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겹눈으로 본 정치

“여보! 나 유인태랑 나가서 89타 쳤다!”

노무현 대통령은 골프 마니아

  • 글: 최영해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yhchoi65@donga.com

“여보! 나 유인태랑 나가서 89타 쳤다!”

3/4
‘노무현과 골프.’ 서민을 대변하는 이미지와 귀족스포츠의 대명사여서 그런지 왠지 안 어울린다는 느낌이다. 노대통령이 골프를 시작한 지는 올해로 7년째다.

노대통령은 1996년 총선(서울 종로 출마)에서 낙선한 뒤 골프를 배우기 시작했다. 1992년 총선, 1995년 부산시장 선거에 이어 지역구를 서울로 옮겨가면서까지 재기를 노렸으나 좌절한 데 따른 마음의 상처를 달래기 위해서였다.

노대통령은 이때 부인 권여사와 함께 골프 연습장을 찾아 함께 골프를 배웠고, 기회가 닿는 대로 골프장에 나가는 등 골프에 ‘푹 빠졌다’고 한다. 노대통령은 골프를 시작하면서 먼저 골프 관련 서적을 탐독하고 스윙을 할 때 근육의 변화까지 세밀하게 탐구하는 등 특유의 집중력을 보였다는 게 주변 인사들의 전언이다. 이론을 마스터하고 실전에 뛰어드는 식이었다.

그의 핵심 참모인 이광재(李光宰) 대통령국정홍보실장은 ‘대통령의 골프’를 증언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 중의 하나다. 대통령의 386 측근 중에 골프를 하는 사람은 이실장과 안희정(安熙正) 민주당 국가전략연구소 부소장 두 사람밖에 없다. 이실장은 “노대통령은 지금까지 필드에 20번 정도 나갔을 것”이라면서 “그런데도 90대 중반의 실력을 갖출 수 있게 된 건 무엇이든 시작하면 일단 이론을 마스터한 후에야 실전에 뛰어들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실장 표현대로라면 노대통령은 ‘골프 모범생’이었다. 골프 코치가 스윙 폼을 가르쳐주면서 연습을 100번 하라면 100까지 세면서 따라했다고 한다.

이런 태도는 노대통령의 평소 성격과도 무관치 않다. 노대통령은 컴퓨터를 처음 배웠을 때 컴퓨터를 집에 사들고 가서 중학생이던 아들 건호씨와 함께 다 뜯어 펼쳐봤다고 한다. 나중에 조립을 잘 못해 끙끙거렸지만 일단은 컴퓨터 내부까지 모두 들여다봐야 속이 풀리는 성격인 것.



노대통령이 공개적으로, 또한 본격적으로 골프를 배운 것은 2000년 8월 해양수산부 장관이 되고 나서부터였다. 처음으로 장관직을 맡아 일에 대한 의욕이 넘쳤지만 “장관이 아침 일찍 출근하면 모든 부하 직원들이 눈치를 보느라 괴로움을 당한다. 그러니 아침에 골프 연습장에 나가 운동을 하고 나서 제 시간에 맞춰 출근하는 게 좋겠다”는 참모들의 건의에 따른 것이었다. 이때 노대통령은 매일 아침 골프연습장에 나가 프로 골퍼로부터 제대로 레슨을 받았고, 공개적으로 골프를 치고 다녀 정치권에서는 ‘노무현도 골프를 친다더라’는 말이 나돌았다.

여기에는 물론 원칙과 소신은 있지만 융통성이 없는 빡빡한 정치인으로 비쳐진 자신의 고착된 이미지를 바꿔보려는 계산도 깔려 있었다. 당시 노대통령의 젊은 참모들조차 노장관의 변화된 모습에 상당히 놀랐다고 한다.

한편 노대통령이 해수부 장관 때 골프에 집착했던 것은 대선 출마를 앞둔 당시 노장관의 처지와도 무관하지 않았다는 게 참모들의 해석이다. 노대통령의 부산지역 참모출신인 정동수 청와대정책실 행정관은 “선거 때문에 주말마다 부산을 찾았던 노대통령은 부산과 경남 기업인 등 지역 유지들을 만날 필요가 절실했지만 토요일이나 일요일에 부산에 내려가면 모두 골프장에 가 있어 사람들을 만나기가 무척 어려웠다”고 말했다. 이처럼 지극히 현실적인 이유에서라도 노대통령은 골프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경선 승리 계기 만든 골프장 회동

유인태 수석은 “2000년 4·13 총선 때 노대통령이 국회의원에 떨어지고 나서 골프를 처음 쳤는데 ‘언어카운터블(unaccountable)’이었다. 한번은 필드에 나가서 멀리건(타수에 넣지 않는 미스샷)을 두 번이나 줬는데도 116타를 쳤다”고 회고했다. 이후 노대통령은 칼을 갈고 닦아 유수석에게 재도전했다.

김원기 고문의 전언. “노대통령이 그동안 많이 배웠는지 유수석에게 ‘스크라치(핸디를 적용하지 않고 실제 점수로만 경기를 하는 것)’ 내기골프를 하자고 제안했던 적이 있다. 그래서 두 사람이 한 타당 1만원 내기를 했는데, 그때 유수석이 ‘돈을 좀 땄다’고 하더라. 그때까지도 노대통령의 실력으로는 유 수석을 따라잡기에는 역부족이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노대통령은 민주당에 있던 2001년에는 90대 후반의 타수를 두 번이나 쳐 주변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연습장에 자주 가는 것도 아니었는데 ‘놀라운 발전’을 한 것이다. 노대통령이 대통령선거 출마준비를 본격적으로 하기 시작한 2001년 11월.

민주당 경선을 앞둔 당시 ‘나 홀로’였던 노대통령은 이해찬 의원을 찾아가 “앞으로 있을 경선에서 꼭 좀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현역의원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을 때였다. 이의원은 당시 노무현을 돕겠다는 생각에서라기보다는 가볍게 “그러면 골프나 한 번 치자”고 제안했고 노대통령은 과거 통추 멤버인 원혜영 부천시장, 유수석과 같이 골프장에 나갔다.

이의원 초청으로 안산 제일CC에서 네 사람이 골프를 쳤는데 가장 실력이 뒤처졌던 노대통령이 89타를 쳐 제일 성적이 좋았다. 노대통령의 골프 실력을 우습게 생각했던 유수석은 그 날 깜짝 놀랐다고 한다. 당시 이의원은 노대통령을 도울 생각이 있었고, 이의원을 자기편으로 만든 골프장 회동에서 노대통령은 민주당 경선 승리의 계기를 만들게 된다. 노대통령은 기분이 좋아 집에 가자마자 권여사에게 89타 쳤다고 자랑을 했다. 권여사가 “89타 진짜야? 첫 홀에 다 보기 주는 것 아니었어?” 라고 반신반의하자 노대통령은 “유인태하고 쳤다”는 말로 그 날 스코어가 정확하다는 것을 대신했다고 한다.

이날 골프를 끝으로 노대통령은 대통령이 될 때까지 골프채를 잡지 못했다. 민주당 경선과 대통령후보 결정, 단일화 협상, 단일후보 결정, 대통령선거로 이어지는 빡빡한 일정 때문에 골프장에 갈 엄두를 못 냈던 것이다.

3/4
글: 최영해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yhchoi65@donga.com
목록 닫기

“여보! 나 유인태랑 나가서 89타 쳤다!”

댓글 창 닫기

2020/03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