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12월호

주한미군 재편, 그 후

대응화력·작전능력은 강화, 휴전선 긴장은 완화 가능성

  • 글: 황일도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hamora@donga.com

    입력2003-11-26 14:2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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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한미군 재편, 그 후
    세계지도를 펼친다. 그 위에 ‘세계의 보안관’ 동지들이 사무실을 열고 있는 지역을 꼽아본다. 5대양 6대주에 안 걸친 곳이 없다. 숨이 가쁠 만하다. 더욱이 9·11 이후에는 아프가니스탄전을 통해 중앙아시아에 진출했고 이라크전으로 중동에도 깃발을 꽂았다. 보안관들은 바쁘다. 몸살이 날 지경이다.

    피 튀기는 전장을 뒤로 하고 먼 곳으로 시선을 돌렸더니 지난 50년간 큰 싸움이 없었던 동네에서 보초를 서고 있는 주한미군이라는 동료가 보인다. 최근 이 동네 분위기는 꽤 조용해졌다. 북한이라는 악동이 하나 있지만 예전같은 독기는 없다. 보안관 한 사람을 이 동네에만 묶어두는 것이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좀더 넓은 구역을 맡겨야겠다. 마침 이 구역에는 중국이라는 목장주인이 목소리를 키우고 있지 않은가. 아직은 우리와 사이가 나쁘지 않지만, 언제 바뀔지 모르는 노릇이니까.

    넓은 구역을 맡기자면 우선 젊고 동작 빠른 친구로 보안관을 교체해야 한다. 기동성 있게 움직일 수 있도록 마구간이 가까운 곳으로 보안관 사무실을 옮겨야겠다. 자리를 비워도 동네가 시끄럽지 않도록 이 동네 출신인 부관을 승진시키고 보초 같은 주요임무를 맡겨야겠지. 대략 만족할 만한 그림이 그려진다.

    1990년대부터 미국의 전략가들이 한반도를 건너다보며 했던 생각은 대략 이런 것이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11월17일 한미연례안보협의회(SCM)를 위해 방한하는 도널드 럼스펠드 미 국방장관. 레이건 행정부에서 국방장관으로 재직하던 시절 이미 군사혁신(RMA·Revolution in Military Affairs)의 개념을 제시했던 그는, 2000년대 들어 육군성의 반발을 무릅쓰고 ‘새로운 미군 만들기’ 작업을 밀어붙이고 있다.



    럼스펠드식 RMA의 얼개는 대략 둘로 나뉜다. 우선 지상군을 기동성 있는 형태로 만들어 넓은 구역을 맡을 수 있도록 하고, 덧붙여 해·공군 전력을 강화해 지상군이 피를 흘리며 싸우는 일을 줄인다. 이렇게 되면 전세계 5개 지역사령부 관할에 흩어져 있는 25만의 미군 병력을 줄이고, 유사시 피해규모를 최소화할 수 있다.

    “한국의 새 정부가 출범하면 재배치와 감축 가능성을 포함한 주한미군 문제를 공식 논의할 계획이다.” 지난 2월13일 럼스펠드 장관의 상원 국방위원회 발언 이후 한국은 주한미군 재편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이후 다섯 차례의 미래동맹회의를 거쳐 마련된 재편 방안들은 모두 럼스펠드식 RMA의 기본 컨셉트를 충실히 따르고 있다.

    앞서 ‘보안관 이야기’를 통해 다시 한번 개념을 정리해보자. 냉전 해체 후 주한미군 3만7000 병력과 2사단의 강력한 화력이 북한만을 노려보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 되었다. 주한미군이 한반도라는 좁을 틀을 벗어나 지역 전체를 ‘안정’시키는 역할을 하려면 언제든 분쟁지역으로 날아가 작전을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크고 움직임이 둔한 경중혼합사단 2사단은 빠르고 움직임이 가벼운 스트라이커 부대(stryker·신속기동여단)로 대체해 미 7공군 기지가 위치해 있는 오산 인근에 배치한다. 대외적으로는 북한의 장사정포 위협에서 벗어난다는 것이 ‘한강 이남 이전’의 이유지만, 내심으로는 마음만 먹으면 순식간에 한반도 이외지역으로 달려나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다.

