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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마라톤계의 ‘괴물’ 이봉주

풀코스 완주 29회… 뛰고 또 뛴 ‘국민 영웅’

  • 글: 김화성 동아일보 체육부 차장 mars@donga.com

세계 마라톤계의 ‘괴물’ 이봉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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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마라톤계의 ‘괴물’ 이봉주

2000 시드니올림픽에서 선글라스를 끼고 역주하는 이봉주

스페인의 아벨 안톤은 각각 35, 37세 때인 1997년과 1999년 세계선수권마라톤을 연속 제패했다. 서른네 살이었던 1996년 마라톤에 입문해 나이와 상관없이 ‘싱싱한 다리’로 베를린-런던-동아마라톤 등에서 우승을 휩쓸었던 것. 2001년 4월까지 그는 10번 완주에 5번이나 우승했다. 그후 그는 두 번쯤 국제대회에 얼굴을 내밀다가 성적이 좋지 않자 미련 없이 은퇴했다.

세계가 인정하는 마라톤 천재 황영조도 기껏해야 공식대회에서 8번 밖에 완주하지 않았다. 황영조는 4번째 풀코스 완주인 바르셀로나올림픽에서 우승해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역대 올림픽 우승자나 세계선수권 우승자의 공식대회 평균 완주 횟수는 7~8회에 불과하다. 외국 마라토너의 경우 많아봐야 15회 완주가 그 한계다. 10회 완주 안팎에서 그만두는 마라토너도 부지기수다.

이런 면에서 봉달이는 세계 마라톤 무대에서 ‘괴물’로 통한다. 어떻게 29회나 뛸 수 있느냐며 입이 벌어진다. 실제로 봉달이의 종아리 근육을 신기한 듯 만져보는 사람도 있다. 봉달이는 이럴 때마다 수줍은 듯 배시시 웃으며 중얼거린다. “완주는 100번도 더 할 수 있다. 기록이 문제지….”

그렇다. 아마 봉달이는 앞으로도 100번은 몰라도 10번 정도는 더 완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체력에는 문제가 없다. 문제는 스피드다. 현대 마라톤은 스피드 싸움이다. ‘트랙 싸움’이 일상화 됐다. ‘트랙 싸움’이란 피니시라인을 400m쯤 앞두고 트랙이 그려진 운동장 안에서 우승자가 가려지는 막판 스퍼트 싸움을 말한다. 올 4월 런던마라톤에서 피니시라인 300~400m를 앞두고 4~5명의 아프리카 선수들이 100m 경주하듯 달린 것이나 올 3월 동아마라톤에서 남아공의 거트 타이스와 한국의 지영준이 피말리는 트랙 싸움 끝에 1초 차이로 거트 타이스가 우승한 것이 그 예다. 지켜보는 관중들로선 트랙 싸움으로 승부가 가려지는 마라톤 경주만큼 재미있는 레이스가 없다.

봉달이는 30만km를 달린 자동차나 비슷하다. 달리기 폼도 약간 힘이 밖으로 흐르는 스타일이다. 달릴 때 발이 약간 뒤로 채이며 힘이 낭비된다. 그만큼 에너지 소비가 많다. 또한 경험은 풍부하지만 이제 스피드는 한계가 있다. 아프리카 선수들과 스피드 싸움에서 이기기 힘들다.



그러나 코스나 날씨가 평이하지 않거나 무더운 날 열리는 대회에서는 그 누구보다도 경쟁력이 있다. 무더운 날씨 속에서 열리는 올 8월 파리 세계선수권이나 내년 8월 아테네올림픽에서 봉달이는 그 누가 뭐래도 우승 후보자 중 한 명임에 틀림없다. 아프리카 선수들은 무덥거나 코스가 나쁘면 쉽게 포기하고 만다. 이러한 의미에서 2001 보스턴마라톤에서 봉달이가 우승한 것은 난코스에 힘입은 바가 크다.

미국에서 의사생활을 하는 재미교포 마종기(64) 시인은 2001년 보스턴마라톤에서 봉달이가 우승하는 모습을 보고 한참 동안 눈물을 흘렸다고 회고한다.

보스턴마라톤 우승의 감격

“해마다 보스턴마라톤이 열릴 때면 고국의 선수가 참가하는지 알아보는 게 30년 버릇이 되었습니다. 알 만한 선수의 이름이 있으면 시간을 내어 실황 중계를 보아왔지요. 그러나 중도에 TV를 꺼버리고 혼자 주눅이 들었던 적이 얼마나 많았던지요. 올해(2001)는 애틀랜타올림픽에서 아깝게 우승을 놓친 이선수가 참가한다기에 은근히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따라 환자가 많아 무척 바빴습니다. 그래서 실황 중계도 못 보고 있다가 마라톤이 시작된 지 거의 한 시간이 지나서야 병원 사무실의 TV를 황급히 켰습니다. 그리고 화면에 나타난 이봉주 선수를 보았습니다. ‘20여 명의 선두 그룹’이라는 설명과 함께 화면에는 태극 마크가 선명한 머리띠를 질끈 동여맨 낯익은 이선수가 한무더기의 선수들과 열심히 뛰고 있었습니다. 그 다음부터는 TV를 켠 채 환자를 보다가 TV를 보다가 했지요.

코스의 3분의 2쯤에서 선두 그룹이 10여 명으로 줄어드는 것을 보았고 나중에 케냐 선수, 에콰도르 선수와 함께 세 명이 선두가 되었을 때 나는 할 수 없이 간호사와 방사선 기사를 불러 30분 동안만 환자 보기를 연기해달라고 청해놓고 사무실 문을 닫아버렸습니다. 그리고 화면을 보면서 마음 속으로 이선수와 함께 뛰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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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화성 동아일보 체육부 차장 mar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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