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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문학가 이오덕의 들판이야기

산산조각으로 박살나는 겨레 모둠살이

산산조각으로 박살나는 겨레 모둠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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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을 잃은 큰며느리는 그 뒤로 더한층 고된 시집살이를 하게 되었다. 남편이 살아 있을 때 난 두 살짜리 아들과, 남편이 죽은 뒤 뱃속에 들어 있던 딸아이가 또 태어나서 두 남매를 키우게 되었다. 그럭저럭 또 세월이 흘러 그 아들이 장가를 갔고, 며느리의 손자, 곧 천씨 노인의 증손자가 하나 나서 초등학교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런데 1학년의 첫 소풍을 가던 어느 봄날, 할머니 손을 잡고 가다가 그만 버스에 치여서 죽었다. 그 아이 아버지(천씨 노인의 손자)는 자식이 죽은 뒤로 술로 살다가 역시 교통사고로 병신이 되고 말았다. 두 다리가 거의 다 끊어지다시피 되었는데, 겨우 수술을 해서 이어 붙였다. 지금은 목발에 의지해서 간신히 발을 떼어놓을 수 있게 되었다.

순경을 하던, 천씨 노인의 둘째아들도 교통사고로 죽었다. 천씨 노인은 증손자가 소풍길에서 교통사고로 죽은 그 다음해에 농약을 마시고 스스로 죽었다. 버스에 치여 죽은 아이의 엄마는 얼마 전에 연탄불로 두 번이나 자살을 하려고 했지만, 죽지 못하고 지금은 식물인간이 되어 있다.

우리 마을이고 어느 마을이고 교통사고로 죽거나 크게 다친 사람이 없는 집이 거의 없다. 뱀과 개구리들이나 그 밖에 온갖 산짐승들이 차바퀴에 깔려 죽어가는 것과 조금도 다름없는 재앙을 시골 사람들은 끊임없이 덮어쓰고 있는 것이다. 또 농약의 해독으로 죽거나 병든 사람이 없는 집도 찾아보기가 어렵다. 온 나라의 농촌이 다 이렇게 되어 있다.



그 옛날에는 아무리 세금과 소작료가 가혹해도 그래도 깨끗한 자연 속에서 땀 흘려 일하는 것이 즐거워서 살 수 있었다. 나무 열매를 따먹고, 풀뿌리를 캐어 먹고 온갖 산나물을 먹으면서 노래하며 살았다. 그래서 건강한 마음으로 이웃끼리 정을 나누면서 사람답게 지냈다. 자살하는 농사꾼이 어디 있었던가? 그런데 지금은 우리 농민들이 멸종되어가는 비참한 동물이 되고 말았다. 정치는 자연과 농민을 철저하게 팔아먹고 죽이는 길로만 미친 듯이 달려가면서 조금도 반성할 줄 모른다. 다만 자기 중심으로 눈앞의 잇속만 생각하면서 앞날은 나 몰라라 하는 꼴로 되어가고 있다.

신동아 2003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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