    이러한 개념을 구체적으로 실현해나가기 위한 액션플랜이 5월말 리언 라포트 사령관이 발표한 ‘향후 3년간 주한미군 전력증강계획’이다. 한편 미군이 한반도를 떠나 있어도 안보에 문제가 없으려면 중요한 임무는 이제부터 한국군이 맡아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6월의 2차 미래동맹회의에서 정리된 ‘주한미군 10개 특정임무 한국군 이양 방안’은 이러한 의미가 있다. 11월17일 제35차 SCM은 이 방안들을 확정짓기 위한 수순이다.

    주한미군의 변화에 따라 한국군도 새로운 도전을 맞고 있다. 미군이 수행하던 임무를 이양받게 됨으로써 전력 및 작전개념의 변화가 불가피하고, 한미연합사 체계에서 누렸던 수동적인 지위 대신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역할을 준비해야 한다. 거시적으로는 북한만을 신경쓰던 안보환경 대신 동북아 전체를 염두에 두는 비전을 세워야 한다. 주한미군의 변화가 세계체제의 틀 안에서 이뤄진 만큼, 한국도 세계체제를 생각해야 할 시점이 온 것이다.

    언제든 나갈 수 있는 미군

    알려진 바와 같이 스트라이커 부대는 럼스펠드가 추진하고 있는 RMA의 핵심 요소다. 향후 10년의 소요를 따져보고 ‘보다 빠르게 작전지역에 보낼 수 있는 보다 강한 군대’라는 조건에 부합하도록 설계한 21세기 미 지상군의 실험 모델인 것이다. 현재 2개 여단이 미국에서 시험가동중이며 2007년까지 총 90억달러의 예산을 들여 6개 기존여단을 스트라이커 부대로 전환할 예정이다.

    대략 3500~4000명으로 구성되는 스트라이커 부대는 기존 미군 보병여단과는 달리 C-130 수송기로 운반이 가능한 최신형 전투차량 LAV-3를 타고 작전을 수행한다. ‘스트라이커 부대’란 이름은 이 전차의 애칭에서 따온 것. 한국에 투입될 예정인 2사단 3여단 스트라이커 부대는 현재 미국 워싱턴주 포트루이스에 주둔하고 있다.

    주한미군 재편, 그 후

    지난해 12월5일(현지시각) 워싱턴에서 열린 제34차 한미 연례안보협의회(SCM)를 마치고 공동기자회견을 갖고 있는 이준 당시 국방장관(오른쪽)과 도널드 럼스펠드 미 국방장관.

    당초 스트라이커 부대 한국 투입 사실이 전해졌을 때 전문가들은 “2사단의 보병여단을 빼고 대신 스트라이커 부대로 대체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2사단 전체를 스트라이커 부대로 대체하는 방안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기존 보병여단에 비해 화력과 기동력이 강화된 스트라이커 부대는 1개 여단만으로도 기계화여단과 보병여단으로 구성된 2사단 전체를 대체할 수 있으리라는 판단이다.

    2사단 전체가 스트라이커 부대로 대체된다고 전제하면 주한미군 감축은 기정사실에 가깝다. 현재 2사단 두 개 여단의 총 병력은 1만2000명. 2사단을 스트라이커 부대로 대체하면 일단 8000~8500명이 줄어든다. 한편 주한 미8군에는 2사단을 지원하는 군수·헌병·통신·항공 등의 여단이 포함되어 있다. 2사단이 스트라이커 부대로 대체되면 이 병력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 숫자가 대략 1000~1200명. 합하면 1만명 감축이라는 숫자가 나온다. 10월20일 미국의 AP통신은 미 국방부 관리의 말을 인용해 “3만7000명의 주한미군 중 최대 1만2000명을 줄일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아직까지는 ‘뜬소문’에 불과하지만 청와대와 국방부 일부 관계자들이 ‘주한미군 철수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는 것 또한 스트라이커 부대의 특징과 관련이 있다. 기동성을 생명으로 하는 스트라이커 부대는 2사단과 달리 언제든 한국에서 빠져나갈 수 있다. 2사단의 경우 철수준비에 최소한 1~2년이 소요되지만, 스트라이커 부대는 일주일 남짓이면 완전철수가 가능하다. 이렇게 되면 한미관계에서 미국의 주도권은 크게 강화된다. 주한미군 주력이 언제든 한반도를 비울 수 있으므로 ‘이라크 파병’ 같은 민감한 사안이 발생할 때 한국이 끌려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일부 전문가들은 스트라이커 부대 배치시기가 이라크 파병과 긴밀한 연관이 있다고 설명한다. 한 전문연구기관 관계자의 설명을 들어보자.

