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7월호

김영호 전 산자부장관의 한국경제 직격 진단

사회 대통합으로 ‘디지털 변곡점’ 뛰어넘자

  • 입력2003-06-24 10: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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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호 전 산자부장관의 한국경제 직격 진단

    지금과 같은 IT 불황기에 기술혁신을 이뤄야 ‘신산업혁명’에 대비할 수 있다. 반도체 생산라인.

    우리가 우려했던 정치, 경제적 사태가 현실화하고 있는 것 같다. 지금의 경제 침체는 일시적 경기 하강이나 신정권 출범 후 적응 과정에서 생겨날 수 있는 과도기적 혼란의 수준을 넘어섰다. ‘투자 위축-소비 위축-수출경쟁력 하락’의 악순환은 경기 하강기의 순환적 양상이 아니라 누적적·구조적 위기의 양상을 보인다. 최근 경기가 다소 살아나는 듯한 조짐도 있으나, 일시적으로 경기가 활기를 띤다 해도 구조적·누적적 위기는 2001년에 그랬듯 오히려 심화하면서 뒤로 미뤄질 뿐이다.

    더욱 답답한 것은 새 정부가 초기 대응에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새 정부는 대통령직인수위 시절의 개혁 페이스에서 취임 후에는 보수·안정 페이스로, 그 다음에는 개혁 페이스에 대한 반격과 그에 따른 보수·안정 페이스로의 회귀라는 널뛰기를 되풀이하면서 ‘신뢰의 위기’에 빠졌다.

    부분의 합이 전체가 되는 것은 아니다. 정부 정책의 각 부분은 좋다 해도 서로 간에 음율이 맞지 않아 전체적으로 ‘구성의 모순’에 빠지고 있는 것도 심각한 문제다. 시스템 해저드가 정책적 엇박자로 나타난다. 여기에 경제 외적 위기가 연계되고 있다. 북한의 핵 개발과 미국 부시 정부의 ‘새로운 전쟁’ 전략에 따른 지정학적 리스크, 국내에 팽배한 집단이기주의는 해외에서 신규 투자를 유치하기는커녕 국내 기업의 해외 이탈을 가속화한다.

    또한 엄청난 규모의 가계 부채와 카드채, 그리고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부동산 가격은 일본형 은행 위기와 장기 침체의 위험성을 안고 있다. 뿐만 아니라 ‘메이드 인 차이나’ 제품이 한국의 노동집약적 상품 분야는 물론, 반도체나 휴대전화 같은 최첨단 상품 분야까지 모조리 삼킬 듯한 위세다. 400조원에 이른다는 유휴자금은 또 어디를 쑥대밭으로 만들 것인가.

    이쯤 되면 1997년 위환위기 때보다 더 심각한 총체적 위기가 우려된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지금은 재정금융이 출동할 수 있는 여력도 없고, 그 약효도 없으며, 지정학적 리스크와 ‘메이드 인 차이나’의 본격적 위협 등이 연계된 병발 위기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지금은 정부를 비판하는 측에서도 정략적 비난이나 감정적 흠집 내기에 머물러선 안 될 것이다. 정부도 구구한 변명이나 무책임한 남 탓 타령에 급급한 수준을 넘어서야 한다. 이제 근본적인 물음을 던져야 할 때다. 모두가 가슴을 열고 진지하게 검토해 총체적 합의를 이끌어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위기를 오히려 기회로 바꾸는 ‘컨틴전시 플랜(Contingency Plan)’을 세우지 않으면 안 된다. ‘날지 않으면 길을 잃는다’는 네루다의 시(詩)처럼.

    위기 불감증·위기 부풀리기·위기 알레르기

    여기에서 위기론에 대응하는 자세에 대해 살펴보자. 한 편에는 ‘위기 불감증’이 있고, 다른 한 편에는 ‘위기 부풀리기’가 있고, 또 다른 한 편에는 ‘위기 알레르기’가 있다.

    한국에선 늘 위기 속에 안정이 있어 왔다는 체험 때문인지 외환위기가 올 때도 위기의식을 거의 찾아보기 어려웠다. 한국전쟁 또한 사전에 별 위기의식 없이 지내다가 당한 것이다. 지금의 위기 양상에서도 정략적 차원의 것을 제외하면 위기의식이 미미하다. 그래서 ‘위기 불감증이 최대의 위기 요인’이라는 말도 나온다.

    위기 부풀리기는 문제의 심각성을 실제 이상으로 과장하는 경우를 말한다. 정치적 반대 세력이 정략적으로 위기를 침소봉대(針小棒大)해 상대방을 공격하기도 한다.

