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2월호

대보름에 오곡밥 먹고 개구리 깨어날 때 고추씨 넣고

  • 글: 장영란 odong174@hanmail.net

    입력2004-01-29 19: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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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보름에 오곡밥 먹고 개구리 깨어날 때 고추씨 넣고

    눈이 녹을 무렵 무경운 밭. 지난해 땅콩 농사한 곳은 땅콩 줄기가, 기장 농사한 곳은 기장 줄기가 덮여 있다.

    야성이 살아날 때, 자연에 사는 맛이 난다. 겨울에 야성이 살아날 때가 언제인가? 팽팽한 긴장이 감도는 순간은? 찔레와 한판 대결을 빼놓을 수 없으리라.

    이번 겨울, 이 글을 쓸 때까지는, 눈이 적고 날씨도 따뜻했다. 햇살이 좋은 날. 몸이 움직이라고 소리치니 밖으로 나간다. 손에는 장갑을 두 겹으로 끼고, 연장 가방을 들고. 산밭으로 간다. 우리 산밭은 밭보다 밭둑이 넓다. 전에는 보리를 심어먹었다는데, 수십 년 버려두어 밭둑에는 끈질긴 덩굴과 가시나무가 자리잡고 살아간다. 붉은 빛 가시줄기를 올리는 산딸기. 칡. 환삼덩굴. 그 가운데 대장은 찔레다.

    낫을 꺼내 밭둑의 마른 풀을 벤다. 여기도 어김없이 찔레가 차지하고 있다. 찔레나무는 가시줄기가 밑동에서 덩굴처럼 낭창낭창하게 휘어지면서 곁가지를 마구 뻗는 떨기나무다. 사방으로 뻗은 곁가지가 무엇에든 엉겨붙는다. 뭘 모르고 덤볐다가 당한 적이 한두 번인가. 찔레는 온몸을 가시로 중무장하고 있는 데다, 섣불리 건드리면 줄기가 휙 튕겨지며 덮친다.

    강적이다. 그냥 덤벼들어서는 안 되지. 잠깐 생각한다. 장갑 두 겹으로 꼈지, 낫말고도 손 톱, 긴 전정가위가 있으니 찔레와 한판 대결을 펼쳐도 괜찮겠구나. 먼저, 찔레 위에 덮인 환삼덩굴을 낫으로 살살 쳐낸다. 칡 줄기도 걷어낸다. 찔레 둘레 풀이나 잡목도 마저 벤다. 이제 찔레와 정면 대결할 시간. 한 발 떨어져, 앞으로 뻗어 늘어진 가지 끝부터 긴 전정가위로 자른다. 그 동안 당하면서 터득한 방법이다. 욕심 부리지 않고 찬찬히, 찔레 가지를 잘라 올라가니, 윗가지로 올라갈수록 곁가지를 많이 뻗어 옆 나무줄기 사이로 서로 엉켜 있다. 일단은 후퇴하자. 다른 가지를 잘라 들어간다.

    찔레야, 이제 여기는 사람 영역이다



    어느 정도 찔레 팔이 잘려나갔다. 엉겨 붙은 윗가지들이 허리를 잘린 채 허공에 붕 떠 있다. 낫으로 잡아당겨본다. 찔레 가지가 저항을 한다. 내 몸무게를 실어 당기니, 딸려 내려오는 게 느껴진다. 그 순간, 몸이 알아서 피한다. 찔레 윗가지가 땅으로 떨어진다. 휴, 안 맞았다.

    찔레 가지를 어느 정도 잘라냈으니, 이제 찔레 밑동을 노릴 때다. 무릎을 꿇고 앉다가 ‘아 따거라.’ 한 방 찔린다. 좀더 조심해야 하는데…. 찔레는 밑동이 여러 갈래다. 하나하나 잘라내려는데, 낭창낭창하던 가지가 밑동으로 와서는 단단해져, 톱으로 바꿔든다. 밑동이 검불에 덮여 잘 안 보인다.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찔레는 검불을 꽉 끌어안는 비결이 있나 보다. 그러니 비탈에서도 잘 자라고 한겨울에도 푸르게 살아 있지. 밑동을 찾아 검불을 헤치는데 뿌리를 돌 틈에 내렸다. 끈질긴 놈. 돌을 만져보고, 돌을 들어낸다. 톱으로 굵은 밑동을 자른다.