    “미국은 이라크전쟁에 사용 가능한 군사자산을 다 써먹고 있다. 남은 것은 주한미군 2사단과 본토에서 대기하고 있는 스트라이커 부대뿐이다. 당초 미국은 2사단 3여단 스트라이커 부대를 이라크에 보낼 계획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만에 하나 이 부대가 이라크에서 실패하면 RMA 프로그램과 이를 밀어붙인 국방부, 럼스펠드 장관은 모두 엄청난 비판을 받게 된다.

    럼스펠드로선 이러한 위험부담을 피하고 싶을 것이다. 그렇다면 대안으로 주한 2사단을 이라크에 보내고 대신 스트라이커 부대를 조기에 한국에 배치하는 방안을 생각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빨라도 3~4년은 걸릴 것이라던 2사단 재편이 빠르면 몇 개월 안에 완료될 수도 있다.”

    “전력지수는 오히려 증가”

    2사단의 스트라이커 부대 대체로 지상군 감축이 불가피해졌지만, 한미 양국 국방부는 “주한미군의 대북억제력에는 조금도 변화가 없다”고 말한다. 현대전에서 병력의 숫자 자체는 그리 중요치 않은 것이 사실이지만, ‘주한미군 감축’이라는 말에 담긴 정치적 의미와 파급효과는 전혀 다른 문제다. 국방부와 주한미군이 2사단의 스트라이커 부대 대체를 공식화하면서 그 실행방안 격으로 ‘향후 3년간 주한미군 전력강화계획’을 발표한 것은 이 정치적 의미를 의식한 측면이 있다.

    이를 위해 미국은 향후 우리 군의 2년치 전력증강 예산을 뛰어넘는 110억 달러를 투자하기로 했다. 그 내용이 완전히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대체적인 개요는 알려져 있다. 우선 PAC-3형 패트리어트 미사일과 프레데터 등 무인항공기(UAV)가 한반도에 추가 배치되고, 1개 중여단용 장비가 해상에 상시배치되며, JDAM 등 신형탄약확보, 아파치 헬기 개량 등의 사업도 이어진다. 당초에는 오산과 군산의 두 공군기지를 통합해 오산기지에 추가 활주로를 건설하는 방안도 검토됐지만 일단 두 항공단을 유지하는 것으로 결론 내렸다는 후문이다.

    눈여겨볼 대목은 ‘1개 중여단 장비의 한반도 주변 배치’. 경북 왜관 기지에 이미 배치돼 있는 1개 중여단 장비 외에 추가로 그만큼의 장비를 사전집적선에 실어 해상배치하는 방안이다. 이렇게 되면 유사시에 증원병력은 몸만 날아와서 참전하면 된다.

    사실 이 계획은 2사단 재편으로 인해 조기 실현되는 것일 뿐 전쟁 발발시 초기 대응력 강화를 위해 오래 전부터 검토되어 왔다. 장비를 싣고 다닐 사전집적선의 위치도 남해 해상이 최적인 것으로 이미 검토가 끝났다. ‘매우 저속으로 움직이는 항공모함’ 정도로 볼 수 있는 이 집적선은 항공모함보다 훨씬 저렴하지만 활주로를 갖출 수 있다.