    위기 알레르기는 위기 부풀리기의 대응 현상으로서, 위기론이 정책 실패를 의미할 뿐 아니라 불안을 조장하고 사태를 악화시킬 수 있다는 인식에서 공연히 불온시하고 반발하는 것이다.

    위기론은 이 세 가지 현상을 피해 합리적, 전략적으로 제기돼야 한다.

    2000년 중반 무렵 외환위기에서 벗어난 한국 경제는 낙관적인 분위기에 휩싸였다. 그러나 그때 우리는 위기를 경고했다. 미국 주가의 PER(주가수익률)는 정상 수준인 15배는 물론, 대공황 때의 30배 수준을 훨씬 넘어 40배 이상으로 치솟았다가 돌연 거품이 꺼졌다. 무시무시한 추락이 시작된 것이다.

    수년 후의 국제수지 적자 우려를 경고하며 미리 대비할 것을 주장했으나 아무도 귀기울이지 않았다. 그것이 합리적 위기론이었음은 그 해 말에 이미 위기론이 대세를 이룬 것으로 증명됐고, 최근의 국제수지 적자 행진으로도 증명됐다.

    그러나 그때 경제정책 주류측은 난데없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 루카스 교수의 ‘합리적 기대가설’을 빌려 역습을 가했다. 즉 “경제에서는 ‘펀더멘털(fundamental)’보다 ‘멘털(mental)’이 더 중요하다. 따라서 낙관적으로 생각하면 경제가 잘되고 비관적으로 생각하면 잘못될 수 있다”는 말을 인용, 위기 가능성을 경고한 측을 경제불안 조성자로 몰아붙인 것이다. 요즘 새 정부가 경제위기론에 위기 알레르기 현상을 보이면서 못마땅해 하고 있는 것과 비슷하다.

    또한 당시 경제정책 주류측은 구조조정이라는 고통스러운 수술요법 대신 재정·금융적 모르핀 주사로 경기를 부양했다. 공적자금 추가 공급, 가계대출 확대, 카드채 장려, 부동산 경기 자극 등 매크로 총수요 관리정책을 총동원했다. 수출 부진을 이러한 거시적 내수 진작으로 타개하려 한 것이다. 그것으로 위기를 뒤로 돌렸다. 그러면서 작은 근거 하나라도 있으면 이를 확대 해석해 “가까운 시일 안에 경기가 회복될 것”이라는 논리를 내세웠다. 당장의 불만과 불안을 무마하기 위해 ‘유사 무지개’라도 띄워야 했던 것이다. 일종의 ‘폭탄 뒤로 돌리기 게임’이었다고 하면 지나칠까. 그 폭탄이 지금 터지려고 하는 것이다.

    위기 없이 개혁 없다

    노무현 정부는 구조조정 강화에 의한 정면돌파가 아니라 다시 경기 부양 정책으로 회귀하려 하고 있다. 추경예산 4조원 편성과 친(親)재계적 정책조정이 그것이다. 물론 다른 쪽에서는 개혁적인 정책을 펴보려고 노력하고 있으나, 그것이 경기정책 내지 성장정책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엇박자를 이룬다는 데 문제가 있다. 올 가을 혹은 내년 봄 경기 회복설을 슬슬 흘리더니 다시 2/4분기 경기 바닥론이 나오고 있는 것도 경기 침체기인 2001년과 비슷한 상황이다. 다시 ‘유사 무지개’가 뜨고 있는 것이다.

    최근 주가가 상승해 조만간 종합주가지수 700선을 넘어설 전망이지만, 이는 PC 교대기의 PC 수요 증대, 최근의 콜금리 인하 효과, 국제 금융자본의 포트폴리오 변경에 따른 ‘바이 코리아(Buy Korea)’ 현상 등에 의한 것으로, 일시적 현상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큰 산’이 아니라는 말이다. 대형 경기가 일어나기에는 27배 수준의 PER가 아직 너무 높고, IT(정보기술) 과잉 투자가 해소되기도 멀었고, 기술혁신의 돌파력도 미약하다. 특히 현재의 불황을 혁신과소에 의한 것으로 보는 입장에서는 본격적인 혁신 개시 및 그 확대기가 와야 대형 경기가 올 것으로 믿는다. 작은 산에 눈이 가리면 큰 산을 못 보게 된다. ‘큰 산’이란 후술하는 전략적 변곡점을 가리킨다.

