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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를 빛낸 스타들⑤

‘아름다운 악녀’ 최지희

“구름 속에서 잠자는 여자, 그게 내 인생인지도 몰라요”

  • 글: 심영섭 영화평론가 chinablue9@hanmail.net

‘아름다운 악녀’ 최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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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픽업되신 거예요? 다른 배우들처럼 등교길에 만나셨나요, 아니면 소문을 듣고 학교로 찾아왔던가요?

“솔직히 저는 학교공부도 별로 못했고, 부산여고는 들어갔다가 중도에 그만두었어요. 그때는 월사금 안 갖다주면 학교 못 가던 시절이잖아요. 대신 돈 많은 부잣집 딸인 친구 덕에 무용학교로 옮겼죠. 부모님이 약국을 하는 친구였는데 저보고 ‘내가 돈을 댈 테니 같이 무용을 배우자’고 하더라고요. 무용을 배우면 악단에 무용수로 들어갈 수 있다고 해서죠.

무용학교에 다니는 동안 어느 극단에 둘이 찾아가서 겨우겨우 입단을 했는데 그만 극단이 망해 여관에 붙들린 거예요. 단장님이 돈 가지고 올 때까지 단원들이 전부 여관에 그냥 머물고 있었던 거죠. 그런데 거기서 ‘산적의 딸’이라는 영화를 찍고 있던 윤애남 감독님의 여동생을 알게 됐어요. 그 여동생이 ‘산적의 딸’ 주연이었거든요.

그 배우를 ‘언니 언니’ 하면서 흡사 강아지처럼 따라다니다 보니 어느새 내가 그 언니의 비서가 돼 있었죠. 어느 날 그 언니를 따라 서울의 ‘은하수’라는 다방-당시에는 그 다방이 연예계 인사들이 모이는 장소였거든요-구경을 갔다가 마침 배우를 찾고 있던 기획자를 만났어요. 그 영화가 1956년에 김일해 감독님이 만든 ‘인걸 홍길동’이라는 영화였어요. 황해남씨랑 내가 스카우트되어 함께 출연하게 됐어요. 영화는 한번보지도 못했는데 덜컥 데뷔하게 된 셈이죠.

저를 픽업한 제작자 최남용씨가 저에게는 양아버지나 마찬가지예요. 그때는 감독보다 제작자가 더 힘이 있는 시절이었어요. 서울에 올라왔는데 갈 데가 없으니까 그분 집에서 기거했죠. 딸이 없어서 저를 딸같이 생각하셨어요. 이만큼 길러 두 갈래로 땋고 다니던 머리도 미장원에 데려가 자르고는 난생 처음 파마도 시켜줬지요. 이름도 그분이 지어주셨고요.”



-그래서 예명의 성이 최씨가 된 거군요.

“그래서 최지희예요. 예전에 최지혜씨라는 여배우가 계셨는데 내가 그분과 닮았대요. 그때 최지혜씨는 이미 미군 공보관하고 결혼해서 미국에 간 뒤였거든요. 저를 스카우트한 그 제작자가 그분을 참 좋아했었나 봐요.

그렇게 ‘인걸 홍길동’을 찍는 도중에 ‘아름다운 악녀’에 픽업이 됐어요. 영화계에 나오자마자 겹치기 촬영을 하게 된 거죠.”

-이 영화에서 맡은 역할이 화가를 사랑하는 창녀 아니었던가요?

“창녀는 아니고 소매치기였어요. 깡패들이 전쟁고아 소녀를 데려다가 소매치기 교육을 시킨 거죠. 첫 장면이 화신백화점에서 지갑을 훔치는 장면인데, 그걸 이 화가가 봐요. 그래서 파고다공원에 데리고 가서 ‘너 그러면 안 된다’고 타이르죠. 그러다 그 화가가 사는 남산의 아파트에 같이 가는데, 이 소녀가 ‘아, 알았다. 당신이 나를 집에까지 데려온 이유를 알겠다’고 그러면서 갑자기 옷을 막 벗죠. 그때만 해도 영화에서 그런 장면이 흔치 않은 시절이었거든요. 그 화가와 청계천 복개하기 전에 즐비하던 선술집에 같이 가서는 술에 수면제를 타서 먹이고 지갑을 훔쳐 나오죠. 그런 캐릭터였어요.”

‘여자 제임스 딘’

지금도 올드팬들은 ‘최지희’라는 이름 석자에서 곧바로 영화 ‘아름다운 악녀’를 떠올릴 것이다. 김화가 쓴 ‘한국영화전사’는 최지희에 대해 ‘그녀처럼 데뷔작의 이미지가 강한 배우는 없을 것이다. 그녀의 데뷔작은 시나리오 작가 박종호와 이강천 감독이 오로지 최지희를 위해 만든 영화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였고, 그녀는 아름다운 악녀 그 자체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아름다운 악녀’처럼 6·25 직후 1950년대 초반에서 1960년대 초반까지 창녀, 양공주 등 밑바닥 여성을 그린 영화를 흔히 ‘아프레 걸’ 영화라 한다. 조정호 감독의 1957년작 ‘전후파-아프레 걸’이란 영화제목에서 따온 이 말은 이전의 유교적 이데올로기에 충실한 여성과는 사뭇 다른 주인공을 그린 영화들을 지칭한다. 쾌락을 위해 혹은 독립할 수 있는 돈을 위해 자신의 육체를 거리낌없이 이용하고, 당시 여성들에게 강요되던 헌신과 수용의 역할을 헌신짝처럼 버리는 캐릭터들. 일종의 팜므 파탈을 그린 이들 영화에 등장한 매혹적인 ‘안티 히로인’으로는 신상옥 감독의 1958년작 ‘지옥화’의 최은희, 조긍하 감독의 1964년작 ‘육체의 고백’의 황정순 등이 있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최지희의 ‘아름다운 악녀’는 사랑을 믿지 않으며 무심히 남자를 유혹하고 명동의 거리를 방황하는 10대 아프레 걸의 이미지를 선사한다. 이전의 아프레 걸들과는 달리 보헤미안적이고 낭만적인 이미지가 더해진 그는 고아로 기성세대의 가치관과 완전히 절연한 반항아의 이미지, 한마디로 ‘여자 제임스 딘’의 이미지가 중첩되어 당대 젊은 관객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을 얻었다.

이러한 과잉 성애의 아프레 걸들은, ‘오발탄’이나 ‘이 생명 다하도록’ 같은 그 시대 영화에서 남성들이 대부분 성불구 혹은 다리가 없는 거세된 남성으로 묘사된 것과 묘한 상보관계를 갖는다. 과잉 성애의 창녀와 성불구의 상이용사. 이들은 6·25가 낳은 1950년대 전후시대의 불안과 방황을 반영하는 어둠의 자식들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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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심영섭 영화평론가 chinablue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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