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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 성폭행 피해가족들의 그 후

남자만 보면 숨는 민지, 이름 바꿔달라고 매달리는 윤아

  • 글: 강지남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layra@donga.com

아동 성폭행 피해가족들의 그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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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유증을 앓는 것은 아이만이 아니다. 때로는 부모가 아이보다 더 심각한 후유증을 호소하기도 한다. 이화여대 여성학과 대학원에서 아동 성폭행에 관한 논문을 준비하고 있는 정명희씨는 “부모가 아이보다 더 크게 충격받은 경우를 많이 봤다”고 전했다.

“지방 소도시에서 한 아이가 엘리베이터 안에서 성추행을 당했어요. 부모는 회사에 휴가를 내어 아이를 서울에 있는 병원으로 데려왔습니다. 하지만 정신과 진단 결과 아이에겐 특별한 징후가 나타나지 않았어요. 나이가 어리고 일회성의 ‘사고’였을 경우 아이는 길을 걷다 넘어진 것을 금세 잊듯 쉽게 잊을 수 있습니다. 부모가 아이보다 더 충격을 받고 화를 내면 오히려 아이를 불안과 죄책감에 시달리게 만들 수 있어요.”

2000년 경기도 용인의 모 아파트 단지에서 놀이방을 운영하던 60대 남자가 유아들을 성추행해 실형을 선고받은 사건도 부모들에게 심각한 후유증을 일으켰다. 당시 피해 아동 40여 명과 부모들을 상담했던 한양대 의대 안동현 교수(소아정신과)는 “아이는 잊어가는데 부모는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고 했다. 그래서 안교수를 비롯한 전문의들은 부모들을 상대로 아이를 어떻게 보살펴야 하는지에 관해 두 차례 강의를 했다.

“많은 부모들이 굉장히 놀라고 당혹해하더군요. 그들 가운데 일부는 성에 대한 혐오감이 생겨 부부관계를 기피하거나 서로 ‘내탓 네탓’ 공방을 벌이다 부부 사이가 나빠진 경우도 있었습니다. 또 아이를 필요 이상으로 과보호하거나 심하게 추궁하는 부모도 있었어요. 이럴 경우 아이는 오히려 안정을 찾기 어렵게 됩니다. 부모가 먼저 마음을 가라앉히고 차분하게 대처하는 게 중요해요.”

성폭행 피해 아동들이 제대로 정신과 치료를 받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1999년 집안에 침입한 괴한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한 주영이(가명·15)도 이런저런 형편으로 치료를 포기한 경우.



“큰 대학병원 정신과에 다녔어요. 병원 가는 데만 한 시간이 넘게 걸리는데, 예약을 하고 가도 병원 복도에서 한두 시간씩 기다리는 게 예사였어요. 주영이가 그때 6학년이었는데, 주변에서 ‘저렇게 어린애가 뭐가 잘못돼서 정신병원까지 왔을까’ 싶은 듯 쳐다보는 시선이 나도 아이도 너무 싫었어요. 더구나 주영이는 병원에 가려면 학교를 빠져야 했는데 친구들에게 일주일에 한번씩 결석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것도 스트레스였죠. 한 시간 상담에 6만∼7만원씩 하는 치료비도 부담스럽고…. 결국 대여섯 번쯤 다니다 그만뒀어요.”

앞서 언급한 윤아는 1년 정도 정신과 치료를 받았는데, 그 정도면 아주 오래 치료를 받은 축에 든다. 제주대 곽영숙 교수는 “조사했던 50명 중 정신과 치료를 받은 적이 전혀 없다고 응답한 피해자가 33명이나 됐다”고 전했다. 정신과 치료를 받은 피해자들 중에서도 1회성 상담에 그친 비율이 64%에 달했다. 6개월∼1년 정도 치료받은 어린이는 단 한 명뿐이었다.

정신과 치료는 ‘그림의 떡’

서울 강남에서 정신과 의원을 운영하는 소아정신과 전문의 김창기씨는 “‘정신과’에 대해 갖는 선입견과 치료 필요성에 대한 부모의 인식 부족 때문에 중간에 치료를 그만두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대개는 가해자가 처벌을 받는 등 법적 문제가 종결되면 아이 치료도 끝났다고 생각한다는 것. 그러나 김씨는 “몸에 난 상처와 달리 정신적 상처는 눈으로 볼 수가 없으니 아이가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오해”라며 “개인마다 차이가 있지만 부모가 모르는 사이에 후유증은 더 심각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전문적인 정신과 치료를 원한다 해도 현실적으로 치료를 받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무엇보다도 집 주변에서 소아정신과 전문의를 찾기가 쉽지 않다.

지난해 12월 같은 동네에 사는 친구의 아버지로부터 성추행을 당한 성민이(가명·7)는 집에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의정부시 종합병원에 근무하는 전문의가 해외 연수를 마치고 귀국하기만 기다리고 있는 실정이다. 성민이 엄마는 “아이에게 정신과 치료가 필요하다는 사실도 얼마 전에 알았다”며 “급하게 알아보니 의정부에서 성폭행당한 아이를 잘 상담해준다는 의사는 그분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성민이는 요즘도 문득문득 멍한 표정을 지을 때가 있다. 엄마와도 좀처럼 떨어지지 않으려고 한다. 옷도 혼자서 못 입고 바지에 오줌을 싸는 등 아기가 된 것 같은 행태를 보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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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강지남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lay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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