    휴, 어느 정도 끝났다. 하지만 바닥에 잔뜩 깔린 찔레 가지들은 어쩌나. 조심하며 빠져나와 한번 둘러본다. 가시 때문에 거름으로 쓰기도 어렵고, 땔감으로 쓰자니 나르기도 어렵고 불 때기도 어렵다. 찔레에 다시 한번 진저리를 친다.

    ‘찔레꽃’이라는 노래가 있다. 나도 한동안 즐겨 불렀던 노래다. ‘엄마 일 가신 길에 하얀 찔레꽃, 찔레꽃 하얀 잎은 맛도 좋지~’ 찔레꽃이 피면 예쁘지. 꽃향기가 은은한 게 얼마나 멀리까지 퍼지는데. 코를 스치는 그 향기를 맡으면, 가만 멈춰 서서 가슴 깊이 그 향기를 맡는다. 향기 따라 아련한 추억으로 돌아가기도 하고. 그뿐인가, 꽃잎과 열매를 먹을 수 있고, 찔레순은 봄 내내 아이들 간식거리가 되어준다. 한데 그 찔레가 밭둑에 있으면 정말 어쩔 수가 없다.

    찔레에게, 이제 여기는 사람 영역이라는 걸 알려준 셈이다. 봄이면 잘린 밑동에서 새 가지를 뻗어 올리겠지. 하지만 그 정도는 감당해 나갈 수 있으리라. 몇 발짝 뒤로 물러나 찔레를 쳐낸 곳을 본다.

    올해는 무슨 나무를 심을까

    여기에 어떤 나무를 심을까? 양지바른 비탈이니, 과일 나무 심어 가꾸기 좋다. 집 둘레 한두 그루씩 심어, 꽃도 보고 열매도 먹으면 얼마나 좋은가. 그래서 열매 좋은 과일나무인 복숭아, 배, 자두나무…. 농약 안 쳐도 되는 대추, 감, 은행, 포도나무…. 봄마다 어린 나무를 많이도 심었다. 이렇게 몇 해를 심으니 웬만한 과일나무는 한두 그루씩 있다. 해당화, 석류, 산수유까지도.

    처음에는 과일 따 먹을 욕심에 나무를 심었다. 몇 년 지나다 보니, 심는다고 열매가 입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래도 봄이 오니 그냥 넘어갈 수 없다. 스피노자가 아니라도, 자연에 살면 해마다 과일 나무를 심는다.

    ‘산림경제’에 과일 나무는 (음력) 정월 상순에, 그러지 못하면 이월 상순에 심으라 한다. 과일 나무는 위로 뻗어가는 기운을 담고 있다. 그러니 달이 차오를 때 심어야 좋다. 이때에 맞춰, 어린 나무를 구해야겠는데… 장에 나오는 묘목은 품종개량을 많이 한 나무다. 열매를 굵게, 빨리, 많이 달리게. 그러다 보니, 나무가 야성을 잃고, 온실 속에 화초처럼 바뀌었다. 법대로 가지치기해야지, 꽃 솎아야지, 열매도 솎아주어야 한다. 그래도 병이 많고, 벌레 피해도 크다. 우리처럼 약을 안 치면, 과일이 익기도 전에 벌레가 다 먹고 사람 얻어먹을 게 없다.

    고기를 먹고 싶으면 우리가 길러서 먹듯이, 과일을 먹고 싶으면 우리 손으로 길러 먹고 싶다. 그래서 나름대로 한다고 한다. 봄가을 웃거름 주고. 꽃필 때부터 열매 굵어질 때까지 손길을 보낸다. 농약 대신, 현미식초와 목초액(굴뚝물)도 뿌려준다. 가지를 치고, 꽃과 열매도 솎아준다. 신문지로 봉지를 만들어 씌워주는데, 그렇게 노력하고도 얻는 결실은 보잘것없다. 과일이란 게 참 귀한 거구나.

    농약을 스무 번 친다는 사과나무. 농약을 안 치고 키워보려다 결국 죽여버렸다. 사과는 유기재배가 안 되는지. 사과는 못 따먹어도 봄이면 꽃 피고, 열매를 맺는 모습이 보기 좋았는데…. 어릴 때 먹어보았던 국광, 홍옥 그 사과나무는 어디 갔나. 그 나무는 농약을 안 치고도 열매를 얻어먹을 수 있을 텐데… 어디에서도 그 나무를 기른다는 사람을 찾을 수가 없다. 어느 과일이든 자기 힘으로 열매를 맺을 수 있는 나무를 기르고 싶다. 열매가 볼품이 없어도, 맛이 떨어져도.