    위기론의 부정이 경기 부양책으로 이어지는 현상을 뒤집으면 위기론의 긍정이 구조조정 정책으로 이어지는 현상이 된다. 외환위기 때의 위기의식은 곧 구조조정으로 이어지지 않았던가. 따라서 구조조정의 전제조건으로 위기론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위기 없이 개혁 없다’는 논리는 우리의 경험에 비춰봐도 타당하다.

    그러나 위기론을 비관론과 혼동하면 안 된다. 위기를 직시하되 소극적으로 뒷걸음질칠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정면돌파해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 전자를 소극적 위기론, 후자를 적극적 위기론이라 할 수 있다. 한편으로는 전자를 비관적 위기론, 후자를 낙관적 위기론이라고 할 수 있다. 루카스 교수의 말은 소극적 내지 비관적 위기론을 경계한 것이다. 비겁한 자가 호랑이를 만나는 것은 죽음을 의미하지만, 용감한 자가 호랑이를 만나는 것은 한 장의 호피(虎皮)를 의미한다. 지금 우리에겐 적극적 위기론이 필요하다.

    삼성의 이건희 회장은 7조원의 이익을 낸 대기업 총수이면서도 “2∼3년 후를 생각하면 등에 식은땀이 난다”고 했다. 이러한 위기의식을 가져야 위기를 돌파할 각오가 생기고, 위기를 기회로 바꿀 역전의 계기를 만들 수 있다. 기회는 위기의 문을 통해 이르게 된다. 일본의 도요타사(社)는 이른바 ‘위기경영’으로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전략을 구사해 왔다. 미국은 1980년대의 위기를 정면돌파해 1990년대에 기회의 문을 열었다.

    김영호 전 산자부장관의 한국경제 직격 진단

    위기를 기회로 바꾸려면 사회적 대타협에 의한 노사평화체제 구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한국 경제는 마(魔)의 1인당 GNP 1만달러 벽 앞에서 주춤거리고 있다. 1995년에 1만달러를 돌파했지만, 1998년에 6700달러대로 미끄러졌고, 그후 4년 만에 다시 1만달러를 간신히 회복한 상태다. 그러나 성장엔진이 약화되어 올해 경제성장률이 3% 전후로 떨어지고, 교역조건의 악화로 1/4분기 실질소득이 -1.8%를 기록한 마당에 새로운 경제위기의 발걸음 소리가 들리는 것을 보면 1만달러 고비에서 다시 미끄러져 내릴 가능성도 있다.

    1만달러 벽을 넘어 2만달러 고지에 이르려면 하나의 전략적 변곡점을 넘어가야 한다. 그런 전략적 변곡점은 앞으로 3∼4년 정도의 짧은 시기 동안 펼쳐질 것이다. 그것을 ‘2004∼06년 변곡점설’이라고 해도 좋다.

    지금은 소위 디지털 기회(digital opportunity)를 맞고 있다. 격차를 안고 선진국 따라잡기(catching up)를 하던 한국 경제가 디지털 기회를 맞아 거의 모든 나라와 같은 시점, 비슷한 조건에서 경쟁할 수 있게 된 것이다. 1세기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기회다.

    그런데 IT산업혁명의 본격적인 개화가 일단락되면 디지털 기회에는 다시 진입장벽이 생겨 그 후에는 지금의 디지털 기회가 매우 좁아지거나 거의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IT혁명에 대한 ‘비합리적 들뜸(irrational exuberance)’이 가라앉고 지금은 불황의 골짜기를 통과하고 있으나, 2004년 후반 전후에서 2006년 전후에 IT 불황의 골짜기를 벗어나 황금의 언덕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때면 이미 늦다. 지금과 같은 IT 불황기에 필사적인 기술혁신이 일어나야 신산업혁명시대가 열릴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의 불황기가 바로 ‘큰 기술혁신’의 기회다. 지금이야말로 혁명의 잉태기이며, 지금 잉태하지 않으면 2004~06년 전후에 옥동자를 낳을 수 없다. 더구나 디지털 무선기술, 제4세대 휴대전화 등 주요 IT를 비롯해 BT(바이오기술)·NT(나노기술)·ET(환경기술)·CT(문화콘텐츠기술) 등의 신기술과 디지털 컨버전스의 국제표준이 2003년∼05년 사이에 대부분 결정된다. 이미 첨단기술의 국제표준 획득전쟁은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일본은 이미 연료전지 기술 개발 분야에서 선두를 달리면서 유럽연합(EU)과 사실상의 기술표준에 합의하고, 이를 최근 프랑스 에비앙에서 열린 G8 정상회의 안건으로 상정하는 기민함을 보였다. 연료전지의 엄청난 파급력을 생각하면 한국의 신기술 뒷북치기가 답답하기만 하다. 기술에서 앞서도 표준에서 지면 시장을 잃는다. 표준이 결정되면 그 표준이 시장을 지배하는 시대가 지속될 것이므로 그 후에는 기회가 줄어든다. 그러니 지금이 위대한 기회이며 지금 표준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기술혁신과 표준화에 성공하면 무한시장이 열린다. 가령 디지털 가전은 4년 후 연 1000억달러 규모의 큰 시장이 예상된다. 바이오 시장은 그보다 훨씬 더 클 것이다.

