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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호 민주노총 위원장 “단병호 체제, 과격투쟁 비판만 받고 쟁취한 건 없었다”

  • 글: 황호택 동아일보 논설위원 hthwang@donga.com

이수호 민주노총 위원장 “단병호 체제, 과격투쟁 비판만 받고 쟁취한 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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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호 민주노총 위원장 “단병호 체제, 과격투쟁 비판만 받고 쟁취한 건 없었다”

집에 걸어둔 성공회대 신영복 교수의 서예작품 ‘더불어 한길’을 바라보는 이수호 위원장 부부.

수원지검 심재천 검사는 신일고 2학년때 담임이었던 이 교사를 이렇게 기억했다.

“다른 선생님과는 달랐습니다. 보통 선생님들은 공부 잘하는 학생들을 예뻐했죠. 그런대 이 선생님은 공부 못하고 말썽 피우는 학생들에게 더 신경을 썼습니다. 학생들에게 인기 있는 편이었습니다.”

이 교사는 담임을 맡아 1년 내내 결석자가 한 명도 없는 무결석 학급을 만들었다. 그는 “시골에서는 겨울에 20∼30리 걷거나 자전거 타고 다니는 학생들이 많다. 그런데도 결석하는 학생이 없는데 너희들은 뭐냐”고 서울 학생들을 다그쳤다.

당시 교사사회의 분위기는 어땠을까.

“신일고에 서울사대 출신 선생님들이 많았습니다. 낮엔 아이들 가르치고 밤엔 전부 과외를 하더라고요. 그때가 박정희 시대 말기인데, 교육투자가 소홀해 한 반에 60∼70명이나 되는 아이들이 바글거렸죠. 학교에서 제대로 공부할 여건이 안 되니 여유로운 계층에서는 과외를 시켰습니다. 학교 수업시간에 열심히 가르치면 되지 부잣집 아이들을 뽑아 밤에 따로 가르치는 것을 나로선 받아들일 수 없었죠. 나는 과외를 안 하고 고려대 교육대학원에 등록해 공부를 했습니다. 그리고 야학을 했습니다. 정릉교회 야학에서 만난 아이들과는 지금까지도 교류를 합니다.”



-YMCA교사회 활동을 시작한 동기는 무엇입니까.

“교과서 자체가 엉망이었습니다. 유신을 미화하고 박정희 대통령 찬양하는 글들이 그대로 실려 있었죠. 학교도 억압된 상황이었습니다. 교장 마음대로였으니까요. 내가 이런 환경을 고치지 않고 아이들을 가르치면 죄 짓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했지요. 1980년 광주민주화항쟁이 벌어졌고 그 정신이 사회 여러 분야로 확산되기 시작했습니다. 대학에서 학생운동하던 친구들이 교사로 발령받아 나오고 그 친구들을 중심으로 젊은 교사들이 모여 공부를 했습니다. 그런 모임도 잘못하면 범죄행위로 몰려 처벌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YMCA를 활용한 것이죠. 여러 지역의 YMCA교사회가 모여 전국 YMCA교사회를 만들었습니다. 당시는 교수 작가 종교인들이 잇따라 민주화선언을 할 때였어요. 1986년 5월10일 YMCA교사회를 중심으로 전국 교사 600여명 정도가 교육민주화선언을 했습니다.

내가 그 선언을 주동해 해직될 위기에 처했는데 신일고 학생들이 구해줬죠. 5월15일 스승의 날에 신일고 학생들이 전부 운동장에 나와 침묵시위를 벌이며 ‘우리 선생님 잡아가면 시험을 거부하겠다’고 했습니다. 학교 선생님들도 모두 사퇴하겠다고 나섰습니다. 그래서 못 잘랐죠. 1987년 6월항쟁 후 8∼9월에 노동자들의 대진출이 있었습니다. 교사들도 자주적인 교사단체를 만들자고 해서 전국교사협의회를 결성했습니다. 도망 다니며 싸웠습니다. 1988년 한해 동안 계속 전교협을 중심으로 교육법 개정, 부정비리 척결운동을 벌였지요.”

해직, 수배, 도피, 수감…

전교협은 불법이 아니었지만 활동은 봉쇄당하기 일쑤였다. 법적 근거가 없는 임의단체였기 때문이다. 1988년말 활동을 법적으로 보장받고 교섭을 통해 현안문제를 협상테이블에서 해결하자는 견해가 구체화돼 1989년 5월28일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이 결성됐다.

정부는 전교조가 결성되자 강경 대응으로 맞섰다. 문교부(현 교육인적자원부)는 전교조에서 탈퇴하지 않은 교사 1519명을 해직하고 42명을 구속했다. 전교조 사무처장이던 그는 가장 먼저 구속돼 6개월을 살고 집행유예로 출감했다.

김영삼 대통령은 대선공약이었던 전교조 교사 복직을 일부 실천해 1994년 3월 1000명 가량의 교사가 해직 5년 만에 교단으로 돌아왔다. 전교조 활동을 안 하겠다는 내용을 복직원서에 한 줄 써넣어야 복직이 허용됐는데 500명은 이것마저 거부하다 김대중 정부 출범 후 복직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복직됐다.

전교조가 합법화된 후인 1998년 9월 마지막 복직교사 이수호씨가 선린정보산업고에서 첫 수업을 하는 모습이 기사화됐다. 이 교사가 칠판에 ‘새로운 만남’이란 글을 써놓고 ‘반갑습니다’고 말하자 학생들이 박수로 화답했다고 당시 신문은 전하고 있다.

“학생들을 잘 가르쳐보자고 시작한 일 때문에 감옥에 갔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유치원과 초등학교에 다닐 때였는데 가정이 파탄날 상황이었습니다. 구치소에서 하루에 한 통씩 집사람과 아이들에게 엽서를 보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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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황호택 동아일보 논설위원 ht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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