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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사 연구가 단국대 윤내현 교수

질타·모함·의혹과 싸운 고조선 연구 30년

  • 글: 김현미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khmzip@donga.com

고대사 연구가 단국대 윤내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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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사 연구가 단국대 윤내현 교수

9월1일 ‘우리역사바로알기시민연대’가 주최한 학술회의에서 ‘한민족의 기원과 중심세력’에 대한 글을 발표하는 윤내현 교수(오른쪽).

이때 윤교수는 결심했다. ‘기자만 연구하고 한국사에서 손을 떼려 했는데 나머지 문제까지 내가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 여기서 그냥 물러서면 내 주장이 잘못된 것처럼 받아들여지지 않겠는가.’

그 뒤로 중국사를 제쳐두고 한국 고대사를 집중 연구했다. 물론 중국사 전공을 십분 이용해 중국 고대문헌에 나타난 고조선의 국경 기록을 샅샅이 조사했고 이어 고조선의 사회구조, 통치조직 등으로 연구 범위를 넓혔다.

“학계에서 만주지역을 언급한 분은 신채호, 정인보, 장도빈 등 소위 민족주의 사학자들인데, 해방 후 우리 사학계는 그분들의 연구를 인정하지 않았어요. 그냥 독립운동 하던 분들이 애국심, 애족심에서 만들어낸 이야기쯤으로 취급했죠. 물론 그분들의 연구에는 각주가 없기 때문에 무슨 근거로 그런 주장을 했는지는 알 턱이 없습니다. 예를 들어 정인보 선생의 ‘조선사연구’에는 ‘고조선의 국경은 고려하다’라고 되어 있는데 문헌에는 도대체 ‘고려하’란 지명이 나오질 않아요. 신채호 선생의 ‘조선상고사’에도 ‘고조선의 서쪽 끝이 헌우락’이라고 하는데 헌우락이 어딘지 알 길이 없으니 아예 무시한 겁니다. 그런데 중국 문헌을 찾다 보니 ‘요사(遼史)’에 헌우락이 나오더군요. 또 옌칭에서 중국 고지도를 뒤지다가 ‘고려하’라는 강명을 발견했습니다. 대능하에서 북경으로 조금 가면 ‘고려하’가 있고 상류에 고려성터가 있었다고 합니다. 일제시대 만주에 살던 분들께 물어보니 고려성터가 있고 일본이 세운 팻말도 있었다고 하더군요. 신채호, 정인보 선생은 현지답사도 하고 문헌도 보았던 겁니다. 우리가 거들떠보지 않는 동안 북한이 그 학설을 이어받았습니다.”

그 무렵 국사편찬위원회가 발간하는 ‘한국사휘보’에 그를 비방하는 글이 실렸다. ‘북한의 어용공산주의를 추종하는 자’라는 내용이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누군가 정보기관에 “고대사 분야에서 북한학설을 유포하는 자가 있다”고 고하는 바람에 불려가 조사를 받는 일까지 생겼다.

이처럼 윤교수는 동양사 분야에서 손꼽히는 권위자였지만 한국사에서는 여전히 이방인이었다. 동양사로 가면 강단사학자, 한국사로 가면 재야사학자가 되는 이중생활을 계속했다. 한영우 서울대 명예교수(한국사)는 ‘역사학의 역사’(지식산업사)에서 1980년대 윤내현 교수의 활동을 이렇게 요약했다.



“한국고대사의 첫 장에 해당하는 고조선 연구는 1980년대에도 부진했다. 문헌이 빈약하고 고고학적 성과도 북한이나 중국과 관련되어 있어서 현장감을 가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재야 사학자들의 주장과 비슷한 학설을 내세운 것은 윤내현 교수다. 그는 주로 문헌자료에 의거하여 고조선의 성립시기를 기원전 2300년 이전으로 추정하고 그 도읍은 지금의 평양에서 시작해서 중국 난하 유역으로 팽창했다가 다시 평양으로 후퇴한 뒤 한나라 무제에 의하여 망한 것으로 이해했다. 그의 고조선 연구는 1994년 ‘고조선연구’로 정리되어 출간되었다.”

한교수는 덧붙여 “윤내현의 연구는 고고학의 뒷받침을 받지 못한 것으로 학계의 반응은 매우 냉담했다”고 적었다.

고조선 재평가 열풍

그러나 학계의 반발이 크면 클수록 고조선에 대한 일반 국민의 관심은 고조됐다. 이 무렵 고려대 인촌기념관에서 열린 윤교수의 특강에 1500여 명의 일반관중이 몰려들 만큼 ‘고조선 제대로 알기’ 열풍이 불었다. 1986년 3월 윤교수는 ‘사학지’를 통해 ‘위만조선’에 대한 새로운 학설을 제기했다. 종래 사학계의 통설은 한반도 북부 평양지역에서 위만조선이 고조선을 대체한 것으로 되어 있으나, 윤교수는 위만조선은 지금의 요서지역에 위치하고 고조선과 병존했던 정치세력이라고 주장했다. 즉 기원전 195년 서한에서 망명한 위만이 기자의 준왕으로부터 정권을 탈취해 세운 나라가 위만조선이며, 훗날 서한 무제가 위만조선을 멸망시키고 고조선의 서쪽 변경까지 침략해 지금의 요서지역에 한사군을 설치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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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현미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khmzi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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