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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갈등 지도 (2)│북아일랜드

민족·종교·역사 ‘복합 갈등’이 낳은 30년 유혈사태

북아일랜드

  • 글: 안병억 영국 케임브리지대 박사과정·유럽통합 전공 anpye@hanmail.net

민족·종교·역사 ‘복합 갈등’이 낳은 30년 유혈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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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지배층인 신교파 영국인은 소수층인 구교파 아일랜드인이 벌이는 어떠한 운동도 영국과의 연합을 가로막는 것은 물론 무장투쟁을 위한 서곡이라고 간주했기 때문에 평등권 운동을 탄압했다. 그래도 사태를 통제할 수 없게 되자 1969년 8월 영국군이 북아일랜드에 주둔하기에 이른다. 그러자 북아일랜드에서도 무장투쟁을 통한 독립쟁취를 모토로 내건 IRA가 재결성됐다.

영국군이 북아일랜드에 주둔하고 IRA가 테러를 자행하기 시작하면서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악화했다. IRA의 테러를 빌미로 영국인이 결성한 자위대도 아일랜드인에게 테러를 저질렀다.

1972년 1월30일에는 북아일랜드 제2의 도시 런던데리에서 영국인과 동등한 권리를 달라고 요구하며 평화적으로 시위를 벌이던 구교도 시위대에 영국군 공수부대가 발포, 13명이 숨지는 ‘피의 일요일(Bloody Sunday)’ 사건이 발생했다. 두 달 뒤인 3월30일에는 영국 정부가 북아일랜드의 자치권을 접수하고 직접통치를 시작했다.

1972년에 벌어진 무장투쟁이 얼마나 치열했는지는 그해 1년 동안 테러로 사망한 사람이 468명에 이른다는 사실에서도 짐작할 수 있다. 1997년 5월 취임한 노동당의 토니 블레어 총리는 이 사건을 재조사하기 위한 위원회를 구성, 지금까지 당시 발포자와 발포의 정당성 여부에 대한 조사가 진행중이다.

이처럼 피의 악순환이 거듭되던 북아일랜드 사태에 일종의 전환점이 된 사건이 벌어졌다. 투옥된 IRA 죄수들의 단식투쟁이었다. 1981년 3월1일 메이즈 감옥에 수감된 IRA 지도자 보비 샌즈가 단식투쟁을 시작했다. 그는 5년 전에 폐기된 IRA 죄수들에 대한 정치범 대우 부활, 평복 착용과 감옥내 결사의 자유 허용, 감옥내 노역 금지 등을 요구조건으로 내걸었다. 투옥된 다른 죄수들도 단식투쟁에 돌입했다. 10월3일까지 계속된 단식투쟁으로 IRA 죄수 10명이 사망했다. 당시 영국 총리였던 ‘철의 여인’ 마가렛 대처는 이들을 테러범으로 규정, 숨지도록 방치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IRA는 북아일랜드내 구교도로부터 폭넓은 지지를 받게 된 것은 물론, 국제적으로도 IRA는 약자이고, 영국 정부는 탄압자인 것으로 인식됐다. 이후 실시된 보궐선거에서 신페인당이 승리하면서 법적 테두리 안에서 영국과 협력하자고 주장해온 사회민주노동당을 압박하자 영국 정부는 다급해졌다.

영국 정부는 신페인당이 북아일랜드 구교 원주민의 제1 정당이 되는 것을 저지하기 위해 아일랜드 정부와 비밀협상을 시작, 1985년 11월15일 ‘영국-아일랜드 협정(아일랜드의 힐즈버러성에서 체결돼 ‘힐즈버러 협정’이라고도 불린다)’을 맺었다.

역사적 합의 도출

신페인당의 급부상과 더불어 미국의 대화 권고도 영국-아일랜드 협정 체결의 기폭제가 됐다. 1984년 10월12일 보수당 전당대회가 열리고 있던 동부 항구도시 브라이튼의 한 호텔에서 IRA가 설치한 폭탄이 터졌다. 이 테러로 영국 보수당 장관 4명이 숨졌고, 대처 총리는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은 폭탄이 터지기 직전에 낌새를 알아차리고 관련 정보를 영국 정부에 전해줬다고 한다. 이 사건 직후 대처 총리와 특별한 관계에 있던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은 ‘철의 여인’에게 아일랜드와의 대화를 촉구했다. 미국 국민의 20%를 차지하는 아일랜드계 이민의 강력한 로비가 레이건을 움직인 것이다.

영국-아일랜드 협정은 북아일랜드의 어떤 정당과도 협의를 거치지 않은 두 정부 간의 협정이다. 아일랜드는 북아일랜드와의 국경을 잘 단속하고 자국으로 도주한 IRA 테러리스트를 영국에 인도하는 대신, 북아일랜드 문제에 대해 영국 정부로부터 발언권을 인정받았다.

이 협정에 대해 영국과의 연합을 적극 지지하며 어떤 타협도 이를 희석시키는 것으로 본 연합주의자(Unionists), 특히 민주연합당의 반대가 거셌다. 이들은 대규모 시위와 연좌농성을 벌여 협정 폐지를 요구했으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후 북아일랜드 문제는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했다. 특히 1990년대 이후에는 구교도에 대한 신교도 연합주의자들의 마구잡이식 테러가 극성을 부려 IRA의 테러보다 더 많은 사상자를 낳기에 이르렀다. 이 때문에 신교도의 테러가 IRA 테러에 대한 방어행위라는 주장이 명분을 잃었다. 이에 따라 신교도의 자위대인 얼스터방위연합(Ulster Defence Association)도 1992년 영국정부에 의해 IRA처럼 불법단체로 규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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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안병억 영국 케임브리지대 박사과정·유럽통합 전공 anpy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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