    이런 점에서 앞으로의 3∼4년이 전략적 변곡점이다. 이 변곡점을 선점하고자 미국은 2005년에 끝나는 국가핵심기술개발계획을 추진하고 있으며, 일본도 2001∼05년의 과학기술입국계획 완성에 전력투구하고 있다.

    일본을 디딤돌로, 중국을 견인차로

    향후 3∼4년을 역사적 고비라고 보는 또 하나의 근거는 ‘중국 블랙홀’의 위기다. 중국은 ‘세계의 공장’이면서 ‘세계의 R&D센터’로 변모하고 있다. 세계의 투자와 R&D가 중국으로 몰려들고 있으며, 한국은 더욱 그러하다. 한국의 자본, 기술, 고급지식인력 등이 중국이라는 블랙홀에 빨려들지 않으려면 3∼4년 내에 특화기술, 특화산업의 확고한 우위체계를 확립해야 한다.

    특화산업, 특화기술에서 확고한 우위에 서면 중국의 성장에 이끌려 우리도 자동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호기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메이드 인 차이나’는 이미 중저가 범용제품은 물론, DVD나 반도체, 제3세대 휴대전화 같은 첨단기술에 이르기까지 맹렬히 추격해오고 있다. 지금 필사의 비약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몇년 전만 해도 한국은 일본의 첨단기술과 중국의 저임금 노동력 사이에서 호두까기(Nut-cracker) 속의 호두가 될 위협에 놓여 있다고 했으나, 이제는 중·일 양국의 첨단기술 사이에서 호두까기 속 호두 신세가 될 위기를 맞고 있다. 앞으로 2∼3년은 일본의 기술을 ‘디딤돌’ 삼아 중국 시장에 확고하게 자리를 잡고, 중국의 성장을 ‘견인차’ 삼아 2만달러 고지를 돌파하는 역이용의 기회가 열리느냐, 아니면 호두로 전락하느냐가 결정되는 운명적인 시기다. 시간이 별로 없다. 동북아의 물류허브나 금융허브로 나아갈 수 있는 기회도 3∼4년 정도라는 게 많은 전문가들의 견해다. 상하이의 물류·금융허브 전략이 일단락되면 우리가 진출할 여지는 더욱 좁아진다.

    이렇게 보면 이 3∼4년이 우리 역사상 가장 중요한 시점이다. 우리는 600년 만의 큰 기회를 맞고 있다. 서양의 르네상스 이래 세계사의 뒤안길을 헤매던 한국은 정부 수립 후 반세기가 지나면서 세계 최고의 초고속 정보통신 인프라를 갖추고 인구비례상 최대의 인터넷 인구를 보유하면서 디지털 기회를 살려나가고 있다. 세계사의 최선두에 설 수 있는 결정적 기회를 맞은 것이다. 이 변곡점을 통과하면 국민소득 2만달러 고지에 이르는 것은 매우 순조로울 것이다. 그러나 만일 이 변곡점을 넘지 못하면 1만달러 지점에서 또한번 미끄러지게 되고, 세 번째 등정은 더욱 어려워진다.

    그러나 기회는 매우 짧다. 빌 게이츠의 표현을 빌린다면 ‘계란 반숙의 법칙’이 지배하는 기회다. 계란이 반숙될 만한 짧은 순간에 디지털 변곡점을 통과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지금은 ‘큰 기회’와 ‘큰 위기’가 병존하는 역사적 시점이다. 이 중요한 시점에 적극적 위기론을 내세우며 3년 정도의 컨틴전시 플랜을 마련해야 한다.