    PAC-3 등으로 대량살상무기 방어능력과 C4ISR 능력, 정밀유도무기와 아파치 헬기 등의 개선 및 증강으로 공중타격력을 비약적으로 향상시킨다는 컨셉트에 따라, 병력 감축에도 주한미군의 전체 전력지수는 오히려 높아질 수 있다는 게 국방부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특정임무 이양의 핵심, 대화력전

    미군의 RMA 프로그램은 ‘대규모 지상군 투입을 통한 저지선 유지’라는 종래의 작전개념에서 ‘해·공군을 중심으로 하는 정밀타격을 통해 상대방의 전쟁수행능력을 초기에 무력화시킨다’는 새로운 작전개념으로 전환한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주한미군의 변화 또한 이러한 목표를 현실화하기 위한 것임을 한눈에 알 수 있다. 버팅이 잦은 터프한 인파이터에서 상대방보다 긴 리치와 정확한 눈, 재빠른 풋워크를 바탕으로 스트레이트를 날리는 아웃복서로의 변신을 꾀하고 있는 것이다.

    주한미군이 언제든 다른 지역의 작전에 투입될 수 있다면 더 이상 대북억제임무의 주역할을 담당하기는 어렵다. 지난 7월 양국이 합의한 ‘주한미군 10개 특정임무의 한국군 이양’은 이런 배경에서 나온 것이다. 그 가운데 전력 측면에서 의미가 있는 것으로는, 북한 특수부대의 서해안 해상침투를 저지하는 임무와 유사시 휴전선 인근의 북한 장거리포를 무력화하는 대(對)포병 작전(일명 대화력전)을 들 수 있다.

    우선 특수부대 저지임무를 살펴보자. 현재 미군이 이 임무를 위해 사용하고 있는 전력은 아파치 헬기. 그러나 한국군이 보유하고 있거나 향후 다목적헬기(KMH)사업 등을 통해 증강키로 한 헬기 전력의 수는 미군 아파치 헬기를 대체하기에 부족하다는 것이 국방부의 판단이다. 대신 해병대나 해군, 해안포대 등을 통해 저지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고 한다. 한 군 관계자는 “능선을 타고 저공으로 비행해 들어오는 AN-2 비행기나 소형선박에 실려 동시다발적으로 들어오는 소규모 게릴라가 문제이지, 공기부양정 등을 이용해 해병 작전 형태로 들어오는 부대는 해안포대로도 충분히 저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대화력전 임무는 이번에 이양이 결정된 10개 특정임무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 구체적인 이양시기는 2005년 8월부터 시험평가를 해보고 6개월 단위로 재검토하기로 9월 열린 4차 미래동맹회의에서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언제 이양할지 날짜를 확정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합참에 따르면 현재 휴전선 서부지역 인근에 배치되어 있는 북한측 장사정포(170mm 자주포, 240mm 방사포)는 대략 1100여 문. 시뮬레이션 결과에 따르면 이들은 반격당하기 전까지 1문당 대략 3~5발을 발사할 수 있어서, 한강 이북의 수도권 전역을 쑥대밭으로 만드는 개전초기 북한군의 핵심전력이다. 대화력전은 이들을 조기에 무력화시키는 작전으로 그 동안 미 2사단 소속 다연장로켓(MLRS) 2개 대대(30여 문)와 M109A6 팔라딘 자주포 2개 대대(30여 문) 등이 주력을 맡아왔다.

    당초 대화력전 이양이 발표되자 “미군의 대포병 자산은 본토로 귀환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또한 이 전력의 공백을 메우려면 엄청난 추가 국방비 지출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전망이 쏟아지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 국방부 관계자들은 “임무 이양의 핵심은 대응화력 자체가 아니라 C4ISR의 문제”라고 강조한다. 북한의 장사정포를 공격할 ‘수단’보다는 장사정포의 위치를 파악하고 대응수단에 공격명령을 내리는 ‘두뇌’의 운영을 이양하는 것이 보다 핵심적인 개념이라는 설명이다. 즉 최전방 지역에 배치할 예정인 MLRS와 K-9 자주포 등 대응화력을 연결하는 통제지휘부를 한국군이 맡는다는 이야기다.

