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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의 삶

“음악을 눈으로 듣다보니 곧 식상해지지요”

30년 DJ 외길인생 걸어온 김기덕

  • 글: 이계홍 언론인·용인대 겸임교수 khlee1947@hanmail.net

“음악을 눈으로 듣다보니 곧 식상해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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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들은 언제나 시대를 앞서가잖아요. 자유롭고 진취적이죠. 저 역시 젊었고 그만큼 기존 방송과 다르게 진행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틀에 박힌 진행은 하지 않았고요.”

-잊을 수 없는 사연들이 많았을 것 같은데요.

“우선 사연을 보내는 수단이 무엇인지에 따라 시대를 가를 수 있어요. 1970년대엔 4각 봉투에 사연을 보냈습니다. 80년대 들어서는 엽서의 전성시대가 왔죠. 시대가 암울할수록 엽서는 화려해지고 현란해졌어요. 그 속에 꿈과 낭만, 외로움, 사랑이 담겨 있었죠. 지금도 기억에 선명합니다만, 엽서를 이어서 7~8m로 길게 만들어 예쁜 그림을 그리고 사연을 써넣은 것이 있었어요. 그런 엽서를 만들려면 한두 달은 족히 걸렸을 거예요. 그런 작품들을 모아 예쁜 엽서전을 열기도 했죠. 그런데 80년대 말부터 사실적인 현장의 얘기들이 많이 들어왔습니다. 노동현장의 아픔, 부박한 현실을 적은 글들이었어요. 그러다가 팩스 시대로 접어들었죠. 팩스는 간단 명료한 언어가 주를 이룹니다. 간명한 문장 하나에 촌철살인의 담론이 담기는가 하면, 배를 쥐고 웃을 콩트도 많았죠. 90년대 중반부터는 인터넷 사연들이 대다수였어요. 팩스보다는 훨씬 감수성이 풍부하고, 개성적인 것이 특징입니다. 시대를 보는 이념적 스펙트럼도 넓어졌고요. 하지만 시대를 초월해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있어요. 어릴 때의 추억을 반추하는 사연이 많다는 거죠. 못살았던 얘기, 친구 이야기, 여고시절 사연 등이 그것이에요.”

-그 중 재미있는 사연이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최근에 40대 주부가 보낸 사연입니다. 반찬이라고는 김치와 간장이 전부이던 어린 시절, 아버지와 밥상을 같이했대요. 자신들의 밥은 간장에 비벼져 언제나 새까만데 아버지의 밥은 비빌수록 노래졌다는 겁니다. 엄마가 아버지 밥에만 몰래 계란을 넣어주셨다는 거죠. 그때는 얼마나 야속했는지 모른다는 사연이었어요.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계란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며 계란 프라이를 할 때마다 어렵던 그 시절이 더 그리워진다는 거예요.”



아내와의 말다툼이 그대로 방송돼

-생방송으로 진행하다 보면 종종 실수도 했을 것 같은데요.

그는 한마디로 ‘실수 퍼레이드였다’고 고백했다.

“그런데 실수할 때 오히려 청취자들이 좋아하기도 해요. 왜 그럴까, 나름대로 분석해보니 교과서적인 진행만 계속되면 청취자들이 답답함을 느끼는 거죠. 그래서 오히려 실수를 신선하게 받아들이는 겁니다.”

-기억에 남는 실수가 있나요?

“식당 배달소년이 ‘떡국 왔어요’라고 한 말이 그대로 방송에 나간 일이 있지요. 말없이 방송실에 떡국을 넣어주면 되는데 이 소년은 그렇게 소리 지르고는 책상에 떡국을 펼쳐놓은 겁니다. 부랴부랴 스태프가 들어와서 소년을 데리고 나갔죠. 또 한번은 엔지니어와 사인이 안 맞아 제가 투덜거린 내용이 그대로 나간 적도 있습니다. 녹음이 제대로 되지 않아 무의식중에 ‘빌어먹을 놈의 게 왜 이래’ 하고 투덜거렸나 봐요. 그게 그대로 방송이 돼 한동안 웃음거리가 됐죠.”

김씨는 아나운서인 아내 이명순(51)씨와 사내 연애를 하던 때의 일화도 들려줬다.

“초임 사원 시절에는 허덕이게 마련이잖아요. 쓸 것은 많은데 월급은 빈약하고. 그래서 당시 입사 동기인 아내에게 종종 돈을 빌려 썼어요. 그 돈은 주로 아내와의 데이트 비용으로 썼고요. 아내 돈이긴 하지만 데이트 비용으로 쓰다 보니 조금 억울하더라고요(웃음). 그래서 돈을 갚는 것을 미뤘지요. 몇 달이 지나니 아내가 갚으라고 재촉을 하는 겁니다. 야속하기도 하고 얄밉기도 해서 미뤘는데, 어느 날 방송을 하는 중에 아내가 스튜디오로 들어왔어요. 노래가 나가는 시간이어서 괜찮을 줄 알았는데, 방송에 ‘돈을 내놔라’ ‘아직 못 내놓겠다’ 하는 말다툼이 그대로 나가버린 겁니다. 그래서 저는 한때 빚쟁이한테 쫓겨다니는 사람으로 오해받기도 했지요.”

-기계적인 실수도 있었겠어요.

“물론이지요. 방송중에 살짝 조는 경우가 있어요. 어느 날 음악을 틀어놓고 잠이 들었나 봐요. 음악이 끝나고도 레코드판이 계속 헛바퀴를 돌고 있으니 당연히 난리가 났죠. 방송에서 2~3초는 정말 긴 시간입니다. 그런데 계속 쉭쉭 판 튀는 소리가 나갔으니 목이 날아가도 모자랄 판이었죠. 그 뒤로 컨디션이 안 좋거나 졸음이 올 때는 긴 음악을 틀어놓았어요(웃음).”

-그런 실수들은 제어가 안 됩니까.

“옛날에는 DJ 혼자 마이크를 키우고 줄이고 선곡하고 소개했어요. 지금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지만. 하지만 저는 원 없이 제 이야기를 전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방송에는 제 인생과 철학이 녹아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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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계홍 언론인·용인대 겸임교수 khlee194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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