    과일나무를 심고 길러보니, 과일가게에 넘쳐나는 과일을 볼 때 두렵다. 저렇게 철없이 흔하게 먹어도 될까? 조류독감, 소 광우병. 고기를 먹기 위해 사람이 한 짓이 사람에게 되돌아오는 것이리라. 어쩌면, 더 무서운 무언가가 올 수 있으리라.

    하루종일 먹고 노는 대보름 놀이

    올해는 윤2월이 들어 대보름이 빠르다. 입춘 다음날이다. 대보름 지나면 농사일을 시작한다고 하지. 그래 농사일하기에 앞서 몸을 돌보는 날이 대보름이다. 지난해 농사한 곡식을 한데 넣어 정성껏 밥을 하고, 온갖 나물 무쳐 배부르게 먹는다. 술도 한잔 하며, 겨우내 움츠려든 몸을 움직여 한바탕 신명나게 놀면 얼마나 좋겠나. 일이란 게 뭔가!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어 일이라고 한다. 마음만 앞서 몸이 따라가느라 고생을 해도 안 되고, 몸은 움직이는데 마음은 딴 데 있어도 힘들다.

    지난해는 우리 마을이 생기고 처음으로 대보름 놀이를 했다. 마을 사람들 마음이 한데 모이니 다 이뤄진다. 집집이 북이 있으면 북을 메고, 장구가 있으면 장구를 메고. 칠 줄 몰라도 한두 가락 즉석에서 배워 어찌 풍물패를 꾸렸다. 다행히 마을에 쇠를 칠 고수가 있으니 쇳소리에 맞춰 북과 장구가 어설픈 가락이나마 신명을 돋우면 되겠지. 대나무에 달력종이를 붙여 만장까지 만들었다.

    이곳은 몇 년 전만 해도 산골 빈 마을이었다. 도시서 살던 젊은이가 하나 둘 모여들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 누가 계획한 게 아니라, 자연스레 그러나 몇 년 만에 만들어졌다. 도시 살던 젊은이가 왜 이런 산골로 들어왔겠나? 도시에서 살아온 내력도 다 다르고, 여기서 살고자 하는 삶도 다르지만, 한 가지 공통점을 찾는다면, 자유롭게 살고자 해서가 아닐까.

    곡식을 심어도 적당히 거리를 떼어 심어야 잘된다. 사람도 그렇지. 적당히 거리를 두고 살아야 마음이 편하다. 그래서 우리 마을은 담을 이웃해서 살아가지 않고 드문드문 떨어져 살아간다. 어쩔 때는 한 마을에 살아도 집들이라든가, 아기 돌이라든가 큰일이 있지 않으면 철이 바뀌도록 얼굴 보기 어렵다.

    맨 윗집에서부터 한 집씩 돌아다니기로 했다. 첫 집 마당에서 한판 놀고 나서 그 집에서 한입 얻어먹고 다음 집으로. 집주인들은 풍물패를 기다렸다가 풍물패가 놀고 나면 뒤따라온다. 두어 집 놀고 산길을 한참을 걸어야 다음 집이 나온다. 땅이 풀리니 길이 좀 질퍽거리나. 신발 밑창에 흙발을 달고 걸어간다. 젊은 동네라 아이들도 많다. 동네 아이들은 작대기 하나씩이라도 들고 겅중겅중 앞서거니 뒤서거니 따라다닌다. 그렇게 돌아다니다 보니, 호박 농사가 잘된 집에서는 호박죽을. 찹쌀 농사가 잘된 집에서는 약밥을. 새로 마을에 들어온 집에서는 막걸리를 받아왔다. 이렇게 하루종일 놀고 먹고. 이웃집을 돌아보고, 이웃도 우리 집에 와서 ‘만복이 따글따글 붙으라’ 기원해주고.

    우리처럼 산골에서 사는 사람들에게 대보름 놀이는 사람 일만은 아니리라. 멧돼지가 논을 쓸어버리고, 논에 오리를 너구리가 잡아먹고, 꿩과 토끼가 콩밭을 망친다. 산짐승이 덤벼들면 농사하고 살아가기 힘들다. 그러니, 풍물소리를 울려, 산에 사는 목숨들에게 여기 사람이 살고 있노라고, 사람이 농사짓고 살게 해달라고 빈다.

