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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비핵화공동선언, 한국은 북한에 속았다

北, 재처리 포기 동의했지만 기술적으로 불가능

  • 글: 황일도 동아일보 신동아기자 shamora@donga.com

1992년 비핵화공동선언, 한국은 북한에 속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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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애초에 자신들의 제안으로 시작한 비핵화선언에 대해 굳이 미국측이 ‘초를 칠’ 이유는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핵무기 철수를 통해 평화 이미지를 굳힘으로써 1992년 말로 예정돼 있던 대통령선거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고 싶어하던 (아버지) 부시 행정부 입장에서 남북비핵화선언은 어쩌면 꼭 필요한 ‘양념’이었을 것이다. 부시 대통령은 대선을 4개월 앞둔 1992년 9월 유럽과 한반도에 배치했던 전술핵무기 철수를 완료했다고 공개 선언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렇게 체결된 비핵화선언은 심각한 우여곡절을 겪으며 사실상 효력을 잃는다. 1992년 5월 북일수교 회담에 나온 북한 대표가 “이미 소량의 플루토늄을 추출했다”고 언급하고, 한달 뒤 영변을 방문하고 돌아온 IAEA의 한스 블릭스 사무총장이 “북한이 건설중인 재처리 시설은 실험용이 아닌 대규모 공장시설”이라고 밝히는 등 파문이 이어졌다. 이로써 ‘비핵화선언 파기’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고, 일부에서는 “1992년 3월 예정돼 있던 총선을 의식해 우리 정부가 공연히 ‘오버’한 것 아니냐”고 비판하기도 했다.

비핵화선언에 따라 1992년 3월19일 첫 회의를 가진 남북핵통제공동위원회는 사찰규정과 방식을 두고 의견대립을 거듭하다 이듬해 1월25일 위원장 접촉을 끝으로 지금까지 한 번도 열리지 않았다. 이 위원회에서도 Magnox 관련 논의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 참석자들의 전언. 당시 논의과정에 참여했던 우리측 관계자는 “사찰을 하느냐 마느냐가 주요 쟁점이었기 때문에 Magnox 폐연료봉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고 전하면서 “우리 정부 내부적으로도 심도있게 논의되지는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덧붙였다.

맺은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다?

비핵화선언이 발효된 지 11년7개월이 지난 지금, 선언 자체는 사문화됐고 한반도는 여전히 북한 핵문제로 위기에 봉착해 있다. 당시 협상과정에 참여했던 우리측 고위관계자는 익명을 전제로 “비록 지켜지지 않았을지라도 남북이 합의한 선언의 의미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적어도 북한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는 사실에 대해 문제를 제기할 근거는 확보한 것 아니냐는 논리였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북한은 속였고 남한은 속았다는 사실이다. 그때의 시작도 그랬고 지금의 결과도 그렇다. 그래도 한 가지 남은 기대는, 당시 우리 정부가 모르고 속은 것이 아니라 남북관계 개선과 한반도 비핵화라는 대의를 위해 ‘알고도 속아준 것’이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렇지 않으면 한번 더 ‘대한민국의 실력’이 실망스러워지는 까닭이다.

신동아 2003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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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황일도 동아일보 신동아기자 shamo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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