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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東亞日報 신춘문예 중편소설 당선작

프라이데이와 결별하다

  • 글: 김언수

프라이데이와 결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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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가스가 없어서 라면을 끓일 수 없었으므로 그는 안성탕면을 부숴서 과자처럼 먹었다. 맛이 너무 싱거웠다. 그는 분말 스프를 약간씩 쳐서 먹었다. 분말 스프를 쳐서 먹으니까 훨씬 맛이 있었다. 가스가 끊겨서 기분이 우울했지만 분말 스프 때문에 그는 기분이 조금 좋아졌다. 안성탕면은 끓여 먹어야 제 맛이지만 분말 스프만 있다면 그냥 먹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다고 그는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는 형의 전화를 기다리다가 잠이 들었다.

꿈속에서 그는 주인집 할머니를 만났다. 할머니는 안성탕면의 분말 스프를 들고 있었다. 그는 제발 분말 스프만은 뺏어가지 말아달라고 할머니에게 사정했다. 할머니는 그러면 방세를 내라고 했다. 그는 프라이데이와 결별했기 때문에 지금은 돈이 없다고 말했다. 할머니는 프라이데이란 놈이 그렇게 무섭냐고 물었다. 그는 프라이데이는 친절하다고 말했다. 할머니는 프라이데이라는 놈이 그렇게 친절하다면 왜 회사는 안 나가고 지랄이냐고 물었다. 그는 프라이데이는 정말 친절하지만 입 속에는 창을 든 나쁜 병균들을 잔뜩 숨기고 있어 프라이데이와 계속 이야기를 하다 보면 우리의 정신과 육체가 황폐해진다고 말했다. 할머니는 무슨 말도 안 되는 잡소리냐며 분말 스프를 들고 사라졌다. 그는 네거리에 서 있었다. 할머니를 쫓아가고 싶었지만 동쪽으로 갔는지, 서쪽으로 갔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는 가스도 안 나오고 물도 없는데 분말 스프까지 가져가시다니 정말 너무하세요, 하고 말하며 네거리에 앉아 엉엉 울었다. 그때 한 신사가 다가와서 그에게 손수건을 주면서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그는 주인집 할머니가 분말 스프를 가져갔기 때문에 이렇게 울고 있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신사는 호탕하게 웃으면서 그런 일이라면 전혀 걱정하지 말라고 말했다. 신사는 그에게 상자를 하나 건네주면서 이것을 품속에 간직하고만 있으면 아무 걱정 없이 살 거라고 그에게 말해주었다. 그는 신사의 친절에 너무나 감동을 받아서 저는 아무것도 해드린 게 없는데 이렇게 큰 은혜를 베풀어주시니 몸둘 바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친절한 신사는 이것이 자신의 일이니 크게 부담스러워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친절한 신사는 곧 사라졌다. 그는 신사가 동쪽으로 사라졌는지 서쪽으로 사라졌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는 떨리는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상자를 열었다. 상자 속에는 치약 광고에 나오는 창을 든 나쁜 병균들이 잔뜩 들어 있었다.

*프라이데이는 다니엘 데포의 소설 ‘로빈슨 크루소’에 나오는 로빈슨의 친구였던, 혹은 종이었던 원주민의 이름, 금요일에 만났다고 해서 로빈슨 크루소가 프라이데이라고 지어준 이름에서 따온 것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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