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雜學 백과|흥미진진 중국의 음식문화(상)

왕실 주방장은 총리급, 인간의 젖 먹여 키운 돼지요리

  • 글: 고광석 중국문화연구가 keyesko@hanmail.net

왕실 주방장은 총리급, 인간의 젖 먹여 키운 돼지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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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실 주방장은 총리급, 인간의 젖 먹여 키운 돼지요리

위진남북조 시대 주방을 그린 풍속화

춘추전국시대는 7개의 강국이 대립하며 패권을 다퉜다. 각국의 지도자들은 천하의 인재를 불러모아 손님으로 모시고 그들의 재주를 활용했는데, 그 중에서도 제(齊)나라의 맹상군(孟嘗君)은 식객이 3000명이 넘었다. 그 중에는 별의별 재주를 가진 인물들이 많았다고 한다. 어느 날 풍훤(馮?)이라는 가난뱅이가 맹상군을 찾아왔다.

“무슨 특기라도 있는가?”

“없습니다.”

그러나 맹상군은 웃으면서 그를 받아 들였다. 다른 식객들은 그를 업신여겼고 그에게 나오는 음식도 좋지 않았다. 그러던 중 하루는 풍훤이 기둥에 기대어 칼을 두들기며 노래를 불렀다.

“나의 긴칼이여, 돌아가자. 나의 밥상엔 고기 한 점 없구나.”



이를 전해들은 맹상군의 지시로 그의 상에는 고기가 오르게 됐다. 그리고 얼마 후 그는 칼을 두들기며 다시 노래를 불렀다.

“나의 긴칼이여, 돌아가자. 여기선 가족을 먹여살릴 수가 없구나.”

그에게 늙은 어머니가 있다는 것을 안 맹상군은 모자가 먹고 살 수 있도록 해주었다.

그 후 맹상군은 식객들을 모아놓고 자기의 영지인 설(薛) 땅에 가서 빚을 받아올 사람을 찾았다. 아무도 나서는 이가 없는데 풍훤이 자기가 해결해보겠다고 말했다. 그는 그곳에 가서 채권문서를 거두어들인 다음 모조리 불태워 버렸다. 풍훤이 돌아오자 맹상군이 물었다.

“빚을 받아왔는가?”

“빚을 받아서 의(義)를 사왔습니다.”

맹상군은 기가 막혔지만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맹상군의 명성을 시기한 제(齊)의 민왕(泯王)은 그를 재상의 자리에서 물러나게 했다. 맹상군이 갈 곳은 설 땅밖에 없었다. 가는 길에 맹상군이 풍훤에게 “그대 덕분에 내가 돌아갈 곳이 마련됐구나”고 말했다.

풍원은 “꾀 많은 토끼는 도망갈 굴을 세 개쯤 마련해둡니다. 대인께서는 이제 겨우 한 개밖에 마련하지 못했으니 제가 두 개를 더 마련해보겠습니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풍훤은 양(梁)나라로 가서 혜왕(惠王)에게 말했다.

“제나라는 훌륭한 재상을 놓쳤습니다. 어느 나라고 맹상군을 맞이하면 강국이 될 겁니다.”

혜왕이 맹상군을 재상으로 영입하려 하자, 제나라 민왕은 맹상군에게 사과를 하고 다시 재상의 자리에 서게 했다. 풍훤은 맹상군에게 제나라의 종묘를 설 땅에 세우도록 권했다.

“선대 임금의 종묘를 모시면 임금이 공격하지 않을 겁니다. 이것으로 대인은 세 개의 굴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실제로 훗날 많은 대신들이 임금의 공격을 받았지만 종묘를 모시고 있는 맹상군은 안전할 수 있었다.

중국요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궁보(宮保)라는 단어는 원래 왕자를 가르치는 선생님을 뜻하다가 훗날 국가에 공을 세운 대신들에게 주는 호칭으로 사용됐다. 궁보라는 수식어가 붙은 대표적인 요리가 궁보계정(宮保鷄丁, 궁바오지딩)이다. 궁보계정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仁者 이름 딴 궁보계정·동파육

19세기 중엽 청나라의 정보정(丁寶楨)이라는 인물이 산동에 근무할 때 공을 세워 궁보(宮保)의 명예를 얻었다. 그 후로 사람들은 그를 정궁보(丁宮保)라고 불렀는데, 그가 궁보의 명예를 얻게 된 사연은 다음과 같다.

당시의 실권은 자희태후(慈禧太后)에게 있었다. 그는 중국 역사상 3대 악녀(한 고조의 황후 여후(呂后), 당의 무측천(武則天), 그리고 청의 서태후다) 중 하나다. 나라가 망할 때 언제나 그렇듯이 서태후도 태감(太監, 내시)들에게 너무 의지해 나랏일을 그르쳤다. 안덕해(安德海)라는 태감은 그의 절대적인 총애를 믿고 대신들까지도 부하 다루듯이 했다.

참다 못한 대신과 왕족들이 일제히 탄핵하자 태후도 어쩔 수 없어 그를 비밀리에 지방으로 보냈다. 그는 가는 곳마다 지방 수령들에게 흠차대신(欽差大臣, 임금의 명을 받고 특별한 일을 처리하기 위해 파견된 고관)으로 행세하며 위세를 떨쳤는데, 그가 산동에 이르렀을 때 이곳을 다스리던 이가 바로 정보정이었다.

정보정은 안덕해가 나타나자마자 체포해 목을 자르고 조정에 보고했다. 내시가 공식 허락 없이 대궐을 떠났기 때문에 처단했다고 분명히 밝힌 것이다. 태후도 어쩔 수가 없었다. 사실 태감이 공식적인 허락 없이 궁궐을 떠나는 것은 큰 죄에 해당했다. 안덕해의 처단으로 정보정의 이름은 전국에 널리 알려졌고 백성들의 칭송을 받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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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고광석 중국문화연구가 keyesk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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