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사건 추적

어느 존속살해 여자 무기수의 진실

보험금 노린 살인인가, 부실수사 희생양인가

  • 글: 고상만 대통령소속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 조사관 rights11@korea.com

어느 존속살해 여자 무기수의 진실

5/8
두 번째 설정 역시 자연스럽지 못하다. 적어도 성인의 주먹으로 한 움큼이나 되는 약을 그 새벽에 넙죽 받아, 그것도 물도 아닌 양주 두 잔으로 받아먹는다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럽지 않은 추론이었다. 더 중요한 점은 설령 그것을 먹인다 해도 삼킬 수는 없을 것이라는 식약청 주무과장의 지적이다. 역겨워 먹을 수도 없겠지만 설령 먹는다 해도 이내 다 토하게 된다는 것. 하지만 법원은 그것이 가능하다고 결론 내렸고 그녀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양주병과 술잔은 어디에?

수사기관과 재판부는 김서희가 이 사건의 진범이 분명하다고 단정한다. 하지만 나는 최소한 그 ‘단정’에 의심을 제기할 만한 몇 가지 새로운 사실을 확인했다. 먼저 부검 결과 김서희의 진술과 일치하는 양주와 수면제 성분이 검출됐다는 부분에 대한 의문이다. 결론적으로 보면 부검 과정에서 양주 성분은 검출되지 않았다. 다만 상당한 수치의 알코올과 수면제가 아닌 독실아민이라는 수면 유도제 성분이 검출됐을 뿐이다. 특히 검출된 알코올 성분을 굳이 양주라고 단정할 수 없는 문제였다. 서희의 아버지는 사건 당일 오전부터 내내 술을 마시고 있었기 때문이다.

더 중요한 것은 과연 김서희가 가져 왔다는 일본산 양주가 존재했던 것이냐는 점이다. 경찰은 김서희의 집 냉장고 안에 든 일본산 양주를 가리키는 남동생의 모습을 촬영한 사진을 증거로 내세웠다. 그러나 남동생은 경찰이 증거를 조작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당시 자신은 경찰에게 “일본에서 누나가 사온 변비약 병이 냉장고에 있었다”며 그 위치를 가리켰을 뿐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 사진은 ‘남동생이 일본산 양주가 있는 곳을 가리키고 있다’는 설명과 함께 조서에 첨부됐다. 동생은 이 사진이 경찰에 의해 조작됐음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 수사기록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보다 더 심각한 것은 바로 수면제와 관련된 논란이다. 수사기관은 부검하기 전 수면제가 사인임을 김서희가 알고 있었고 실제 부검 결과 위 속에서 수면제 성분이 검출됐으니 이것만으로도 유죄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충분한 근거가 된다고 말한다.



마침 김서희에게 결정적으로 불리한 간접 증거도 발견됐다. 바로 그녀의 습작소설 중 하나에서 ‘보험금을 받기 위해 2명의 부인을 교묘히 살해한 아버지를 수면제로 살해한다’는 내용의 원고가 발견된 것이다. 경찰은 소설 내용이 이 사건 전개 과정과 매우 흡사하다고 판단, 서희의 혐의를 확신하게 된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이 원고가 김서희의 무죄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증거라고 생각한다. 바로 수면제 성분 때문이다.

김서희가 소설 속에서 아버지를 살해하는 데 이용한 수면제의 성분은 페노바르비탈이었다. 그녀는 이 약의 성분과 효능을 알기 위해 병원 레지던트와 약사 등 전문가를 만나 많은 정보를 얻은 것으로 수사결과 밝혀졌다.

김서희는 경찰의 1, 2회 조서에서 아버지를 살해한 수면제 성분을 물어보는 경찰에게 ‘트라독신 성분의 수면제’라고 진술했다. 경찰은 부검 결과 실제로 수면제에 의한 사망으로 밝혀졌기 때문에 그녀가 범인이 맞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경찰은 사소하지만 중요한 ‘차이’를 무시했다. 사망자의 위에서 발견된 수면제는 소설 속의 페노바르비탈도, 서희가 진술한 트라독신도 아닌 독실아민이었던 것이다. 나는 수사기관이 주장하는 것처럼 김서희가 소설 내용처럼 아버지를 수면제로 살해하려 했다면 응당 그토록 많이 공부하고 연구했던 페노바르비탈 성분의 수면제를 사용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검출된 약의 성분이 그와 전혀 다른 독실아민이라는 사실은 김서희가 이 사건의 진범이 아니라는 반증일 수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토록 연구했던 강력한 수면제 페노바르비탈을 이유 없이 포기한 채 실제 상황에서 수면제도 아닌, 그보다 형편없이 효과가 낮은 독실아민을 썼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검출된 독실아민은 수면제가 아니라 통상 ‘배가 부르도록 먹어도 안전하다’는 수면 유도제다. 쉽게 말하자면 감기약을 먹으면 졸음이 오는 이유가 바로 이 독실아민 성분 때문인 것이다. 실제로 부검 감정서에도 ‘사망자의 위 속에서 13.02ug/ml의 독실아민이 검출됐고, 이는 지금까지 복용 치사량으로 보고된 22.3ug/ml~59.2ug/ml보다 매우 낮은 수치’라고 적혀 있다. 다만 ‘다른 사망의 원인을 찾을 수 없어 약물과 알코올이 합동 작용해 사망에 이른 것으로 추정됨’이라고 했다. 한마디로 다른 사망 원인을 찾을 수 없자, 그동안 보고된 치사량보다 극히 적은 약물을 사망 원인으로 삼은 것이다.

5/8
글: 고상만 대통령소속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 조사관 rights11@korea.com
목록 닫기

어느 존속살해 여자 무기수의 진실

댓글 창 닫기

2023/02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