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歸農人 장영란의 우리 땅, 우리 맛 ⑨

솔잎 따서 콩나물 기르고 곶감 서리 맞혀 항아리에 가두고

  • 글: 장영란 odong174@hanmail.net

솔잎 따서 콩나물 기르고 곶감 서리 맞혀 항아리에 가두고

3/4
솔잎 따서 콩나물 기르고 곶감 서리 맞혀 항아리에 가두고

안방 아궁이 앞에 앉은 작은애 규현이. 불을 살피며 아궁이 앞에서 논다.

겨울에도 우리 집에는 기르는 게 있다. 밭에 밀, 보리, 마늘, 양파가 자라고 있으니 그것이 첫째다. 하지만 땅이 얼어붙는 이즈음 할 일이 많은 건 아니다. 닭과 오리도 돌보아야 한다. 겨울에는 짐승들에게 물주는 일도 큰일이다. 전날 준 물은 밤새 모두 얼어붙어 있기 때문이다. 닭은 아침마다 한 바가지씩 물을 주어야 하고. 오리는 목욕할 물까지 넉넉히 길어다 주어야 한다. 이렇게 짐승도 식구다. 짐승을 키우려면 사람이 집을 비우지 않아야 한다.

오리와 닭에게 푸성귀 주는 일도 만만치 않다. 닭이나 오리가 푸성귀를 얼마나 좋아하나! 싱싱한 배추 잎을 주면, 냠냠거리듯 아주 맛나게 먹는다. 한데 한겨울에 어디서 푸성귀를 하나?

저장해둔 배추가 있으면 그걸 주기도 하고. 눈을 돌려 양지바른 밭에 가 푸성귀를 해서 주기도 한다. 이맘때면 겨울 나물이 한창이다. 눈이 녹고 난 뒤나 겨울비가 오고 난 뒤면 더욱 싱싱하다. 광대나물, 고수덩이, 냉이, 벌금자리…. 뭐든 푸른 풀은 모두 먹을 수 있다. 햇살 좋으면, 겨울나물을 하러 간다. 나물을 한 바구니 하고 나서, 흔하게 있는 개별꽃 잎을 양껏 뜯어 닭과 오리 준다. 오리 좋고 사람 좋고.

집안에서는 콩나물, 엿기름을 기른다. 엿기름은 얼면서 말라야 달고 맛나다. 그래서 한겨울 한가할 때 엿기름을 기른다. 밀이나 겉보리를 물에 하루 불려, 콩나물 기르듯 물을 주어가며 싹을 낸다. 밀싹은 이맘때 별미다. 싹이 난 밀을 밥에 놔먹어도 좋지만, 날로 집어먹어도 향긋하고 달큰하다. 어른들 술안주로 한 접시 내놓으면 인기다. 날이 차니 며칠 길러야지, 다 기르면 그걸 밖에 펴서 시나브로 말려야지. 그런 일을 하노라면 어느새 동지(冬至)가 다가온다.

옛 의서 ‘황제내경’을 보면, “겨울은 모든 문을 닫고 집안에 틀어박히는 계절이니 저녁에 일찍 자고 아침은 늦도록 자리에 누워 해가 떠서 일어나고 마음을 안정시켜 무엇인가 해야겠다는 생각을 누르고 조용한 마음가짐으로 늘 만족하라” 한다.



우리는 겨울이 되면 아침에 해가 떠야 일어난다. 해 뜨기 전에 바깥은 너무 추워 일할 수 없을 뿐더러, 이불 밖도 춥다. 그러니 어떻게든 해 뜰 때까지 이불 속에서 지낸다. 그리고 해지기 전에 집안으로 들어온다. 해 떨어지고 식구들이 집안으로 들어오니 저녁을 먹지.

저녁 일찍 먹고 치우고 시계를 봐도 여섯 시가 겨우 넘었다. 그때부터 식구들 나름대로 각자 자기 할일을 한다. 텔레비전이 없으니 우리 집 저녁은 고요하다. 어떨 때는 식구들 모두 책장 넘기는 소리만 난다. 두런두런 이야기도 나누고. 모두 모여 몸 푸는 운동을 할 때도 있다.

한참을 이렇게 보내 밤이 깊어져도 아홉 시. 아무래도 일찍 잠자리에 든다. 식구 모두 잠자리에 들어 불을 끄면 그렇게 고요할 수가 없다. 이렇게 겨울엔 일찍 자고 늦게 일어나기도 한다.

넘어야 할 산이 또 하나

어제는 옆 마을에 사는 이웃에게 놀러가 낮술을 먹었다. 마음이 복잡하여서다. 감나무 아래 평상에 앉아 농사 이야기를 하며 한 잔 두 잔. 그러다 땅거미가 내리니 집안으로 들어가 다시 한 잔 두 잔. 편하게 웃고 이야기하며 답답한 마음을 위로받을 수 있었다.

시골 살면서 가장 어려운 점은 돈도 아니고, 일이 힘들어서도 아니다. 조금 전까지 만족하며 살다가 하루아침에 여기를 떠나고 싶어지는 마음 변화. 그건 인간관계다.

우리 마을은 1998년부터 도시에서 귀농한 집이 하나 둘 모여 한 마을을 이루었다. 지금도 두 집이 새로 들어와 살고자 집을 짓고 있다. 그러니까 다른 시골과 달리 우리 마을은 새로 사람이 모이는 마을이다. 또 대부분 젊은 부부라, 이곳에서 태어난 아이만도 여섯이나 된다.

도시를 떠나 이곳으로 살러온 이들이기에 공감대가 있다. 당장 시골 생활에 적응하고, 농사하고 집 짓는 일에 크고 작은 도움을 주고받는다. 가끔 모여서 놀기도 하고.

시골은, 도시하고 달리, 삶이 온통 드러난다. 이웃집 숟가락이 몇 개인지, 그 집 개가 새끼를 몇 마리 낳았는데 그 새끼가 다시 누구누구네 가서 어떻게 지내는지. 다 안다. 그런데 우리 마을 사람 모두 지금까지 살아온 내력이 다 다르다. 여기서 살고자 하는 삶도 다르고, 하루하루 살아가는 내용도 다르다. 처지가 다르니 한 가지 일도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다. 살다 보면 이웃 사이에 이해가 얽히는 일도 생긴다. 다 큰 어른이, 그것도 배울 만큼 배운 사람이, 시골로 내려와 소박하게 살고자 마음먹은 사람이 싸우기도 한다.

며칠 전 쓴 일기다. 밤에 잠은 안 오고. 누군가에게 하소연하고 싶어 쓴 글이다.

3/4
글: 장영란 odong174@hanmail.net
목록 닫기

솔잎 따서 콩나물 기르고 곶감 서리 맞혀 항아리에 가두고

댓글 창 닫기

2020/02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