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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를 빛낸 스타들②

한국의 ‘그레고리 펙’남궁원

“임금보다는 머슴, 007보다는 빨갱이 역 맡고 싶었다”

  • 글: 심영섭 영화평론가 chinablue9@hanmail.net

한국의 ‘그레고리 펙’남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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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그레고리 펙’남궁원

남궁원의 다양한 영화 속 모습. ①잔인한 절대권력자 이미지를 보여준 ‘내시’ ②광기어린 인물을 표현한 ‘업’ ③호쾌한 액션영웅 역을 맡은 ‘원산공작’ ④불안한 중년남성을 연기한 ‘충녀’<자료제공·한국영상자료원>

―쑥스럽기만 하고 좋지는 않으셨나요.

“글쎄요, 한마디로 몸 둘 바를 몰랐죠. 걱정이 많던 중에 신상옥 감독과 최은희씨가 전속 계약을 맺으려고 나를 찾는 거예요. 돈이 얼마가 들든지 남궁원을 잡아라, 그런 분위기였죠. 그렇게 신프로와 전속계약을 맺었는데 한동안은 작품을 많이 못 했어요.

그러다가 5·16이 일어났죠. 그때 영화를 그만두려고 했어요. 공부를 다시 하든 아니면 시장에서 포목장사를 하더라도 스스로 돈을 벌어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슬슬 오기가 나는 거예요. ‘내가 인물이 남보다 못한가, 가정환경이 못한가, 아니면 공부를 덜했나’ 싶었죠. 당시 활동하던 김승호, 이대엽 같은 선배들, 강수일 같은 또래 배우들보다 내가 못한 게 없다는 생각이 들어 ‘한번 해보자’고 다시 마음을 먹은 거예요. 그 무렵 신상옥 감독이 영화합작을 위해 저를 홍콩에 데려갔어요.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영화공부를 시작했어요.”

―당시 평가를 살펴보면 남궁원씨가 신필름에 들어가면서 본격적으로 연기를 가다듬었고 배우로서도 입지를 다졌다는 시각이 지배적입니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연기를 다듬기 위해 애를 많이 썼어요. 남산 드라마센터에 가서 연극 ‘로미오와 줄리엣’의 로미오 역을 맡아보기도 하고, 시민회관에서 ‘닥터 지바고’ ‘부활’의 주인공도 하곤 했는데, 연극 몇 개 한다고 연기가 금방 늘지는 않지요. 대신 홍콩에 가서 6개월, 8개월씩 혼자 있는 동안 공부하듯 연기를 파고들었어요. 할 일이 없을 때면 노트 하나 들고 극장에 갔지요. 샌드위치 하나로 하루종일 버티면서 다른 배우들은 어떻게 우는지, 어떻게 입을 벌리고, 어떻게 눈을 찡그리고, 누가 죽으면 어떻게 절규하는지, 흡사 초등학생처럼 일일이 메모했어요. 그러다보니 대학노트 한 권이 가득 차더군요.



영화를 보고 나와서는 혼자 산꼭대기에 올라 상상하며 연습하고 그랬어요. 그 공부가 큰 도움이 됐어요. 이후 한국에 와서 ‘빨간 마후라’를 찍었는데 신상옥 감독이 깜짝 놀라더군요. ‘와, 많이 발전했는데’ 하면서.” (웃음)

―그럼 남궁원씨 스스로 연기에 만족하게 된 것은 ‘빨간 마후라’부터였군요.

“그때부터 비로소 내 연기가 뭔지 생각하게 됐어요. 연기란 게 본래 남을 의식하지 않고 스스로에게 도취해야 제대로 나오는 거잖아요. 황정순씨나 김승호씨 같은 선배들을 보면 옆에 누가 있든 말든 스스로 취해서 눈을 뒤집어가며 역할을 합디다. 그런데 나는 자꾸 ‘이걸 남들이 보면 어떻게 생각할까’ 하다보니 어색해지는 거예요, 마음이 약해지고. 그러던 것이 슬슬 대담해지기 시작하더라고요. 상대방이 연기하는 걸 받아서 액션을 할 수 있게 되고.

여담이지만 당시에는 몰입하며 연기할 분위기가 안돼 있었던 것도 사실이에요. 그 무렵 한번은 제가 문정숙씨와 장충단 주택가에서 키스를 하는 장면을 찍었는데, 입술이 닿지 않게 한다고 담뱃갑의 셀로판지를 대고서 키스를 하는 정도였으니까요. 여배우가 꼭 그러길 원해서라기보다는 당시 분위기가 그랬어요. 감독도 으레 그러려니 했고. 그러니 연기가 자꾸 형식적으로 흐를 수밖에 없는 거죠. 그런 시대가 있었어요. 옛날 얘기지만 지금도 잊혀지지가 않아요.”(웃음)

신상옥 감독과의 만남

―신상옥 감독에 대해 얘기해 볼까요. 한국 영화사에 한 획을 그은 중요한 인물인데, 북한에 납북되었다 돌아오는 바람에 본격적인 연구가 이루어지지 못해 많은 영화인이 안타까워하고 있습니다. 촬영장에서의 모습이나 연출 스타일이 궁금한데요.

“제가 정말 존경하는 부부였어요. 최은희씨에게서도 후배로서 도움을 많이 받았고, 함께 촬영도 많이 했죠. 저에게 누이처럼 연기지도도 많이 해주셨죠.

신상옥 감독은 뭐랄까, 한마디로 ‘미친’ 사람이에요. 영화밖에 모르는 사람이었으니까요. 촬영장에서 구도를 잡느라 뷰 파인더를 보며 뒷걸음질 치는데, 미처 확인을 못하고 논두렁에 빠졌어요. 흙탕물 속에 넘어져서도 카메라를 놓지 않는 거예요. 그럴 정도로 집착하는 사람이었으니 존경하지 않을 수가 없죠. 물론 영화도 참 잘 만들었고요.

유현목 감독은 소위 문예물을 많이 만들었지만 신상옥 감독은 리얼한 공감대를 만들어내는 데 탁월했어요. 흥행 실적도 좋았고 해외에서도 인정받는 감독이었죠. 당시만 해도 동양에서는 일본 다음에 한국영화가 제일이었으니까요. 대만이나 홍콩에서 신감독을 초청해 함께 작업하는 경우도 많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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