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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方外之士 ③

차 맛 감별하는 품명가(品茗家) 손성구

“찻잎 우러나는 소리 들으며 마음을 닦지요”

  • 글: 조용헌 원광대 초빙교수 cyh062@wonkwang.ac.kr

차 맛 감별하는 품명가(品茗家) 손성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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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맛 감별하는 품명가(品茗家) 손성구

같은 차라도 어느 찻잔에 담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질 수 있다. 손씨는 1200。C 이상에서 구워낸 다구가 좋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손씨의 사무실 벽에는 ‘茶而觀’이라고 씌어진 액자가 있다. ‘차를 마시며 관법을 한다’는 뜻으로 그의 차 철학을 압축한 문구다. 즉 그에게는 차가 요가, 참선, 명상과 같이 하나의 수행법이 되는 것이다. 손씨는 “관을 하는 데 있어 차는 하나의 수단인 동시에 벗이 된다”고 말한다. 처음에는 차를 알기 위해서 관을 했지만 나중에는 관을 하기 위해서 차를 마신다는 것. 당연히 관을 하기 위해서는 절제된 삶의 태도가 필요하다. 특히 술, 담배를 멀리해야 한다. 미세한 맛의 차이를 감별하는 데 방해가 되기 때문.

손성구씨의 차 철학을 들으며 ‘현대인은 차 맛을 제대로 알기 어렵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매일 사는 게 정신 없는 사람들이 어떻게 차를 알겠는가. 차를 알기 위해서는 백수건달이라도 되어야 할 것 같은데 막상 건달이 되면 극품의 차를 구입할 돈이 없을 게 아닌가. 돈 있는 사람은 바빠서 차 맛을 알 수 없고, 건달은 차 맛은 알지만 돈이 없어서 차를 살 수 없으니 어쩌면 이다지도 세상살이는 진리와 반비례하는 것인지.

손씨는 1982년 처음 차와 인연을 맺었다. 고려대 중문과 1학년 때 우연히 대만으로 유학간 선배들이 선물로 놓고 간 중국차를 마시게 됐다. 이때부터 처음 5년 동안 그는 무턱대고 차를 마셨다고 한다. 단지 ‘차가 맛있다’는 이유에서였다.

다음 10년은 차를 쫓아다녔다. 좋은 차가 있다는 소리가 들리면 어디든 가보았다. 이 시기 처음 몸이 열렸다고 한다. 몸의 경락이 열리면서 각각의 차가 가지고 있는 독특한 기운이 몸으로 감지되기 시작했다.

그 다음 5년은 차에 대한 이론을 정립하는 시기였다. 이론의 핵심은 차는 몸에도 좋고 수행에도 좋다는 것. 아울러 차의 역사를 공부하고 유적지도 답사했다. 특히 초의선사의 행적지를 주로 따라갔다. 그가 머물렀던 곳이면 거의 다 찾아가 어떤 물을 사용했는지 주의 깊게 살펴보았다. 전남 해남의 대흥사, 강진의 다산초당, 지리산 칠불사 등이 초의선사가 머물렀던 곳이다.



다산 선생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았다. 우연한 계기로 다산 선생의 생가가 있던 경기도 양수리 마재마을에서 5년간 거주한 적이 있다.

차를 좋아했던 다산이 강진에서 유배생활을 할 때 그를 따르던 제자 18명이 차를 매개로 신의를 다지자는 취지로 계를 만들었다고 한다. 계의 이름은 ‘다신계(茶信契)’. 다신계 회원들은 돈을 모아 전남 강진에 차밭을 구입했다. 강진에서 차를 수확하면 회원들은 이 차를 마재마을로 가져와 마시곤 했다. 추사가 초의에게 “왜 차를 안 보내느냐”고 독촉했던 배경을 추측해보면, 추사도 다신계의 멤버였을 가능성이 높다. 다산의 친동생 정약종과 영조의 사위 홍현주도 다신계 회원이었다.

다신계 회원들이 주로 회동하던 장소가 바로 마재마을. 어떻게 보면 한국 차의 성지인 셈이다. 그런 마재마을에서 5년간 살 수 있었던 것도 보통 인연이 아닌 것 같다는 손씨는 “전생에 다신계 멤버 아니었겠냐”며 허허 웃었다.

중국 베이징대에서 유학했고 회사 생활도 몇 년 해봤지만 결국 그는 프로 품명가의 길에 들어섰다. 본인 말처럼 전생에 다신계 멤버였다면 납득이 가지만 어쨌든 매우 독특한 팔자임에 틀림없다. 분명한 것은 누가 시킨다고 가는 인생행로는 아니라는 것이다.

고지대에서 자란 차가 명품

어떤 차가 명차(名茶)인가. 손씨가 말하는 명차의 조건과 기준은 다음과 같다.

첫째 고산지대에서 자란 차가 품질이 좋다. 높은 곳은 상대적으로 깨끗한 데다가 안개가 많이 낀다. 안개는 차의 성장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차에는 수분이 필요한데 안개가 은은하게 수분을 보충해주기 때문. 우리나라 지리산의 화개차가 품질이 우수한 것도 안개 덕분이다.

또 고산 지대의 차 잎이 알차다. 기온이 낮으면 차 잎의 밀도가 촘촘해지기 때문. 차 나무가 서식할 수 있는 고도는 보통 해발 2500m라고 하는데,고도가 높은 곳에서 자란 차일수록 명품으로 친다. 히말라야의 ‘설차(雪茶)’는 매화처럼 눈 속에서 자라다가 3개월이라는 짧은 봄 동안 설산의 모든 기운을 머금고 생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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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조용헌 원광대 초빙교수 cyh062@wonkw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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