    보통 곡식을 심기 전에 거름 내고 논밭을 갈아엎지. 그래서 ‘농사’ 하면 소가 쟁기질을 하는 모습이 떠오른다. 한데 우리는 밭을 갈지 않고 농사하고 있다. 처음에는 우연히 시작했다. 첫해 겨울 이웃마을을 지나는데 마늘밭에 솔가리가 덮여 있다. ‘아, 저렇게 하면 좋겠구나.’ 그래서 틈나는 대로 산에 가서 부엽토를 해다 마늘밭에 덮어주었다.

    대보름에 오곡밥 먹고 개구리 깨어날 때 고추씨 넣고

    대보름 놀이 때 필자의 집에서 이웃들이 모여 오곡밥을 먹었다. 댓돌에 놓인 이웃들의 신발.

    이듬해 봄, 검불이 두텁게 덮여 있어, 마늘을 뽑을 때까지, 풀 잡기 그리 어렵지 않았다. 마늘을 캐고, 손으로 김을 매고, 그러니까 밭을 갈지 않고 그대로 팥을 심었다. 실험은 계속되었다. 풀로 풀을 잡는다고, 틈나는 대로 풀을 베어 덮어주었지. 가을에 다시 마늘을 심고 솔가리 덮어주고. 그러다 보니 밭 흙이 바뀌었다. 흙이 비단처럼 매끄럽고, 어디를 파도 지렁이가 있고, 사람이 밟으면 푹푹 들어간다. 지렁이 흙이 된 거다.

    자연농법을 알고는 있었지. 하지만 자칫하다 곡식을 제대로 거두지 못하는 ‘내버려두자 농법’이 되면 어쩌랴 싶어 대뜸 시작하지 못했다. 자연농법은 갈지 않고, 김매지 않고, 거름 주지 않는 거다. 어떻게 그렇게 농사할 수 있나? 생각이 바뀌기가 쉽지 않았다. 밭은 풀에게 내주고 우리는 사다 먹어야 하면 어쩌나. 농사짓고 살면서 사다 먹어서야, 남들한테 손가락질당하지 않겠나. 아니, 내 스스로 그리 할 수는 없었다.

    우리가 시골로 내려오고 조금 뒤 아이엠에프가 터졌다. 그러면서 기계로부터 자유로워질 수는 없을까 생각하곤 했다. 마늘밭에 이어 그 옆 밀밭에 덤벼들었다. 밀을 거두고 밭을 갈지 않고 팥을 심어보자. 밀 거둘 때는 바쁘기 이를 데 없는 때지만, 호미 하나 들고 엎드려 김을 매며 팥을 심었다. 밀을 베어낸 밑동이 남아 있어 손을 찌르고. 새벽같이 가서 김을 매다 보면, 해가 올라 땀이 줄줄 흐른다. 그래도 일이 힘든 건 괜찮다. 이렇게 해서 농사를 망치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 더 힘들었다.

    하늘이 도와주었는지, 팥이 금세 자라 풀을 이기기 시작했다. 김을 한두 번 매주기만 했는데 팥이 무성해져 꼬투리를 맺었다. 팥을 거두고 다시 김을 매고 밀을 호미로 심어나간다. 이렇게 한 차례 돌려짓기를 하고 나니, ‘되겠구나!’ 다음해에는 넓은 밭도 모두 갈지 않고 농사할 자신이 생겼다.

    지렁이와 두더지와 뱀

    우리는 우리 방법으로 농사를 하고자 한다. 남들한테 배우기도 하고 영감을 얻기도 하지만, 어떤 이론에도 얽매이지 않고 우리 좋은 대로. 그때그때 우리 형편에 맞춰. 해마다 조금씩 새롭게.

    밭을 갈지 않으면, 땅 속에 사는 모든 목숨과 더불어 지내야 한다. 그 가운데는 우리한테 좋은 지렁이, 거머리가 있지. 또 우리가 싫어하는 거세미(야도충), 들쥐도 있다. 농사를 망칠 정도로 이 놈들이 퍼지면, 참을 수 없어, 보이는 대로 잡아 죽이기도 한다. 하지만 열 사람이 한 도둑을 못 잡는 것처럼, 하나를 잡으면 열은 번지는 기분이다. 결국, 자연이 스스로 풀어낸다. 한 가지가 퍼지면 천적이 나타나는 거지. 지렁이가 생기면 두더지가 판을 치고, 두더지가 생기면 뱀이 알고 나타난다. 그런 자연의 흐름에서 보고 배우며 마음을 느긋하게 먹는 공부를 한다.