    개전 초기 북한의 장사정포가 수도권을 향해 공격을 시작하면 한국군과 미군은 그 탄도방향을 역계산해 개별 장사정포의 위치를 추적하고 반격을 가한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0.1초를 다투는 작업이므로 전체가 완전 자동화되어 있다. 이 자동화의 핵심이 바로 미군이 담당하고 있는 C4ISR센터. 현재 이 C4ISR센터는 미 2사단 기지 내에 위치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화력전 임무가 이양되면 C4ISR센터의 구성 및 운영이 한국군으로 넘어온다. 이는 대응공격의 1차 주공이 미군이 보유하고 있는 전력에서 한국군 보유전력으로 바뀌는 것을 의미한다. 당초 이 임무에서 완전 해제되는 것으로 알려졌던 미군 화력은 보조전력으로 편성되는 것으로 조정됐다. 자동적으로 이뤄지는 1차 반격은 한국군이 맡고 그 후에도 살아 남는 장사정포를 미군 보유전력이 추가 궤멸시킨다는 개념이다. 전체적인 그림을 그려보면 미군 화력이 보조가 되는 대신 한국군 화력이 강화되기 때문에 우리측의 총 대응화력지수는 증가한다고 국방부 관계자들은 설명하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군이 보유하고 있는 대응화력의 상당수는 2사단과 함께 한강 이남으로 이전한다. 여기에서는 거리가 너무 멀어 휴전선 이북 포격이 불가능한 자주포 등은 추가공격 시기에 다시 한강 이북으로 올라온다는 설명이다. 그렇다고 해서 주한미군이 현재 사용하고 있는 대응화력 전체가 반드시 한국에 남는다는 의미는 아니다. 상당수는 한국에 남아 대화력전 보조임무 등에 활용될 수 있지만 미 본토로 돌아가는 화력도 적지 않을 듯 하다.

    이와 관련해 국방부의 한 관계자는 “만약 단순히 대응화력을 우리가 맡는 문제였다면 국방부가 그렇듯 시험평가에 매달릴 이유가 없다. C4ISR의 경우 그 연동과 순간반응이 생명이기 때문에 장기적인 시험평가와 검증체계가 필요한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군이 운영하게 될 새 C4ISR센터의 위치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는 것이 군 관계자들의 설명. 일단은 미군이 사용하고 있는 위치를 물려받을 가능성이 높다. 국방부 관계자들은 C4ISR를 한국군이 맡게 됨으로써 전자전 능력이 향상될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반면 미국 입장에서는 일단 운영비용이 크게 감소하는 효과가 있고, 근본적으로는 대응공격 주력으로 고정되어 있는 MLRS와 팔라딘 등이 자유로워짐으로써 언제든 이들을 분쟁지역으로 보내 써먹을 수 있는 것이다.

    합참 관계자들은 “그 동안 우리 군이 추진해온 전력증강계획은 언젠가 대화력전 임무가 이양될 것이라 예상하고 준비된 것”이라고 말한다. 대표적인 경우가 1997년부터 2008년까지 미국으로부터 구입하기로 한 MLRS ○개 대대다. 고성능 사격통제장치를 장착하고 있는 MLRS는 앞에서 설명한 ‘자동대응공격’의 핵심을 이루는 정밀유도무기. 찰나를 다투는 대응화력전에서 야포나 항공기 등은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사실상 주요 역할을 맡기 어렵다. 1분에 12발의 로켓을 발사하고 3분 안에 재장전이 가능한 MLRS가 반격의 핵심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합참 관계자들의 설명은 거꾸로 미군의 특정임무 이양이 갖고 있는 또 다른 ‘효과’를 방증하는 셈이다. 다름아닌 값비싼 미국무기의 다량구매 문제다. MLRS만 해도 1개 대대당 가격이 대략 4300억원이다. 그런가 하면 특수부대 상륙저지 임무와 관련해서도 아파치 헬기의 추가구입을 노린 것 아니냐는 논란이 있었고, 5차 미래동맹회의에서는 미국측이 특정무기체계 구매를 유도하며 ‘연합전력증강계획’ 수립을 제안했다는 소식이 새어 나오기도 했다. 결국 미국 입장에서는 보유전력의 기동성도 높이고 자국산 무기도 판매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얻게 된 셈이다.

