해도 틀리지 않을 것 같고요. 선배로서 그들에게 어떤 얘기를 들려주고 싶습니까?

“전 돈을 버리고 ‘롱런’을 얻었다고 생각합니다. 가수와 돈의 관계는 기묘해서 노래로 돈을 벌기 시작하면 이미 내리막길에 접어들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가수는 인기든 위세든 내려갈 때 돈이 벌린다는 거예요.

또한 제가 오래갈 수 있었던 것은 ‘보여주는 게’ 뜸했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제게 TV는 언제나 낯선 물건이었습니다. 뭐든 그렇지만 많이 보여주면 나중에는 보고 싶지 않은 법이죠.”

그는 또한 “가수는 메시지의 전달자라는 것을 잊지 말고 반드시 ‘자기 얘기’를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기획이 판치는 근래 음악계 풍토에서 가수는 남 얘기를 충실하게 전하기만 하는 존재가 돼버렸는데, 그래서는 유통기한에 쫓기는 상품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라는 일침이다.

“양희은의 음악이 그 시대 사람들에게 무엇을 전했다고 보느냐”며 마지막 질문을 꺼내들었다. 인터뷰 내내 유려하게 대답해나가던 그가 잠시 입을 닫았다. 잠깐의 침묵이 흐른 후 그는 낮은 톤으로 조심스럽게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아마도 제 노래는 동시대를 살아간 같은 연배 사람들의 가슴을 풀어주는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경제성장의 고단함과 가혹한 군사독재에 신음하며 살던 제 또래 사람들에게는 무언지 모를 응어리가 가슴에 맺혀 있었지요. 김민기를 비롯한 작곡자들의 메시지를 제가 대신 전달하면서 그 쓰라린 마음을 일정 부분 해소해주었다고 봅니다. 또한 팬들이 제 노래와 목소리에서 틀에서 벗어나는 싱그러움을 느꼈다면 다행이겠지요. 한마디로 타성에 젖지 않으려고 애쓰는 모습 때문이었을 겁니다.”

“죽을 때까지 노래할 거야!”

그는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중장년과 아이들을 위한 노래에 집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후반에는 그간 꼭 만들고 싶었다는 동요음반도 출시할 계획이다. 고민이 있다면 신곡을 계속 내놓고 있는데도 관객들은 여전히 30년 전의 감수성에 머물러 있다는 것. 그 이야기를 꺼내며 “팬들이 신곡을 싫어해도 신곡을 내놓는 게 옳은 것일까” 자문(自問)하던 그는 이내 단호한 어조로 “그래도 해야 돼!” 하고 자답(自答)했다. 인터뷰 내내 가장 많이 입에 올린 말이 바로 ‘타성’ ‘신곡’ ‘공연’ 같은 어휘들이었다. 단순히 지나간 시대의 아이콘으로 기억되고 싶지 않다는 단단한 결심이었다.

“과거를 복제하는 것은 가수로서 끝이죠. 타성에 젖지 않으려면 공연에 매진하고 줄기차게 신곡을 발표하는 것 밖에 없습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떠나는 필자를 문 밖까지 배웅하면서 양희은은 다시 우렁찬 목소리로 한마디를 던졌다.

“나, 죽을 때까지 노래할 거야!”

신동아 2003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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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임진모 대중음악평론가 www.iz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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