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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 유럽기행

로마 황제 별궁 ‘빌라 하드리아누스’

그리스·이집트·이탈리아風 공존하는 제국 賢帝의 小우주

  • 글: 권삼윤 문명비평가 tumida@hanmail.net

로마 황제 별궁 ‘빌라 하드리아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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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황제 별궁 ‘빌라 하드리아누스’

하드리아누스가 통치하던 시절 로마제국은 최고의 판도를 자랑했다. 여행을 좋아했던 황제는 제국 곳곳을 누볐다.

따져보면 빌라 하드리아누스도 그의 여행벽과 그리스 취향, 이 둘의 합작품에 지나지 않는다. 그가 가장 가고 싶어했던 서아시아를 향해 가장 긴 세 번째 여행을 떠나기 전 여행 준비를 한 곳도 이곳이고, 여행에서 돌아온 뒤 이집트에서 죽은 안티노스를 떠올리며 몸을 뒤척였던 곳도 이곳이다. 건물의 구조와 형태, 장식, 명칭 등이 로마 고유의 것이 아니라 소아시아와 이집트의 것이 대부분을 차지했기 때문이다. 젊어서는 속으로 삭인 것을 황제로서의 지위를 굳힌 다음 이렇게 폭발시켰으니 그는 평생동안 일관되게 그리스·이집트 문화에 경도(傾倒)되어 있었다고 할 수밖에 없다.

이 빌라와 그리스 취향을 한데 묶어놓은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안티노스란 미소년이었다. 황제가 무슨 생각으로 이 미소년을 데리고 다녔고, 또 그를 어떻게 대했으며, 무슨 짓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기록도 남아 있지 않다. 아마도 선왕인 트라야누스의 영향을 받아 사적인 감정을 매우 절제했던 그였기에 그런 게 아닐까 짐작할 뿐이다. 그래서 후세의 우리는 단지 상상력을 발휘해 그때의 상황을 그려볼 수밖에 없다.

황제 일행은 서아시아 순방을 마치고 드디어 이집트로 들어갔다. 이집트는 비가 내리지 않지만 상류에서 내려오는 나일강 물로 농사를 지어 3000년에 이르는 왕국의 역사를 이어왔다. 그러니 나일강은 생명줄이었다. 일찍이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투스가 ‘이집트는 나일의 선물’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이집트 여행도 거의 끝나갈 무렵 황제 일행이 나일강 유람에 나섰다. 황제의 어용선은 동방 원정에 나섰던 그리스의 알렉산더 대왕이 한가한 어촌을 일약 대항구로 탈바꿈시킨 알렉산드리아를 출발했다. 그런데 나일강을 거슬러 300km쯤 내려갔을 때 안티노스가 익사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그의 직접적인 사인은 악어에 물려 피를 너무 많이 흘린 것이었다.

황제는 다행히 그 장면을 목격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비보를 접하자 곧장 사고 현장으로 달려가 안티노스가 벗어놓은 옷가지와 샌들을 보고는 아녀자처럼 펑펑 울고 말았다. 누구보다 절제력이 강했던 그가 이렇듯 황제의 체통도 잊어버릴 만큼 평정심을 잃은 것이다.



‘안티노폴리스’에 신전까지 건립

안티노스를 처음 만난 지 5년. 열다섯 살의 미소년이 스무 살을 바라보는 청년으로 모습이 바뀌어가던 때였으니 이 일은 서기 130년 전후에 일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장례식을 성대하게 치른 황제는 안티노스를 신격화하고, 사고가 났던 건너편 강변에 그리스 스타일의 신도시 안티노폴리스를 건설해 그곳에 안티노스의 신전까지 세웠다. 그런 다음에 이집트인들을 그곳으로 대거 이주시켰다.

연구자들이 오랫동안 관심을 보여온 것은 그 미소년의 죽음이 자살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타살에 의한 것인지 여부였다. 프랑스 여류문학가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가 황제가 직접 구술하는 형식으로 쓴 ‘하드리아누스의 회상록’(1952년 작. 황제에 관한 평전 가운데 최고의 것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에 따르면 안티노스는 조만간 자신의 아름다움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이기지 못해 스스로 나일강에 뛰어들었다고 한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안티노스는 생의 절정기에 자신이 사라져주는 게 감수성이 예민한 황제를 실망시키지 않는 일이라 생각했음에 틀림없다. 황제가 그를 신격화하고 그의 이름을 딴 도시까지 건설한 것은 자신의 마음 깊은 곳까지 읽어내고는 ‘바로 이때다’ 하면서 목숨을 초개같이 버린 자에 대한 보답의 성격을 갖는다.

하지만 이를 뒤집어 생각하면 황제가 안티노스를 죽였다고 볼 수도 있다. 황제가 사랑하는 자의 늙음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무언의 압력을 주위 사람들에게 알게 모르게 인식시킨 탓에 당사자가 정신적 긴장을 견디다 못해 그런 결과가 빚어졌다고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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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권삼윤 문명비평가 tumid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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