    위기를 기회로 바꾸기 위해서는 사회적 대타협에 의한 노사평화체제 구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네덜란드는 한때 ‘네덜란드병(Dutch Disease)’에 걸려 유럽의 열등생으로 추락했지만, 위기의 심연에서 1982년 정·노·사 대타협을 이뤄냈다. 이른바 ‘바세나르 합의(The Wassenaar Arrangement)’를 이끌어냈고, 그 결과 ‘노사간 휴전선언’으로 사회적 통합이 이뤄져 ‘네덜란드의 기적(Dutch Miracle)’을 연출한 것이다.

    아일랜드 역시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유럽에서 가장 실업률이 높고 가난한 나라였다. 하지만 나락으로 떨어질 위기에서 사회 각 이해집단들이 대타협을 해 ‘국가경제사회평의회(NESC)’를 구성하고 양보와 타협으로 ‘경제성장을 통한 부자나라 만들기’에 합의했다. 그 결과 여야 간의 파트너십 정치와 노사 간의 산업평화를 이룩했다. 그리하여 1988년 1인당 소득 1만달러를 달성했고, 8년 만인 1996년에는 2만달러 고지에 올라섰다. 이 모두가 대타협-합의-통합을 통한 ‘기적 연출 방정식’이다.

    그렇다면 한국에서는 어떻게 대타협-사회적 합의-통합형 구조조정의 드라마를 만들어낼 것인가. 우리는 주 5일 근무제 실시를 하나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5인 이하 기업체에서의 최저임금제 및 노동보험제 확대 실시와 함께 주 5일 근무제 실시를 계기로 노사 간에 생산성 향상 협약과 성과의 공정분배 룰을 만들어 항구적인 노사평화를 만들어내야 한다.

    나아가 우리는 기업의 사외이사제를 활용해 종업원 대표를 사외이사로 영입하는 방안을 제시해 왔다. 지금의 사외이사는 흔히 지적되듯 기업 오너 혹은 경영자의 방패막이, 기업 투명성의 눈가림용이 되는 경향이 있다. 이에 비해 종업원 대표는 회사 정보에 밝을 뿐 아니라 기업 투명성이 종업원 전체의 이해와 직결되기 때문에 훨씬 더 바람직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사외이사는 감사이사적 성격을 띠므로 종업원 대표의 사외이사 진출은 기업의 경영권을 지키면서도 종업원의 일정한 경영 참여를 가능케 하는 타협안인 동시에 회사의 투명성을 높이는 첩경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주주 자본주의에는 나름대로 장점이 있다. 특히 국제 금융자본에 구애(求愛)해야 하고 400조원에 가까운 국내 유휴 자본에 러브콜을 보내야 하는 한국 경제의 형편으로는 어쩔 수 없는 측면도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한계 또한 매우 크다. 주주 자본주의 아래서는 단기적인 이윤 배당 요구에 밀려 장기적인 설비·R&D 투자가 어렵다. 설비와 R&D 투자에 명을 걸어야 하는 한국 경제는 따라서 주주 자본주의의 이 같은 한계를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된다.

    또한 주주 자본주의에서는 주주 이익 우선 원칙에 따라 종업원의 이익이 도외시되고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일방적으로 강요되는 경향이 강하다. 물론 노동의 유연성은 필요하지만, 자본의 유연성도 그에 못지않게 필요하다. 말하자면 총체적 유연성 개념이 필요하다. 종업원 대표가 사외이사로 가는 것도 이러한 총체적 유연성을 실현하는 방도가 된다. 하청업체나 소비자·환경·시민단체의 통제, 집단소송제나 워크셰어링(worksharing)을 수용하는 것 등도 그 방도의 하나다.

    이것은 결국 주주 자본주의(shareholder capitalism)를 이해관계 자본주의(stakeholder capitalism)로 변모시켜 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주주 자본주의로 가면서 사회통합을 실현하기는 어렵다는 점에서 총체적 유연성 개념 도입을 통해 이해관계 자본주의의 장점을 접목해야 할 것이다. 말하자면 주주 자본주의와 이해관계 자본주의를 통합하는 또 하나의 ‘제3의 길’이 될지도 모른다. 우리의 사회적 대타협은 이러한 제3의 길을 찾고 확대하는 선상에서 이뤄질 수 있을 것이다.

