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의장의 감금은 지난해 8월31일에도 있었다. 이때는 서울 용산구 한남동 의장 공관에 갇혀버렸다. 김정길(金正吉) 당시 법무부 장관의 해임건의안 처리를 저지하기 위해 민주당 의원 60여 명이 공관을 찾아 박의장의 출근을 막은 것이다. 결국 박의장이 사회를 보지 못해 해임건의안은 자동 폐기됐다.
당시 한나라당 부총무들도 공관에 있었다. 의장의 출근을 돕기 위해서였다. 부총무들은 “같이 나갑시다”라면서 박의장을 부추겼다. 그러나 박의장의 단 한마디에 일순간 잠잠해져버렸다. 박의장은 부총무들에게 “내가 나갈 테니 옆에 서서 밀어라. 그러면 치고 박고 할텐데 한번 해보자. 그러나 분명히 뉴스에 나갈 것이고 언론에 당신들 얼굴이 나오면 차기 선거에서 떨어질 것이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당시 박의장은 몸싸움 없이 공관에 그대로 있었다.
“과거 의장들은 이런 상황에서 뚫고 나가는 모습을 보였을 것이다. 이렇게 발버둥을 쳤지만 결국엔 못 나갔다는 것을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해서였지. 그러나 그런 모습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의장 공관이나 의장실 점거는 내 대에서 끝나야 한다. 과거의 행태에서 벗어나야 한다.” 박 의장은 그날을 이렇게 회고했다.
의원 152명 만나 ‘로비’
국회는 1월22일 대정부질문 방식을 기존의 일괄질문, 일괄답변에서 ‘일문일답’방식으로 바꾸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국회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6월20일 국회 운영위 전체회의에선 국회의 재정통제권과 행정부 견제감시 기능을 강화하기 위한 국회의장 직속 예산정책처 신설을 골자로 한 ‘국회예산정책처법’이 통과됐다.
이 두 법안이 통과되기까지는 박의장의 ‘눈물나는’ 대(對)국회의원 로비가 있었다. 국회운영의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것은 박의장의 평소 소신. 이를 위해 박의장은 국회법 개정안을 내놓았지만 의원들은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심의를 미루고 있었다.
박의장은 이 법안의 통과를 위해 밤낮으로 국회의원을 만나 설득작업을 폈다. 1명도 좋고 2명도 좋고 시간만 나면 의원들을 만나 식사를 대접하며 ‘로비’를 했다.
“무심코 수첩을 보니 그동안 만난 의원이 무려 152명이나 되더군. 양당 총무들에게도 수십 번이나 부탁을 했는데 부탁할 때는 ‘좋다’고 해놓고선 돌아서면 ‘도루묵’인 거야.”
박의장은 1차 심의 상임위인 운영위 소속 의원들에게는 ‘각별한’ 로비를 펼쳤다. 두 차례나 의장 공관으로 불러 잘 마시지도 못하는 ‘폭탄주’까지 곁들여 설득을 했다.
‘이 정도 했으면 됐겠지’ 싶어 박의장은 독일로 출장을 떠났다. 그러나 독일 현지에 도착하자마자 박의장은 최구식(崔球植) 공보수석으로부터 “국회법 통과가 의원들의 무관심으로 어렵다”는 보고를 받았다. 박의장은 그 즉시 의원들에게 국회법 개정안의 필요성을 담은 e-메일을 보냈고 그것이 의원들의 ‘심금’을 울렸던지 마침내 국회법은 통과됐다.
박의장은 국회예산정책처법을 통과시키기 위해 한 의원에게 양주까지 ‘뇌물’로 바쳤다.
“당시 운영위소위 위원장인 한나라당 임인배(林仁培) 의원이 이 법안에 대해 특히 반대를 했어. 할 수 없이 불러내 저녁을 사주고 양주 한 병을 뇌물로 줬지. 민주당 함승희(咸承熙) 의원도 이 법안을 반대해 따로 불러내 설득을 했는데 막상 심의에 들어간 함의원은 목소리를 높여가며 이 법안에 대해 반대를 하더군. 하는 수 없이 회의장에 들어가 함의원의 어깨를 ‘툭’ 쳤지. 그랬더니 조금 수그러지더라고. 너무 어렵게 법안이 통과됐어.”
“내 집무실 의자를 가져가고 싶다”
박의장은 의장 임기가 끝나면 정치를 접고 사회봉사활동을 할 계획이다. 정치에 대한 미련은 없지만 단 한 가지 국회를 떠나면서 가져가고 싶은 것이 있다. 자신이 앉았던 의장실 의자가 그것이다.
“내가 앉은 의자 뒤에 ‘박관용 국회의장 임기 00에서 00까지’라는 문구를 적어 가져가고 싶다. 미국에 갔더니 국무회의 장소에 있는 의자에 각료의 이름과 임기가 적혀 있더군. 그 각료가 퇴임하면 의자를 준다는 거야. 의자가 몇 백년 가는 것은 아니지만 주변사람이나 자식이 볼 때 아버지가 의장 하고 이것 하나 가지고 나왔구나 하는 표시는 있어야 하지 않겠어. 퇴임 후 그 의자에 앉으면 거기에 앉아서 고심했던 많은 일들이 여운으로 남을 것 같아.”
박의장은 자신의 눈에 비친 국회의원들의 모습에 대해 할말이 많은 것 같아 보였다.
“국회의원이라면 아침에 일어나 국가와 국민을 위해 뭘 할지를 한번쯤 생각해야 하는데 그런 의원이 많지 않은 것 같아 답답하다. 국회의원으로 출세했다는 것만으로 만족하고 있는 게 아닌지…. 지나친 소리인지 모르겠지만 의사당에서 의원들을 볼 때면 늘 이런 생각이 들어.”
지금까지 어느 누구에게도 하지 못한 박의장의 속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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