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歸農人 장영란의 우리 땅, 우리 맛 ③

밀 베고 팥 심고 마늘 거두고 자두 따먹고

  • 글: 장영란 odong174@hanmail.net

밀 베고 팥 심고 마늘 거두고 자두 따먹고

4/4
시골 살면 닭 몇 마리 키우리라. 달걀 받아 아이들 먹이고 가끔 닭도 잡아먹자. 장에서 병아리를 사다 기르기 시작했다. 병아리는 쑥쑥 잘 컸다. 알을 낳기 시작했는데 먹이만 챙겨주면 날마다 알을 낳았다.

한데 알을 그때그때 꺼내지 않으면 깨 먹곤 한다. 그리고 일년이 지나도 품을 줄 모른다. 사람 좋으라고 잘 크고 살지게 개량된 닭들. 어느새 새끼를 까는 본성을 잃어버린 모양이다. 갑자기 닭이 꼴도 보기 싫어졌다. 나도 아이를 스스로 낳지 못해 수술해 낳았는데, 우리 아이들에게 이런 닭을 먹이면 어떻게 될까! 닭을 키우려면 어미가 품어서 깨어나 자란 닭을 키워야지. 마침 저 멀리 영주에서 한 분이 찾아오면서 암수 한 쌍을 데려다 줬다. 먹이를 주면, 수탉은 뒤에 한 발 물러서 망을 봐주고, 암탉은 열심히 먹는다. 가끔 수탉이 달려와 뭔가를 집어든다. 자기가 먹으려나. 아니다. 그걸 암탉 앞에 떨어뜨려 준다.

암탉은 이렇게 열심히 먹고 알을 낳는다. 몸집은 작은데도 알은 실했고. 수탉은 닭들을 지켜주는 일에 열심이다. 누가 다가가면 입을 크게 벌려 소리친다. 그래도 안 되면 날개를 퍼덕이며 위협한다. 마당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암탉들을 하나하나 열심히 챙긴다. 암탉이 알을 낳으면 암수 둘이 함께 꼬꼬 꼬꼬 이중창을 부른다.

암탉은 알을 한동안 낳고 그 다음 품기 시작한다. 보통 스무하루를 품는다. 그 동안은 하루 한 번 나와 물 먹고 똥 누는 것 빼고는 알자리에서 꼼짝 않고 알을 품는다. 그 정성이란 말할 것도 없다. 꺼칠해진다. 드디어 어미 품에서 병아리가 삐약대기 시작하고. 2∼3일 뒤 병아리가 돌아다니게 되면, 암탉은 한 달 넘게 병아리들을 데리고 돌아다닌다. 열심히 먹이를 구하는 법, 살아가는 법을 가르친다.

보통 ‘토종닭’이라는 닭을 기르면서부터 달걀이 아주 귀한 음식이 됐다. 닭은 달걀을 낳는데 사람 먹으라고 낳아주는 게 아니다. 자기가 품어서 새끼를 까려고 낳는다. 그러니 열댓 알쯤 낳으면 그만 낳고 품는다. 그러면 반쯤은 품게 해줘야지. 알을 품는 동안, 그리고 병아리를 기르는 동안에는 알을 낳지 않는다.



암탉은 일년에 서너 차례 알을 낳는다. 그때마다 열댓 알쯤. 그렇다면 사람이 암탉을 일 년 길러서 먹을 수 있는 달걀 수는? 달걀 하나가 그대로 닭 목숨 한 마리다. 그러니 귀하지 않을 수 없다. 닭을 잡으면 해 먹을 수 있는 건 백숙이다. 몸집이 작고 살이 별로 없어 고기 요리하기가 마땅치 않다. 푹 삶아 국물을 먹는 게지. 그래도 좋다.

‘잘 자라 좋은 씨가 되어라’

이런 우리 닭들에 영향을 받아서일까? 작년 논에 넣었던 오리 몇 마리 올 봄까지 기르니, 오리도 알을 품는다. 길러 보면 오리는 닭과 참 다르다. 사람들은 오리는 알을 안 품는다 한다. 오리는 28일, 그러니까 닭보다 일주일 더 품어야 알을 깐다. 모성이 강해야 새끼를 깔 수 있다는 이야기다.

게다가 부화장에서 나온 오리. 몇 대를 그렇게 이어왔는지 모르지만…. 그런 오리가 자기 속에 있는 모성을 되찾아 알을 품는 모습이 어찌나 기특한지. 한 배는 벌써 까서 4월 말부터 어미와 새끼 일곱 마리가 빈 논에서 ‘일’을 하고 있다. 모내기 전 김매기. 오리 덕에 듣도 보도 못한 새로운 농사를 시작하게 됐다. 다른 암컷 하나가 못자리 하는 날 품기 시작했다.

사람이, 더구나 자라나는 아이들이, 먹는 건 그 몸이 된다. 기왕 농사지을 거라면 생명이 살아 있는 농사를 하리라. 이런 마음으로 씨앗을 하나하나 구했다. 자기가 씨를 맺어 다시 목숨을 이어가는 씨를. 모두 앞에 ‘토종’이란 두 글자가 붙어 있는 그런 씨를.

고추는 두툼해서 말리기 쉽지 않고, 고춧대 하나에 달리는 고추 열매가 몇 개 안 된다. 오이는 아주 잘아 첫해는 굵어지길 기다리다 늙혀버렸다. 맛은 구수하달까, 지금까지 느끼지 못했던 맛이 있다. 봄에 심으면 서리 올 때까지 열매를 맺는다.



볍씨는 사람이 가꾸어온 세월만큼이나 사람 손에 길들여졌다. 더구나 일제를 거치고, 새마을운동을 하면서 더욱. 대대로 내려오던 볍씨를 구하기 어려울 정도다. 우리는 한 어르신이 만주에 가서 어렵사리 구해온 ‘다마금’이라는 옛 볍씨를 구해 그걸 심는다. 배추씨도 구했다. 포기가 제대로 차지 않더라도 넉넉히 씨 뿌려 가을엔 솎아 먹고 이듬해 봄에는 잎도 먹고 꽃도 먹으면 되지. 토종을 못 구했더라도, 되도록 씨를 받아 그 씨를 심어본다. 모양도 좋지 못하고 거두는 양도 적다. 그런들 어떠하랴.

내 손으로 씨를 받으면서부터 농사하는 마음이 달라졌다. 전에는 거둘 욕심에 많이 달렸으면 했지. 이제는 무얼 심을 때 ‘잘 자라 좋은 씨가 되어라’ 하는 마음으로 심고 가꾼다. 곡식들을 자연의 흐름에 맞춰 가꿔 씨를 받고, 그렇게 하는 품값으로 내가 얻어먹는다 생각한다.



신동아 2003년 6월호

4/4
글: 장영란 odong174@hanmail.net
목록 닫기

밀 베고 팥 심고 마늘 거두고 자두 따먹고

댓글 창 닫기

2022/12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