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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비핵화공동선언, 한국은 북한에 속았다

北, 재처리 포기 동의했지만 기술적으로 불가능

  • 글: 황일도 동아일보 신동아기자 shamora@donga.com

1992년 비핵화공동선언, 한국은 북한에 속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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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비핵화공동선언, 한국은 북한에 속았다
그러나 정작 비핵화선언 논의과정이었던 고위급회담에 참석했던 인사들의 반응은 엇갈린다. 한 참석자는 “그런 이야기는 당시에 들은 기억이 없다”고 말했지만, 또 다른 참석자는 “관련정보를 알고는 있었지만 회담에서 언급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런 세부적인 사항은 이후 사찰단계에서 논의될 것이기 때문에 말 그대로 ‘선언적 의미’를 갖는 공동선언 내용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따지고 들 이유는 없었다는 것이다.

이상의 내용을 정리해보면 대략 다음과 같다. 당시 회담을 진행했던 우리측 관계자들은 주로 미국측이 제공한 정보를 바탕으로 회담에 임했다. 전문적인 조언을 통해 논의내용을 검증하거나 지원해줄 만한 인물이 과연 있었는지, 있었다면 과연 누구였는지는 명확하게 확인되지 않았다. 설령 우리측 일부 인사들이 관련정보를 알고 있었다 해도 이것이 북측의 진실성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가늠자라고 판단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사실 비핵화선언을 위한 협상은 매우 급박하게 진행됐다. 구체적인 논의는 12월26일부터 연쇄적으로 가진 세 차례의 판문점 접촉을 통해 이뤄졌다. 최종합의가 이뤄지기까지 불과 일주일을 넘기지 않은 초스피드 협상이었다. 특히 12월31일 진행된 마지막 협상은 9시간에 걸쳐 밀고 당기는 신경전 끝에 저녁 7시가 되어서야 끝났다.

우리측이 이렇듯 급하게 협상을 진행시키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이미 12월13일 합의를 끝낸 남북기본합의서가 무효화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회담에 참석했던 당국자의 설명을 들어보자.

“남북기본합의서는 2월 북한 최고인민회의의 승인을 거쳐야 정식으로 발효될 수 있었다(남한에서는 국가 대 국가간의 협약이 아니라는 이유로 국회 비준을 거치지 않았다). 문제는 3월에 예정돼 있는 팀스피리트 훈련이 예정대로 실시될 경우 북한이 기본합의서를 비준할 리 없다는 사실이었다.



매년 3~4월 열리는 팀스피리트 훈련을 실시하기 위해서는 1월부터 캘리포니아나 하와이로 미군 병력이 집결·이동해야 한다. 해로를 이용하는 경우에는 이동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 따라서 12월31일의 5차 고위급회담에서 비핵화선언이 합의되지 못할 경우 팀스피리트 훈련을 위한 준비작업이 시작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되면 당연히 기본합의서도 공중으로 사라질 형편이었다.”

“비핵화 협상, 미국 요청 따른 것”

이 때문에 우리측이 막판까지 요구했던 ‘상호강제사찰’에 관한 규정은 끝내 공동선언에 반영되지 못했다. 시간에 쫓긴 우리측이 마지막 순간에 양보했기 때문. 대신 양측이 합의하는 대상에 대해서만 사찰을 실시하는 것으로 결론이 내려졌다.

그러나 아직 마지막 의문은 남아 있다. 설령 우리 정부가 이를 알지 못했거나 간과했다 손 치더라도 미국은 왜 비핵화선언의 실효성에 대해 침묵을 지켰을까 하는 점이다. 이러한 의문을 풀기 위해서는 비핵화선언이 처음 등장하게 된 배경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앞서의 정부 당국자는 이에 대해 몇 가지 단초가 될 만한 사실을 털어놓았다.

“사실 비핵화선언에 관한 북한과의 협상은 미국측 요청에 따른 것이었다. 1991년 초 미국은 여러 경로를 통해 우리 정부에 ‘남북고위급회담에서 이 문제를 언급하라’고 요구했다. 소련의 위협이 사실상 사라진 이 무렵, 미국은 한국을 비롯한 세계 곳곳에 배치해 두었던 전술핵무기를 철거하기로 마음먹은 상태였다. 따라서 남한 내 핵무기 철수를 계기로 북한 핵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을 생각했던 것이다.”

그해 7월2일 워싱턴에서 있었던 한미 정상회담에서 부시 당시 미 대통령은 노태우 대통령에게 이 문제의 결정권을 일임한다. 이에 따라 그간 남한 내 핵무기의 존재에 대해 NCND로 일관하며 북한의 ‘비핵지대화’ 제안을 일축해오던 우리 정부는 10월 열린 4차 남북고위급회담에서 이 문제를 정식으로 제의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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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황일도 동아일보 신동아기자 shamo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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