    그럼, 어떻게 농사를 하나? 곡식이 어릴 때, 풀에 치이면 자랄 수 없다. 그러니 되도록 풀을 잡는다. 아니, 일년 내내 김을 맨다고 봐야겠지. 그러다 곡식이 웬만큼 자라, 땅 속을 곡식 뿌리가 차지하면, 곡식이 풀을 이겨낸다. 새로 풀이 자라도 그다지 맥을 못 추는 거지.

    한여름 뙤약볕이 되면, 오히려, 한가하다. 미리미리 풀을 맸으니까. 물론, 미처 잡지 못한 풀이 듬성듬성 자란다. 그런 풀은 잡기 힘들지 않다.

    땅에서 나는 생명은 되도록 그 땅으로 돌려준다. 풀을 뽑아도 그 자리에 놔주고. 고구마를 캐도 먹을 고구마만 가져오고 나머지는 모두 그 자리에 둔다. 우리가 가져오는 게 있으니 우리도 가져다 줘야 미안함이 줄어들지. 일년 내내 맨땅이 드러나지 않도록 풀로 땅을 덮어준다. 풀로 풀을 막고, 또 썩어서 거름이 되라고. 가을에는 볏짚을 구해서 덮어주고. 일년 내내 산에서 검불, 물가에서 갈대, 밭둑에 풀, 뭐든 베어 부지런히 덮어준다.

    퇴비를 따로 만들지 않는다. 밭 전체가 자연 퇴비장이다. 닭장을 치우면 비 오기 전에 밭에 뿌려준다. 뒷간 똥통을 비워서는 과일 나무나 호박 구덩이에 넣는다. 오줌을 따로 모아 삭혀서 뿌려주고. 그러니 땅 힘에 따라 농사를 한다. 거름발이 필요한 고추나 토마토는 거름진 땅에. 콩이나 들깨는 아직 땅 힘이 덜 살아난 밭에. 그 땅에서 자라는 풀을 보면 그 땅 사정이 보이고, 땅 힘이 좋은 땅은 걸어만 봐도 다르니까.

    곡식이 어릴 때는 밭이 어설퍼 보인다. 기계로 밭을 곱게 갈고 나서 두둑을 새로 하고 곡식을 심으면 멋지다. 교복 반듯이 입고 운동장에 줄 맞춰 선 학생들처럼. 거기 견주면 우리 밭은 풀도 듬성듬성 있지. 두둑도 반듯하지 못하고 곡식도 들쭉날쭉하다. 그러다 곡식이 자라면 사정이 달라진다. 포기나누기를 하며 제 힘껏 자라난다. 양팔을 쭉쭉 뻗으며 자라나, 곡식 숲을 이룬다.

    밭을 갈지 않고 농사하려니 어려움도 있다. 먼저, 땅 힘을 살려야 한다. 이게 말이 쉽지, 농약 비료로 농사하던 땅은 몇 년 공을 들여야 한다. 이렇게 땅을 살리면 두더지 굴이 얼마나 많은지, 씨를 심으려 호미로 파 보면 어디 씨 놓을 데가 없다. 곡식 싹이 어릴 때는 뿌리를 다친다. 그러니 곡식을 심어도 가지런하게 자라지 않고 들쭉날쭉하다. 풀을 잡는 일도 쉽지 않은데, 산이라 그런지 나무뿌리가 무섭게 뻗어난다.

    나름대로 매력이 많다. 밭에 저절로 자라는 풀이 새롭게 다가온다. 풀은, 없애야 하는 잡초가 아니라, 나물거리다. 또 무슨 풀이 자라냐에 따라 그 땅 성질을 알 수 있다. 밭을 갈지 않고, 검불을 계속 덮어주니, 온갖 땅 속 벌레와 지렁이가 살아나 땅이 거름지다. 지난해처럼 비가 많이 온 해는, 밭고랑에 물이 찰랑찰랑 차도, 다 빠진다. 제대로 땅 힘이 살아난 땅은 땅 속이 얼마나 부드러운지, 아이 손으로 땅을 헤쳐 고구마를 뽑아낼 수 있다.

