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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기획│한국정치 대변화

‘휴대전화’가 아날로그 정치 눌렀다

여론조사 전문가가 본 16대 대선

  • 글: 노규형 리서치 앤 리서치 대표

‘휴대전화’가 아날로그 정치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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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전화’가 아날로그 정치 눌렀다

대선에서 패배한 이회창 후보가 지난해 12월20일 정계은퇴 선언을 하면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게다가 중요한 것은 응답자의 42%를 차지하는 무당파의 60%가 세대교체를 지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세대교체는 젊은 층으로부터 높은 지지를 받고 있었다. 20대에서는 64%, 30대에서는 55% 등 과반수가 세대교체를 지지했다.

5년 전인 1997년 8월에도 R&R은 같은 질문을 던졌다. 그때도 응답자 중 46%가 정권교체를, 49%는 세대교체를 강조해 2002년 상황과 비슷했다. 이때는 한나라당 지지자가 세대교체를 더 중요시했고, 당시 국민회의 지지자들은 정권교체를 주장했다.

결국 세대교체와 정권교체는 15대 선거와 16대 선거 모두에서 최대 이슈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이 중대한 이슈를 효과적으로 활용하지 못했다.

한나라당은 5년 전 15대 선거에서는 이인제 후보와의 단일화에 실패하는 바람에 세대교체를 주장하는 지지자들을 합치지 못해 패배했다. 이번 16대 선거에서는 세대교체를 주장하는 정몽준 후보와 노무현 후보가 단일화로 뭉치는 바람에 또 대통령의 꿈을 접어야 했다.

노무현 후보는 낡은 정치 청산이라는 효과적인 구호로 세대교체를 호소하는 한편 정몽준 후보와의 단일화 이벤트로 선거주도권을 계속 장악하는 데 성공했다. 이에 비해 이회창 후보와 한나라당은 6월 지방선거와 8월 보궐선거에서의 승리에 도취해 부패정권교체라는 이슈를 계속 선점하지 못했다.



정기국회 기간에는 공적자금조사를 다루지 않았으며 현 정부 실정(失政)도 공격하지 않고 화해조치를 취하는 듯한 인상을 줌으로써 국민들에게 정권교체의 심각성을 부각시키지 못했다. 게다가 김대중 대통령은 민주당 총재직을 일찌감치 사퇴하고 정치권과의 거리를 효과적으로 유지하는 데 성공함으로써 선거에서 현 정권의 책임문제가 중요한 이슈가 되지 못했다.

실제로 2002년 11월24일 R&R이 ‘정몽준씨와 노무현씨의 단일화후보를 김대중 정부의 후계로 생각하는가’ 하고 질문했을 때 응답자의 64%가 ‘그렇지 않다’고 했다.

선거가 시작되면서 정권교체 주장은 노무현 후보에게는 크게 영향을 끼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노무현 후보는 정권교체의 부담을 벗고 세대교체의 상징으로 선거에 임함으로써 젊은 세대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게 됐다.

자갈치 아줌마와 기타 치는 노무현

2002년 5월 노무현 후보의 호감도를 조사했을 때 호감이 64%, 비호감이 23%였다. 특히 20대와 30대에서 호감도가 높아 70% 이상이 호감을 갖고 있었다. 1999년 6월에 조사된 이회창 후보 호감도에서 호감이 34%, 비호감이 64%였던 것과 비교하면 노무현 후보의 호감도는 상대적으로 매우 높다. 또 이회창 후보에 대해 20대의 71%와 30대의 66%가 비호감을 가진 것과 비교해보더라도 노무현 후보에 대한 20대와 30대의 인기를 짐작할 수 있다.

노무현 후보는 고졸 출신의 인권변호사, 서민적인 풍모, 청문회 스타, 지역구도에 정면으로 도전해온 정치역정, 타협하지 않은 정치, 원칙 있는 정치를 해온 인물이었으며 이런 점들이 젊은 세대에 잘 맞았다.

이런 좋은 이미지를 자산으로 삼은 노무현 후보의 선거운동은 주로 자신의 주 지지기반인 20∼30대를 겨냥했다. 선거운동은 PMI라 하여 정책(Policy), 미디어(Media), 인터넷(Internet)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정책 면에서는 군복무 단축을 내세워 젊은 층을 겨냥했고 북한과 미국과의 관계에서도 진보적인 정책을 취했다. 또 선거홍보 면에서 부산 ‘자갈치 아줌마’를 내세운 서민적인 광고, ‘기타 치는 노무현’ 편의 감성적인 광고 등으로 젊은 층에 호소력 있게 다가갔다.

아울러 노사모를 중심으로 한 자원봉사자들의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가두선거운동도 대단히 인상적이었다. 이러한 선거운동은 한나라당의 조직 중심 선거와는 판이했다. 정당유세가 없어지고 현수막이 없어진 선거에 적합한 선거운동이었다.

노무현 선거운동의 백미는 인터넷 선거운동이다. 1997년 선거 때는 163만 명에 지나지 않던 인터넷 인구가 2002년 선거 때는 무려 2565만명이 되었다. 20대와 30대는 물론 40대까지도 인터넷이 주요 정보수단이 되었으며 특히 젊은 층에는 기존 미디어를 대체할 정도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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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노규형 리서치 앤 리서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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