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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 추적

동성애 살인이냐 미군 보호용 희생양이냐

이태원 美 여대생 살인사건

  • 글: 이정훈 hoon@donga.com

동성애 살인이냐 미군 보호용 희생양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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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시카의 목 안에 있는 설골(舌骨)과 목젖 부근에 있는 윤상연골 등 작은 뼈들은 부서져 있었다. 혀 근육과 기도(氣道)와 식도 등 제시카의 목에 있는 장기(臟器)에서는 응혈(凝血) 현상이 발견되었다. 이러한 응혈은 목이 무언가에 강하게 눌렸을 때 나타나는 전형적인 현상들이다. 그리고 제시카의 아래 턱뼈는 두 군데나 금이 가 있었다.

제시카의 얼굴과 목 전체에 멍이 있었고 여러 군데 표피가 벗겨져 있는 것이 확인되었다. 두피(頭皮) 밑에도 출혈 흔적이 있었고 두개골 안쪽에 뇌를 싸고 있는 얇은 막에서도 출혈 흔적이 발견되었다. 이렇게 얼굴을 집중적으로 얻어맞다 보면 코와 입이 막혀 숨을 거두는 ‘비구폐색질식사(鼻口閉塞窒息死)’를 당할 수도 있다. 집중적으로 얻어맞는 것을 법의학에서는 ‘기계적’이라고 표현한다. 국과수는 제시카가 얼굴을 많이 맞아 기계적 비구폐색질식사로 사망했을 가능성을 두 번째로 거론했다.

살인자가 발이나 손, 혹은 둔기를 세게 휘두르면 이를 맞은 사람의 몸에는 큰 상처와 함께 때린 물체의 흔적이 찍히는데, 이를 때린 물체의 형태가 찍힌 손상이라고 하여 ‘정형손상(patterned injury)’이라고 한다. 국과수 법의학과 팀은 제시카의 오른쪽 광대뼈와 귀 사이에서 제시카를 강하게 때린 정형손상의 흔적을 찾아냈다. 그리고 제시카의 왼쪽 어깨와 가슴 사이에서도 정형손상과 유사한 멍을 찾았다. 이 정형손상은 현장 감식을 했던 경찰이 신발 자국이라고 보았던 것들이다.

사람이 맞아 죽는데도 잠만 잤다?

여성이 나신으로 살해되었다면 일단은 범인을 남성으로 추정해볼 수 있다. 이럴 경우에는 섹스 문제가 개입될 수도 있다. 더구나 이 남자가 변태성욕자라면 여성의 아랫배를 훼손하거나 심지어 시간(屍姦)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제시카의 하복부는 가격을 받은 흔적이 없었다.



하지만 국과수에서 검사한 바에 따르면 제시카의 몸과 화장실에 떨어져 있던 제시카의 팬티에서는 정액 양성 반응이 나왔다. 이는 제시카가 남자와 성교한 사실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 정액이 살인자의 것인지 아니면 사건이 있기 전 다른 남자와 성교한 흔적인지는 알 수가 없다.

목이 졸리거나 심하게 얻어맞을 경우 사람은 본능적으로 저항한다. 그러나 제시카의 시신에서는 반항한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손이나 다리는 결박을 당한 흔적이 없는데도 무방비로 맞은 것이다. 마약 같은 약물이나 독극물을 먹어 중독된 상태였다면 무방비로 얻어맞았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국과수의 검사 결과 제시카의 몸에서는 독물이나 약물 양성 반응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술에 취해 있었던 것만은 분명했다. 국과수는 제시카의 혈액 알콜 농도는 0.11%였던 것으로 측정하였다. 일반적으로 이 정도의 알콜 농도에서는, 얼굴이 붉어지고 기분이 좋아지며 침착성이 없어지고 평소보다 말이 많아진다고 한다. 그러나 정신을 잃을 정도로 인사불성이 되기는 어렵다. 따라서 기분 좋을 정도로 취해 있었던 제시카는 살인자가 휘두른 첫 번째 가격에 급소를 맞고 바로 가사(假死)상태에 빠졌기 때문에 이후 무방비로 얻어맞다 숨졌을 가능성이 높았다.

현장 감식을 한 서울경찰청 감식반은 제시카의 다리가 놓여 있던 현관 구석에서 핏자국과 함께 제시카의 것으로 보이는 부러진 이빨을 발견했다. 다른 혈흔은 제시카가 천장을 보고 누운 상태에서 얻어맞을 때 튀겨나갔거나 흘러간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제시카의 다리가 있던 현관에서 발견된 핏자국과 이빨은 제시카가 숨진 상태에서는 도저히 흘릴 수 없는 것이었다. 감식반은 이 혈흔과 부러진 이빨을 특이사항으로 기록했다.

이 사건을 접수한 용산경찰서는 통역을 구해 제시카 시신을 최초로 발견한 네덜란드인 여학생을 상대로 조사에 들어갔다. 이 여학생은 “3월17일 저녁 9시쯤 성 패트릭 데이를 즐기기 위해 103호를 나올 때 문을 잠근 것은 제시카였고 열쇠를 갖고 있었던 것도 제시카였다”며 이렇게 진술했다.

“N바에 갔을 때 테이블이 없어 기다리다 자리에 앉았고 맥주 피처를 세 개 시켜 마셨다. 카렌과 제시카는 바에 있던 다른 좌석의 남녀와 어울려 즐겁게 춤을 추었다. 그러다 나는 18일 새벽 1시45분쯤 피곤하여 다른 친구 두 명과 함께 바를 빠져나왔다. 바에서 나올 때 기분이 좋을 정도로 약간 취해 있었다.

그리고 공중전화로 네덜란드에 있는 남자친구에게 전화를 걸고 새벽 2시쯤 제시카에게 받아온 열쇠로 103호의 문을 열고 들어가 샤워도 하지 않고 바로 잠들었다. 그러나 제시카가 돌아오면 들어올 수 있도록 문은 잠그지 않았다. 나는 제시카가 들어오는 소리를 듣지 못했고, 방바닥에 뭔가가 부딪치는 듯한 쿵쿵 소리도 듣지 못했으며 신음소리 같은 것도 듣지 못했다.”

이에 대해 수사관이 “103호에서 제시카가 목뼈와 턱뼈가 부러지고 얼굴이 피투성이가 될 정도로 얻어맞았는데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따져 물었다. 여학생은 “자는 사이 누군가가 방문을 열었다 즉시 닫은 것만 기억난다. 그 외에는 아무 것도 모르고 잠을 잤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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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정훈 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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