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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갈등 지도 (3)│팔레스타인

聖地의 ‘종교적 숙명’이 부른 55년 피의 투쟁

  • 글: 박준서 연세대 교수·신학 parkjs@yonsei.ac.kr

聖地의 ‘종교적 숙명’이 부른 55년 피의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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聖地의 ‘종교적 숙명’이 부른 55년 피의 투쟁
제1차 중동전에서 이스라엘의 승리는 ‘팔레스타인 난민’이란 풀기 어려운 문제를 불러왔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땅의 70%를 차지하면서, 그 땅에 살고 있던 아랍인들은 두 부류로 나뉘었다.

하나는 이스라엘의 통치 밑에서 살기를 거부하고 주변 아랍국가로 피난한 아랍인들이다. 이들을 팔레스타인 난민(Palestinian refugees)이라 부르며, 오늘날 약 380만명에 이른다. 이들은 55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요르단·레바논·시리아 등 여러 나라에 흩어져 망향의 한을 달래며 난민촌(refugee camps)에서 비참한 삶을 살고 있다.

다른 하나는 난민이 되기보다는 이스라엘 통치 밑에서 그대로 살기로 한 아랍인들이다. 이들을 ‘이스라엘 아랍인(Israeli Arabs)’이라 부른다. 이스라엘 정부는 이들에게 시민권을 부여했다. 이들은 오늘날 약 120만명에 이르며 이스라엘 인구의 20%를 차지한다. 현재 이스라엘 아랍인들의 정치활동이 활발해서 이들의 정당도 3개나 된다. 지난 1월28일 이스라엘 총선에서는 아랍계 국회의원이 8명이나 선출됐다.

1956년 이집트가 주동이 되어 시리아, 요르단 세 나라가 군사동맹을 체결했다. 이스라엘은 아랍측의 군사공격이 임박했음을 직감하고 선제공격을 가했다. 제2차 중동전쟁이 일어난 것이다. 유엔은 곧 중재에 나섰고, 치열했던 전투는 9일 만에 종식됐다. 그런데 이 전쟁에서도 이스라엘은 일방적 승리를 거뒀다.

두 번에 걸친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완승을 거두자 팔레스타인 과격파들 사이에서는 새로운 움직임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정규 전쟁으로는 승산이 없다고 판단한 이들은 대(對)이스라엘 투쟁의 방법으로 ‘테러’를 감행하는 무력단체를 구성한 것이다.



1964년 아라파트(Arafat)가 이끄는 PLO(팔레스타인 해방기구)가 출범했다. PLO는 테러라는 폭력수단을 사용해서 이스라엘에 대항하고, 궁극적으로는 이스라엘을 괴멸시키겠다는 목표를 가진 테러조직이었다. PLO가 저지른 테러사건 중 가장 세계를 경악케 했던 것은 1972년 뮌헨올림픽 때 이스라엘 선수들에게 가한 테러였다. 복면을 한 PLO 테러범들이 올림픽 선수촌에 잠입해 11명의 이스라엘 선수들을 살해한 사건이다. 미국은 1980년 후반까지 PLO를 테러집단으로 규정, 그들과 일절 대화나 협상을 거부했다.

한편, 1967년 6월 또다시 팔레스타인의 판도를 뒤바꿔놓은 큰 전쟁이 일어났다. ‘6일 전쟁’으로 알려진 제3차 중동전쟁이다. 단 6일간의 전투 끝에 이스라엘은 모든 전선에서 승리해 다시 한 번 세계를 놀라게 했다. 이스라엘은 남부전선에서 이집트와 싸워 승리하고, 가자지구와 시나이 반도를 점령했다. 동부전선에서는 요르단과 싸워 승리하고 요단강 서안지역과 동 예루살렘(East Jerusalem)을 점령하는 데 성공했다. 북부전선에서도 시리아와 싸워 승리하고 골란고원(Golan Heights)을 차지했다.

제4차 중동전쟁 후 평화협정

이 전쟁에서 이스라엘은 특별히 동 예루살렘의 탈환에 최정예부대를 투입했다. 동 예루살렘은 구약시대부터 내려오는 역사적인 예루살렘 지역을 지칭하며, 유대인들의 성지 중 성지인 ‘통곡의 벽’이 위치해 있는 곳이다. 치열한 전투 끝에 이스라엘 병사들이 통곡의 벽에 이르렀을 때, 그들의 얼굴은 땀과 감격의 눈물로 범벅이 돼 있었다. ‘6일 전쟁’에서 이스라엘은 완승의 꿈을 이뤘으나, 아랍세계와의 사이에 팬 갈등의 골은 끝없이 깊어만 가고 있었다.

1973년 10월6일. 이 날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수천년 동안 지켜오는 속죄일(히브리어, 욤 키풀)이었다. 여느 해와 같이 전국은 완전히 철시되고 라디오와 TV 방송도 중단된 상태에서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은 금식하며 속죄일을 지키고 있었다. 바로 그 날, 지축을 진동시키며 불을 뿜는 대포 소리가 이스라엘 전역을 뒤흔들었다. 시리아와 연합한 이집트의 10만 군대가 이스라엘을 기습공격한 것이다. 이렇게 해서 네 번째 중동전쟁이 일어났다. 속죄일에 일어난 전쟁이라 해서 보통 ‘욤 키풀 전쟁’이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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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박준서 연세대 교수·신학 parkjs@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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