    농사를 한다기보다 자연에게 얻어먹는 그런 기분이다. 농사가 자연에 다가가는 징검다리이긴 하지만, 실제 자연에서 한참 벗어나 있기도 하다. 그런데 갈지 않고 농사를 하니, 자연에 좀더 다가간 기분이다.

    밭을 모두 갈지 않는 농사에 어느 정도 자리가 잡히고부터 남편은 논도 갈지 않고 농사를 하려고 실험을 한다. 맨 아래 한 다랑이에 실험 농사를 한다. 겨우내 논에 부엽토를 끌어다 덮고. 뒤로 고랑을 파고. 그렇게 노력했지만 첫해는 실망이 컸다. 모가 제대로 자라지 못한 거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다시 도전을 하는데. 생각지도 않게 일이 풀려나갔다. 아홉 살 작은애 덕에.

    우리는 줄곧 논에 오리를 넣어 농사를 해왔다. 오리는 논에 모내고 나서 넣어 이삭이 팰 때까지 두어 달 넣는다. 또 오리는 어릴수록 일을 잘한다. 이삭이 패 논에서 오리를 빼내면, 모두 처분하곤 했다. 오리를 수단으로 삼은 거지. 그런데 작은애는 오리를 목숨으로 보았다. 오리를 키우고 싶다 했다. 그래서 오리 몇 마리 목숨을 부지하고 겨울을 났다. 입춘이 지나자 오리가 알을 낳았다. 오리는 알을 잘 안 품는다고 한다. 게다가 우리 오리는 부화장에서 깨어난 오리이니 기대도 안 했다. 그런데 작은애 정성인지, 본성을 되찾았는지, 알을 품는다.

    오리는 이십팔 일, 그러니까 거의 한 달을 품는다. 한 달 동안 먹이도 제대로 못 먹고 알자리에서 정성을 기울이더니, 못자리를 하고 올라와 보니 드디어 새끼가 나와 돌아다닌다. 첫배에 일곱 마리. 그 오리를 무경운(無耕耘)할 논에 넣어주었다. 그 작은 오리 새끼가 어미를 따라 논을 헤엄치고 돌아다닌다. 그러면서 먹이를 찾아 논바닥을 부리로 후빈다. 또 풀씨도 먹고, 어린 둑새풀도 먹고. 이렇게 오리가 사십 일쯤 놀고 나니, 갈지 않고도 모를 낼 수 있겠다. 지난해는 제법 거둘 수 있었다. 새로운 농법이 이렇게 태어나겠구나.

    첫농사는 고추 모종 키우기

    벼루에 먹을 간다. 글자를 쓴다. ‘입춘대길’ 식구마다 잘 쓰는 글자는 아니지만…. 그 글씨를 붙이려니, 삽짝문은커녕 울타리도 없어서 마루문에 붙인다. 처음 글자를 써서 붙였는데 아무 생각 없이 ‘入春大吉’ 하고 써 붙였다. 아, 이제 봄에 들어서는구나 하고. 누구 글씨가 어떠니 식구들이 왁자하게 웃으면서.

    조금 뒤, 이상하다. 얼른 사전을 찾아보니, 入이 아니라 立이다. 입춘이 ‘봄에 들어서는’ 게 아니라, ‘봄기운이 일어서는’ 날이었구나. 아이고, 창피해라. 써 붙인 종이 누가 볼세라 얼른 떼어 냈다.

    아니나다를까. 입춘이라고 봄이 온 건 아니다. 실제로 무척 춥다. 작년에는 영하 13도까지 내려갔으니…. 하지만 봄기운이 일어서긴 일어선다. 입춘이 지나고 나면 날이 하루가 다르게 풀리는 게 느껴진다. 땅이 녹는다. 땅 거죽이 먼저 녹지. 그러면 땅은 온통 질퍽거린다. 따뜻한 햇살 이어지면, 어느새 땅 속까지 녹아 땅이 꾸덕꾸덕 마른다. 봄비가 오시면 더욱 좋지. 겨울잠을 자던 벌레 꿈틀대기 시작하고, 양지에는 마른 풀 사이 봄 싹이 고개를 내민다. 농사일을 시작할 때다.

