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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계획도시를 가다 ⑤|러시아 아카뎀고로도크

시베리아 중흥 노린 ‘과학 러시아’ 전초기지

  • 글: 황일도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hamora@donga.com

시베리아 중흥 노린 ‘과학 러시아’ 전초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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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주단지를 둘러본 다음날은 도시의 남쪽 끝 한적한 숲속에 위치한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시베리아 지부(SORAN) 박물관’을 찾기로 했다. 이 도시의 시작이 궁금해진 까닭이다. 왜 하필이면 이 추운 시베리아 한복판에 연구도시를 세운 것일까.

박물관 앞에 이르자 ‘이 건물은 아카뎀고로도크 건설을 추진한 주인공인 미하일 라브렌체브 박사가 살던 집을 개조한 것’이라는 표지판이 방문객을 맞는다. 초인종을 누르니 인상 좋은 안내원이 나와 한숨 돌릴 틈도 주지 않고 설명을 시작한다.

1950년대 후반, 스탈린의 중앙집권적 통치체제를 막 벗어난 소련 정부는 모스크바와 레닌그라드 등지에 집중되어 있던 기초과학 연구역량을 시베리아로 분산시키기 위해 특단의 정책이 필요하다고 결론짓는다. 영토의 불균형 개발을 시정하고 시베리아의 엄청난 천연자원을 효과적으로 개발하기 위한 전진기지가 필요하다는 이유였다.

이에 따라 흐루시초프 정권은 1957년 5월 ‘소비에트 과학아카데미 시베리아 지부(SOAN SSSR·사회주의 붕괴후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시베리아 지부(SORAN)’로 개칭) 창설에 관하여’라는 결의안을 통과시키고 SOAN SSSR이 위치할 과학도시 아카뎀고로도크의 건설을 확정한다. 이 아이디어를 주도적으로 추진했던 소련 탄도미사일학의 대부 라브렌체브 박사가 SOAN SSSR의 초대의장을 맡으며 건설과정을 진두지휘했다. 박물관의 니콜라이 쉐르딘 소장은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설명한다.

“아카뎀고로도크와 SOAN SSSR의 창설에는 스탈린 시대를 재평가해야 한다는 흐루시초프 정권의 의도도 담겨 있었어요. 특히 지나친 중앙통제로 기형화된 과학연구를 독립적으로 자유롭게 풀어줄 필요가 있었던 거죠. 이 때문에 중앙정부는 아카뎀고로도크 건설과정을 전폭적으로 지원했고, 각 분야 최고수준의 학자들과 청년 연구자들은 보다 자유롭게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을 찾아 안락한 대도시를 버리고 시베리아행 열차를 탄 겁니다.”



이 시기 아카뎀고로도크의 도시설계 철학을 듣기 위해 만난 김유코(한국명 김유광·70)씨는 일곱 살때 부모를 따라 고향인 안동을 떠나 사할린에 정착했던 인물이다. 해방 후에도 고국에 돌아가지 못한 그는 대신 1950년대 후반 아카뎀고로도크가 건설될 무렵 시베리아에 왔다. 30대의 젊은 나이에 고려인으로서는 최초로 국영건설업체 사장이 된 그는 이후 아카뎀고로도크의 주요 건물을 건축하는 과정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그는 이 도시의 설계 컨셉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실 시베리아에 건설된 도시는 모두 계획도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모스크바 인접지역에 집중돼 있던 인구와 역량을 의도적으로 분산시켜 시베리아 개발을 가속화하기 위한 방편으로 세운 도시들이니까요. 그 중에서도 아카뎀고로도크는 사회주의 생활양식을 가장 잘 반영한 구조입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낮에는 일하고 저녁에는 문화생활을 즐긴다’는 것이죠. 여가시설이 연구단지 안에 모여 있는 것은 저녁 5시가 되어 사람들이 퇴근하자마자 영화나 연극, 음악공연 등을 같은 공간에서 즐길 수 있도록 한다는 구상에 따른 것입니다. 상당히 낭만적인 컨셉트인 셈이죠. 재미있는 것은 이러한 생활양식이 마르크스의 저작 속에 담겨있는 이상적인 라이프스타일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라는 점입니다. 당시 소련의 모든 학문이 그랬듯 건축학도 사회주의를 실천하는 도구였으니까요.”

도시를 위해 호수를 만들다

이러한 컨셉트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아카뎀고로도크 옆 오브강에 만들어진 엄청난 규모의 저수지(길이 11km, 폭 2km)다. 중앙아시아에서 발원해 시베리아를 가로질러 북극해로 나가는 오브강 상류에 세워진 이 저수지는, 일단 아카뎀고로도크에서 사용할 전기도 만들어내지만 연구도시 주민들의 여가생활을 위한 휴양공간으로서의 기능이 더 많이 고려됐다고 한다. 과학자들이 언제든 수영과 요트를 즐길 수 있도록 일부러 호수를 만들었다는 것이 김씨의 이야기다.

이러한 문화시설들은 다른 지역에 근무하고 있던 우수한 과학자들을 이곳으로 유인해오기 위한 ‘당근’이었던 셈이다. 모스크바 인근의 중심지를 버리고 시베리아에 자원하도록 만들 메리트는 풍요로운 자연과 이를 충분히 활용한 여유로운 생활방식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아카뎀고로도크에서 가장 분위기가 좋은 졸로토돌린스카야 거리에 다른 러시아 도시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단독주택 단지를 조성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다시 김유코씨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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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황일도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hamo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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