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9월호

탤런트 노주현의 민어매운탕

삼복 더위 날리는 얼큰한 국물 맛

  • 글: 엄상현 기자 gangpen@donga.com 사진: 김용해 기자 sun@donga.com

    입력2003-08-26 15: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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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탤런트 노주현의 민어매운탕
    백성 민(民)에 고기 어(魚), 민어(民魚). 이름 그대로 예로부터 서민들이 가장 즐겼던 생선이다. 아무리 가난해도 제상에 민어만은 꼭 올렸다.

    조상들의 식생활과도 매우 밀접하다. 민어의 부레는 젓갈로도 애용됐지만, 교착력이 강해 풀(일명 민어교)로 요긴하게 쓰였다. 햇볕에 말린 뒤 끓여 만든 부레풀은 문갑이나 쾌상, 칠보장롱을 비롯해 합죽선의 부챗살, 갓 대 등 다양한 곳에 사용됐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민어교에 대한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이가 적지 않다. 어린 시절 연싸움을 해본 이라면 그 쓰임새를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올해로 35년째 연기생활을 하고 있는 노주현(盧宙鉉·57)씨에게도 그런 추억이 있다. 그가 초등학교에 다닐 무렵, 지금 한창 철거공사중인 청계천은 복개되지 않은 상태였다. 도랑 치고 가재 잡고, 광교 등 청계천을 가로지르는 다리 위에서 친구들과 연싸움을 즐기던 때다.

    “연싸움을 할 때 사금파리를 곱게 빻아 부레풀로 연실에 묻히면 최고였어요. 실이 뻣뻣해지지도 않고, 사기 조각도 잘 붙어서 다른 연은 상대가 안 됐지요. 어머니 몰래 사기그릇 훔쳐서 연싸움을 하다가 들켜 혼나기도 했죠.”

    어려서부터 어머니가 여름철마다 끓여주시던 민어매운탕 맛을 잊지 못해 노씨는 요즘도 복날이면 민어매운탕을 즐긴다. 민어매운탕은 다른 매운탕과는 달리 기름기가 적다. 흰살은 담백하면서 단맛이 난다. 비린내도 거의 없다. 그래서 비만이나 당뇨, 고혈압 환자들에게 권장할 만한 음식이라고.



    노씨는 바쁜 방송일정 속에서도 배재중·고교 시절부터 친하게 지내온 친구들을 위해 앞치마를 둘렀다. 삼보수산 대표 선문훈씨와 인쇄업자 황규명씨는 그의 40년 지기다.

    민어매운탕 재료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당연히 민어다. 요즘엔 중국산 홍민어가 많은데 국산에 비해 맛이 크게 떨어진다. 홍민어는 껍질까지 핑크빛을 띠는 반면 국산은 회색에 검은 줄무늬가 있어 구분하기 어렵지 않다. 국산 민어를 선택할 때도 눈알이 투명하고 아가미가 붉은지, 비늘은 상하지 않았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신선도의 기준이다.

    요리의 첫 단계는 갖은 양념을 넣어 얼큰한 소스국물을 만드는 일. 4인분 기준으로 물 6대접에 고춧가루 10스푼, 찐마늘 2스푼, 미림과 청주 각각 2스푼씩, 생강 4쪽(얇게 썬 것) 정도를 넣고, 굵은소금과 설탕 1∼3스푼 정도로 간을 맞춘 후 15분 정도 끓인다.

    국물이 충분히 우러나면 민어를 넣어 익힌다. 그 다음 미나리와 쑥갓, 깻잎, 호박, 홍고추, 콩나물, 팽이버섯 등 야채를 넣는데, 맛을 제대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국물에 넣자마자 바로 불을 끄고 먹는 것이 좋다. 담백한 민어 살과 얼큰한 국물에 향긋한 미나리와 쑥갓, 깻잎 등 야채가 어우러진 맛이 절묘하다. 깔끔하면서 개운한 뒷맛에 소주 한잔이 제격이다.