    해마다 첫농사는 고추 모종 키우기다. 마을 어른들은 구정이 지나면 바로 고추씨를 사다가 모종을 기르기 시작한다. 그러니까 2월 들어서면서 농사일을 하는 거지. 그러려면 비닐집 속에 고추 모가 얼지 않게 몇 겹으로 덮어주고, 아침이면 햇살 받으라고 벗겨주고. 저녁에 다시 덮어주고. 이렇게 문안 인사를 해야 한다. 그러다가 크게 추우면 마음을 졸이지. 고추 농사해 돈을 하시니 남들보다 먼저 길러 한번이라도 더 따야 한다. 우리는 우리가 받은 씨로 심으니, 어차피 많이 못 딴다. 씨를 이어간다는 마음으로 되도록 자연스럽게 키우고자 한다. 그래서 남들보다 한참 늦게, 우수(雨水) 지나 개구리 깨어날 때, 고추씨를 넣는다.

    입춘이 지나 눈이 녹으면 우리대로 할 일이 있다. 밀밭, 보리밭 꼭꼭 밟아줘야지. 양파밭, 마늘밭도 둘러봐야지. 밭마다 김을 매야지. 김을 매다 보면 뽑아낸 풀이 바로 나물이라. 김 매고 웃거름 주니 뒷간 청소, 닭장 청소 저절로 된다.

    우수가 되면 봄기운이 시작된다. 날은 차고 봄바람 매서울 때도 문득 봄기운을 느낄 수 있다. 어느덧 눈이 비가 되고 얼었던 땅이 녹고 그늘의 잔설도 녹는다. 논밭 둘러보고 새해 농사 계획 세우고, 삽질 한번, 낫질 한번 몸을 푼다.

    농사 일 한 발 앞서 장을 담가야지. 장을 담그는 일은 시골 살림에서 중요한 일이다. 양념 가운데 가장 웃어른이 장이니까. 며칠 전에 항아리를 씻어 맹물에 우려낸 뒤 말리고. 메주도 씻어 말린다. 간수 빠진 소금도 구해 놔야지. 장 담그기 하루 이틀 전에 소금물을 푼다. 좀 넉넉하게. 간을 맞추어 풀어놓고 하루 이틀 가라앉힌 뒤 웃물만 쓴다. 또 이렇게 하면 간을 고칠 수 있지. 이렇게 준비가 끝나면 맑은 날 장을 담근다. 장항아리를 볏짚으로 소독하고, 햇살이 밝게 퍼지거든 항아리에 메주를 넣고, 소금물을 붓는다. 그리고 작은 항아리에 소금물 남는 걸 따로 보관한다. 그리고 고추, 대추, 숯도 함께 넣고 솔잎가지로 아가리를 막는다.

    사나흘 뚜껑 덮어 푹 잠을 재우고 나서 무명천으로 덮은 뒤에 해 나면 뚜껑을 열고 저녁이면 닫는 정성이 또 40일이라. 장은 정성으로 준비하고 정성으로 익는다.

    씨앗을 고른다. 지난해 받아놓은 씨앗들을 모두 꺼내, 다시 한번 확인하고, 없는 것은 미리 챙긴다. 새로 농사를 시작하는 이웃에게는 씨앗만큼 좋은 선물이 따로 없어, 씨를 보면 ‘이 씨는 누구한테 얻은 거지’ 하며 씨를 준 분이 떠오른다. 우리 역시 누가 씨앗을 구하려 오면 반갑다. 우리 씨앗이 퍼지는 일이니까.

    봄 농사에서 중요한 것은 느긋하게 기다릴 줄 아는 마음이다. 씨앗을 보면 얼른 심고만 싶다. 얼른얼른 다 심고 싶지. 하지만 서두른다고 되지 않는다. 5월 초까지 서리가 오는 곳이니 서리에 약한 곡식은 빨리 심어봐야 헛일이니까. 또 곡식마다 때가 있어 제때 심어야 잘 자란다. 한데도 자꾸 얼른 하고 싶어 서두르니, 봄에는 늘 기다리는 마음이 필요하다.



    우수가 지나면 봄기운 보인다. 아이들 들판에서 뛰놀다 들어와,“나비 봤다.”

    “나도 봤다.”

    잠자리에 들면 멀리서 호로로 호로로 개구리 울음소리 들린다. 이맘때 개구리 울음소리는 새소리같이 마음을 끈다. 이 개구리 울음소리가 만물을 깨운다. ‘일어나! 깨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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