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失鄕記

이역 땅에서의 풍찬노숙(風餐露宿) 27년

失鄕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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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씩 자신을 용서하는 마음이 생기자 나는 닫았던 문을 열고 아령 운동을 시작했다. 때마침 타슈켄트 중앙도서관 외국어과에서 사람을 구한다는 연락이 왔다. 망설일 것도 없이 그곳에 취직했다. 초봉 120루블에 영어, 일어, 혹은 북한에서 오는 서적, 잡지, 신문 등을 번역하는 일이었다.

그 다음해 방을 줄이고 장군이 사준 불필요한 털모 외투 따위를 중고품 매매소에 팔아 돈을 마련해 바이칼호 가까이에 있는 이르쿠츠크행 비행기 표를 샀다. 몽골인들이 많이 살고 있는 이르쿠츠크에서는 나의 외모가 사람들 눈에 띄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무도 나를 눈여겨보지 않았다. 철도역에서 미리 운임표를 보고 국경에서 가장 가까운 캬흐타행 열차 삯을 알아냈다. 나는 자주 캬흐타를 드나들던 사람처럼 열차에 올랐다.

얼마 후 순찰대 장교가 사병 둘을 데리고 나타나 검문을 시작했다. 나는 “캬흐타시에 사는 누이가 아이를 낳아서 보러 가는 길”이라고 짤막하게 말했다. 계획대로 캬흐타에는 저녁 무렵에 도착했다. 택시를 타고 시 외곽에 이르자 낮은 산등성이가 파도처럼 펼쳐졌다. 나는 지도를 보며 능선을 타고 남으로 걷기 시작했다. 마침내 철조망이 쳐진 국경이 나를 가로막았다. 철조망 건너 잔잔히 흐르는 강이 지도에 나온 대로 셀렌가강인가 싶었다. 철조망 곳곳의 감시탑 눈을 피해 나는 독도법 시간에 배운 대로 달빛을 등에 지고 빈틈을 물색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설령 철조망을 넘어 셀렌가강을 헤엄쳐 건넌다 해도 저쪽 강안에 또 다른 철조망이 쳐 있었다. 그 철조망 사이가 완충지대다. 나는 모든 것이 불가능함을 느꼈다. 계획대로라면 몽골로 건너가 울란바토르의 북한대사관을 찾을 생각이었지만 소련의 위성국인 몽골에서 나를 도와줄지도 의문이었다.

나는 혹 쓰임새가 있을지 몰라 가져온 담배 한 개비에 불을 붙여 입에 물었다. 만월(滿月)이었다. 북한에 있는 어머니 생각에 나도 모르게 눈가에 눈물이 괴었다. 어머니를 다시 못 보는 것은 그렇다치고 마치 임종의 시간을 놓친 자식처럼 어머니에게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떠나온 것이 뼈에 사무쳤다. 전쟁때 월남하면서 형이 어머니를 기다리자고 하는 걸 내가 그냥 떠나자고 보채지 않았던가. 허기진 배로 추위에 떨고 있는데 어디선가 동물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오싹 소름이 끼쳤다. 담배를 끄고 오던 길을 되짚어 캬흐타역으로 돌아온 나는 지칠 대로 지쳐 벤치에서 잠이 들었다.

얼마 후 역을 순찰하던 민경이 어깨를 흔드는 바람에 나는 잠에서 깨어난 나는 KGB 지부로 넘겨졌다. 술에 전 한 소령이 나를 심문했다. 나는 모든 사실을 있는 그대로 얘기했다. 국경 철조망에서 내가 버린 담배꽁초를 찾아냄으로써 내 얘기는 사실임이 확인됐다. 나의 협조로 그럴듯한 조서를 꾸미게 된 소령은 내게 매우 우호적이었다. 그는 나의 조서를 갖고 모스크바로 가는 행운을 얻었고 나는 타슈켄트로 압송되었다.



모든 상념 잊기 위해 번역원 일에만 몰두

나는 타슈켄트의 KGB에서 호되게 꾸지람을 들었다. 어련히 때가 되면 북한에 보내줄 텐데 성급히 나서서 자기네 입장만 곤란하게 한다는 것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니 다시 텅 빈 방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중앙도서관을 그만두었다. 다들 카레이스키인 줄로만 알고 있다가 이번에 나의 정체가 드러나자 동료들이 같이 일하기를 버거워하는 눈치였다. KGB에서도 나를 도와줄 생각이 별로 없었다. 다만 돈이 궁하면 적십자 반월협회를 가보라 해서 찾아갔더니, ‘생활이 어려워 재정 원조를 부탁한다’는 신청서를 쓰라고 했다. 일종의 생활보호 신청을 하라는 것이었다. 나는 화를 내며 문을 박차고 나왔다.

나는 그 후에도 몇 번 가시덤불을 헤쳐나오려고 날개를 파닥거린 적이 있다. 일본대사관을 찾아가 속지주의(屬地主義) 원칙에 따라 나를 다시 요코하마항에 데려가달라는 억지를 부리기도 했고 영국대사관을 기웃거리기도 했다.

내가 다시 직장을 얻은 것은 순전히 상공회의소에 다니던 김 아뉴타의 주선 덕이었다. 나는 섬유연구소 정보과에 번역원으로 취직하였다. 주로 화학이나 섬유에 관한 영어 기술서적이나 잡지를 노어로 번역하는 것이었다. 나는 모든 것을 잊기 위해 일에 몰두했다. 다른 번역원들이 빈둥거릴 때도 나는 점심을 먹는 15분을 빼고는 하루종일 쉬지 않고 일에 매달렸다. 한 달 120루블의 월급으로는 생활이 빠듯하다고 하자 아뉴타가 일감을 더 얻어다주었다. 상공회의소에 번역 의뢰가 들어온 것들 가운데 주로 일어로 돼 있는 것을 내게 넘겼다. 상공회의소와 반반씩 번역료를 나눠 가졌는데 영어 번역은 4만 음절에 100루블, 일본어 번역은 그 1.5배를 받았다. 그 뒤 나의 생업이 된 번역 일에 충실하기 위해 나는 기술 관계 노영이나 영로 사전을 닥치는 대로 사 모았다. 50권이 넘는 이 사전들이 지금도 나에게는 전재산이나 다름없다. 농부라면 한평생 일군 밭이라고나 할까. 이러는 가운데 나는 번역에 요령이 붙었고 이춘식의 번역을 원한다는 의뢰인도 점점 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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