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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연구

박봉흠 청와대 정책실장

관료 엘리티즘 강한 조정·조율의 名手

  • 글: 이형삼 동아일보 신동아 차장 hans@donga.com

박봉흠 청와대 정책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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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봉흠 청와대 정책실장

1월 2일 노무현 대통령(왼쪽)이 박봉흠 신임 청와대 정책실장에게 임명장을 주고 있다.

“나와 봉흠은 앞줄의 작은 아이들 그룹이었는데, 그 중에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은 대개 샌님 같아서 ‘가시나(계집애)’라고 놀림을 받곤 했다. 늘 1등을 놓치지 않던 봉흠은 그런 놀림을 도무지 못 견뎌했다. 그래서 운동도 열심히 해서 합기도 유단자가 됐고 친구들과 어울리는 자리에도 빠지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자신에게 뭐든 비어 있는 것을 발견하면 참아내지 못하는 성미였다. 학창시절엔 손에서 책을 뗀 적이 없고 사회에 나와서는 직업관료로 빡빡한 일상을 살아왔지만, 요즘도 어쩌다 동창들과 어울려 카드라도 치면 도대체 언제 그런 걸 다 배웠는지 좀체 돈을 잃는 법이 없다.”

박 실장을 ‘결점이 없는 게 결점인 사람’이라 일컫는 이씨는 그의 타고난 친화력에도 주목한다. 40년 넘게 사귄 허물없는 친구들이라 왁자하게 어울리다 보면 끼리끼리 툭탁거리는 이들도 있지만, 박 실장은 지금껏 어느 누구와도 시비 한번 붙은 적이 없다고 한다.

이씨는 “본의 아니게 내가 노무현 정부와 껄끄러운 관계가 됐지만, 그것 때문에 봉흠과의 사이가 불편해진 적은 없다”고 한다. 작정을 하고 노 정부를 비판하며 슬쩍 ‘도발’을 시도해도 박 실장은 “꼭 그런 건 아닐 수도 있어. 이렇게도 생각해봐”라는 식으로 확전(擴戰)을 피하면서 우정과 직분을 함께 지켜낸다는 것이다.

박 실장의 친화력은 정평이 나 있다. 국회, 언론과도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위, 아래, 옆을 두루 세심하게 배려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눈도장 찍기’에 너무 신경쓴다는 비난도 따른다.

한 경제관료는 “그가 별별 하찮은 저녁 모임에도 꼭 얼굴을 내밀고, 오래 전에 퇴직했거나 자신이 직접 모신 적도 없는, 한 마디로 끈 떨어진 선배들의 경조사까지 꼬박꼬박 챙기는 것을 보면 놀랍기까지 했다”며 “대(對)국회 업무로 경황이 없을 때도 그렇게 뛰어다녔으니 아마 사생활은 거의 없다시피 했을 것”이라고 혀를 내둘렀다.



‘거절의 노하우’ 체득

업무에 정통하면서도 사람들과 어울리기 좋아하는 소탈하고 다정다감한 성격, 기분이 좋으면 앉은자리에서 위스키 한 병을 거뜬히 비워내는 주량, 걸쭉한 입담까지 겸비해 ‘보스’처럼 따르는 후배도 많지만, 박 실장이 그런 정에 흔들려 인사나 평가에서 특혜를 주는 일은 없었다고 한다. 냉정하리만큼 능력과 성과에 따라 처리했다는 것. 바람직한 처신이 아닐 수 없지만, 이런 면모가 우리 관료조직에선 장점이자 단점이 될 수도 있다는 게 공무원들의 얘기다. 박 실장에게 나름대로 충성을 다한 이들 중에는 더러 노골적으로 섭섭한 감정을 드러내는 경우도 있었다는 것.

고위 예산관료에게 필수불가결한 요건 가운데 하나가 조정·조율능력이다. 국회와 정부 각 부처의 이해관계가 엇갈린 예산배정 요구를 매끄럽게 조정, 조율해 합리적인 타협안을 도출하는 것이 관건이기 때문이다. 확보된 예산은 빤한데 손 벌리는 곳은 많다 보니 대개는 요구를 거절해야 하는 처지일 수밖에 없는데, 이 대목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게 설득력이다. 거절을 하더라도 왜 들어줄 수 없는지를 충분하게 납득시켜야 뒤탈이 없기 때문인데, 박 실장은 이 부분에서도 강점을 지녔다고 한다.

기획예산처 장관이던 지난 2000년 박 실장을 예산실장으로 발탁했던 전윤철(田允喆) 감사원장은 “국회는 의원들이 경쟁적으로 지역구 사업을 챙기느라 예산실장에 대한 압력이 엄청난 곳인데, 박 실장은 그걸 적절하게 막아내면서도 의원들이 언짢아하지 않도록 어르고 달래는 친화력과 설득력이 탁월했다”고 한다. 그냥 ‘안 된다’고 하는 게 아니라 의원들을 맨투맨으로 접촉하면서 정연하게 설득하니 더는 우기지 못했다는 것.

박 실장과 서울대 상대 68학번 동기인 최종찬(崔鍾璨) 전 건설교통부 장관은 “곤혹스런 처지를 일단 모면하기 위해 의원들 앞에선 안 될 것도 될 것처럼 말하고, 나중에 안 되더라도 사정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은데, 박 실장은 안 될 것은 처음부터 안 된다고 원칙을 분명하게 밝히면서 성의껏 설득하기 때문에 거절을 당한 의원들도 박 실장에게 호감을 갖게 된다”고 전한다. 한마디로 ‘거절의 노하우’가 몸에 밴 사람이라는 것이다.

박 실장은 기획예산처 장관 시절 예산 편성을 앞두고 식사를 함께하자는 각 부처 관계자들의 요청이 잇따르자 “예산처 구내식당에서 같이 먹자”고 제안, 불편한 상황을 미리 차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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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형삼 동아일보 신동아 차장 han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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