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근 동네인 장계리 분들이란다. 초면의 이방인에게도 다정할 수 있는 법을 일찌감치 체득한 듯했다. 모진 바닷바람도 아랑곳없이 머리에 수건 질끈 동여매고 푹푹 빠져드는 뻘밭에 온몸을 담궈온 강인한 생명력 때문이리라.
물과 뭍을 고루 지닌 맛고을 강진에선 단연 한정식이 저녁식사로 제격. 멀리서 기차 타고 나주까지 온 뒤 관광버스로 갈아타고 먹을거리여행을 오는 외지인도 많다. 강진읍내 흥진식당은 4인 이상이 기본인 여느 집과 달리 2인 이상이면 사람 수대로 상을 차려줘 부담스럽지 않다. 그래도 20년째 한 자리를 지켜온 대표 김순자(55)씨의 후덕함 덕분인지 젓가락에 둘둘 만 낙지(강진 사람들은 ‘낙자’라고도 한다)구이, 대합탕, 숭어회 등 갖은 해물과 반찬이 30여 가지나 올라 양이 적은 사람이라면 질릴 법도 하다.
다음날 아침, 만덕산 기슭의 다산초당을 찾았다. 초당의 정자 천일각(天一閣)에선 강진에 유배된 다산 정약용 선생이 흑산도에 유배된 둘째형 정약전과 가족을 그리며 시름을 달래려 굽어봤을 강진만이 한눈에 들어온다.
유서 깊은 절집도 강진의 또 다른 매력. 동백림에 둘러싸인 천년고찰 백련사도 좋지만, 벽화 ‘백의관음도’가 있는 무위사(성전면 월하리) 또한 고즈넉해서 좋다. 강진은 ‘청자골’로 통하는 우리나라 청자문화의 중심지. 시간이 허락한다면 물과 불, 흙과 바람이 어우러진 고려청자도요지와 청자자료박물관(대구면 사당리)을 둘러봐도 괜찮다.
귀경길에 잠시 전날의 뻘밭에 들렀더니, 조개잡이 할머니들의 남편들이 경운기를 몰고 와 ‘평생동지’들이 무사히 물밖으로 나오길 기다리며 담배 한 개비씩 피워물고 수험생처럼 초조함을 달랜다. 끈끈한 정을 온몸에 두르고 살아온 그들의 모습에 석양빛이 오버랩된다. 때론 버거울지라도 삶이란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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