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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호택 기자가 만난 사람

할리우드에서 ‘황산벌’로 날아온 박중훈

“스타가 흥행에 관심없다는 건 ‘싸가지’없는 얘기”

  • 글: 황호택 동아일보 논설위원 hthwang@donga.com

할리우드에서 ‘황산벌’로 날아온 박중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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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산벌’은 코미디영화인데 계백장군은 한 번도 웃지 않더군요. 병사들은 코미디를 하고 장군은 트래지디(비극)를 하는 묘한 구성입니다.

“황산벌에서 5000명이 죽었다고 합니다. 충장(忠將) 계백의 죽음 또는 백제의 패망을 코미디라는 이름으로 희화화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계백장군을 흠모하고 기리는 수많은 사람이 있지 않습니까. 가벼운 유머를 섞되 계백은 장엄하게 그려야 한다는 주문이 있었지요. 이준익 감독은 “당신이 코미디를 잘하는 배우로 각인돼 있고 수염을 달고 갑옷을 입고 사투리를 쓴다는 설정 장치가 재미있으니 거기서 한 번 더 꺾지 말라’는 주문을 했습니다. 하지만 관객이 박중훈이란 배우에게 웃음을 기대할 것 아닙니까. 결국 감독 뜻에 따르기로 했죠. 코미디도 하면서 동시에 장엄함을 주며 두 마리 토끼를 잡기가 벅찼습니다.”

-계백장군이 전라도 사투리를 쓴다고 해서 충청도 쪽에서 항의가 있었다지요.

“원래 김유신 장군은 승장이기 때문에 역사적 기록이 풍부하게 남아 있습니다. 김유신 장군은 경북 김천 생입니다. 그런데 계백은 패장이기 때문에 언제 태어난 사람인지도 모르고 고향에 대해서도 확실한 기록이 없어요. 백제는 충청권, 경기 이남권, 호남권을 영토로 차지한 나라입니다. 부여가 수도니까 충청도 사람이었을 가능성이 크다고는 할 수 있겠지만 호남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역사적 사실을 정면으로 왜곡하는 것이 아니라면 영화적인 가상으로 이해해야 하는 것 아닐까요. 그러나 충청도 분들께 미안합니다. 충청도 사람들은 계백장군에 대해서 자부심을 갖고 있어요. 계백장군 기념동상도 충청도에 있는데 계백장군이 전라도 사투리를 쓰니까 박탈감이 생길 수도 있겠지요.”

삼국통일 이전 신라가 영남정권이라면 고구려는 이북정권이고 백제는 충청·호남 연합의 DJP정권이었다. 이 영화는 본래 2002년 대통령선거 직전에 개봉해 논란거리를 만들어볼 생각이었다고 한다. 시나리오 기획을 맡은 조철현 타이거픽처스 대표는 고향이 전남이다. 박중훈의 부친은 경북 청도 출신이다. ‘영남 2세’인 박중훈은 영화 찍느라 전라도 사투리를 공부했다.



지역감정 확인이 ‘황산벌’ 제작 의도

-신라 병사들이 진흙을 짓밟으면서 ‘백제놈들’을 향해 지역감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장면이 인상적이더군요.

“이 영화를 통해 지역감정을 확인하려는 제작 의도가 있었습니다. 군사정권 때 독재자들이 정권유지를 위해 지역감정을 이용하지 않았습니까. 이 영화에서도 장군이나 고위층이 전쟁에 이기기 위해 병사들에게 백제를 밟아야 한다는 의식을 심어주고 있습니다. 우리 현대사에 비슷하게 대입될 수 있는 부분입니다. 어느 전쟁을 막론하고 총칼 들고 나와 목숨을 잃는 것은 민초들입니다. 이라크전쟁에서도 부시와 후세인이 직접 싸우는 건 아니잖아요.”

-‘거시기’(이문식 분) 병사가 고향으로 돌아와 어머니와 만나는 마지막 장면의 배경 화면에 바둑판처럼 구획정리된 논이 가득하더라고요. 거시기가 뛰어오는 길도 구불구불한 옛길이 아니고 경운기가 다닐 정도로 넓고 반듯한 길인데, 실수인가요, 의도적인가요.

“의도적인 건 아닙니다. 옛날엔 두렁이 구불구불한 논이 더 많았겠지만 반듯하게 구획된 논도 있지 않았겠어요?”

-영화의 마지막 장면과 같이 바둑판처럼 구획된 논은 해방 이후 생긴 겁니다. 그건 분명히 경지정리된 논이에요. 명감독도 디테일에서 실수할 때가 있다고 하더라고요.

“옥의 티다(웃음). 감독을 비롯해 제작진이 농촌 출신이 아니라서 그런 것까지 읽지 못했을 겁니다. 영화라는 게 참 조심해야 돼요.”

이 악물고 연기하다 잇몸치료 받아

얼마 전 CNN 래리 킹 라이브(Larry King Live)에 케빈 코스트너가 출연했다. 코스트너는 ‘늑대와 함께 춤을’ 등으로 우리에게도 익숙한 배우이고 감독부문 오스카상을 받았다. 래리 킹이 “영화가 흥행에 실패했을 때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을 던지자 코스트너는 좋은 영화의 기준을 이렇게 설명했다.

“흥행 여부가 궁극적으로 영화의 가치를 말해준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내가 생각하는 영화의 진정한 판단기준은 5년 또는 10년 후 아들에게 보여줄 만한 영화여야 한다는 거지요. 20년이 지났을 때도 타당하게 느껴지고 같은 의미로 다가와야 합니다. 아들에게 이 영화를 보렴, 이 장면은 꼭 봐야 한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내가 영화를 평가하는 기준입니다.”

-코스트너의 말에 동의합니까.

“영화에서 흥행이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라면 건방진 거 아니예요? 엄청난 돈을 개런티로 받는 스타가 흥행이 잘되면 다행이고, 안 되면 그만이라고 말하는 것은 싸가지없는 얘기예요. 그러려면 돈을 받지 말든지…. 우리가 지금 무인도에서 영화하는 게 아니잖아요. 관객이 있기 때문에 영화를 만드는 거예요. 아무리 뛰어난 소설가의 작품이라 하더라도 책 뒤에 정가가 붙어 있다면 상업소설입니다. 내가 출연한 영화가 유료로 영화관에 걸리는 순간 나는 상업배우가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영화는 좋은데 흥행이 안 된 것이 자랑거리는 아니란 얘기죠. 흥행을 의식해 중심이 흔들리는 영화를 만들어선 안 되겠지만 관객을 끊임없이 배려해야 합니다. 극단적으로 말해 나는 100년 뒤 캡슐에 담긴 필름을 꺼내 명작이라는 평가를 받는 영화보다는 상영 당시 사랑받는 영화를 선택하고 싶습니다. 물론 이 시대에도 사랑받고 다음 시대에도 부끄럽지 않은 영화가 된다면 더 좋겠지만. 나는 이 시대의 외로운 예술가가 되긴 싫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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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황호택 동아일보 논설위원 ht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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