    이를 계기로 종업원을 기술혁신의 주체로 자리매김시켜야 한다. 오늘날 중요한 기술혁신은 연구실의 R&D뿐 아니라 생산현장 업무의 개선과 응용을 통해서도 이뤄진다. 노동자를 기술혁신의 주체로 수용한다는 것은 생산현장의 개선과 응용의 축적을 중시한다는 차원에 그치지 않고, 임금을 어느 정도 R&D 비용으로 인정한다는 의미가 된다. 이 개념은 노동자 혁신참여론의 일환이며 노사 기술혁신공동체 형성을 가능하게 한다. 따라서 노사간 생산성 향상 협약에 머물지 말고, 기술혁신 향상 협약으로까지 확대해야 한다. 3년간 노사 평화선언으로 노사 기술공동체를 형성하는 것이 3년간 컨틴전시 플랜의 일환이 돼야 할 것이다.

    지금의 노사정위원회를 확 뜯어고쳐 여야간 정쟁이나 노사간 대립구도에서 벗어난 사회적 통합기구로 만들 수 없을까. 이것은 정부 아래의 위원회라기보다 일정 부분 정부 위의 위원회이며, 신자유주의체제 속의 부수적 위원회가 아니라 그 위의 위원회이며, 특정 이해세력 수중의 위원회가 아니라 그 위의 위원회로 개편돼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하여 정부뿐 아니라 야당도, 한국노총뿐 아니라 민주노총과 비정규 노동자 대표도, 힘없는 경영자 대표뿐 아니라 기업 오너 대표도, 그리고 학계 및 시민단체 대표도 참여하여 사회적 대타협 혹은 사회적 빅딜을 만들어내는 열린 광장이 돼야 한다. 아일랜드의 경우처럼 이 위원회에서 결정된 사항은 정권 교체와 관계없이 지켜지도록 해야 할 것이다.

    당연한 것이지만 정부는 공정한 중재자 내지 조정자의 입장을 고수해야 한다. 이 당연한 원칙이 그동안 너무나 자주 훼손돼 왔다. 최근 들어 노사관계를 노정관계로 변질시켰던 일련의 사태에 대한 깊은 반성이 필요하다.

    가끔 다음과 같은 장면을 상상해 보곤 한다. 확 바뀐 노사정위원회를 중심으로 대표성 있는 이해관계자 대표들을 마치 로마교황 선거 때처럼 한 건물에 모아 몇날, 몇주 동안 대타협을 하게 하고, 시민단체 대표들, 특히 여성단체 대표들이 문을 지키면서 대타협안을 만들어내지 못하면 밥도 넣어주지 말고 문도 열어주지 않는 것이다. 전국민 혹은 세계적인 주목 속에 몇일 동안 밥도 제대로 못 먹어가며 밤샘 토론을 거듭한 끝에 마침내 타협을 이뤄내고, 대표들이 TV 카메라 앞에서 네덜란드처럼 노사 3년간 휴전선언을 발표한다면, 또 아일랜드처럼 1만달러의 벽을 넘어 2만달러 고지를 넘는 비전과 전략에 대한 합의안을 발표한다면 그 감격이 어떠할까. 사회적 대타협-사회적 빅딜에 성공한다면, 그리하여 컨틴전시 플랜의 로드맵에 따른 ‘경제적 붉은악마’의 바람이 분다면 그 감동이 어떠할까. 아마도 국제적 신뢰 향상으로 외국투자가 폭주하고 주가가 폭등하지 않을까.

    기회에는 꼬리가 없다

    기회는 빨리 왔다가 빨리 사라지는 속성이 있어 뒤에서 쫓아가 잡기 어렵다. 기회는 앞에서 미리 보고 준비하면서 잡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기회는 잡는 것(chance seizing)이 아니라 만드는 것(chance making)이다.



    새 정부가 초기 대응에 성공하지 못한 것은 총체적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한국의 역사적 변곡점을 직시하면서 적극적 위기돌파 전략을 제시하지 못한 데 있는 것 같다. 선거 공신을 새 정부 핵심인사로 연결시킨 것도 국민통합의 길이 아니었다. 정부는 기술혁신이든, 부동산 문제든, 노사문제든, 각종 이해집단의 갈등이든 문제가 터지면 뒤에서 쫓아가 해결하려는 대증요법에 급급하고 있다. 이는 중장기적으로 볼 때 오히려 원칙을 훼손시키고 문제를 악화시킬 여지가 많다.

    개혁을 시도하면서 기득권층의 저항이 있으리라는 것을 몰랐단 말인가. 원론적 접근으로 해결될 만큼 현실이 간단한 줄 알았던가.

    그러나 아직 늦지 않았다. 총체적 비전 아래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사회적 대타협과 컨틴전시 플랜의 수립, 그리고 희생의 교대로 눈앞에 닥친 역사적 변곡점을 뛰어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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