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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갈등 지도 (7)|인도네시아 vs 동티모르&아체

식민통치·집단학살·테러… 피로 얼룩진 분리·독립운동

  • 글: 양승윤 한국외대 교수·동남아학 syyang@hufs.ac.kr

식민통치·집단학살·테러… 피로 얼룩진 분리·독립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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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유엔 사무총장 주재로 동티모르 문제를 다루기 위한 인도네시아와 포르투갈 간 회담이 성사됐다. 동티모르 문제에 대한 국제적 관심이 공식화된 것이다. 1994년 11월 인도네시아 보고르(Bogor)에서 열렸던 제2차 APEC 정상회담 때 29명의 동티모르 대학생들이 자카르타 주재 미국대사관을 월담해 독립을 요구했다. 또 1996년 동티모르 독립지도자인 호르타(Horta)와 가톨릭 주교 벨로(Bello)가 노벨평화상을 공동 수상하면서 동티모르 문제는 다시 한번 국제사회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때부터 이들과 함께 현재 동티모르 초대 대통령인 호세 알렉산더 구스마오(Jose Alexander Gusmao)가 지도자로 부각됐다. 구스마오 대통령은 가톨릭 신학교를 졸업한 후 오랫동안 교직생활을 해온 온건한 인물로 1979년 동티모르독립혁명전선의 주도권을 장악한 후 인도네시아 정부에 무력 항쟁하면서 민중지도자로 떠올랐다. 1992년 체포되어 20년형을 받고 복역하던 중 1999년 9월 유엔과 국제사회의 압력으로 석방됐다. 스스로가 무력 저항운동을 했음에도 구스마오는 수감중 동티모르인들에게 비폭력과 무저항을 통한 독립운동을 고취시켰다.

자치파 민병대, 무차별 학살 자행

1998년에 들어서면서 정황은 독립을 열망하는 동티모르인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 1997년 경제위기에 따른 반(反)정부 시위가 점차 격화되면서 1967년 이래 인도네시아를 통치해 온 수하르토 대통령이 1998년 5월 전격 사임하고 하비비 잠정정부가 등장한 것. 이후 동티모르의 독립투쟁이 본격화했다. 국제사회는 ‘IMF카드’를 십분 활용하여 외환위기에 처해 있는 하비비 정부에 다각도로 ‘동티모르 독립을 허용하라’는 압력을 행사했다.

하비비 정부는 1999년 5월5일 동티모르 주민투표에 의한 독립허용이라는 유엔 방식에 전격 동의했다. 그해 8월8일로 예정되었던 주민투표는 하비비 정부의 방관 하에 동티모르가 인도네시아 자치령으로 남는 것을 원하는 자치파 민병대들이 조직적으로 공포 분위기를 조성함으로써 8월22일로 1차 연기됐다. 독립파와 자치파의 충돌로 동티모르의 정황이 크게 악화되자, 유엔 주도의 주민투표는 또 한번 연기됐다. 결국 8월30일 국내외 거주 만 17세 이상 동티모르인 유권자의 98.5%에 해당하는 45만명이 투표에 참가했다. 결과는 78.5%가 분리·독립에 찬성.



주민투표 결과가 발표되자 독립에 반대해온 자치파 민병대들의 무차별한 학살이 자행됐다. 이들 민병대는 동·서티모르 국경에 산재되어 있는 소수의 티모르인들과 다수의 외래인들로 구성돼 있었다. 이들은 인도네시아 정부의 정책적 특혜를 받아 동티모르의 경제력을 장악한 티모르인과 자바나 수마트라 같은 대도시 주변의 부랑자였다가 군부에 의해서 강제 이주당한 인도네시아인들이었다. 또 인도네시아령인 서티모르 국경에 살면서 경제적 혜택을 받아온 일부 종족들도 민병대에 포함돼 있었다.

이렇게 독립파와 자치파는 확연하게 다른 배경과 목적 때문에 한동안 피비린내 나는 살육전을 전개했다.

분리·독립을 반대하는 자치파 민병대의 동티모르 주민 학살이 극에 달하자 유엔은 9월13일 7500명 규모의 다국적 평화유지군 파견을 결정했다. 우리나라의 상록수부대를 포함, 총 13개 유엔회원국이 참여한 다국적군의 주력부대는 호주가 맡았다. 유엔은 한 걸음 더 나아가 10월25일 동티모르 독립을 위한 유엔동티모르과도행정기구(UNTAET) 설립을 승인하고 세르지오 비에이라 드 멜로(Sergio Vieira de Mello) 인도주의지원담당 유엔 사무차장을 수반에 임명했다.

이같은 결의에 따라 유엔동티모르과도행정기구는 동티모르가 완전 독립할 때까지 2∼3년간 인프라 시설 건설과 민주정부 수립을 위한 입법 행정 사법권을 행사하게 됐다. 1차 활동 시한은 2001년 1월31일로 연장이 가능했다. 또 군병력 8950명, 군사고문단 200명, 경찰 1640명 등으로 구성된 유엔평화유지군이 치안유지를 맡았다가 1999년 9월 호주 주도의 다국적군으로 대체했다. 동티모르 내에서도 총선거와 정부구성, 나아가서 대통령선거와 같은 빡빡한 정치 일정이 진행됐다. 그리고 동티모르는 2002년 5월20일 21세기 최초의 독립국으로 국제사회에 등장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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