    탤런트 노주현의 민어매운탕

    노씨와 친구들이 민어매운탕을 안주 삼아 술 한잔 마시고 있다.

    오랜만에 마주앉은 노씨와 친구들 사이에 민어매운탕을 안주 삼아 술잔이 몇 순배 돌고 나니 그의 이미지 변신에 대한 이러저러한 이야기들이 나왔다. 노씨는 2001년 SBS 시트콤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를 시작으로 코믹한 이미지 쌓기에 나섰다. 요즘엔 시트콤 ‘똑바로 살아라’에서 눈치 없고 둔한, 때로는 유치한 연기를 통해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선사하고 있다.

    의도한 대로 그는 이미지 변신에 성공했다. 항상 단정하고 중후한 멋에 잔뜩 무게가 실렸던 중년의 이미지를 훌훌 털어버린 것. 그는 요즘 그 변화를 피부로 느끼고 있다.

    “방송국에 견학 온 아이들이 나를 보면 ‘악악’거리면서 덤벼듭니다. 그만큼 편하게 생각하는 거죠. 예전 같으면 시선을 피했을 법한 아주머니들도 애써 웃음을 참으며 빤히 쳐다봐요. 조금 우습게 보는 경향이 있어요.(웃음)”

    인터넷 팬클럽도 생겼다. 컴맹인 데다 시간도 별로 없어 제대로 관리하지는 못하고 있지만 예상치 못한 젊은층의 ‘폭발적인 인기’가 그저 좋을 뿐이다. “옛날처럼 계속 무게만 잡고 있었다면 나한테 라디오 진행자 섭외가 왔겠습니까.”

    노씨는 지난해 12월부터 전문MC 김연주씨와 KBS 제2FM(106.1Mhz) ‘안녕하세요 노주현 김연주입니다’를 진행하고 있다. 이어 올해 4월부터는 iTV ‘노주현 노사연의 노노토크’를 맡았다. 지난 1995년 방송을 떠났다가 1999년 말 복귀한 그에게 요즘은 제2의 전성기다.

    “연기는 거의 대부분 대사가 시키는 대로 하는 겁니다. 하지만 라디오 진행은 절반 이상을 내 맘대로 할 수 있기 때문에 나만의 색깔을 표현할 수 있지요. 그런 점이 좋습니다.”



    탤런트 노주현의 민어매운탕

    매일 오전 9시5분부터 10시55분까지 전문MC 김연주씨와 함께 진행하고 있는 KBS제2라디오 ‘안녕하세요 노주현 김연주입니다’ 생방송 장면.

    하지만 모든 이들이 그의 변화를 좋아하는 건 아니다. 그의 이미지 변신은 실제 삶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부인 최성경(50)씨는 그게 무척 못마땅하다. “신혼 때는 60대 할아버지하고 사는 느낌도 있었지만 참 좋았어요. 과묵하고 예의바른 남편이었죠. 그런데 요즘 너무 많이 변했어요. 말도 많아지고 평소에 안 쓰던 말도 자주해요. 못마땅할 때가 많아요.”

    이런 부인의 불만 때문일까. 아니면 이제 다시 솔직한 자신의 모습을 되찾고 싶은 마음에서일까. 노씨는 오는 9월 말로 종영될 시트콤 ‘똑바로 살아라’를 끝으로 당분간 코믹연기는 삼갈 작정이다.

    1968년 TBC 탤런트 공채5기로 입사해 올해로 연기생활 만35년째인 노주현씨. 그는 드라마 ‘아내의 모습’으로 데뷔해 ‘아씨’로 당대 최고의 인기를 누리며 20대를 풍미했다. 1983년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프리랜서’ 선언을 했다가 잠시 고비를 맞은 적도 있지만 다음해 ‘사랑과 야망’을 통해 곧바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50대 중반을 넘어서 코믹시트콤이라는 새로운 장르에 도전해 성공한 그는 “앞으로 라디오 프로그램 1∼2개 정도만 진행하면서 가끔 괜찮은 드라마나 영화가 있다면 출연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그의 또 다른 ‘변신’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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