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정희 시대의 경제는 관치 아래서도 차별화의 역동성을 보여줬다. 포항제철을 방문한 박대통령(왼쪽에서 두 번째).
박정희 패러다임이 성공한 것은 정부가 주도하는 관치경제에서도 이렇듯 엄격한 차별화 원칙을 적용함으로써 경제발전의 기본원리를 실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국내 학계에서는 관치로 인한 자원배분의 왜곡, 즉 경제력 집중을 심화시켰다며 박정희 패러다임을 청산의 대상으로 간주한 반면, 당시 산업정책의 성공적인 측면은 상대적으로 소홀히 취급해 온 것이 사실이다. 물론 여기에는 박정희 체제의 권위주의적 성격에 대해 비판적인 사회 분위기도 중요한 배경이 됐을 것이다.
정부가 잘하는 기업과 농촌을 차별화하는 전략은 ‘관치 차별화 전략’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박정희 패러다임에서 배울 수 있는 무엇보다 중요한 교훈은 차별화가 역동성을 가져온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러한 관치 전략은 불가피하게 정부의 힘을 비대하게 만들어 정경유착, 부패, 민간부문의 지대 추구, 도덕적 해이, 그리고 승복하지 않는 다수의 패자 양산 등과 같은 부작용을 초래, 전략의 지속 가능성을 크게 제약한다. 아마도 박정희 체제의 종언은 바로 이러한 체제 자체의 모순에 기인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규제 받을 능력 있으니 규제한다?]
1960∼70년대의 박정희식 관치 차별화 전략 아래서는 열심히 해서 남보다 앞서는 것이 ‘지원 받을 자격’이 됐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에는, 지나친 단순화의 위험이 없지 않으나, 열심히 해서 앞서가는 것이 ‘규제 받을 자격’ 혹은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받아도 될 자격’으로 바뀌었다.
1980년대 이후 미시경제정책은 박정희 패러다임이 가져온 경제력 집중, 즉 자원배분의 왜곡을 교정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대기업으로의 경제력 집중 현상은 이미 1970년대에도 정책적 교정의 과제로 부각됐다. 박대통령은 대기업에 산업정책적 지원을 하면서도 동시에 대기업의 공개를 유도하고, 지나친 은행 여신에 의존한 경영행태를 바로잡아 기업의 재무구조를 개선하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1980년 이후에는 단순한 기업 재무구조 개선과 기업공개 유도 차원을 넘어 경제력 집중을 해소한다는 명분으로 기업의 각종 경영행태 및 전략을 직접 규제하기 시작했다. 1980년에 제정된 공정거래법은 그후 여러 차례 개정을 거치면서 1987년부터는 계열사 간 상호출자 및 채무보증한도 설정, 지주회사 설립 금지, 순자산 40% 이내 출자총액 제한, 계열사 간 내부거래 규제 등을 주내용으로 하는, 30대 그룹에 대한 경제력 집중 규제정책을 제도화한다. 경제력 집중 억제시책의 목적은 대기업 그룹의 문어발식 다각화를 억제함으로써 대기업 그룹의 확장을 막는 데 있었다.
한편 1970년대에 시작된 여신관리제도도 계속 엄격해져 1984년 이후 30대 그룹에 대한 여신규제와 신규투자 감시가 강화됐다. 그리고 1991년부터는 30대 그룹에 대한 소위 ‘업종 전문화’ 정책이 도입되어 업종 다각화를 통한 대기업의 경제력 확장을 더욱 강도 높게 규제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