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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를 빛낸 스타들⑥

1970년대 ‘충무로 누벨 바그’ 윤여정

“조영남 만나 인생 끝냈기에 배우로 부활할 수 있었다”

  • 글: 심영섭 영화평론가 chinablue9@hanmail.net

1970년대 ‘충무로 누벨 바그’ 윤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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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분이 처음 결혼할 때는 조영남씨의 무엇에 반했던 거예요? 자유분방함이나 재주 많음에 끌렸을 것 같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영 어울리지 않는 커플이었나 보죠? 그런 질문을 참 많이 받았어요. 그래서 나도 가만히 생각을 해봤죠. 우선 내가 정말 노래를 못해요. 완전히 음치라서 드라마 작가들에게 ‘다른 건 시키는 대로 뭐든지 다 하겠지만 노래하는 건 쓰지 마세요’ 하고 부탁하곤 해요.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노래 잘하는 사람을 참 좋아했어요. 나는 재주가 없는 사람이거든요. 천부적인 게 없어서 늘 노력으로 버티는 사람이에요. 그래서 끼가 많은 사람들을 늘 부러워했어요, 지금은 좀 달라졌지만. 그 사람은 굉장히 재주가 많았죠.”

“이혼 없었으면 연기도 없었다”

-제가 느끼기에는 연애나 신혼시절 두 분이 열렬히 사랑했을 것 같아요.

“옆에서 지켜봤던 사람들은 절보고 참 독하고 용감한 여자라고 그랬어요. 미국에서 우리 이웃이었던 분들은 슬퍼하기도 해요. 그렇게 좋아했는데 어떻게 헤어질 수가 있느냐는 거죠. 솔직히 나는 거의 기억을 못해요. 결혼생활은 아예 잊어버리자고 작정을 했었거든요. 계속 그렇게 다짐을 하면 시간이 좀 지난 후에는 정말 까맣게 잊어버려요. 남들이 ‘그때 그랬지’ 그러면 ‘내가 그랬어?’ 하고 되물을 정도니까요. 딴 사람 얘기 같아요.



미국에 있을 때 나랑 친하게 지냈던 분 얘기로는 내가 마치 동화책에 나오는 사람처럼 살았대요. 아기 잘 때 동화책 읽어주고, 놀이터에 나가서 데리고 놀고, 커튼을 직접 만들어 달아놓고, 수건에 수도 놓고. 심지어… 조영남씨가 두부를 좋아하거든요. 우리가 미국에서 살 때는 두부를 구하는 게 거의 불가능했어요. 그래서 내가 직접 콩을 갈아 두부를 만들었다는 거 아니에요, 별을 따다 바치는 심정으로.

그랬는데, 이제는 내가 굉장히 메마른 사람이 됐어요. 아마 한번 그런 삶을 끝내고 나니까 다시는 안 하기로 작정했나 봐요. 지난번에 노희경 작가가 한 영화잡지에 나에 대해 쓴 글을 읽다가 ‘젊은 나이에 이혼…’ 어쩌고 하는 대목에서 눈물이 나는 거예요. 나중에 희경씨한테 ‘너 내가 젊은 나이에 이혼한 줄 어떻게 알았니?’ 하고 물었더니 ‘뻔하죠’ 그러는 거예요. ‘내 기사를 보다 내가 울다니 나도 참 늙었다’ 싶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친구들한테 그랬어요. ‘되새겨보니 내가 이혼을 서른 몇 살에 했더구만, 그러면 중매라도 하지 어떻게 그렇게 그냥 놔두냐? 이 나쁜 것들아!’ (웃음)

이혼했을 때 나는 내가 쉰 살쯤은 된 줄 알았어요. 모든 게 끝났다, 미래를 완전히 잃었다고 생각했어요. 내 인생에서 가장 정통으로 느낀 슬픔이었거든요. 한번은 캐스팅 중에 ‘다른 사람이 하면 가슴 찢어지는 아픔이 안 나타나는데, 윤여정이가 하면 그게 살아난다’는 말을 들었어요. 물론 칭찬이었죠. 그렇지만 나는 ‘내가 정말 가슴 찢어지게 살았나 보다’ 싶더라고요.

어려서 영화를 할 때는 공포, 슬픔, 눈물, 그런 연기를 잘 못했어요. 최무룡 선생님한테 ‘선생님은 어떻게 우세요?’ 하고 물었을 정도니까요. 감정의 오르내림을 타는 그런 연기가 안 나왔어요. 그런데 이혼을 하고 나자 그런 연기가 되기 시작하는 거예요. 동료들한테 칭찬도 많이 들었죠. 생각해보면 내가 조영남이라는 사람을 만나서 인생을 끝냈기 때문에 배우로 다시 태어날 수 있었나 보다 싶더라고요. 그런 과정이 없었다면 아마 지금도 잘 못 우는 배우였을 거예요. 그러니 한편으로 생각하면 다행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스스로가 좀 안됐다 싶기도 하고….”

뒤늦은 여우조연상

-이혼 후에는 조영남씨와 말도 안 한다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그러니 내가 참 못난 사람이죠. 정말 성격차이로 이혼을 했다면 또 모르지만 우리처럼 이혼했을 때는 그게 잘 안 돼요. 된다면 거짓말이에요. 솔직히 아직까지도 용서가 잘 안 돼요. 물론 밖에 나가서 떠들고 다니지는 않아요. 제 얼굴에 침 뱉기니까요. 이혼한 사람들끼리 서로 치고 받으면 그게 또 무슨 꼴이겠어요. 어른스럽다는 게 다른 게 아니잖아요, 참는 사람이 어른이지.

-조영남씨 인터뷰를 보니 윤여정씨에게 굉장히 감사하다고 하더라고요. 누구처럼 회고록 쓰지 않아 고맙다고요.

“고마워해야 될걸요. (웃음) 소설가 최인호씨가 나나 그 사람과 모두 친해요. 그런데 최인호씨가 나를 만나면 ‘××네 출판사가 요즘 책이 안 나가서 어렵대. 네가 좀 도와줘라’하고 농담을 해요. 내가 이름만 빌려주면 된다나요. 자기가 그 동안의 이야기 전부 대필해서 출판사도 살리고 돈도 벌고 그러겠다는 거예요. (웃음) 지금은 줄었지만 예전에는 회고록 쓰자는 전화가 많았어요. 처음에는 화를 내고 그랬는데 김수현씨가 옆에서 보더니 ‘그걸 왜 그렇게 힘들게 거절하니? 3억만 불러, 그러면 다시는 전화 안 올 거다’ 그러더라고요. 3억은 너무하다 싶어 2억을 불렀더니 정말 다시는 전화가 안 오던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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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심영섭 영화평론가 chinablue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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