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雜學 백과|흥미진진 중국의 음식문화(상)

왕실 주방장은 총리급, 인간의 젖 먹여 키운 돼지요리

  • 글: 고광석 중국문화연구가 keyesko@hanmail.net

왕실 주방장은 총리급, 인간의 젖 먹여 키운 돼지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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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실 주방장은 총리급, 인간의 젖 먹여 키운 돼지요리

청증시어, 궁보계정, 마파두부

그런데 당시에는 안덕해가 내시로 위장했을 뿐 사실은 멀쩡한 남자로 태후의 정부이기 때문에 그토록 위세가 당당하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정보정은 그를 처단한 다음 벌거벗긴 시체를 사흘동안 길거리에 방치해 소문이 사실이 아닌 것을 입증하면서 태후의 체면을 세워줬다. 이 사건이 있은 후 그에게 궁보의 명예가 주어졌다.

그렇다면 이토록 대쪽 같은 정궁보가 궁보계정이라는 요리와 무슨 관계가 있는지 알아보자. 정궁보가 사천 총독으로 부임하면서 고향인 귀주에 잠시 들렀다. 일가 친척들이 음식을 장만하느라 고생이 많을 것을 걱정한 그는 친척들에게 닭볶음이나 한 접시 준비하라고 지시했다. 요리사들이 그의 지시를 받아 정성 들여 개발한 닭볶음 요리가 바로 궁보계정이다. 계정(鷄丁)은 네모나게 썬 닭고기를 뜻한다. 원래 귀주요리였으나 정보정이 근무하던 사천 사람들도 먹게 됐고 이제는 분류상으로도 사천요리에 속하게 됐다.

그에 앞선 송나라 시기, 정치가이자 위대한 문학가였던 동파(東坡) 소식(蘇軾)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호를 노도(老?), 즉 식탐 늙은이라고 했을 정도로 대단한 미식가였다.

그가 항주(杭州)에서 태수를 지낼 때의 일이다. 당시 관리 소홀로 인해 서호의 일부가 메워지고 잡초만 자라 폐허가 되면서 저수지 구실을 제대로 못하고 있었다. 이를 본 동파는 백성들의 힘을 빌어 서호를 완벽하게 복구했다. 항주 사람들이 이를 고맙게 생각해 그에게 돼지를 바쳤다. 백성을 사랑하는 동파는 돼지를 요리해 백성들과 함께 먹었고, 사람들이 그 돼지요리를 그의 호인 동파(東波)를 따 동파육(東波肉, 둥버러우)이라 부르게 됐다.

음식 때문에 관직 버리기도



그밖에도 음식과 얽힌 중국 역사의 에피소드는 무척 많다. 진(晉)의 장한(張翰)이라는 사람은 음식 때문에 관직을 버리기도 했다. 그는 낙양에서 벼슬을 살았는데 가을철이 되자 고향의 순채국(蓴菜湯)과 농어회(?膾) 생각이 간절했다. 그는 사표를 내던지고 천릿길 고향으로 돌아왔다. 이때부터 순로지사(蓴?之事)라 하면 고향 땅, 고향음식을 그리워함을 뜻하게 됐다. 우리 같으면 관직에 오른 이가 한낱 음식 때문에 관직을 버린 것에 대해 두고두고 비난하겠지만, 중국에서는 미식가의 한 표본으로 존경을 받는다고 한다.

삼국시대 오나라의 왕 손책(孫策)과 대만의 장개석(蔣介石) 전 총통은 음식을 먹으면서 놀란 만한 판단력과 재치를 보이기도 했다.

어느 날 손책은 사탕수수로 만든 시럽을 먹으려다가 그 위에 쥐똥이 떨어져 있음을 알게 됐다. 환관이 보관책임자를 파면시킬 것을 건의하자 손책은 책임자를 불러 물었다.

“너는 저 환관에게 원한을 살 만한 일을 한 적이 없느냐?”

그러자 “환관이 관물을 빌려달라는 것을 거절한 적이 있다”고 대답했다. 이에 손책은 “쥐똥이 푹 젖지 않은 것으로 보니 이는 창고에서 가지고 오는 동안에 넣은 것”이라며 환관을 처벌했다.

몇십 년 전 우리나라 고위정치인 중 한 사람이 대만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당시 장개석 총통이 그를 위해 특별만찬을 베풀었는데, 식탁에 음식과 함께 손을 씻을 차가 담긴 그릇이 나왔다. 그는 별 생각 없이 이것을 마셔버렸고 이에 식탁 분위기는 갑자기 어색해졌다. 장총통은 얼른 자기 앞의 사발을 들어 자연스럽게 마셨다. 대만의 최고 권력자가 차를 마시니 다른 사람들도 감히 손을 씻을 수가 없었다.

다민족 국가인 중국에서 음식은 민족화합의 수단이기도 했다.

청나라 시절 만주족은 자민족 우대 정책을 시행했다. 연회에서도 이같은 질서는 엄격히 지켜져, 궁중요리도 만주식 연회를 뜻하는 만석(滿席)과 한족식 연회를 뜻하는 한석(漢席)으로 구분했다. 만석은 여섯 개, 한석은 다섯 개의 등급이 있었는데, 여기에 쓰이는 재료와 예산에 대해서 각각 규정이 정해져 있었다.

이렇게 만석과 한석으로 구분되던 궁중음식이 만한전석으로 합쳐진 것은 청나라 강희제 말기 때다. 강희제는 자신의 회갑을 맞아 65세 이상 노인 2800명을 초청해 대연회를 베풀었다. 이 자리에서 그는 만석과 한석을 두루 갖춘 잔칫상을 가리켜 친히 만한전석(滿漢全席)이라 말했다. 그는 만족과 한족의 산해진미를 두루 갖춘 연회에 보다 특별한 정치적 의미를 부여하고 싶었던 것.

지금까지 중국의 음식문화가 역사 속에 어떻게 자리했는지 살펴보았다. 마지막으로 음식문화와 인간의 심성이 어떤 관계를 가지는지 알아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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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고광석 중국문화연구가 keyesk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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