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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갈등 지도 (8)|서아프리카 시에라리온

살육·방화·약탈·강간… 잔혹한 전쟁범죄의 표본

  • 글: 김재명 분쟁지역전문기자 kimsphoto@yahoo.com

살육·방화·약탈·강간… 잔혹한 전쟁범죄의 표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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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육·방화·약탈·강간… 잔혹한 전쟁범죄의 표본
하지만 평화협정 후 반군의 무기 반납은 지지부진했다. 평화협정에는 ‘반군이 무기를 반납하면 300달러의 정착금을 받고 민간인으로 돌아간다’ ‘본인이 바랄 경우 심사를 거쳐 시에라리온 정부군으로 재편될 수도 있다’는 조항이 있다. 300달러는 시에라리온 물가로는 5인 가족이 6개월 동안 살 수 있는 큰돈이다. 이에 10개 지역에 무장해제 전투원들을 수용하는 집단시설이 생겨났다. 이른바 비무장수용소다. 하지만 포데이 산코 무장반란군의 주력이 무장해제를 거부한 채 여전히 위협적인 존재로 남아 있었다. 무기를 버리고 반군에서 손을 떼겠다는 자들은 정부군 출신 반란군이거나 병약자 등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이들 중 상당수는 정부군으로 편입되길 바랐다. 총을 버리고 민간사회로 복귀한다 해도 뾰족한 생활대책이 없는 탓이었다.

그리고 시에라리온 경제의 핵인 다이아몬드 광맥을 포함한 국토의 절반 가량은 여전히 반군들의 통제 아래 놓여 있었다. 시에라리온 유엔평화유지군조차 그곳에 제대로 발을 들여놓지 못했다.

필자는 로메 평화협정이 맺어진 후 프리타운에 간 적이 있다. 평화협정에도 불구하고 반군들은 예나 다름없이 시민생활에 위협적인 존재로 남아 있었다. 시에라리온과 외부세계를 잇는 유일한 관문인 룽기 국제공항에서 내려 수도 프리타운으로 가려면 헬리콥터를 타야 했다. 자동차를 타고 가는 길은 곳곳에 반란군들이 매복하고 있어 위험했기 때문이다. 평화협정은 이름뿐이고 끊임없는 소규모 충돌 속에 언제 다시 전면적인 내전이 일어날지 모르는 긴장감이 팽팽했다.

언론인에게도 죽음의 땅

유엔평화유지군 소속 병사 10명이 순찰 도중 100명쯤 되는 반군들의 매복에 걸려 총상을 입은 사건도 일어났다. 자동차로 이동할 경우 반란군의 매복을 피한다 해도 무장건달들에게 시달릴 각오를 해야 했다. 그들은 도로 곳곳에 돌더미를 쌓아놓고 검문소를 설치해 지나는 운전자들의 주머니를 갈취하곤 했다.



시에라리온은 언론인들에게도 죽음의 땅이었다. AP통신 소속 스페인 사진기자 미구엘 길 모레노, 로이터통신 기자 쿠르트 쇼르크 두 사람이 길거리에서 반군들의 기습공격을 받아 숨졌다. 반군들은 수도 프리타운을 점령했을 때 10명의 기자들을 죽였다. 프리타운에서 만났던 한 신문기자는 RUF 반군들이 처치 대상 기자들의 명단을 작성해 집집마다 다니면서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기자들을 잔인하게 죽이고 집에 불을 질렀다고 증언했다. 몇몇 기자는 서아프리카평화유지군이 프리타운을 반군으로부터 되찾았을 때 반군에 연루됐다는 혐의로 즉결처형 당하기도 했다.

내전의 3단계는 유엔평화유지군들이 반군의 잇단 공격에 죽임을 당하거나 포로로 잡히는 무장충돌 속에서 포데이 산코가 체포된 후다. 2000년 5월1일 프리타운에서 북동쪽으로 140km 떨어진 마그라카 지역에서 포데이 산코 휘하의 RUF 반군이 투항한 RUF 병사 10명이 반납한 무기를 도로 내놓으라며 유엔평화유지군 소속 인도군 소령을 포함한 3명을 체포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틀 후 4명의 케냐 병사가 피살됐고 500명의 잠비아군이 RUF에 의해 무장해제당한 채 포로로 잡히는 사건이 이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영국은 800명의 특수부대 병력과 해군함정을 프리타운에 파병했다. 5월8일 프리타운 시민들이 RUF 반군의 잇단 무력도발에 항의하는 데모를 벌였고 이에 포데이 산코의 경호원들이 데모대에 총격을 가했다. 9명의 사망자가 생겨나자 RUF의 라이벌 무장세력이자 정부군 출신들로 구성된 혁명평의회군(AFRC)이 산코의 집을 급습했다. 1주일 후 이들은 포데이 산코를 붙잡았다.

산코가 극적으로 체포됨에 따라 로메 평화협정은 사실상 백지화됐다. 반군 지도자 산코가 전범재판에 회부되면서 반군 세력은 급격히 약화됐다. 2002년 5월 선거에서 집권당 시에라리온 인민당(SLPP)이 압승, 티잔 카바 대통령이 다시 집권했고 시에라리온에는 조금씩 평화가 찾아들고 있다. 2002년 7월 시에라리온 내전에 개입했던 영국군이 철수했다. 하지만 전세계 유엔평화유지군 가운데 가장 큰 규모인 1만4500여 명의 다국적군이 시에라리온의 불안한 평화를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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