    공군과 해군 관계자들이 특정임무 이양에 대해 싸늘한 시선을 보내고 있는 것도 이와 관련이 깊다. 결국 문제는 돈이라는 것. 이들은 ‘국방예산은 뻔한데 대포병 화력 강화와 C4ISR센터 구축에 천문학적인 예산이 들어간다면 해·공군의 전력증강계획에 차질이 생기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감추지 않는다. 내년부터 2008년까지의 국방중기계획에 반영되어 있는 차기호위함이나 조기경보통제기(AWACS) 사업 등의 진행에 문제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반발이다.

    주한미군 재편으로 한국 정부가 받는 예산상의 압박은 상당하다. 얼마가 될지 규모조차 오리무중인 용산 기지 이전비용이나 연합토지관리계획(LPP)에 따른 비용은 그렇다 쳐도, 특정임무 이양을 위한 대체전력 마련에도 상당한 부담이 든다. 국방부는 “이미 중기계획에 포함되어 있으므로 추가부담은 아니다”고 주장하지만 대략 10조 내외의 예산이 임무이양을 위해 준비되어 온 것으로 추산된다.

    그러나 이러한 국방부 논리를 반박하는 목소리도 만만찮다. “미군 전력이 한 발짝 빠진다고 해서 우리가 꼭 그만큼을 채워넣어야 하느냐”는 반문이다. 전문가들은 이미 한국군 전력이 북한의 공격을 충분히 격퇴할 수 있는 수준이라는 점을 지적한다. 기본적으로 미국은 ‘적을 조기에 섬멸하는’ 작전개념을 채택하고 있는데, ‘격퇴와 방어’를 주개념으로 하는 한국이 그대로 따르는 것은 과잉전력이라는 비판이다.

    거꾸로 생각하면 길이 보인다

    반면 반드시 추가전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하는 전문가들은 “억제력과 방어력의 차이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말한다. 북한이 남침을 결심하지 못하게 만드는 억제력은 지금의 한국군 전력으로도 충분할지 모르지만, 만에 하나 전쟁이 날 경우 수도권을 안전하게 보호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반박이다.

    이 논쟁을 정확하게 이해하려면 잠시 주한미군 재편에 대한 북한의 입장과 예상 반응을 분석해볼 필요가 있다. 미군 전력의 한강이남 재배치가 가시화되면 북한군 또한 어떤 식으로든 현재의 전력배치를 수정할 것이라는 데 대해서는 이견의 여지가 없다. 대부분의 장사정포는 갱도진지에 숨어있기 때문에 이 위치를 당장 변경하기는 어렵겠지만 길게는 일부 장거리 타격전력이 평양-원산선 주변으로 이동할 가능성도 있다. 정밀유도무기를 이용한 미국의 선제공격으로부터 평양을 지키는 것을 목표로 삼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주한미군 재편, 그 후

    대화력전의 핵심 무기체계인 다연장로켓(MLRS)

    더불어 평양-원산선 이남에 배치되어 있는 주요전력 가운데 820 및 강동 포병군단 일부는 후진배치할 가능성도 크다. 미군 주력이 한강 이남으로 내려감에 따라 장사정포로는 타격할 수 없으므로, 장사정포가 무력화된 후 주한미군의 반격을 감당할 2차 타격능력을 남겨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개전초기 승부를 위한 전진배치를 유지하다 보면 오히려 위험할 수도 있는 것이다.

