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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 성폭행 피해가족들의 그 후

남자만 보면 숨는 민지, 이름 바꿔달라고 매달리는 윤아

  • 글: 강지남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layra@donga.com

아동 성폭행 피해가족들의 그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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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 성폭행 피해가족들의 그 후

아이들이 앓는 후유증은 부모에겐 더 무거운 짐이다. 국가인권위원회를 찾은 아동성폭행 피해 부모들

대한소아정신과청소년의학회(회장·안동현)에 회원으로 가입한 정신과 전문의는 300여 명. 이들 가운데 외국 유학을 다녀오거나 국내 의료기관에서 수련을 거친 소아정신과 전문의는 105명이다. 이중 서울과 경기도 신도시 일원에 근무하는 전문의는 66명으로 전체의 63%에 달한다. 또한 종합병원에 근무하는 전문의는 52명으로 전체의 절반을 차지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상당수 성폭행 피해 어린이들이 정신과 치료의 ‘사각지대’에 방치돼 있다.

이에 대해 안동현 교수는 “소아정신과 전문의는 짧은 기간에 양성할 수 없다. 그 보다는 가정의학과, 산부인과, 소아과, 정신과 등 관련 분야 의사들에게 성폭행 피해 아동 대처 방법을 교육시키는 게 현실적이고 효율적인 해결책”이라고 충고한다.

한 시간 진료에 5만∼7만원씩 드는 치료비도 피해 가족들에겐 여간 부담스럽지 않다. 윤아의 아버지는 “윤아 일로 가세가 급격히 기울었다”고 했다. 윤아가 성폭행당한 것을 안 직후 아내가 직장을 그만둔 데다, 윤아가 원하는 대로 두 차례 이사하고 가구를 모조리 바꾸느라 큰돈이 들었다. 지금 사는 곳으로 이사 오면서 윤아 아버지도 서울 여의도에 있던 직장을 그만둔 상태다. 서울 시내에 있는 병원까지 다녀오면 치료비며 교통비 등으로 10만원 이상을 써야 한다.

하늘이네도 사정이 비슷하다. 지체장애자인 남편 대신 공장에 다니며 월 90만원을 버는 김씨는 범인을 잡으러 나서느라 지난 3월 공장을 그만뒀다. 택시를 잡아타고 경기도 일대의 ‘S빌라’를 찾아다니느라 500만원의 빚도 졌다. 김씨는 “하늘이가 병원 치료를 받아들인다고 해도 치료비 때문에 완치될 때까지 보낼 자신이 없다”고 털어놨다.

39만원짜리 정부



현재 정부가 성폭행 피해자에게 제공하는 지원금은 1인당 최대 39만9000원이다. 정부는 ‘치료비에 대해 전액 지원한다’는 원칙을 세웠지만, 이는 그야말로 ‘원칙’일 뿐이다. 올해 국가가 이 부분에 배정한 예산은 3억5900만원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마저도 제대로 활용되지 못한다. 지난해 3억5200만원의 예산 중 28%인 9850만원만 집행됐고 나머지는 국고로 환수됐다.

집행률이 이처럼 낮은 것은 복잡한 지급절차 때문. 여성부가 각 시도 자치단체에 예산을 배정하면 자치단체는 지역 소속 성폭력상담소에 예산을 배정한다. 성폭행 피해자는 의료기관에서 진료를 받은 뒤 진료비 영수증을 성폭력상담소에 제출해야 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 그나마 지난해 기준으로 전국 111개 성폭력 상담소 중 62개 상담소만이 정부로부터 치료비를 배정받았다.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한국성폭력상담소(소장·이미경)의 경우 1년간 치료비를 지원할 수 있는 최대 인원은 45명이다. 지난해 이 상담소가 처리한 성폭행 상담건수가 2961건이고 강간 상담만 해도 942건임을 고려할 때 연간 45명분의 지원금은 턱없이 낮은 수준이다. 이미경 소장은 “이 때문에 치료가 시급하거나 경제사정이 어려운 피해자에게 우선적으로 의료비를 지원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여성부 김기환 인권복지과장은 “전액 지원의 범위를 신체적 상처가 아문 정도로 봐야 할지, 정신과 치료 완료 시점까지로 봐야 할지 내부적으로 결정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는 또 “상담소를 통한 의료비 지원이 효율적이지 않다는 지적이 많아 의료기관에서 직접 예산을 집행하는 방식 등을 고려 중”이라고 덧붙였다.

성폭행 피해 부모들은 “아이가 성폭행당한 걸 알게 되면 마음 추스리는 것도 힘겨운데, 그런 아이를 데리고 방방곡곡을 돌아다녀야 한다”며 고통을 호소했다. 우선 성폭행 상해진단서를 발급해주는 병원을 찾기 어려울 뿐 아니라, 고소를 위해서 경찰과 검찰, 법원, 변호사 사무실 등을 전전해야 한다. 또 소아정신과 전문의가 있는 병원을 찾아 드나들어야 한다. 성폭력상담소의 문도 두드려야 얼마 안 되는 치료비나마 지원받을 수 있다.

이 때문에 피해자와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피해 아동의 치료와 교육, 법적 대응 등을 한꺼번에 지원하는 기관 설립이 절실하다”고 지적한다.

서울 구로구에 자리한 ‘한국성폭력위기센터’는 성폭력 피해자 진료와 상담, 법적 대응을 종합적으로 지원하는 유일한 기관이다. 그러나 이 곳에서도 센터와 연계된 병원과 법률가들을 소개시켜줄 뿐, 모든 대응이 종합적으로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한편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 소아정신과 전문의 신의진씨는 교육치료센터(Therapeutic preschool) 설립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신씨는 “성폭력 피해 아동들은 친구를 사귀지 못하거나 학교 생활에 적응하지 못한다”며 “교육과 치료를 겸하는 기관에서 이들에게 정신적 상처를 치료해주면서 동시에 과도한 성적 자극으로 인해 왜곡된 정신적 발달을 교정해줘야 한다”고 조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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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강지남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lay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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