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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기타 군단의 ‘담임선생님’ 이백천의 음악인생 中

스타들의 스무살…혹은 살아남고 혹은 사라지고

  • 글: 이백천

스타들의 스무살…혹은 살아남고 혹은 사라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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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들의 스무살…혹은 살아남고 혹은 사라지고

‘쇼쇼쇼’ 녹화 현장. 맨 오른쪽에서 조명 설치를 지시하고 있는 이가 나다

다음주 같은 시간에 같은 계단 그 자리에서 나는 지난주의 불상사를 그대로 보고하면서 오늘은 여러분의 심부름을 맡은 하인이 되겠다고 말했다. 듣고 싶은 곡이 있으면 손을 들고 신청하라고 했다. 여기저기서 손이 올라왔다. 지난주와는 확연히 달랐다. 그것은 축제의 시작이었다. 마이크의 긴 케이블을 끌고 친구들에게 다가갔다. 대상을 정하고 다가가 신청곡을 물어본다. 신상을 묻는다. 신청곡에 특별한 사연이라도 있는지, 옆자리에 앉은 이는 연인인가 친구인가, 만난 지 얼마나 되었나, 뽀뽀하는 단계는 지났는가.

DJ 박스에서 신청곡 찾는 데 걸리는 시간은 20초 내외, 테이프에 수록된 곡을 찾자면 적어도 l분은 걸린다. DJ의 손이 올라오면 준비가 끝났다는 신호다. 마이크를 들이댈 때 옆에서 다른 친구가 끼여 들 수도 있다. “얘, 지난주에는 다른 여학생이랑 왔어요”. 인터뷰하는 동안만은 실내가 조용했다. 모두 마이크 주변에 시선을 모았다. 마이크가 찾아가는 곳이 객석 안의 작은 무대였다. 곡이 끝나면 무대가 옮겨졌다. 무대마다 흥이 났다. 어느 틈엔가 쎄시봉은 젊은이의 광장이 되고 있었다. 그들은 같은 또래 친구들의 ‘입김’을 서로 여과 없이 받아주고 있었다.

당시의 쎄시봉 식구들을 소개해야겠다. 주인 이선생과 아름다운 사모님, 아드님 이선권 외에 DJ실 스태프는 조용호(서울대 미대 출신, ‘하얀 손수건’의 우리말 가사를 썼고 TBC TV ‘쇼쇼쇼’의 PD와 국장, m-net의 전무 역임) 구자홍(서울 문리대 철학과, 후에 ‘실험극장’ 멤버, 현재 의정부 예술의전당 관장)이었고, 신청곡에 적힌 사연을 읽어주는 성우로 피세영(영문학자이자 수필가인 피천득 교수의 자제, ‘실험극장’ 멤버, 라디오 DJ, 현재 캐나다 거주)과 이장순(TBC 라디오 성우, 맑은 눈, 맑은 소리, 낭독이 일품이었다. 후에 영화감독과 결혼했고 3년 전 미국에서 작고)씨가 있었다. 쎄시봉에 출입하는 전 스태프는 보수 없이 일했다. 분위기와 음악이 좋아 모인 것뿐이었다.

‘데이트 위드 쁘띠 리’를 서너 달 진행하다 ‘대학생의 밤’을 시작했다. 피아노와 스포트 라이트를 준비하고 대학생들의 노래마당을 펼쳤다. 피아노는 입구 옆 공간에 놓았다. 피아노 반주는 김강섭(전 KBS 악단장), 김용선(TBC 악단 편곡자 겸 피아니스트)씨가 교대로 맡아주었다. 조명은 단골 손님이 담당했다. 음악감상실에서 라이브 무대를 갖는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마이크가 하나밖에 없어 누가 기타로 노래를 하게되면 옆에서 마이크를 잡고 있어야 했다.

하나둘씩 기타를 들고 모여들기 시작했다. 조영남, 윤형주, 송창식, 이익균, 이장희, 그리고 맏형격인 박상규, 장우(장영기)….



조영남은 직접 피아노를 치며 노래했다. ‘언더 더 보드워크’ ‘돈 워리’ ‘시 오브 하트브레이크’ ‘고향생각’. 더벅머리에 검은 교복. 얼마나 오래 입고 있었던지, 그것이 대학 교복인지 고등학교 교복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노래 솜씨가 예사롭지 않았다. 오장육부에서 발성이 되는 듯했다. 그가 처음 쎄시봉에서 노래를 부른 그 날의 마지막 곡이었다.

“해애는 저어서 어어두우운데 차아자아오오는 사아람 없어..”

해질 무렵이었다. 출출할 때 듣는 소리는 마음에 더 깊이 스며드는 것일까. 조영남의 소리는 레코드나 테이프에서 나오는 소리와는 달랐다. 살아서 움직이는 소리였다. 그가 어렸을 때에 본 고향의 황혼 빛이 배어 있는 것 같은 소리였다.

송창식은 기타를 치며 이탈리아 가곡 ‘까라 마마’ ‘셉템버 송’, 자니 마티스의 ‘투엘브스 오브 네버’를 불렀다. 성당 안에 앉은 기분이었다. 기타의 통나무 소리와 클래식 발성이 참 잘 어울렸다.

윤형주는 바비 다린의 ‘로스트 러브’를 잘 불렀다. 감미롭고 맑은 소리였다. 흑인영가 ‘스칼레트 리본’도 잘 불렀다. 기독교 집안의 자제였고 찬송가가 잘 어울리는 소리를 가진 그가 팝송을 부르면 노래들이 오리지널보다 더 신선하게 들렸다. 무대를 응시하며 그의 노래를 경청하던 학생들의 침묵이 지금도 생각난다.

이장희는 막내였다. 여드름이 많아 ‘해삼’이라는 별칭이 붙기도 했다. 기타를 치면서 장만영의 시 구절을 읊기도 했는데 그것이 일품이었다. 흙 속에서 올라온 것 같은 부드러운 소리, 그러나 쩌렁쩌렁 울리는 맛도 있었다. 그의 큰 눈동자는 늘 눈물이 글썽했다. 하루는 그가 ‘서니’라는 곡을 진짜 울면서 불렀다. 마이크를 내밀었다. 사연인 즉, 사귀는 아가씨의 이름이 선희였다. 동네 목욕탕집 딸이었는데 왕자와 공주처럼 서로 사랑하는 사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녀가 요즈음 잘 만나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마음을 달래려고 인천 앞바다 모래 사장에서 한줄 편지를 써 그녀에게 보냈다고 한다.

“아이 저스트 크라이드 바이 더 씨”

그랬더니 그녀가 잘 만나 주더라는 것이다. 우리는 ‘서니’를 앵콜하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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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백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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