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歸農人 장영란의 우리 땅, 우리 맛 ⑪

대보름에 오곡밥 먹고 개구리 깨어날 때 고추씨 넣고

  • 글: 장영란 odong174@hanmail.net

대보름에 오곡밥 먹고 개구리 깨어날 때 고추씨 넣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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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림경제’에 과일 나무는 (음력) 정월 상순에, 그러지 못하면 이월 상순에 심으라 한다. 과일 나무는 위로 뻗어가는 기운을 담고 있다. 그러니 달이 차오를 때 심어야 좋다. 이때에 맞춰, 어린 나무를 구해야겠는데… 장에 나오는 묘목은 품종개량을 많이 한 나무다. 열매를 굵게, 빨리, 많이 달리게. 그러다 보니, 나무가 야성을 잃고, 온실 속에 화초처럼 바뀌었다. 법대로 가지치기해야지, 꽃 솎아야지, 열매도 솎아주어야 한다. 그래도 병이 많고, 벌레 피해도 크다. 우리처럼 약을 안 치면, 과일이 익기도 전에 벌레가 다 먹고 사람 얻어먹을 게 없다.

고기를 먹고 싶으면 우리가 길러서 먹듯이, 과일을 먹고 싶으면 우리 손으로 길러 먹고 싶다. 그래서 나름대로 한다고 한다. 봄가을 웃거름 주고. 꽃필 때부터 열매 굵어질 때까지 손길을 보낸다. 농약 대신, 현미식초와 목초액(굴뚝물)도 뿌려준다. 가지를 치고, 꽃과 열매도 솎아준다. 신문지로 봉지를 만들어 씌워주는데, 그렇게 노력하고도 얻는 결실은 보잘것없다. 과일이란 게 참 귀한 거구나.

농약을 스무 번 친다는 사과나무. 농약을 안 치고 키워보려다 결국 죽여버렸다. 사과는 유기재배가 안 되는지. 사과는 못 따먹어도 봄이면 꽃 피고, 열매를 맺는 모습이 보기 좋았는데…. 어릴 때 먹어보았던 국광, 홍옥 그 사과나무는 어디 갔나. 그 나무는 농약을 안 치고도 열매를 얻어먹을 수 있을 텐데… 어디에서도 그 나무를 기른다는 사람을 찾을 수가 없다. 어느 과일이든 자기 힘으로 열매를 맺을 수 있는 나무를 기르고 싶다. 열매가 볼품이 없어도, 맛이 떨어져도.

과일나무를 심고 길러보니, 과일가게에 넘쳐나는 과일을 볼 때 두렵다. 저렇게 철없이 흔하게 먹어도 될까? 조류독감, 소 광우병. 고기를 먹기 위해 사람이 한 짓이 사람에게 되돌아오는 것이리라. 어쩌면, 더 무서운 무언가가 올 수 있으리라.

하루종일 먹고 노는 대보름 놀이



올해는 윤2월이 들어 대보름이 빠르다. 입춘 다음날이다. 대보름 지나면 농사일을 시작한다고 하지. 그래 농사일하기에 앞서 몸을 돌보는 날이 대보름이다. 지난해 농사한 곡식을 한데 넣어 정성껏 밥을 하고, 온갖 나물 무쳐 배부르게 먹는다. 술도 한잔 하며, 겨우내 움츠려든 몸을 움직여 한바탕 신명나게 놀면 얼마나 좋겠나. 일이란 게 뭔가!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어 일이라고 한다. 마음만 앞서 몸이 따라가느라 고생을 해도 안 되고, 몸은 움직이는데 마음은 딴 데 있어도 힘들다.

지난해는 우리 마을이 생기고 처음으로 대보름 놀이를 했다. 마을 사람들 마음이 한데 모이니 다 이뤄진다. 집집이 북이 있으면 북을 메고, 장구가 있으면 장구를 메고. 칠 줄 몰라도 한두 가락 즉석에서 배워 어찌 풍물패를 꾸렸다. 다행히 마을에 쇠를 칠 고수가 있으니 쇳소리에 맞춰 북과 장구가 어설픈 가락이나마 신명을 돋우면 되겠지. 대나무에 달력종이를 붙여 만장까지 만들었다.

이곳은 몇 년 전만 해도 산골 빈 마을이었다. 도시서 살던 젊은이가 하나 둘 모여들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 누가 계획한 게 아니라, 자연스레 그러나 몇 년 만에 만들어졌다. 도시 살던 젊은이가 왜 이런 산골로 들어왔겠나? 도시에서 살아온 내력도 다 다르고, 여기서 살고자 하는 삶도 다르지만, 한 가지 공통점을 찾는다면, 자유롭게 살고자 해서가 아닐까.

곡식을 심어도 적당히 거리를 떼어 심어야 잘된다. 사람도 그렇지. 적당히 거리를 두고 살아야 마음이 편하다. 그래서 우리 마을은 담을 이웃해서 살아가지 않고 드문드문 떨어져 살아간다. 어쩔 때는 한 마을에 살아도 집들이라든가, 아기 돌이라든가 큰일이 있지 않으면 철이 바뀌도록 얼굴 보기 어렵다.

맨 윗집에서부터 한 집씩 돌아다니기로 했다. 첫 집 마당에서 한판 놀고 나서 그 집에서 한입 얻어먹고 다음 집으로. 집주인들은 풍물패를 기다렸다가 풍물패가 놀고 나면 뒤따라온다. 두어 집 놀고 산길을 한참을 걸어야 다음 집이 나온다. 땅이 풀리니 길이 좀 질퍽거리나. 신발 밑창에 흙발을 달고 걸어간다. 젊은 동네라 아이들도 많다. 동네 아이들은 작대기 하나씩이라도 들고 겅중겅중 앞서거니 뒤서거니 따라다닌다. 그렇게 돌아다니다 보니, 호박 농사가 잘된 집에서는 호박죽을. 찹쌀 농사가 잘된 집에서는 약밥을. 새로 마을에 들어온 집에서는 막걸리를 받아왔다. 이렇게 하루종일 놀고 먹고. 이웃집을 돌아보고, 이웃도 우리 집에 와서 ‘만복이 따글따글 붙으라’ 기원해주고.

우리처럼 산골에서 사는 사람들에게 대보름 놀이는 사람 일만은 아니리라. 멧돼지가 논을 쓸어버리고, 논에 오리를 너구리가 잡아먹고, 꿩과 토끼가 콩밭을 망친다. 산짐승이 덤벼들면 농사하고 살아가기 힘들다. 그러니, 풍물소리를 울려, 산에 사는 목숨들에게 여기 사람이 살고 있노라고, 사람이 농사짓고 살게 해달라고 빈다.

보통 곡식을 심기 전에 거름 내고 논밭을 갈아엎지. 그래서 ‘농사’ 하면 소가 쟁기질을 하는 모습이 떠오른다. 한데 우리는 밭을 갈지 않고 농사하고 있다. 처음에는 우연히 시작했다. 첫해 겨울 이웃마을을 지나는데 마늘밭에 솔가리가 덮여 있다. ‘아, 저렇게 하면 좋겠구나.’ 그래서 틈나는 대로 산에 가서 부엽토를 해다 마늘밭에 덮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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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장영란 odong17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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