    보다 넓은 관점에서는 북한이 탄도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 강화에 더욱 매달리거나, 반대로 불가침조약의 필요성을 절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재래식전력을 생각하면 미군 주력의 한강 이남 재배치와 이에 따른 북한군 포병전력 일부의 평원선 후진배치라는 그림은, 묘하게도 한반도 긴장완화와 군축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아이러니를 품고 있다. 이를 통해 ‘최소한의 운영적 군비통제’를 실현할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것이다. 휴전선 인근에 잔뜩 몰려 있던 양측 전력이 조금씩만 뒤로 밀려도 ‘기습 가능성’은 크게 줄어든다. 이렇게 되면 필요한 군사자산 또한 줄어든다. 여기에 남북관계 개선이 뒷받침된다면 돌파구가 쉽게 열릴 수도 있다.

    구체적으로는 2사단 재배치와 속도를 맞추어 2006년부터 장사정포 일부를 후방배치 혹은 폐기하게 하는 대신 한국군도 이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면서 대북 경제지원을 강화하는 방안을 생각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한국은 주한미군 재편으로 인해 써야 했던 막대한 예산을 대북지원에 쓰는 셈이다. 당장 대화력전 수행을 위해 MLRS를 추가 도입할 필요성도 줄어든다.

    물론 남북의 재래식전력 감축이 가능한가에 대해 부정적인 목소리도 적지 않다. 핵심은 북한이 과연 이에 동의할 까의 문제. 북한이 현재의 군사동원체제를 뒤흔들 수도 있는 선택을 할 것인가, 북한의 경제가 이를 감당할 수 있는가 등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 적지 않다. 군축은 필연적으로 북한 전체 경제의 70%를 차지한다는 군수산업의 축소를 가져오는데, 자칫 군수산업이 위축되면서 경제 전체가 붕괴했던 구 소련의 전철을 밟을 공산이 있다.

    그러나 북핵과 평화협정, 재래식전력 감축 등을 보다 큰 그림에서 한 틀로 묶는 ‘한반도 긴장완화 로드맵’을 제안하는 이들은 주한미군 재편이 그 모멘텀이 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숨기지 않고 있다. 북핵 문제라는 현안에 갇혀있을 것이 아니라 거시적인 차원에서 해결책을 모색하는 노력이 한국의 외교안보 책임자들에게 필요하다는 충고다.

    작계5027과 전시작전통제권

    주한미군 재편이 한반도 안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생각할 때 마지막으로 고려해야 할 것은 한국과 미국의 관계문제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미군의 재편에는 작게는 한미연합사의 작전계획5027에서부터 크게는 전시작전통제권의 환수와 한미동맹 변화, 동북아 신질서 문제까지 얽혀 있다.

    우선 2사단이 스트라이커 부대로 대체됨에 따라 작계5027의 세부사항도 손질을 해야 한다. 유사시 2사단이 서부저지선 형성의 한 축을 맡던 지상작전개념은 폐기되고 대신 한국군이 주축이 돼 증원군이 올 때까지 1차 방어선을 형성하는 형태로 바뀔 것으로 보인다. 이때 스트라이커 부대는 기동성을 바탕으로 전선을 뒤흔들며 적의 공격대오에 ‘구멍’을 내는 역할을 담당한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이 바로 전시 작전통제권. 주한미군의 주전력이 더 이상 한반도 붙박이가 아니므로, 데프콘2가 발령되면 한국군에 대한 작전통제권이 한미연합사로 이양되는 현재의 구조도 변화가 불가피하다. 양국이 2005년 SCM까지 전시작통권 이양에 관한 구체적인 방안을 연구키로 합의한 것 역시 이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작계5027은 한미연합사의 틀 안에서 한국군과 미군의 작전개념을 함께 기술하던 것을 분리해내야 한다. 림팩(RIMPAC) 등의 해상훈련은 큰 변화 없이 유지되겠지만, 작전개념 변경에 따라 연합사의 지상군 공동훈련도 상당부분 폐기되고 한국군의 독자훈련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개전초기에는 한국군이 독자적인 작전권을 행사할 수 있겠지만, 69만명의 증원군이 도착한 후에는 원활한 공동작전 수행을 위해 주력인 미군이 다시 작전권을 맡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멀게는 임진왜란, 가깝게는 2차 세계대전의 유럽이나 한국전쟁 시기의 북한도 ‘대국’에 지휘권을 넘긴 바 있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아이디어는 한미연합사를 해체한 후 ‘한미기획사’ 정도의 소규모 상설협의체를 신설하는 방안. 한미기획사는 유사시에 대비한 ‘잠정 사령부’다. 평시에는 보유전력 없이 최소한의 조직체계만을 유지하다가 개전 이후 도착하는 증원군과 한국군을 배속받아 작전을 통제한다는 개념이다. 증원군 도착 이후의 편제를 마련하면서 개전 초기 전시작통권은 환수받는 ‘명분’을 얻을 수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전시작통권 환수가 한반도 안보환경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있다고 말한다. 한미연합사가 해체되면 주한미군사령관이 주일미군사령관과 같은 3성장군으로 바뀔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현재는 주한미군사령관이 한미연합사령관을 겸하기 때문에 유사시 한국군 4성장군을 통제하에 두기 위해 4성을 두지만, 일본처럼 병렬형 지휘체계로 전환하는 경우 그럴 필요가 없어진다.

