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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란의 우리 땅, 우리 맛 (1)

입춘(立春)에 오리알 얻고, 청명(淸明)에 화전 부치고

  • 글: 장영란 odong174@hanmail.net

입춘(立春)에 오리알 얻고, 청명(淸明)에 화전 부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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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우엔 곡식에 좋은 비가 내린다. 낙엽송이 파래지면 취잎을 한 움큼 얻을 수 있고 비 온 뒤에는 고사리도 꺾을 수 있다. 청명에 들판 봄꽃이 피기 시작한다면 곡우에는 산꽃들이 피기 시작한다. 으름꽃, 둥굴레꽃이 피고 참나무꽃이 피고 솔꽃이 맺힌다. 이때부터는 논밭 농사를 시작할 수 있어 씨 뿌리는 일이 시작된다. 밭에는 풀이 먼저 자라 있고, 망초 쑥이 낫질하게 자라니 풀과 겨루기도 시작된다.

처음으로 논농사를 하던 몇 해 전이다. 농사일이 뭔지 모르고 그저 코앞에 벌어진 일에만 매달리던 때. 그러니까 못자리도 당연히 처음 해본 날이다. 되도록 자연에 맞춰 농사하려고 논바닥에 볍씨를 뿌려 못자리를 만들었다. 이앙기가 들어오면서 못자리를 모판에 하는 것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우리 못자리는 한동안 마을 어른들 입에 오르내렸다.

못자리를 마치고 남편이 물길을 다독이는 걸 보며 작은애와 돌아오는데 들판에 꽃이 어찌나 지천으로 널려 있던지. 논둑에서부터 눈에 띄는 대로 봄꽃을 하나하나 모으기 시작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꽃을 한아름 모았고 그걸로 효소를 담갔다. 이듬해 봄에 그걸 열어 먹었는데 그 향과 맛이란….

봄꽃이 활짝 피는 이때쯤이면 꽃구경 삼아 꽃을 따러 다닌다. 아이들과 웃고 놀며 꽃길을 다니면 마치 꿀벌이 된 듯한 기분이다. 냉이꽃, 봄맞이꽃처럼 솜털보다 작은 꽃들과 사과나 배꽃처럼 무더기로 핀 꽃. 논에 핀 자운영, 둑새풀(경상도는 되사이)꽃, 산에 핀 참나무꽃. 보랏빛, 하얀빛, 분홍빛 등 가지가지 색깔의 제비꽃. 진달래도 빼놓을 수 없지. 오가는 길에 핀 엉겅퀴와 할미꽃도 낀다. 몇 년을 살았어도 여전히 새로운 봄꽃. 거기에 웃음과 노래를 섞어 발효시켜 이듬해 봄에 먹는다. 꽃도 보고 꽃도 먹고.

때 맞추면 쉽고도 잘 되니



산 야초를 설탕에 우려내 발효시키면 효소가 된다. 산 야초 백 가지를 모아 담근 백초효소는 건강식품으로 알려져 있는데 솔잎차, 오미자차 따위가 이에 해당한다. 담그는 법은, 먼저 산 야초와 설탕을 같은 무게로 버무려 숨쉬는 항아리에 담아 아가리를 한지(또는 베)로 꼭 막는다. 어둡고 서늘한 곳에 두고 설탕에 절게 가끔 뒤집어주며 기다린다. 꽃잎 같은 얇은 재료는 10일쯤, 칡뿌리나 도라지 같은 재료는 한 달쯤 되면 절여진다. 고운 체에 즙액을 걸러 건더기는 버리고 물만 다시 항아리에 넣어 여섯 달 넘게 발효시킨다. 먹을 때는 물에 5∼8배쯤 타서 마시거나 음식에 양념으로 쓸 수 있다.

누군가 농사는 ‘타이밍의 예술’이라고 했다. 정말 그렇다. 비 오시기 한 발 앞서 김매고 씨 뿌리면 농작물이 저 알아서 쑥쑥 자란다. 반대로 제때를 놓치면 일도 몇 배 힘들고 농작물도 고생을 한다.

농사에서 단연 으뜸은 논농사. 사람이 밥을 먹어야 살 수 있지 않는가. 우리 네 식구 일년 먹을 쌀을 돈으로 바꿔 셈하면 얼마나 하겠나. 하지만 가을에 나락을 쌀광에 넉넉하게 넣고 나면 마음이 그렇게 든든할 수 없다. 산에 땔감 있고 샘물 솟아나니 쌀만 있으면 어떤 상황에서라도 살아갈 수 있다는 자신이 든다. 이 자신감은 돈과 견줄 수 없는 힘이다. 내 손으로 먹을거리를 얻을수록 자연에 가까이 다가가고, 삶이 단순해질수록 쌀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된다.

4월은 바로 이 쌀농사를 시작하는 달이다. 지난 가을 정성 들여 받은 씨를 논에 집어넣어 생명을 일깨운다. 영농기술이 발달해 손쉽고 편리한 농사기술이 나오지만 우리는 자연의 흐름에 가까이 가는 길을 찾고자 한다. 쌀을 많이, 또 편리하게 얻는 게 아니라 자연의 생명력을 담뿍 담은 쌀을 얻고자 하기 때문이다. 자연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일을 해나간다.

우리 논은 산 아래 있는 다락논이다. 좁고 길게 생겼다. 산에서 흐르는 물, 반딧불이가 사는 물을 댄다. 논바닥에 돌이 많아 물이 잘 빠지고 비가 오면 논둑이 터지기 쉽다. 이런 어려움은 있지만 이 논은 우리가 바라던 논이다. 물 맑고 햇살 좋고, 논이 크지 않아 우리 부부 손으로 일하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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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장영란 odong17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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