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특별기획

‘도전하는 중년’ 5人의 뜨거운 삶

  • 글: 박윤희 자유기고가 gogh1028@hanmail.net

‘도전하는 중년’ 5人의 뜨거운 삶

3/8
‘도전하는 중년’  5人의 뜨거운 삶

윤박사는 스틸 사진 촬영을 하는 아내 조숙희씨와 함께 매주말 철새 도래지를 찾는다

대전 동구에 위치한 ‘윤대호 가정의학과’를 찾았을 때 의학박사 윤대호(54) 원장은 환자 치료에 여념이 없었다. 진료를 기다리는 대기환자만 해도 어림잡아 20명. 그런데 환자대기실 풍경이 다른 병원과는 사뭇 달랐다.

벽면에는 ‘형제’ ‘엄마 엄마 엄마’ 등의 제목을 단 대형 새 사진이 곳곳에 걸려 있고 TV 모니터에선 독수리의 고공 활공이 펼쳐진다. 진료를 기다리는 환자들도 신문이나 잡지를 뒤적이는 대신 TV 모니터를 채우는 까만 독수리떼를 신기한 듯 쳐다본다.

“매년 11월이면 저 독수리가 티베트에서 6시간 동안 한시도 쉬지 않고 날아 한국으로 옵니다. 800마리 정도가 오는데 키는 1m, 날개만 3m 정도예요. 독수리는 죽은 동물만 처치하는 ‘환경청소부’라 할 수 있는데 8㎞ 전방에 있는 냄새도 감지할 만큼 후각이 발달해 있죠.”

진료실에서 나온 윤원장이 즉석에서 ‘독수리 강의’를 들려준다. 그의 목소리는 열정으로 가득 차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전문가가 촬영한 자연다큐멘터리로 착각할 만큼 안정된 촬영감각을 보이는 동영상은 윤원장의 작품이고, 벽면에 부착된 야생조류 사진은 병원에서 함께 일하는 부인 조숙희(45·임상병리사)씨의 솜씨인 것이다.

윤원장은 매주 토요일 오후 3시만 되면 의사 가운을 벗어던지고 ‘야인(野人)’으로 돌변한다. 방송용 ENG 카메라를 둘러메고 이들 부부가 찾는 곳은 전국의 철새도래지. 볼보 4구륜 크로스컨트리가 그의 오프로드를 책임진다.



“20년 동안 주말이면 어김없이 새를 찍으러 돌아다녔어요. 여름에 폭우가 쏟아져 새들을 볼 수 없으면 그냥 우산을 쓰고 철새도래지를 걷죠. 그렇게라도 해야 스트레스가 풀리거든요.”

카메라 뷰파인더를 통해 새의 날갯짓을 쫓는 것만으로도 ‘희열’을 느낀다는 윤원장. 이런 그를 주변 사람들은 ‘새박사’라고 부른다.

‘노랑머리 할미새’를 발견하다

현재 국내에서 관찰 가능한 새의 종류는 70∼80가지의 텃새를 포함해 340여 종. 그는 지금껏 흑고니, 왜가리, 백로 등 300종이 넘는 야생 조류를 동영상 카메라에 담았다. 병원에는 영상편집실이 따로 마련돼 있는데, 1000여 개의 촬영 테이프가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어 보는 이를 놀라게 한다. 그의 영상편집실은 ‘야생조류 비디오도서관’이라 이름 붙여도 손색이 없는 수준이다. 국내는 물론 외국 새 전문가들도 그에게 새에 관한 자문과 영상자료를 요청해올 정도다.

“지난 1999년 제가 처음 발견해 ‘노랑머리 할미새’라고 이름을 붙여준 새도 있어요. 또 다리가 길고 제비처럼 생긴 ‘장다리 물떼새’도 제가 국내에서 처음 발견했지요.”

이렇게 그가 촬영한 새는 KBS 9시 뉴스에 방영되기도 하고 ‘철새들의 합창’ ‘잃어버린 둥지를 찾아서’ 등의 자연다큐멘터리로 전파를 타기도 했다. 그만큼 새 촬영에 기울이는 그의 노력과 정성은 대단하다.

“화려한 옷을 입으면 새 눈에 금방 띄니까 여름에는 초록색, 겨울에는 낙엽색 옷을 주로 입어요. 새에 가까이 다가가려 비누나 향수도 전혀 쓰지 않죠. 새와 소통하기 위해 최대한 키를 낮춰 작아 보이게 하는데, 뷰파인더를 통해 하루 종일 새만 관찰해도 좋아요.”

‘효도관광’ 명목으로 양가 부모를 철새도래지에 모시고 간 일도 있지만, 지금껏 동행한 누구도 두 번은 이들을 따라 나서지 않는다고 한다. 그만큼 야생조류 탐사과정은 고생스럽다.

“저는 동영상 촬영을, 아내는 스틸사진 촬영을 주로 하는데, 각자 짊어지는 장비 무게만 해도 약 40∼50㎏이 돼요. 워낙 짐이 많다 보니 도시락을 들고 다닐 여력이 없죠. 새를 쫓아 산길, 강줄기를 따라 걷다 보면 하루 종일 밥 굶는 일은 보통이에요.”

야생조류에 익숙해져서일까 새를 해석하는 그의 시각도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있다.

“보통 사람들은 ‘꿩 먹고 알 먹고’를 ‘일석이조’라고 해석하는데 저는 오랫동안 꿩을 관찰하면서 다른 해석을 하게 됐어요. 한번은 산불이 났는데 꿩이 둥우리 속의 알을 지키기 위해 강물에 자기 몸을 적셔 알을 감싸더라고요. 몸이 마르면 다시 같은 행동을 반복하고요. 그러다가 산불이 번지면서 어미 꿩도 알도 다 타버렸죠. 이를 발견한 사람이 꿩도 먹고 알도 먹으면 일석이조가 되는 것인지 어쩐지는 모르겠지만, 꿩은 그만큼 모성애가 강한 새입니다. 사람들이 자연에서 배워야 할 것이 참 많아요.”

그런가 하면 금실 좋은 부부 사이를 ‘원앙’에 비유하는 것도 잘못됐다고 지적한다.

“관찰해보니까 원앙만큼 바람둥이도 없어요. 원앙 수컷은 짝짓기를 끝내고 수 초 안에 다른 암컷을 찾아 또 짝짓기를 해요. 반면에 기러기는 한 번 짝짓기한 암컷하고만 평생을 함께 살아요. 그러다 상대 기러기가 먼저 죽으면 외기러기 신세로 삽니다. 그래서 ‘짝 잃은 외기러기 신세’란 말이 나온 것 같아요.”

주말마다 새 촬영에 나서다 보니 마치 ‘걸어다니는 야생조류사전’처럼 새에 관한 정보가 술술 쏟아져나오는 윤원장. 몇 끼니 밥을 굶어도 짝짓기, 새끼 키우기 등 ‘새들의 사생활’을 엿보는 과정에서 긍정적인 에너지가 많이 생기고, 무엇보다 그가 만나는 환자들에게 ‘자연’을 보여줄 수 있어 새 촬영만큼 좋은 취미도 없다고 한다. 부부 사이에 정을 키우는 데도 새 촬영이 일등공신이란다.

3/8
글: 박윤희 자유기고가 gogh1028@hanmail.net
목록 닫기

‘도전하는 중년’ 5人의 뜨거운 삶

댓글 창 닫기

2022/08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