    주한미군 재편, 그 후

    주한미군이 6월 배치한 신형 아파치 헬기(AH-64D 롱보우)

    문제는 4성이 사령관인 경우와 3성이 사령관인 경우는 유사시 증원군의 규모가 다르다는 점이다. 지금 논의되고 있는 한미 양국군의 임무 이양은 상당부분 ‘미일 연합체계’를 따르는 측면이 강하다. 일본의 경우 침략을 받으면 일본군이 주 방위전력을 담당하고 미군이 지원하는 형태로 연합작전체계가 구성돼 있다. 따라서 유사시 일본에 오는 미군 증원군의 규모는 공식적으로는 20만~30만, 비공식적으로는 군단급 8만~9만 정도로 합의됐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때문에 주일미군사령관은 3성장군으로 충분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들에 모두 정답을 달 수만 있다면, 한층 가시화된 작통권 환수는 한국군에도 대단한 기회이자 도전이다. 쉽게 말해 이제까지는 미군이 제공한 정보와 작전을 바탕으로 ‘몸만 대주는’ 식이었지만, 앞으로는 독자적인 작전개념을 만들어가고 이를 위해 훈련도 혼자 힘으로 구성해야 한다. 그동안 말만 무성했을 뿐 먼 장래의 일인 것처럼 생각했던 ‘비약적인 작전역량 강화 필요’가 미군 재편과 맞물려 눈앞의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군 일부 인사들은 “전략정보의 100%, 전술정보의 70% 등 대북정보의 대부분을 미군에 의존하고 있는 한국군의 현실상 작통권 조기환수는 무리”라고 말한다. 그러나 일부 군 관계자들의 이러한 ‘불안감’에 대해 “무책임하다”는 비판도 만만찮게 제기된다. 전력증강은 서두르면서도 작통권 환수 문제는 대비를 게을리한 측면이 있다는 지적이다. 한 합참 관계자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우리가 한번 해보자’고 나서는 지휘관이 한 명도 없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라고 토로했다.

    그랜저와 프라이드

    한 전문가는 “전시작통권을 가져온 후에도 미 7공군의 정보공급을 유지·강화해달라고 요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다고 미군이 ‘그러느니 차라리 완전 철수하겠다’고 나설 리는 없지 않느냐”는 반문이다.

    “군 관계자들이 상황을 너무 비관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오히려 부담스러운 작통권을 맡지 않으려고 정보역량 부족을 핑계로 내세우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그랜저 뒷자리에 타고 다니다가 프라이드를 운전하려면 힘들 수밖에 없다. 한국군은 이제 그 불편함에 적응해야 한다. 빚을 내서 그랜저를 사는 것만이 답이 아니다.”

    (도움말·한용섭 국방대 안보대학원 교수, 함택영 경남대 북한대학원 교수, 이상현 세종연구소 안보연구실장, 김열수 국방대 안보대학원 교수, 서재정 미 코넬대 정치학과 교수, 조성렬 국제문제조사연구소 연구위원, 그 외 국방부 및 합참, 한국국방연구원(KIDA) 관계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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